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기상청 집계는 38도 이상은 수치로 환산하지 않는 게 아닐까. 바람 한 점 없는 가혹한 무더위가 연일 계속된다. 이번 여름에 어디로 갈까. 여행지를 결정하고 탈 것을 예약하고 숙박지를 찾고, 루트를 짜고···. 휴가철을 앞두고 반복되는 행복한 고민. 원하는 건 ‘탈출’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기대가 8할이다. 여행이 주는 일탈의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다. 일상적이지 않은 ‘충격요법’으로 잠깐의 여행이 굳은살이 배겨 무뎌진 당신의 감각을 되살릴 수도 있다. 수많은 영화가 여행의 시간을 예찬하는 것도 이 환기의 목적에 있지 않을까. 여행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는 한결같이 말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난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내면, 지금 고민하고 문제점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여행지도 제각각,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여기 소개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짐을 꾸려 도착한 곳은 공통점이 있다. 목적지는 바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이다.
▲ 꾸뻬씨의 행복여행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여행자 헥터(사이먼 페그)는 참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정신과 병원의 성공한 의사다. 문제는 눈만 뜨면 우울함에 빠진 환자들의 고충을 듣고 처방을 내리는 동안, 그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리적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올바른 처방을 내리고 있는 걸까?’ 그가 내린 처방은 ‘세계여행’이다. 병원 문을 닫고, 애인과도 잠깐 떨어져 지낼 결심을 한 그는 꼼꼼하게 챙긴 짐 가방에 질문들을 챙겨 넣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돈은 행복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가?” 부자인데 불평이 가득한 사업가와 작은 먹을 거리에도 감사할 줄 아는 아프리카의 대가족, 자기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불법 행위를 하는 마약 밀매상, 말기암 환자인데도 미소를 잃지 않던 여성···. 여행길 그가 세계 각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답변을 준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자신의 소명에 응답할 수 있는 것, 사소한 일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 자신이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헥터가 찾은 답변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한편으로 매일 섭취해야 하는 비타민같이 유용하다. 헥터의 고민이 꽤 실제 같아서 그럴 텐데, 영화는 파리 도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30대 중반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루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일종의 심리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여행 처방전이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여행자 월터(벤 스틸러)는 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자다. 여행만 안 가봤냐고 하면, 딱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42살, 미혼, 16년째 잡지 『라이프』에서 네거티브 필름 담당자로 일하며 집과 직장을 오갔을 뿐,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해본 적 없다.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많은 그는 직장에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지금껏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는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시대, 『라이프』지는 회사의 경영을 이유로 지면 매체의 폐간을 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호의 표지사진을 결정했는데, 바로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의 사진이다. 숀은 특별히 25번째 필름에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메모를 보내왔지만, 정작 그 필름은 보이지 않는다. 월터는 사라진 25번째 필름을 받기 위해 숀을 찾아 졸지에 지구 반대편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로 여행하게 된다. 되돌아보니 어린 시절 월터는 평범한 회사원 차림의 지금과 달리, 모히칸 머리에 스케이트보드 대회에 나가 우승했던 경력도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어릴 적 꿈을 접었을 뿐이다. 숀을 찾아 나선 그 길에서 월터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화산 폭발 현장에서 도망치는 등 사무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험을 하게 된다. 월터가 결국 사라진 필름을 찾게 되었을까. 확실한 건 월터가 스펙터클한 모험여행을 통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용기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그가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하는 순간은 아름답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제임스 서버의 대표작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원작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가 흐르는 아이슬란드 장면은 그곳으로 여행을 부추기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 이탈리아 횡단밴드
<이탈리아 횡단밴드>의 여행자는 오랜 친구들이다. 중년의 니콜라(로코 파팔레오), 살바토레(파올로 브리구그리아), 로코(알렉산드로 가스만), 프랑코(맥스 가제)는 왕년에 밴드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각자 생활에 치여 그 기억을 잊고 산 지 오래됐다. 우연히 한 친척의 결혼식에서 즉흥적으로 밴드를 결성하고, 이탈리아 최고 재즈 페스티벌 ‘스칸자노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할 것을 결심한다. 페스티벌에 나가는 건 둘째 치고, 이들의 결합이 재밌는 건,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다. 차로 가면 2시간 걸릴 거리를 마다하고, 이들 모두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열흘이나 꼬박 걸어야 하는 도보 횡단에 뛰어든다. 짐은 당나귀에 싣고, 밤마다 캠프파이어가 펼쳐진다. 캠핑하는 동안 친구들은 티격태격 그간 쌓여 있던 것들을 꺼내놓고 그 결과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가정에 매여 있던 니콜라는 과거의 열정을 되찾았고, 7년 동안 섹스도 못 해본 남자 살바토레는 여행 중 만난 여자와 영화 같은 삼각관계에 빠진다. 잘 못 나가는 연예인 로코는 자신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사랑의 충격으로 말문을 잃었던 프랑코는 트로페아와 새로운 사랑을 얻게 된다. 이탈리아 중년 남성들의 수다를 따라 자아를 찾아가는 독특한 로드무비. 특히 그루브 공연과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 지방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압권이다. 보석 같은 로케이션의 정체를 알고 보니 감독이자 니콜라로 출연한 로코 파팔레오의 고향이 이곳이란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수려한 곳을 구석구석 알고 있었던 감독은, 그 아름다움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 속 그들은 어디로 떠났을까
영화 <꾸빼씨의 행복여행>,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탈리아 횡단밴드>의 목적지
이화정
2016-08-17
후끈. 기상청 집계는 38도 이상은 수치로 환산하지 않는 게 아닐까. 바람 한 점 없는 가혹한 무더위가 연일 계속된다. 이번 여름에 어디로 갈까. 여행지를 결정하고 탈 것을 예약하고 숙박지를 찾고, 루트를 짜고···. 휴가철을 앞두고 반복되는 행복한 고민. 원하는 건 ‘탈출’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기대가 8할이다. 여행이 주는 일탈의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다. 일상적이지 않은 ‘충격요법’으로 잠깐의 여행이 굳은살이 배겨 무뎌진 당신의 감각을 되살릴 수도 있다. 수많은 영화가 여행의 시간을 예찬하는 것도 이 환기의 목적에 있지 않을까. 여행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는 한결같이 말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난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내면, 지금 고민하고 문제점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여행지도 제각각,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여기 소개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짐을 꾸려 도착한 곳은 공통점이 있다. 목적지는 바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이다.
▲ 꾸뻬씨의 행복여행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여행자 헥터(사이먼 페그)는 참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정신과 병원의 성공한 의사다. 문제는 눈만 뜨면 우울함에 빠진 환자들의 고충을 듣고 처방을 내리는 동안, 그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리적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올바른 처방을 내리고 있는 걸까?’ 그가 내린 처방은 ‘세계여행’이다. 병원 문을 닫고, 애인과도 잠깐 떨어져 지낼 결심을 한 그는 꼼꼼하게 챙긴 짐 가방에 질문들을 챙겨 넣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돈은 행복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가?” 부자인데 불평이 가득한 사업가와 작은 먹을 거리에도 감사할 줄 아는 아프리카의 대가족, 자기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불법 행위를 하는 마약 밀매상, 말기암 환자인데도 미소를 잃지 않던 여성···. 여행길 그가 세계 각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답변을 준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자신의 소명에 응답할 수 있는 것, 사소한 일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 자신이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헥터가 찾은 답변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한편으로 매일 섭취해야 하는 비타민같이 유용하다. 헥터의 고민이 꽤 실제 같아서 그럴 텐데, 영화는 파리 도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30대 중반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루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일종의 심리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여행 처방전이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여행자 월터(벤 스틸러)는 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자다. 여행만 안 가봤냐고 하면, 딱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42살, 미혼, 16년째 잡지 『라이프』에서 네거티브 필름 담당자로 일하며 집과 직장을 오갔을 뿐,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해본 적 없다.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많은 그는 직장에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지금껏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는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시대, 『라이프』지는 회사의 경영을 이유로 지면 매체의 폐간을 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호의 표지사진을 결정했는데, 바로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의 사진이다. 숀은 특별히 25번째 필름에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메모를 보내왔지만, 정작 그 필름은 보이지 않는다. 월터는 사라진 25번째 필름을 받기 위해 숀을 찾아 졸지에 지구 반대편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로 여행하게 된다. 되돌아보니 어린 시절 월터는 평범한 회사원 차림의 지금과 달리, 모히칸 머리에 스케이트보드 대회에 나가 우승했던 경력도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어릴 적 꿈을 접었을 뿐이다. 숀을 찾아 나선 그 길에서 월터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화산 폭발 현장에서 도망치는 등 사무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험을 하게 된다. 월터가 결국 사라진 필름을 찾게 되었을까. 확실한 건 월터가 스펙터클한 모험여행을 통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용기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그가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하는 순간은 아름답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제임스 서버의 대표작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원작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가 흐르는 아이슬란드 장면은 그곳으로 여행을 부추기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 이탈리아 횡단밴드
<이탈리아 횡단밴드>의 여행자는 오랜 친구들이다. 중년의 니콜라(로코 파팔레오), 살바토레(파올로 브리구그리아), 로코(알렉산드로 가스만), 프랑코(맥스 가제)는 왕년에 밴드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각자 생활에 치여 그 기억을 잊고 산 지 오래됐다. 우연히 한 친척의 결혼식에서 즉흥적으로 밴드를 결성하고, 이탈리아 최고 재즈 페스티벌 ‘스칸자노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할 것을 결심한다. 페스티벌에 나가는 건 둘째 치고, 이들의 결합이 재밌는 건,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다. 차로 가면 2시간 걸릴 거리를 마다하고, 이들 모두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열흘이나 꼬박 걸어야 하는 도보 횡단에 뛰어든다. 짐은 당나귀에 싣고, 밤마다 캠프파이어가 펼쳐진다. 캠핑하는 동안 친구들은 티격태격 그간 쌓여 있던 것들을 꺼내놓고 그 결과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가정에 매여 있던 니콜라는 과거의 열정을 되찾았고, 7년 동안 섹스도 못 해본 남자 살바토레는 여행 중 만난 여자와 영화 같은 삼각관계에 빠진다. 잘 못 나가는 연예인 로코는 자신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사랑의 충격으로 말문을 잃었던 프랑코는 트로페아와 새로운 사랑을 얻게 된다. 이탈리아 중년 남성들의 수다를 따라 자아를 찾아가는 독특한 로드무비. 특히 그루브 공연과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 지방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압권이다. 보석 같은 로케이션의 정체를 알고 보니 감독이자 니콜라로 출연한 로코 파팔레오의 고향이 이곳이란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수려한 곳을 구석구석 알고 있었던 감독은, 그 아름다움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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