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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인생의 길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장근영

2016-12-15

인생의 길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습심리학의 창시자, B. F. 스키너(Skinner)는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유는 측정의 오차, 불충분한 데이터, 공식의 빈칸 때문에 생기는 오류에 가깝다. 그는 인간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쥐나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이전에 축적된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유기체의 행동은 강화와 보상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환경이 보상을 주었다면 그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행동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는 이것저것 되는 대로 행동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주변 환경으로부터 유효한 보상을 받을 확률이 높은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건 사실은 어떤 사람이 지금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뭘 할지 아직 모르는 상태일 뿐이다. 요컨대, 스키너가 보기에 ‘자유로운 선택’이란 마치 정답이 정해진 시험문제를 앞에 놓고서 제멋대로 자기만의 답을 고르는 행동과 비슷하다. 그런 행동의 결과가 낙제점으로 이어지듯, 자유는 무지에 대한 오해이며 부적절한 착각일 뿐이다.

 

스키너는 그저 경험이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미치는 영향력만을 보고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했지만, 현대 심리학자들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단지 내용이 더욱 풍성해졌을 뿐이다. 발달심리학에서 인간의 성장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변인은 ‘유전 대 환경’ 혹은 ‘선천적인 기질 대 후천적인 학습’으로 나눈다.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운명과 선택 암시 이미지

 

일단 우리는 유전자의 산물이다. 우리의 피부색, 얼굴 모양, 눈동자의 색과 크기, 머리카락의 색과 질감은 물론이고, 지능과 재능, 근본적인 기질, 건강과 수명은 모두 유전자에 달려 있다. 당신이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를 일으킬지, 내향적일지 외향적일지는 유전자가 결정한다. 평생 담배를 피워도 폐암에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의 간접흡연만으로도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유전자 때문이다. 성장 환경도 중요하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그 부모가 어떤 식으로 양육했느냐, 어떤 동네에서 사느냐, 어떤 시대·나라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좋은 학군으로 이주시키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다. 물론 그들 중 많은 수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자녀가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 따위를 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한 유전 때문이다. 공부하는 지능 역시 유전이다. 공부 못 했던 부모가 자기 자녀를 8학군으로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유전자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이처럼 자유는 실제보다 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 소비문화는 대중들에게 선택의 자유라는 미끼를 던져서 그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번 겨울에 우리는 수많은 신제품 방한복 중에서 자신이 입을 옷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작년에 산 파카가 옷장에 멀쩡히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돈을 들여 새 옷을 산다. 우리에겐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들을 구매할 자유가 있지만, 그것들을 구매하지 않을 자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 자유는 그저 신상을 구입할 능력이 되지 않는 자들이 내세우는 변명일 뿐이다. 그러니까 소비문화에서 말하는 자유는 그저 시장의 손바닥 안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시장이 제공하는 선택지 중에서 고를 자유만 눈에 보일 뿐, 시장 자체를 벗어날 자유는 쉽게 생각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자유는 사람들을 홀리는 환상이고 측정과 예측 범위의 오차에 불과할까? 다시 스키너로 되돌아가보자. 미국 심리학계의 거장이 되어 노년에 접어든 스키너는 노화에 적응하는 비결을 습관에서 찾아냈다. 모든 물건을 정해진 자리에 두고, 메모를 하고 그 메모를 읽는 습관을 통해 나이가 들어 점차 약화하는 기억력을 대처하는 식이었다. 사실 그는 모든 파티에 불참하고 매일 스스로 정한 분량의 책을 읽고 매달 논문을 한 편씩 쓰는 습관을 만들어 하버드 대학교에서 5년 만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본인의 삶 자체가 습관의 위력을 증명하는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습관은 환경이 허용한 좁은 범위의 자유 속에서 우리가 매일 내리는 사소한 선택의 결과다. 하루에 10분 운동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걸 매일 하게 되면 습관이 된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라도 어떤 습관대로 살았느냐에 따라 중년 이후의 건강 상태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지는 모르지만, 그 환경 중 최소한 일부는 우리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다. 인류 사회와 문명의 발전사는 이렇게 작은 선택과 변화의 축적으로 점철되어 있다.

 

주사위 이미지

 

우리의 삶에서 자유의 비중은 과대평가되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자유는 정말로 사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자유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왔다. 지금도 우리는 바로 그런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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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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