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술적 운송수단에 의지하지 않는 여행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인간은 기술적 수단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싫어서 나는 가끔 기술적 운송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여행을 한다. 대단한 건 아니고 달리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 운동화들은 무슨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해서 엄청난 기능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하나의 기계가 됐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날라다 주는 운송수단은 엔진의 힘(혹은 전기 모터)에 의존하는 반면, 운동화는 내 다리 외에는 어떠한 동력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는 오로지 몸에만 의존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매일 같은 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달리기를 하나의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다른 코스를 달린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픈 상태에서 보는 경치는 안락한 차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와 재미로 다가온다. 특히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식당 앞을 지날 때 나는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당신들 배에 기름이 끼고 있을 때 내 배의 기름은 빠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달리기 외의 나의 모든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기계적 운송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여행에는 두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하나는 운송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의 문제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소중해서 허비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사람들은 운송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대개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한다.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거나. 그런데 기술적 운송수단이 얼마나 풍부하고 흥미로운 역사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안다면,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버리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 철도, 비행기는 오늘날의 안락하고 빠른 수준에 이르기까지 아주 흥미롭고 눈물겨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엔진의 실린더 안에서 1분에 수천 번의 폭발이 일어나야 하고, 그 폭발은 규칙적이어야 하고, 최소한의 연료를 소모해야 하고, 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서도 안 된다. 이렇게 자동차의 기계적 디테일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 그럼에도 특정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자동차 여행의 기술적 측면을 즐길 뿐, 대부분의 사람은 그 역사를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그저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항공기 여행도 마찬가지다. 무게가 400톤이나 나가는 보잉747이 하늘에 떠서 시속 1,000킬로미터의 속도로 14시간을 멈추지 않고 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기술적 성과를 너무나 당연시 여긴다. 그 결과 우리의 기술문화는 척박해지고 말았다. 기술적 대상이 가지는 의미가 풍부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오늘 탄 KTX의 견인전동기가 3상6극에 1,500볼트의 직류를 받아 1,500마력을 내는 강력한 힘 덕분에 영업속도 시속 300킬로미터로 부산까지 빨리 올 수 있었다”며 즐거워한다면, 그 여행은 기술문화적으로 풍부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 기술문화란 기술을 한낱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기술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문화를 말한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운송수단에 대한 기술적 사항들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도 검색 창에 ‘KTX 견인전동기‘라고 쳐서 알아낸 것이다.
요즘의 기술여행에서 이상하고 안타까운 또 다른 하나는 기술적 운송수단이 가져다주는 감각적 경험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즐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 노선은 2호선이다. 지상을 달리는 구간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신림역을 빠져나오면 전철은 지상구간을 달리는데, 신대방에서는 보라매공원과 기상청 건물이, 그 맞은편으로는 난곡동의 온갖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구로디지털단지를 지나면서 대림동과 신도림동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당산역을 나와 철교를 지나면서 한강변의 풍경이 펼쳐진다. 성수역 부근에서도 서울의 마지막 남은 공업지대인 성수동과 뚝섬 일대의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풍경에 관심이 없고 다들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다. 서울에 오래 살아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울은 항상 끊임없이 성장하는 아기 같아서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르다. 그래서 매일 새록새록 변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관심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비행기를 탈 때다. 유럽을 갈 때 비행기는 중국의 어느 두메산골 마을 위를 나는데 엄청난 협곡 양쪽으로 펼쳐진 이름도 모르는 마을의 모습이 신비롭다. 더 날아가면 펼쳐지는 큰 얼음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는 바이칼 호수의 모습도 장엄하기만 하다. 미국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는 알래스카 상공을 나는데, 인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끝도 없는 툰드라 지형이 놀랍기만 하다. 정말로 많은 호수가 있고, 그곳에 수많은 그리즐리 베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짜릿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멀리 동이 터올 때 1만 미터 상공의 맑은 공기 속으로 뻗어 나오는 태양 빛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때 저 아래로 다른 비행기가 비행운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의 목적은 이런 신비로운 광경을 보면서 인생을 살찌우는 것 아닌가?
그런 모습에 넋을 잃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영화를 보는 데 방해되니 창을 닫으라고 한다. 좁다란 영화 스크린에 눈을 박은 승객들은 유럽에 도착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에 가서 잘 알고 있는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유럽여행 잘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여행을 ‘기술적으로 소외된 여행’이라고 부른다. 기술수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풍부하고 낯선 경험은 도외시한 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좁은 세계에서 헤매다 오는 여행이 그것이다.
기술적 운송수단이 가져다준 최대의 혜택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하여 인생을 넓히고 살찌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태도는 기술적 수단이 가져다주는 경험에 충분히 눈을 열지 않고 있다. 만약 엄청난 돈을 들여 우주여행을 하는데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다면, 돈이 아깝지 않을까? 우리는 기술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얘기하기 전에 기술적 수단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기술비평가)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인문학의 지평에서 기계를 탐구하고 있는 기계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재봉틀에서 첨단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우주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기계산책자』 등을 펴내고,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우주생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사진의 과학’전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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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오늘날 기술여행의 이상한 모습
이영준
2016-08-03
오늘날 기술여행의 이상한 모습
오늘날 기술적 운송수단에 의지하지 않는 여행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인간은 기술적 수단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싫어서 나는 가끔 기술적 운송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여행을 한다. 대단한 건 아니고 달리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 운동화들은 무슨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해서 엄청난 기능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하나의 기계가 됐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날라다 주는 운송수단은 엔진의 힘(혹은 전기 모터)에 의존하는 반면, 운동화는 내 다리 외에는 어떠한 동력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는 오로지 몸에만 의존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매일 같은 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달리기를 하나의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다른 코스를 달린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픈 상태에서 보는 경치는 안락한 차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와 재미로 다가온다. 특히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식당 앞을 지날 때 나는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당신들 배에 기름이 끼고 있을 때 내 배의 기름은 빠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달리기 외의 나의 모든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기계적 운송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여행에는 두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하나는 운송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의 문제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소중해서 허비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사람들은 운송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대개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한다.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거나. 그런데 기술적 운송수단이 얼마나 풍부하고 흥미로운 역사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안다면,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버리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 철도, 비행기는 오늘날의 안락하고 빠른 수준에 이르기까지 아주 흥미롭고 눈물겨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엔진의 실린더 안에서 1분에 수천 번의 폭발이 일어나야 하고, 그 폭발은 규칙적이어야 하고, 최소한의 연료를 소모해야 하고, 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서도 안 된다. 이렇게 자동차의 기계적 디테일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 그럼에도 특정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자동차 여행의 기술적 측면을 즐길 뿐, 대부분의 사람은 그 역사를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그저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항공기 여행도 마찬가지다. 무게가 400톤이나 나가는 보잉747이 하늘에 떠서 시속 1,000킬로미터의 속도로 14시간을 멈추지 않고 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기술적 성과를 너무나 당연시 여긴다. 그 결과 우리의 기술문화는 척박해지고 말았다. 기술적 대상이 가지는 의미가 풍부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오늘 탄 KTX의 견인전동기가 3상6극에 1,500볼트의 직류를 받아 1,500마력을 내는 강력한 힘 덕분에 영업속도 시속 300킬로미터로 부산까지 빨리 올 수 있었다”며 즐거워한다면, 그 여행은 기술문화적으로 풍부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 기술문화란 기술을 한낱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기술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문화를 말한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운송수단에 대한 기술적 사항들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도 검색 창에 ‘KTX 견인전동기‘라고 쳐서 알아낸 것이다.
요즘의 기술여행에서 이상하고 안타까운 또 다른 하나는 기술적 운송수단이 가져다주는 감각적 경험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즐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 노선은 2호선이다. 지상을 달리는 구간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신림역을 빠져나오면 전철은 지상구간을 달리는데, 신대방에서는 보라매공원과 기상청 건물이, 그 맞은편으로는 난곡동의 온갖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구로디지털단지를 지나면서 대림동과 신도림동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당산역을 나와 철교를 지나면서 한강변의 풍경이 펼쳐진다. 성수역 부근에서도 서울의 마지막 남은 공업지대인 성수동과 뚝섬 일대의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풍경에 관심이 없고 다들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다. 서울에 오래 살아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울은 항상 끊임없이 성장하는 아기 같아서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르다. 그래서 매일 새록새록 변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관심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비행기를 탈 때다. 유럽을 갈 때 비행기는 중국의 어느 두메산골 마을 위를 나는데 엄청난 협곡 양쪽으로 펼쳐진 이름도 모르는 마을의 모습이 신비롭다. 더 날아가면 펼쳐지는 큰 얼음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는 바이칼 호수의 모습도 장엄하기만 하다. 미국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는 알래스카 상공을 나는데, 인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끝도 없는 툰드라 지형이 놀랍기만 하다. 정말로 많은 호수가 있고, 그곳에 수많은 그리즐리 베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짜릿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멀리 동이 터올 때 1만 미터 상공의 맑은 공기 속으로 뻗어 나오는 태양 빛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때 저 아래로 다른 비행기가 비행운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의 목적은 이런 신비로운 광경을 보면서 인생을 살찌우는 것 아닌가?
그런 모습에 넋을 잃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영화를 보는 데 방해되니 창을 닫으라고 한다. 좁다란 영화 스크린에 눈을 박은 승객들은 유럽에 도착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에 가서 잘 알고 있는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유럽여행 잘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여행을 ‘기술적으로 소외된 여행’이라고 부른다. 기술수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풍부하고 낯선 경험은 도외시한 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좁은 세계에서 헤매다 오는 여행이 그것이다. 기술적 운송수단이 가져다준 최대의 혜택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하여 인생을 넓히고 살찌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태도는 기술적 수단이 가져다주는 경험에 충분히 눈을 열지 않고 있다. 만약 엄청난 돈을 들여 우주여행을 하는데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다면, 돈이 아깝지 않을까? 우리는 기술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얘기하기 전에 기술적 수단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기술비평가)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인문학의 지평에서 기계를 탐구하고 있는 기계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재봉틀에서 첨단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우주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기계산책자』 등을 펴내고,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우주생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사진의 과학’전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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