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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배병우

상식과 조화

2016-11-29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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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조화

사진작가 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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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문학 열풍 속에서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오히려 갈증을 느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인문이란 무엇인가?’
이 우문에 현답을 들려주실 세 번째 손님으로 세계적인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을 모셨습니다.
Q. 인문이란 무엇일까요?
A. “상식을 형성하는 것”

작금의 모든 사태가 상식의 부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해요. 황량하죠. 우리가 겪는 문제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수준이고, 우리가 처한 단계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 더 성숙해지겠죠. 문학,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의 교양을 쌓고 상식을 형성하면 사람이 엉뚱한 짓을 안 해요. 함량 미달의 행동을 안 한다는 거죠. 예전에는 ‘인문교양’이란 말을 썼잖아요.
저는 197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중문에 집이 한 채도 없을 때였어요. 중문에는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어요. 바다에서 용암이 솟으면 물에 의해 빨리 식으면서 각형이 형성되는 게 주상절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봤더니 그 바로 앞에 컨벤션 홀과 호텔을 짓더니 울타리를 세워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하고 돈을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건물이 들어서고 있어요.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연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기본 양식이 없다는 거죠. 그런 양식이 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데 건물을 짓지 않았을 거예요.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공유하는 것이지 사유하는 게 아니에요.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을 사유화하는 건 상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거죠. 그런 기본적인 게 부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상식에는 종합적인 교양이 필요합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눈 같은 겁니다. 또 시대가 좋아야겠죠.

Q. 좋은 시대란 뭘까요?
A. “나누는 조화의 시대”

숲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아요. 나무들끼리 경쟁하기도 하고 서도 돕기도 해요.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나무들이 약 4,500년에서 6,000년 정도 되었다는데, 어떤 사람이 2만 년 된 나무를 발견했어요. 쓰러져 있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봤더니 옆 나무가 뿌리로 양분을 나눠주고 있었다더군요. 나무는 그렇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우리 삶도 그래야 건전해지는 거겠죠. 한국의 가진 자들은 부자가 된 역사도 생각도 짧아서 나눌 줄을 잘 몰라요. 다 자기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땅이 좁아서 그 어디보다 조화가 필요한 곳인데도 불구하고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그런 조화를 이루는 시대, 그런 시대란 조화를 이루고 그것을 촉구하는 교양인들이 많은 시대를 가리키는 거겠죠.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운 시절을 배겨낼 수 있어요.

“조화, 예술과 학문 발달의 원동력”

가령 예술도 그렇습니다. 예술 세계에서 노니는 게 공자의 목표였어요.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무엇이냐 하면 교양이 전제된 예술이에요. 교양이 있어야 예술이 나오죠. ‘술’이라는 건 기술이지만, ‘예’는 ‘흥’이고 ‘기’거든요. 그게 통합되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와요. 당나라의 왕유라는 예술가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그림은 말 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궁극은 시, 글씨, 그림이 결합한 ‘시서화(詩書畫)’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삼절(三絶)이라고 하죠. 그들은 ‘난정(蘭亭)’이라는 모임을 가졌어요. 그 자리에서 여럿이 시서화를 만들고 즐겼어요. 혼자서 ‘시’ ‘서’ ‘화’를 다 잘할 수 없으니 모여서 하는 거죠. 이런 조화의 정신이 훌륭한 예술이나 문학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거죠. 과학도 그렇습니다. DNA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도 주변의 많은 석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연구의 오류를 줄여나갔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그게 서로의 수준이 되고 시대의 수준이 되는 거죠. 다 연계되어 있는 거예요.

Q. 앞서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요?
자연을 담는 작품을 하시는 만큼 이에 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A. “먹고 먹히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유린한다면 언젠가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저는 스무 살 때부터 한국 땅을 헤매고 다닌 사람이라서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봤잖아요. 나무를 열심히 심어서 세계적인 산림 국가가 되었지만, 물은 다 오염됐어요. 예전에 보이던 생물들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요.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 대평원에서 수만 마리의 영양이 한꺼번에 이동하더라고요. 먹잇감을 노리던 사자는 그중 한 마리 잡아먹고 나면 이후에는 별로 관심을 안 보여요. 그저 지켜보는 거죠. 그 수만 마리 중에 죽는 동물 수는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에 비하면 그 확률이 훨씬 적을 거예요. 사람이 호랑이한테 잡혀 먹는 확률에 비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돼지, 소를 숱하게 잡아먹는 걸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죠. 그런데 산에서 사람을 해치거나 잡아먹을 건 이제 없어요. 호랑이를 죽이고, 멧돼지가 내려온다고 난리를 치잖아요. 그래서 신화가 없고 동화가 없죠. 다 없애버렸으니까. 사람의 진짜 적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죠.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죽고, 살인 범죄가 벌어지잖아요. 사람도 원래 자연의 일부예요. 어찌 보면 먹고 먹히는 게 당연한 거예요.

Q.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뜬구름 잡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인문학보다 과학, 수학 같은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기초가 되는 것들이 탄탄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수학을 못 하지만, 최근 『수학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대학에 가면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사진을 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진을 찍느냐는 그 사람의 기본 태도와 바탕에 달려 있어요. 사실 지금은 사진을 안 배워도 되는 시대예요. 전 세계적으로 사진학과가 없어지는 추세예요. 카메라는 도구이고, 도구는 아무나 쓸 수 있죠. 이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기초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수학자가 쓰면 수학적인 사진이 나올 거고, 과학자가 쓰면 과학적인 사진이 나오겠죠. 엑스레이, 내시경, 초음파, 이런 것들도 다 사진이거든요. 그러니까 인문학이라고 하는, 기초나 타깃이 명확하지 않은, 이런 붐을 이루는 흐름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 기초를 다지는 건 책이라고 보는데, 성인남성이 1년에 한두 권 읽는다던가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벨상을 원하고, 인문학 열풍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역량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문의 특성화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경상대 수학과에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학자들이 포진되어 있어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그런 특성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가령, 제주도는 해양생물학, 해양학을 키우고, 전라남도는 국악, 농업학과를 특성화하는 식으로요.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평준화, 평균화하는 것보다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평준화, 줄세우기식 교육은 모든 걸 다 쪼그라들게 해요. 이제는 대학이 그 이름값도 별로 못 하고 있죠. 제가 특강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피카소는 스페인 남쪽의 말라가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여수쯤 됩니다. 학교는 바르셀로나에서 미대를 졸업했어요. 지방대예요. 즉 위대한 사람이 꼭 일류 대학을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런 데 연연하는 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디서든지 자기 역할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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