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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내가 나와 마주치는 시간, 그 이름 여행

임진모

2016-08-03

내가 나와 마주치는 시간, 그 이름 여행


답답할 때,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시간과 마주하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 누군가 “모국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는 편견에 차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 최성원이 부르고 나중에 성시경도 부른 명곡 ‘제주도의 푸른 밤’은 우리가 여행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를 들려준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조용필의 대표작이자 여행하면 떠오르는 ‘여행을 떠나요’도 다르지 않다. 이승기가 리메이크했던 이 곡은 “도시의 소음 / 수많은 사람 /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보라고 역설한다.

 

여행의 진수는 자유를 얻고자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일과 직업에서 결코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그 완전한 자유를 원한다면 혼자든 둘이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 모든 장애와 불편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라고 할까. 자신을 ‘뒤에’ 남겨두고 딴 사람들을 떼어내는 게 여행이다. 바로 이러한 자유를 위해 여행 때 최대한 짐을 줄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속담에도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어놓고 가라!”는 말이 있다.

 

페퍼톤스의 앨범 Colorful Express(2005)

▲ 페퍼톤스의 앨범 Colorful Express(2005)

 

카이스트 출신 남자 듀오 ‘페퍼톤스’의 노래 ‘레디, 겟 셋, 고!(Ready, get set, go)’는 10년도 더 지난곡이지만, 여행이 주는 해방감에 대한 압축적인 그러면서도 적나라한 일성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행찬가로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디 앤드 겟 셋 고! / 내 전부를 터뜨리는 이 순간 / 레디 앤드 겟 셋 고! / 지금 여기서 숨이 멎어도 후회 따윈 없어….”

 

여행으로 전부를 터뜨리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자연이다. 지긋지긋한 도시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안도한다. 물론 경치를 찾는 것이 여행의 참된 벗은 아닐지라도 즐거운 기분, 신선함, 놀라움에 대한 견문 등 마음의 정화를 얻는 것은 사실이다. 윤도현이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고 바비킴이 속한 힙합그룹 ‘부가킹스’가 부른 노래 <여행길>의 가사를 보자. “나는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봐 / 별들이 가득한 이 아늑한 밤 / 귀뚜라미 소리와 시원한 바람 / 난 지금 자연과 하나가 된다….”


여행에서 배우는 관용


리처드 막스의 앨범 Right Here Waiting(1989)

▲ 리처드 막스의 앨범 Right Here Waiting(1989)

 

여행은 또한 관용을 가르친다. 이 거친 삶 속에서 맺은 관계에 너그러워지고 자신을 되돌아본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말했다.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여행하면서 기존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반성적으로 평가하면서 ‘러브 송’을 쓴다. 지난 1989년에 발표되어 여전히 ‘발라드의 수작’으로 회자되는 리처드 막스의 노래 <라이트 히어 웨이팅(Right here waiting)>은 바로 여행의 산물이다. 리처드 막스는 순회공연 중에 영화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로 떠난 아내 신시아 로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에는 교만과 당연시해온 것에 대한 회한이 실려 있다. “난 그대와의 시간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죠 / 그게 여하튼 계속될 거라고요 / 난 웃음 소리가 들리고 눈물이 흐릅니다….”

 

외국이든 우리든 스타 음악가들은 공연이라는 엄청난 공간이동, 즉 여행을 한다. 그래서 순회공연을 여행이란 의미의 ‘투어(Tour)’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공연하면서, 특히 전국 각지를 도는 ‘투어’를 하면서 아티스트들은 명곡의 악상을 떠올린다. 여행에서 음악은 필수라지만 음악가도 여행을 매개로 심기전환을 꾀하고 창의성을 가다듬어 곡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음악과 여행은 동의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음악여행’이라는 말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세기의 명작인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의 탄생에도 여행이 한몫을 했다. 작곡자 폴 매카트니는 여자친구의 집에서 멜로디를 떠올렸다고 했지만, 애초에는 프랑스 순회공연에서 이 곡을 썼다고 밝혔다. 아마도 여행 중에 썼던 선율을 더 보강했을 것이다. 최종가사를 다듬은 것 역시 포르투갈 리스본 여행에서였다고 한다. 국내에서 인기 높은 스팅(Sting)이 밴드 폴리스 시절 엮어낸 걸작 앨범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는 카리브 해 섬인 몬세라트에서, ‘1990년대 아바’로 꼽힌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히트작 <아름다운 인생(Beautiful life)>은 작곡가 요나스 베르그렌이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지대의 유명한 휴양지인 카나리 섬 여행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외국의 음악가들은 지금도 신곡을 구상하기 위해 섬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는다.


“여행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이끌어가는 것”


영화 중경삼림(1994)

▲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영화 중경삼림(1994)에도 삽입되어 떠나고 싶은 청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trmovie

 

여행은 유쾌한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접할 때 우리는 공포심을 갖는다. 오죽하면 여행이 즐거우려면 돌아올 훌륭한 보금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겠는가. 여행은 고행이 될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는 “교양의 뜻이 영원을 의미하는 가장 본질적인 지각의 훈련이라면 여행은 자기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위대한 여행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이끌어간다”고 했다.음악가가 순회공연, 아니 일반적 의미의 여행에서 수작을 양산했다는 것은 그 여행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빼어난 보컬 하모니만으로도 경이로운 ‘마마스 앤 파파스’의 명작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은 존 필립스와 미셸 필립스가 추운 뉴욕에서 그들의 고향인 따뜻한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 주)를 회상하며 만든 곡이다. “잎이 모두 갈색으로 변했어 / 그리고 하늘은 잿빛이야 / 나는 계속 걷고 있지, 겨울날에 / 만약L.A.에 있었다면 평화롭고 따뜻했겠지 / 캘리포니아를 꿈꿔, 이 겨울날에….”

 

단지 기후로서 온기를 갈구했을까. 아마도 로스앤젤레스와 자신들의 동일시 감정, 즉 “우리에게는 따스한 감성이 필요하다”는 자아발견을 은유적으로 토로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마마스 앤 파파스는 인류애의 발로인 ‘히피 문화’를 실천하는 삶으로 내달려갔다. 그들은 뉴욕 ‘여행’으로 캘리포니아로 표현된 진정한 자아를 찾은 것이다. 마마스 앤 파파스 이전, 이 곡을 쓰던 무렵에 두 사람이 몸담은 그룹 이름도 ‘새 여행자(New Journeyme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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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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