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중학교 1학년 J의 이모저모 [생활문화시설 길위의 인문학]

2024-01-30

<나를 해방시키는 트라우마 글쓰기_주엽한양문고> 청소년반 수업 참가자 인터뷰

 

중1 J의 이모저모

 

딸기와 바닐라 중 무엇이 좋냐 묻는다면 당연히 딸기입니다. 야채빵과 크림빵 중에 고르라면 크림이죠. 아니 당연히 크림빵이죠. 크림빵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왜 필요합니까?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중 누가 좋냐고요? 흠 저는 아직까지 여자친구들을 더 좋아합니다. 여자끼리는 통하는 게 많으니깐.

저는 키가 엄청 작은 편입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한 165센티 정도까지 컸으면 좋겠어요. 부디 키가 잘 커야 할텐데. 남자친구 키요? 남친은 170센티가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잘 생기고 키 큰 남자를 누가 싫어하겠어요? (상상만으로도 표정이 좋아진다.) 전 상대방의  외모는 잘 안보는 것 같아요. 결국 순둥순둥하고 키도 보통이고 이런 사람을 만나겠죠 뭐. 제가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남자친구가 제 사진을 잘 찍었으면 좋겠어요. 좀 깔끔하고 옷도 좀 잘 입고.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눈썹이 없다 보니 남자친구의 눈썹은 짙었으면 좋겠고 눈은 그냥 동글동글하면 되겠고 코는 엄청 높지 않아도 되는데 나름 있었으면 좋겠어요. 입술은 도톰해야 합니다. 입술이 왜 도톰해야 하냐면 흐흐흐흐 어쩌구 저쩌구 (중얼중얼 하면서 뭔가를 읊조리는데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수영을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깨가 넓어지잖아요. 아 사실 수영은 잘 할 필요없습니다. 그냥 어깨가 넓으면 좋겠어요. 좋아요. 다 좋습니다.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지만 키만큼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작은데 나보다 작으면 내 남친은 도대체 얼마나 작아야 하나요? 휴우.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니 저는 눈이 낮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운 적이 있냐고요? (흠칫한 표정,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제가 참 눈물이 많습니다.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도 울고 슬퍼도 울고 새벽에도 울고 학교에서도 웁니다. 그래요 저는 자주 웁니다. 왜 울었냐 물으신다면 너무 사소해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꿈을 잘 꾸지 않습니다. 상상 같은 것도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예측하는 정도이지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저의 시뮬레이션대로, 예측대로 상대방과 대화가 잘 진행되면 재미있고 기분이 좋습니다. 공감을 잘 하는 편입니다. 제가 얼마나 공감을 잘하냐면...네? 혹시 어렸을 때 매장 같은 곳에서 울고 불고 난리친 적이 있냐고요? 그건 갑자기 왜...(불안한 눈동자, 이걸 어떻게 알았지라는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만다.)

그래요.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코스트코였을 겁니다. 부모님과 장을 보러 갔는데, 인형이 많이 담긴 박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한 10년 전 이었을 겁니다. 그 때는 제가 너무 어렸죠? 지금 몇 살이냐고요? 중1이요. 저는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저는 그 엘사 박스를 보자마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신기하죠? 그래요. 그건 마치 운명 같았습니다.


아무튼 10만원이 넘는 그 박스 안에는 엘사와 안나, 못생긴 사슴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비쌌죠. 부모님이 당황하셨어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라는 걸 직감하신 것 같아요. 엄마가 부랴부랴 핸드폰 인터넷으로 상품을 검색해보니 인터넷으로 그 엘사박스가 5만원 정도 했나 봅니다. 집에 가서 사준다며 저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대형마트라는 커다란 무대가 준비가 되어있었고 저 운명같은 엘사박스를 갖기 위해 언제든지 진상을 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엘사박스를 품에 안고 놔주질 않았고 마트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 정도입니다. 누구나 한번씩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네? 또 있지 않냐고요? (안색이 어두워지면 한숨을 내쉰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유치원 졸업식 때였습니다. 다른 부모님들이 모두 꽃을 사들고 왔는데 저희 부모님만 빈손으로 왔어요. 부모님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죠? 정말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네. 물론 엄마가 졸업식이 있기 며칠 전에 꽃이 필요하냐 물어봐서 나는 필요 없다고 쿨하게 이야기했어요. 제가 그 당시에는 정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나만 꽃이 없는 거였어요. 와아.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저는 직감하고 말았죠. 내가 오늘 결국 또 울음보를 터뜨릴 거라는 걸. 마침 유치원 앞에는 플라스틱 조화 꽃다발을 파는 아저씨가 있는데 온갖 모양으로 꾸며진 4만원이 넘는 꽃다발을 사달라고 사람들 앞에서 펑펑 울었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조화 꽃을 사왔는데 그 날 이후 엄마가 집에 있는 그 꽃다발을 볼 때마다, 저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꽃이 아직도 집에 있냐고요? 아니요. 진작 버렸죠.

요번 주에는 그동안 사려고 별렀던 기름종이와 빗을 올리브영에서 샀습니다. 이 빗입니다. 보입니까? 이 영롱한 빛깔이? 만오천원정도예요. 이 빗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빗으로 머리를 빗을 때마다 머릿결이 고와집니다. 아주 시원하고요.

하아. 지금에서야 고백하는데 저한테 M자 탈모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반에 머리숱이 없는 애가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 자꾸 저보고 머리 숱이 없다고 놀리는 거에요. 와. 진짜 스트레스 받아요. 걔는 위에서 내려보면 두피가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인데 말이죠. 그런 주제에 감히 나한테... (씩씩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빗기 시작하는데 빗을 때마다 벅벅 소리가 난다.)

사실 오늘 수업에 올 때부터 수업 시간에 이 빗으로 머리를 빗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오면 선생님한테 머리를 빗으면서 글쓰기 수업을 들어도 되냐 물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미 머리를 벅벅 빗고 있다.) 아 그리고 기름종이는 말이죠? 저희 반이 학교 5층이 있어요. 체육시간이 있을 때마다 계단을 오르락내르락 하다보면 땀이 많이 납니다.

손수건이나 휴지는 가지고 다니기가 불편하고. 그리고 제가 사춘기이다보니 피지가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이 기름종이가 그 때 너무 도움이 됩니다. 땀을 흘릴 때 닦아도 좋고요. 기름종이 하나에 3500원인데 50장이 들어있어요. 그러면...음...한 장에 70원이라고요? 어이쿠 더 아껴써야겠네요. 체육시간이 끝나면 기름종이로 2장 정도 씁니다.

저는 영어학원에 다닙니다. 총 3교시입니다. 서구청소년수련관에서 왼쪽으로 주욱 가다보면 육교 바로 옆에 있는 영어학원입니다. 학원에 저보다 작은 남자애가 있는데 저한테 자꾸 어깨방을 칩니다. 아! 걔는 진짜 구립니다. 혹시나 나중에 잘생겨질 수 있으니 그 친구한테 미리미리 잘 하라구요? 선생님! 아니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절대!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요? 선생님! 만화나 영화를 보면 간혹 못생긴 애들이 안경을 벗으면 왕자님처럼 잘 생겨보이는 순간도 있잖아요. 그런데 걔는 심지어 안경도 쓰질 않습니다. 그냥 못생긴 겁니다. 완전 회생 불가예요. 아! 선생님 저는 진짜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네? 좀 전까지만 해도 제가 누구누구가 못생겼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요?

아잇 참! 선생님! 걔는 진짜 구리다고요."

 

작성자 : [생활문화시설 길위의 인문학] 강사 _ 나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