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인문 다큐 영화제] 귀 함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2023-11-20

자막보기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동편 처마 끝에 단단히 심어 두었더니 큼지막하게 한 서너덩어리가 열렸겄다
흥보가 박을 한 통 따다 놓고 흥보 내외 자식들과 함께 박을 한번 키어 보는디 박을 딱 쪼개놓고 보니, 궤 두 짝이 나왔것다
흥보가 한 궤를 가만히 열고 보니 쌀이 하나 수북허고 또 한 궤를 열고 보니 돈이 하나 그득허여노니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 짝을 한번 떨어 부어 보는디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궤 두짝을 떨어붓고 나면 도로 수북 툭툭 떨고 돌아섰다 열고 보면, 돈과 쌀이 하나 가뜩 툭툭 떨고 돌아다보면 쌀과 돈이 하나 가뜩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돌어섰다 열고 보면 돈과 쌀이 도로 하나 가뜩 워메 좋아 죽겄네

일년 삼백육십일을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고대부터 신분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 가린다 구별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햇빛을 가리거나 아니면 찬 바닥에 닿지 않도록 높이를 준다던가 의자를 만든다던가 이런 식의 특징으로 신분을 드러냈었는데요
산과 부채가 구별하고 구분 짓게 해 주는 대표적 공예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에 산선시위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산선시위는 사극 드라마를 보면 빨간색 비단으로 되어있는 산을 차양처럼 뒤에 궁녀들이 들고 다니는 걸 볼 수 있고
또 동그랗고 평평한 단선을 두 명의 나인이 들고  뒤에 따라다니는 것을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이처럼 산과 선을 존엄한 자가 위치한 곳에 두고 기능적으로 봤을 때는 햇빛을 가려주는 역할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존엄한 자를 상징하는 상징성, 장엄성이 가장 크고요
그래서 존엄한 자를 상징하는 것이 산과 선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김동식입니다
이건 버리는 거고 이것만 사용해요
대나무 자체가 깨끗하고 흠집이 없는 걸로 써야 해요
좋은 것만 골라내기 때문에 좋은 것만 쓰고 여기 있는 것은 못쓰지
깔끔하게 되어있는 부분만 사용해요

저는 전라북도 전주시  인후동 1가 111번지 가재미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자라서 거기서 일을 배웠습니다
-저기 걸려있는 사진은 누구실까요?
우리 외할아버지 나학천이라고 이 분 밑에서 일을 배웠어요
이 분 밑에서 일을 배웠어요 
1956년 내가 나이 14세 때 그때 외갓집에 가서 일을 배우게 됐지
그때만 해도 집에 생활이 다 어려우니까 우리 집도 우리 아버지가 생활이 넉넉지 못해서 외갓집 가면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도 가르쳐 주고 한다니까 
거기 가서 일하면 어떻겠냐 해서 가게 된 동기가 됐죠
외할아버지께서 고종황제에게 진상할 만큼 기술이 있었고 부채도 잘 만들었어요
그분은 솜씨가 좋아서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보면 어릴 때 봤어도 그 부채가 눈에 선하고 진짜 부채 잘 만드셨어요
그 밑에서 외삼촌들이 일을 배웠어요

저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우산장 윤규상입니다
제가 만드는 건 지우산을 만들고 있습니다
완주군 용진면에서 태어났고 아마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김제 백군면에서 10살 때까지 자랐어요
그러다 다시 고향 용진으로 다시 왔거든요
같은 동창중에 장재마을에서 온 아이들이 있었어요
내 하나 건너면 바로 마을이었거든요 장재마을이
가까운 동네에서 우산을 만들고 있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배우게 된 동기에요 형편상 그렇게 됐어요

장재마을은 농촌마을이에요
농사를 지으면서 가내공업으로 우산을 만드는데 당시에 제가 볼 때 이 집도 우산을 만들고 있고 저 집도 우산을 만들고 있고 다들 일을 해요
이 동네가 온통 우산공장이구나 분업식으로 되어 있어서 중빠질(대나무 다듬기)만 해주는 사람이 있고 갓선만 붙이는 사람이 있고 일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어느 한 집이 놀 수가 없었어요
전부 일하기 때문에 놀면 손가락질을 받는 거 같아서 놀래야 놀 수 없는 처지가 그 동네 환경이었어요
 
석소마을이라는 동네는 가느다랬어요
동네가 집이 시작해있으면  산 밑으로 일자로 저 밑까지 있었어
석소마을 앞에는 큰 내 강이 있었어요
강변에 느티나무 같은 것이 많이 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더라고요 군인들이 와서 밀어버린 것 같아
마을에 윗마을이 있고 아랫마을이 있는데 엄청 큰 팽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나무가 구획정리하면서 없어져 버렸어
오래된 나무인데 없어져 버리고 그 동네가 보면 단합이 잘 되더라고
백중날이면 농촌에 일하는 일꾼들이 하루 쉬어서 간다 해서 잔치도 하고 그러잖아요
돼지도 잡아서 삶아서 먹고  술도 한 잔씩 먹고 노래도 한 곡씩 하고 노는 날이야 그날이
선풍기가 언제 나온 지 아세요? 1972년에 나왔어요
80년대 들어서면서 에어컨이 나왔어요
근데 이제 80년 넘어서 한 중반쯤 되니까 중국산 부채가 들어오기 시작해요
중국산 부채가
중국산 부채가 얼마에 들어왔냐
30원, 20원, 50원
한국 부채는 얼마인고 하니 1만 8천원 1만 5천원 이렇게 팔았어요
싼 부채 나오니깐 우리 한국 부채를 안 사는 거야 우리 한국 부채를
재료값은 자꾸 올라가니깐 부채의 질을 상승시켜야되는데 이득이 없잖아요
하시던 분들이 돌아가신 것도 있지만 안되니깐 그만두는 분도 계시고 그랬지  
그래서 조금씩 죽다 보니깐 이제 죽어버린 것이지
이제는 완전히 죽어버렸죠
노력한 만큼 양이 안 차 돈벌이가
그것도 하다 보니까 그러다가 기술이 중국으로 샜어
중국으로 새가지고 중국에서 만들어서 역수입을 해
중국 물건은 싸잖아요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내 물건하고 경쟁하는데 내가 경쟁에서 손들어버렸어
이 사업 말고 다른 사업 없나 이걸 생각했어요


여보 마누라 이 박통 속에서는 쌀과 돈이 이렇게 많이 나왔으니 또 저 박 속에서는 무엇이 나올랑가 한번 타 봅시다
흥보 내외가 또 한 통을 갖다 놓고 타 보는디 박을 쩍 벌어져노니 이 박통 속에서는 왼갖 비단이 나왔겄다
흥보가 좋아라고
여보 마누라  이 박 속에서는 이렇게 비단이 많이 나왔으니 옷이나 한 벌씩 해 입고 타세
여보 영감 나는 놀놀한 송화색 삼회장 저고리가 제일 좋습디다 영감은 무슨 색깔이 좋으시오?
나는 거 제비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시커먼 먹공단이 좋데
흥보가 한번 치장을 허여보는디 
어떤가? 날 보소
영감은 영락없이 까마귀 같소그려
흥보 마누라도 꾸미는디
어떻소? 내 맵씨
자네는 영락없이 버들속에 꾀꼬리 같네 그려
우리 셋째 박을 마저 타세


몇 십 년 후에 TV를 봤더니 백악관에서 행사가 있었나 봐요
아낙네들이 부인들이 하얀 우산을 받쳐 들었는데 열 명 이상이 우산을 갖고 있어 하얀 우산
여름에는 하얀 것이 아름다워요 살이 많기 때문에
저건 내가 옛날에 만들던 것인데 그땐 아름다운 것을 모르고 만들었어요
그때는 영리 목적으로 밥을 먹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걸 봐도 아름다움을 못 느꼈는데 몇 십 년 후에 보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내가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 
도로 저걸 만들어야겠다  지금 만들면 저걸 상품으로 팔아먹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 물품을 내가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데  다른 사람도 그러겠지 라는 생각에 저걸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다시 만드니깐 이건 전통 우산이라고 문화재도 시켜주더라고요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부채 만드는 기술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지키지 않았으면 이런 기술이 사라져버려
없어져 버리면 너무 아쉽고 해서 앞으로는 우리 아들이 이어서 합죽선에 대한 디자인 그런 것들은 젊은 사람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나아 디자인하는 것은요
전통적인 작품보다 현대인들이 디자인해서 어떻게 합죽선을 더 좋게 만드는가 이런 것이 앞으로 제 바람이죠
앞으로 그렇게 해 갈 겁니다 


저는 조명 디자이너이자 빛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강의를 하고 빛에 대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수민입니다
지우산을 활용한 조명을 만들고 있고요
한지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에 어떤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무형문화재, 장인의 손길이 닿아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빛을 다루고 조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도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응하게 됐습니다

위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삶의 방식이 전환되었기 때문에 그거에 맞춰서 변화를 해야 하는 시기인 거죠
그랬을 때  본질을 유지하는 것과 본질을 유지한 채 이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는 것을 고민해야 될 때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본질인지 알아야지 제대로 변용할 수 있으니까
이제 그런 것을 제대로 공부한 학자나 현장의 기획자, 큐레이터들이 같이 호흡해서 이 것을 전환하는 것에 힘을 내서 (전통 공예품이) 사라지지 않고 배제되지 않고 같이 곁에 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또 셋째박을 타니 석수 목수 와수 토수들이 나와 기와집 수백 간을 대궐같이 지어놓으니 흥보가 어찌나 좋던지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 둥글이 생긴 돈
가다 오다가 생긴 돈 이리저리 생긴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어화 세상의 여러분네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부자라고 자세를 말고 가난한 사람 괄시마소
나도 오늘날 제비 덕에 쌀과 돈이 많이 생겼으니 기민 구제를 헐라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우리집을 찾아오소

귀 함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연출: 이정준 프로듀서: 설지희 촬영: 이정준

편집: 이정준 음악: 김백찬

출연: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김동식, 김대성, 전북무형문화재 우산장 윤규상, 윤성호

소리꾼: 양혜원, 지명인

기획 의도

영조시기 그려진 반차도를 보면 왕의 수레에는 우산과 부채를 든 사람이 곁에 있었다. 부채와 산은 예로부터 귀한 자의 상징이었다.

귀함이란 무엇인가. 귀하다는 것은 남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소위 ‘명품’이 있었고 가장 귀한 자는 명품을 사용했다. 구별된 사람은 예를 아는 사람이었다. 예는 '답게'라는 개념이다. 귀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또한 나를 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나를 귀하게 만들어 주는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귀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시대 공예를 하는 사람들을 위

한 관청을 만들어 국가에서 따로 관리한 예를 들어봐도 그렇다.

제작진은 전주에서 끊어지기 직전인 명품 공예품의 맥을 찾았고 이를 기록하고 명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산업시대를 맞이해 공장식 제조업이 등장한 이후 상품이 범람한다. 명품 또한 그렇다. 오픈런은 명품의 귀함을 보여주는 해프닝이다. 뛰어야 구할 수 있다. 명품은 많지만 귀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체 무엇이 귀한 것인가? 제작진은 오랜 기간동안 숙련된 장인의 손에서 나온 물건이야 말로 진정한 귀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물건과 사람의 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줄거리

영화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전북무형문화재 우산장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좇는다.

어릴적 두 장인이 일을 배운 전주의 석소마을과 장재마을의 흔적을 통해 현재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잊고 사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

2023-12-11

'귀 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부터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데요, 우리의 전통은 명품보다 더 귀한 가치를 담고 있죠.
현대사회에서는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귀함'의 기준이 우리 문화 유산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의 본질을 기억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귀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