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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웃고 또 울었다

2024-02-20

우리는 웃고 또 울었다


기자 출신 작가.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서 시작해 취미로서의 글쓰기로 넘어가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휙 하고 흘렀다. 결혼 후 삶의 지도가 달라졌다.

이동하는 직업을 지닌 가족 이사를 많이다녀야했다. 덕분에 강원도를 비롯, 전라도 등 쓰기의 현장에서 울고, 웃는 과정을 보낼 수 있었다. 타지에서의 부대낌을 글로 승화시켰다. 생각의 나눔, 새로운 발견을 조우하며 학인들은 매번 ‘작은 간증(?)’을 나눴다.

그러다 상륙하게 된 경상북도.
이상하게도, 돌봄 노동. 아이들과 고군분투하면서도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을, 외면했던 건 아닐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속에 쌓여있던 여러 ‘말’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들어주는 건 가능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나의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9년차 엄마인 내가 누구보다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턱까지 차올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출발하게 된, <엄마 돌봄 글쓰기>. 읍내의 한 작은 도서관. 옹기종기 모여 뭘 시작해 보겠다고, 우연으로 시작한 끌림의 엄마들이 모였다. 뭣도 모르고 온 엄마들, 얼마나 대단한가. 왜냐, 시작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이거 사이비 아냐?’, 의구심이 들었을 법도 한데 말이다.

8월 9일, 더웠던 여름, 키워드로 알아보는 나로 시작, 내 곁에 있는 물건, 내 인생의 아지트, 내 인생의 책, 요리 편지, 나의 원가족, 나만의 꿀팁, 엄마의 자화상, 자녀 남편 인터뷰, 엄마의 돈, 내 인생의 띵작(명작), 버킷리스트 등의 수업을 진행했다. 짧고도 길었던, 길고도 짧았던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매번 주제 앞에서 울고 또 웃었다. 엄마라는 버겁고도 위대한 역할 앞에서 숨어있던 ‘나’를 꺼내는 시간들이었다. 그 애매하고도 모호한 감정을 ‘언어화’하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들을 공주쌤이라고 불렀다. 공부하는 주부의 줄임말이었다. 우리는 가방끈 스펙쌓기에서 벗어나 ‘나’를 알아채는 글쓰기 공부를 하는 셈이었다. 큰 성과도 있었다. 공주쌤들 가운데 공모전에도 붙어 장원을 받은 분도 있었다. 함께 환호했다. 


마지막 수업 시간, 물었다.
공주쌤들.
내 속에 수많은 '나'를 만나셨는지요?
"저지레, 많이 하셨는지요?"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셨는지요?"

한 번씩, 초고 앞에서 시름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에이 또 그렇다고 푹, 고개 숙이지 마세요. 당당하세요. 글쓰기 수업 완주한 게 어딘가요.
종이에, 노트북에 옮겨 적지 못했더라도 '생각'만 해도 된 겁니다. 생각은 결국 쓰기! 잊지 마세요.“

여러 해를 지나며, 환경도 성별도 직업도 전부 다른 학인들에게서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생을 사랑한다는 걸. 하나뿐인 내 삶을 어떻게든 끌고 가고, 나 데리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이렇게 수업도 듣고, 이런저런 발품을 판다는 걸.

우리는 인문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번개’로 끄적거림의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수다’는 휘발되지만, 그것을 언어화하고 적는 건 ‘한 끗 차이’임을 알고 있어서다. 2024에도 우리는 '나 데리고' 잘 살아보자고 울고 웃는다.

내 속에 수많은 '나'를 만나셨는지요?
"저지레, 많이 하셨는지요?"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셨는지요?"

한 번씩, 초고 앞에서 시름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에이 또 그렇다고 푹, 고개 숙이지 마세요. 당당하세요. 글쓰기 수업 완주한 게 어딘가요.
종이에, 노트북에 옮겨 적지 못했더라도 '생각'만 해도 된 겁니다. 생각은 결국 쓰기! 잊지 마세요.“

여러 해를 지나며, 환경도 성별도 직업도 전부 다른 학인들에게서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생을 사랑한다는 걸. 하나뿐인 내 삶을 어떻게든 끌고 가고, 나 데리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이렇게 수업도 듣고, 이런저런 발품을 판다는 걸.

우리는 인문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번개’로 끄적거림의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수다’는 휘발되지만, 그것을 언어화하고 적는 건 ‘한 끗 차이’임을 알고 있어서다. 2024에도 우리는
'나 데리고' 잘 살아보자고 울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