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문 360゚ 독자 여러분. 조경란입니다. 이렇게 독자분들께 글로 인사를 드리기도 오랜만이고, 제 책 소개를 직접 하며 퀴즈를 내드리는 일도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지만, 함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즐겁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뉴스를 방금 들었습니다. 이제 초겨울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에요.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책은 지난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펴낸 『가정 사정』이라는 소설집입니다. 그때만 해도 겨울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느새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울 게 없는 말이지만, 시간이 정말 빨리도 흘러가 버리네요.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써야지, 라는 계획을 실천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사실 제가 좀 게으른 편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단편소설은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도 일 년에 한두 편은 꼭 쓰려고는 합니다. 제가 특히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너무 오래 쓰지 않으면 소설에서부터 아주 멀어져 버리는, 그 두렵고 낯선 경험이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집중해서 단편소설을 쓸 때의 적요함과 일시적인 자발적 고립의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무튼 다시 소설집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정 사정』은 저의 여덟 번째 소설집이고요, 각 가정(家庭)의 ‘사정’이라는 주제로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책의 맨 앞에 수록된 단편 「가정 사정」은 참담한 일로 가족 구성원을 잃어버린 두 부녀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12월 31일에 L타워에서 새해맞이 축포를 쏘아 올린 일이 있습니다. 그날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축포로 쓰인 종잇조각들이 계획대로 인근 호수로 떨어지지 않고 뜻밖에도 멀고 먼 위성도시까지 날아가 버린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층빌딩 주변과 아파트 등으로도 종잇조각들이 쓰레기처럼 쌓여서 근처 아파트 경비원들에겐 한동안 큰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지요. 그런 사건을 보고 듣고 하다가 구상한 소설이 바로 「가정 사정」입니다.
그 얼마 전에는 겨울 산책을 다녀오던 길에 동네 식당에 붙여 놓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OO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하겠다는 그 안내문의 문장이 저의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긴 뜻밖의, 피해 가면 좋을, 안 일어났으면 하는 그런 ‘사정’에 대해서. 안내문의 간단한 그 문장이 결코 간단하게 다가오지 않으면서 제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는 차에 L타워에서 쏘아 올린 축포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며칠 후,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편소설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데요, 서로 서먹한 관계였던 딸이 아파트 뒷산에서 미끄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옷 수선집 문을 닫고 아버지에게 가는 장면입니다.
가게문을 닫아걸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병원에 갔다 오늘 내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미는 작업대를 정리했다. 온풍기를 끄고 다리미 전원도 껐다. 라디오를 끄려고 할 때 세시 뉴스가 끝나려는지 일기예보가 나왔다. 내일 저녁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다. 해갈에 도움을 줄 정도는 아니어도 모처럼 건조한 대기를 가라앉힐 만한 비가 내릴 거라고. 정미는 라디오를 껐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 밖으로 나가 가게 미닫이문을 닫으려다 말고 정미는 다시 들어왔다. 종이 한 장을 찾아 작업대에 올렸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 병실에 누워 있을 아버지가 생각났다. 정미는 검은색 매직으로 또박또박 썼다. OO 사정으로 쉽니다. 가게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고, 그 위에 안내문을 붙였다. 바람에 테이프가 떨어져나갈지 몰라 손바닥으로 판판히 문질렀다. 아버지에게 비 예보를 전해드려야지. 그보다 먼저 아파트 야산에는 왜 올라가신거냐고 싫은 소리부터 할지도 모르지만. 그늘진 골목을 정미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1. 객관식 퀴즈
여기서 객관식 첫 번째 퀴즈, 내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이 된 안내문의 문장은 다음 중 어느 것이었을까요?
① "종업원 사정으로 쉽니다."
② "가족 사정으로 쉽니다."
③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④ "주인 사정으로 쉽니다."
* 결정적 힌트 : 소설집 제목에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은 백화점 건강보조식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주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 초기의 일인데요, L백화점 본점에서 23번 환자(확진자라는 단어를 쓰기 이전의 일입니다)가 나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얼마 뒤의 일을 생각하면 23번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백화점 측은 사흘간 영업을 중지하고 대대적인 방역 및 소독작업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23번 확진자가 다녀간 백화점 지하에서 일하는 분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사흘이라는 뜻하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을 테지만,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원치 않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흘간의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게 된 인주는 얼굴 좀 보자는 오빠의 설득에 못 이겨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오빠는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득 오빠가 인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집에 한 번 좀 다녀가 달라고요. 거기에 아이가 한 명 있을 거라고. 인주는 무사히 그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집으로 간 후 다음 날 출근을 하게 될까요?
인주가 주소를 들고 오빠의 집에 가자, 마치 인주를 기다렸다는 듯 진짜로 남자아이가 혼자 오롯하게 있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에 걸린 주인 없는 토끼 한 마리랑 같이 말입니다.
동물병원에서 토끼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무슨 작정인지 인주에게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는 사랑하는 사자를 위해서 열심히 풀을 뜯어다 줬고 사자는 풀을 좋아하진 않지만 소가 자기를 위해 준비한 거라서 싫다는 말을 못했어요. 소도 사자가 자기를 위해서 사냥을 해 온 먹잇감들을 아무 말 안 하고 맛있게 먹는 척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견딜 수가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헤어진 거잖아요.”
엄마가 일찍 자신을 떠나버린 아이는 어느새 일찍 철이 들어버렸나 봅니다. 아이는 제 방식대로만 토끼를 사랑하는 일이 토끼에게 해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네요.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한 소와 사자처럼요.
빈집에 혼자 있는 아이와 토끼를 두고 직장에는 ‘개인 사정’으로 하루 더 쉬겠다고 양해를 구한 인주는 다음날 대구를 떠납니다. 아마도 인주는 다시 그곳에 내려오게 될 줄 알았을 겁니다. 다시 오빠를 만나고 아이도 만나게 될 줄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겪었다시피 이제 대구는 급격히 불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도시를 봉쇄하고 마스크도 사두지 못한 인주는 집으로 돌아가 길고 긴 자가격리의 시간을 갖게 되며 직장으로부터는 해고 통보를 받게 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개인 사정들은 얼마나 더 많고도 많을까요.
2. 주관식 퀴즈
두 번째, 주관식 퀴즈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분이 경험한 ‘개인 사정’들을 한 서너 문장 정도로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가정 사정』을 쓰면서 소설이 서로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며 살아갈 위안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여덟 편의 이야기들이 그러한 감정을 전달해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제 시작될 추운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 인문, 깜짝 퀴즈 참여 시 유의사항 안내 ♦
1. 본인 확인을 위해 휴대전화 번호 끝 두 자리를 작성해 주세요.
2. 회원가입 시 이용약관 정보주체 동의에 따라 당첨 안내 메일 발송이 제한되오니 회원정보에서 '홍보 및 마케팅에 관한 수신 동의' 여부를 모두 확인 후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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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책 제목이 힌트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웃음), 모든 응모자분이 정답을 맞혀 주셔서 또 조용히 웃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 주관식퀴즈
◆ 당첨인: 문선주, 허은영, willowtree_6
이렇게 여러분들이 코로나19 시절의 ‘개인 사정’을 이야기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짐작보다 많이 응모해주셔서 놀랐고 더 많은 분을 정답자로 선택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무척 큽니다. 개인 사연을 들려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잘 읽었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문선주 님
정말 가슴 아프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지금은 건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시간 잘 건너가셨기를, 앞으로도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허은영 님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시느라 여러 가지 일을 하셨군요.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특히 우쿨렐레를 배우신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답니다. 저도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것은 ‘걷기’가 유일합니다.
willowtree_6 님
어머니와 산책을 자주 다니셨다는 말씀에 잠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가서 혼자서만 걸었지, 어머니와 함께 산책할 생각은 하지 못했었거든요. 어머니께 나무와 꽃 이름을 배우셨다는 말씀도 오래 가슴에 남을 듯합니다.
위의 세 분 외에도 ‘개인 사정’을 말씀해주신 응모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러분의 사정을 거듭 읽고 저도 배우고 느낀 점이 많습니다. 새 소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소설가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국자 이야기』『풍선을 샀어』『일요일의 철학』『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가정 사정』,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혀』『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그리고 사물, 세계, 사람』『소설가의 사물』등을 펴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댓글(3)
이**
2022-11-15
1번. 3번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번. 저는 코로나19시국에 두 아이의 감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작은 아이가 먼저 감염이 되고, 차례차례 온가족이 모두 앓았습니다. 격리기간에 새삼 나라의 소중함과 시스템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보건소에서 오는 문자 하나 하나 감사했습니다.
문**
2022-11-07
1번. 3번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번. 저는 작년에 암진단을 받았는데, 코로나때문에 치료하러 병원 갈때마다 코로나검사를 해야했고, 수술때는 1명만 보호자로 올 수 있어 친한 친구가 하루 같이 있어주고 나머진 혼자 지냈어요. 남편은 아이 셋 돌보느라 병원에는 올수도 없었지요. 병원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허**
2022-11-13
1. 정답 3번 2.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섭고 외부 활동을 거의하지 뭇했어요. 그래서 집에만 있다보니 코로나 블루가 오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어화화 공부도 하고 우클렐레 독학도 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찾아서 했더니 자기개발도 되고 우울증이 오지 않더라구요.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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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깜짝퀴즈] 소설가 조경란
- 인문, 깜짝퀴즈 -
조경란
2022-11-07
코로나19로 여러분이 경험한 '개인 사정'이 있나요?
- 조경란 연작 소설 『가정 사정』 중에서 -
ㅇ 출 제 자 : 소설가 조경란
ㅇ 응모기간 : 2022년 11월 7일(월)~2022년 11월 24일(목)
ㅇ 응모방법 : 본문 댓글 및 인문360 SNS 댓글 참여
ㅇ 당첨자 선물: 조경란 소설가 『가정 사정』 및 소정의 사례품
ㅇ 당첨자 발표 : 2022년 11월 30일(수) 예정
조경란 연작 소설 『가정 사정』 책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안녕하세요. 인문 360゚ 독자 여러분. 조경란입니다. 이렇게 독자분들께 글로 인사를 드리기도 오랜만이고, 제 책 소개를 직접 하며 퀴즈를 내드리는 일도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지만, 함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즐겁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뉴스를 방금 들었습니다. 이제 초겨울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에요.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책은 지난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펴낸 『가정 사정』이라는 소설집입니다. 그때만 해도 겨울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느새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울 게 없는 말이지만, 시간이 정말 빨리도 흘러가 버리네요.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써야지, 라는 계획을 실천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사실 제가 좀 게으른 편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단편소설은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도 일 년에 한두 편은 꼭 쓰려고는 합니다. 제가 특히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너무 오래 쓰지 않으면 소설에서부터 아주 멀어져 버리는, 그 두렵고 낯선 경험이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집중해서 단편소설을 쓸 때의 적요함과 일시적인 자발적 고립의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무튼 다시 소설집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정 사정』은 저의 여덟 번째 소설집이고요, 각 가정(家庭)의 ‘사정’이라는 주제로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책의 맨 앞에 수록된 단편 「가정 사정」은 참담한 일로 가족 구성원을 잃어버린 두 부녀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12월 31일에 L타워에서 새해맞이 축포를 쏘아 올린 일이 있습니다. 그날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축포로 쓰인 종잇조각들이 계획대로 인근 호수로 떨어지지 않고 뜻밖에도 멀고 먼 위성도시까지 날아가 버린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층빌딩 주변과 아파트 등으로도 종잇조각들이 쓰레기처럼 쌓여서 근처 아파트 경비원들에겐 한동안 큰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지요. 그런 사건을 보고 듣고 하다가 구상한 소설이 바로 「가정 사정」입니다.
그 얼마 전에는 겨울 산책을 다녀오던 길에 동네 식당에 붙여 놓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OO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하겠다는 그 안내문의 문장이 저의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긴 뜻밖의, 피해 가면 좋을, 안 일어났으면 하는 그런 ‘사정’에 대해서. 안내문의 간단한 그 문장이 결코 간단하게 다가오지 않으면서 제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는 차에 L타워에서 쏘아 올린 축포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며칠 후,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편소설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데요, 서로 서먹한 관계였던 딸이 아파트 뒷산에서 미끄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옷 수선집 문을 닫고 아버지에게 가는 장면입니다.
가게문을 닫아걸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병원에 갔다 오늘 내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미는 작업대를 정리했다. 온풍기를 끄고 다리미 전원도 껐다. 라디오를 끄려고 할 때 세시 뉴스가 끝나려는지 일기예보가 나왔다. 내일 저녁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다. 해갈에 도움을 줄 정도는 아니어도 모처럼 건조한 대기를 가라앉힐 만한 비가 내릴 거라고. 정미는 라디오를 껐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 밖으로 나가 가게 미닫이문을 닫으려다 말고 정미는 다시 들어왔다. 종이 한 장을 찾아 작업대에 올렸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 병실에 누워 있을 아버지가 생각났다. 정미는 검은색 매직으로 또박또박 썼다. OO 사정으로 쉽니다. 가게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고, 그 위에 안내문을 붙였다. 바람에 테이프가 떨어져나갈지 몰라 손바닥으로 판판히 문질렀다. 아버지에게 비 예보를 전해드려야지. 그보다 먼저 아파트 야산에는 왜 올라가신거냐고 싫은 소리부터 할지도 모르지만. 그늘진 골목을 정미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1. 객관식 퀴즈
여기서 객관식 첫 번째 퀴즈, 내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이 된 안내문의 문장은 다음 중 어느 것이었을까요?
① "종업원 사정으로 쉽니다."
② "가족 사정으로 쉽니다."
③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④ "주인 사정으로 쉽니다."
* 결정적 힌트 : 소설집 제목에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은 백화점 건강보조식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주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 초기의 일인데요, L백화점 본점에서 23번 환자(확진자라는 단어를 쓰기 이전의 일입니다)가 나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얼마 뒤의 일을 생각하면 23번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백화점 측은 사흘간 영업을 중지하고 대대적인 방역 및 소독작업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23번 확진자가 다녀간 백화점 지하에서 일하는 분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사흘이라는 뜻하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을 테지만,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원치 않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흘간의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게 된 인주는 얼굴 좀 보자는 오빠의 설득에 못 이겨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오빠는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득 오빠가 인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집에 한 번 좀 다녀가 달라고요. 거기에 아이가 한 명 있을 거라고. 인주는 무사히 그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집으로 간 후 다음 날 출근을 하게 될까요?
인주가 주소를 들고 오빠의 집에 가자, 마치 인주를 기다렸다는 듯 진짜로 남자아이가 혼자 오롯하게 있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에 걸린 주인 없는 토끼 한 마리랑 같이 말입니다.
동물병원에서 토끼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무슨 작정인지 인주에게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는 사랑하는 사자를 위해서 열심히 풀을 뜯어다 줬고 사자는 풀을 좋아하진 않지만 소가 자기를 위해 준비한 거라서 싫다는 말을 못했어요. 소도 사자가 자기를 위해서 사냥을 해 온 먹잇감들을 아무 말 안 하고 맛있게 먹는 척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견딜 수가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헤어진 거잖아요.”
엄마가 일찍 자신을 떠나버린 아이는 어느새 일찍 철이 들어버렸나 봅니다. 아이는 제 방식대로만 토끼를 사랑하는 일이 토끼에게 해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네요.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한 소와 사자처럼요.
빈집에 혼자 있는 아이와 토끼를 두고 직장에는 ‘개인 사정’으로 하루 더 쉬겠다고 양해를 구한 인주는 다음날 대구를 떠납니다. 아마도 인주는 다시 그곳에 내려오게 될 줄 알았을 겁니다. 다시 오빠를 만나고 아이도 만나게 될 줄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겪었다시피 이제 대구는 급격히 불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도시를 봉쇄하고 마스크도 사두지 못한 인주는 집으로 돌아가 길고 긴 자가격리의 시간을 갖게 되며 직장으로부터는 해고 통보를 받게 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개인 사정들은 얼마나 더 많고도 많을까요.
2. 주관식 퀴즈
두 번째, 주관식 퀴즈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분이 경험한 ‘개인 사정’들을 한 서너 문장 정도로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가정 사정』을 쓰면서 소설이 서로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며 살아갈 위안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여덟 편의 이야기들이 그러한 감정을 전달해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제 시작될 추운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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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조경란㉕
- 지난 글: [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손보미 ㉔
정답 및 해설
1. 객관식퀴즈
정답: ③ 가정 사정
제가 책 제목이 힌트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웃음), 모든 응모자분이 정답을 맞혀 주셔서 또 조용히 웃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 주관식퀴즈
◆ 당첨인: 문선주, 허은영, willowtree_6
이렇게 여러분들이 코로나19 시절의 ‘개인 사정’을 이야기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짐작보다 많이 응모해주셔서 놀랐고 더 많은 분을 정답자로 선택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무척 큽니다. 개인 사연을 들려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잘 읽었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문선주 님
정말 가슴 아프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지금은 건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시간 잘 건너가셨기를, 앞으로도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허은영 님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시느라 여러 가지 일을 하셨군요.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특히 우쿨렐레를 배우신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답니다. 저도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것은 ‘걷기’가 유일합니다.
willowtree_6 님
어머니와 산책을 자주 다니셨다는 말씀에 잠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가서 혼자서만 걸었지, 어머니와 함께 산책할 생각은 하지 못했었거든요. 어머니께 나무와 꽃 이름을 배우셨다는 말씀도 오래 가슴에 남을 듯합니다.
위의 세 분 외에도 ‘개인 사정’을 말씀해주신 응모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러분의 사정을 거듭 읽고 저도 배우고 느낀 점이 많습니다. 새 소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소설가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국자 이야기』『풍선을 샀어』『일요일의 철학』『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가정 사정』,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혀』『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그리고 사물, 세계, 사람』『소설가의 사물』등을 펴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댓글(3)
이**
2022-11-151번. 3번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번. 저는 코로나19시국에 두 아이의 감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작은 아이가 먼저 감염이 되고, 차례차례 온가족이 모두 앓았습니다. 격리기간에 새삼 나라의 소중함과 시스템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보건소에서 오는 문자 하나 하나 감사했습니다.
문**
2022-11-071번. 3번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번. 저는 작년에 암진단을 받았는데, 코로나때문에 치료하러 병원 갈때마다 코로나검사를 해야했고, 수술때는 1명만 보호자로 올 수 있어 친한 친구가 하루 같이 있어주고 나머진 혼자 지냈어요. 남편은 아이 셋 돌보느라 병원에는 올수도 없었지요. 병원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허**
2022-11-131. 정답 3번
2.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섭고 외부 활동을 거의하지 뭇했어요. 그래서 집에만 있다보니 코로나 블루가 오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어화화 공부도 하고 우클렐레 독학도 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찾아서 했더니 자기개발도 되고 우울증이 오지 않더라구요.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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