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자연을 물들이다

<하늘물빛 in 청담> 조혜영 대표

인문쟁이 김세희

2018-01-03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었다. 이탈리아 포지타노를 가던 길에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을 만난 일. 그는 예술계 인사다운 말을 했다. “여기 사람들이 색감에 거침이 없는 이유는, 이탈리아만의 독특한 빛깔 때문인 것 같아요!” 가끔 방송에 그가 출연한 모습을 볼 때면, 자연이 건네는 색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 미련은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는지 모른다. 

 


 

천연염색은 사람이 그리는 무늬와 같아요.

 

<하늘물빛 in 청담> 조혜영 대표

 ▲ <하늘물빛 in 청담> 조혜영 대표 ⓒ 조혜영


Q. 개인적으로 태릉에는 오랜만입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이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재탄생 되었군요.

A. 제가 지난 5월에 개관한 서울여성공예센터, 더 아리움(The Arium)의 첫 입주작가 중 한 명이 되었네요. 여성공예 창업인들의 작업실과 전시, 교육, 마켓 등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플랫폼이에요. 도자, 섬유, 금속, 가죽, 유리, 나무 등 손작업으로 태어나는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곳이죠. 

 

서울여성공예센터(The Arium) 외부 및 <하늘물빛 in 청담> 내부

 ▲ 서울여성공예센터(The Arium) 외부 및 <하늘물빛 in 청담> 내부


Q. 공방에 밴 깊고 진한 쪽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대표님의 <하늘물빛 in 청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서울시에서 보존가치를 지닌 39곳을 ‘오래가게’로 지정했죠. 저의 ‘하늘물빛’은 그 중 하나로 기록된 <하늘물빛 전통천연염색연구소(홍루까 소장)>에서 이어졌습니다. 현재 매듭장인이셨던 어머니, 조일순 여사님의 철학을 홍루까 소장님이 전하고 계시죠. 조일순 장인께서는 한국에서 잊힐 뻔한 쪽 씨앗을 일본에서 들여와 돌아가신 윤병운 인간문화재와 함께 쪽염색 재현에 성공을 이룬 분이세요. 쪽과 홍화염색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쪽염색을 접했고 작업하고 있지만, 다양한 섬유와 염재, 기법에 제한을 두진 않아요. 오랜 관습을 지키면서 현대적이고도 일상적인 천연염색 작품을 연구하고 있죠.

 

나주천연염색박물관나주천 설치展(청출어람 2017) 모습

 ▲  나주천연염색박물관과 나주천 설치展(청출어람 2017) 모습 (출처 : 나주천연염색박물관 홈페이지)

 

Q. 천연염색의 어떤 매력이 대표님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을까요? 

A. 압축앨범 사업을 하는 큰언니의 제안으로 작업을 함께 하면서 빛과 구도, 색감을 꾸준히 다루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천연염색에도 호기심이 생겼고, 우연히 코엑스에서 열린 공예트렌드 페어에서 손수건 쪽염색 체험을 하게 됐죠. 그때 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무늬를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나주천연염색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천연염색 교육도 하게 됐습니다. 서울 북촌에 있는 전통공예체험관 개관 때부터 장인분들을 돕기도 했고요. 문화재이신 정관채 염색 장인과도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며 천연염색 작품에 매진하고 있어요. 오묘했던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았던 색이 올라올 때 신기했고, 생각지 못한 표현들이 나타날 때 희열을 느꼈던 거죠. 자연이 가져다주는 신비함에 빠졌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 천연염색 문화상품대전(2012) 수상작1대한민국 천연염색 문화상품대전(2012) 수상작2

한국대만천연염색교류전(2014) 출품작서울여성공예대전(2015) 은상 수상작

 ▲  대한민국 천연염색 문화상품대전(2012) 수상작 / 한국대만천연염색교류전(2014) 출품작 / 서울여성공예대전(2015) 은상 수상작 ⓒ 조혜영


Q. 대표님께서 천연염색을 통해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궁금해집니다.

A. 유독 기억에 남는 대화들이 있어요. 각종 대회를 통한 전시나 핸드메이드 코리아, 메가쇼 등의 부스에서 만나는 분들이 저의 작품들은 그간 봐왔던 천연염색 같지 않다고 하시거든요. 일반 상품에 국한된 이미지가 아니라 갤러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힐링이 된다고 이야기 하셨죠. 한 번 지나가셨던 분이 다시 오셔서 전한 진심이라 정말 뿌듯했습니다. 일반적인 천연염색에 대한 편견도 조금 극복한 것 같아 행복했죠. 


연화람의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들

 ▲ 연화람의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들 ⓒ 조혜영


Q. 대표님의 공방에서 제 마음에 탁 꽂히는 작품이 있어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A. 연화람(蓮花藍)을 말씀하시는군요. 최근에 제주에서 전시했던 작품이기도 해요. 형지에 문양을 칼로 파내고 직접 만든 방염풀(찹쌀풀)로 여러 단계의 채도를 표현했죠. 계속해서 쪽 염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수를 놓았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부단히 단련하고 또 연마하는 거예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이미지로서 자연친화적인 편안함을 추구했죠. 천연염색을 통해서 치유와 안정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운현궁에서 전시됐던 천연염색 한복 / 한지축제에서 제작한 천연염색 카시트

 ▲ 운현궁에서 전시됐던 천연염색 한복 / 한지축제에서 제작한 천연염색 카시트 ⓒ 조혜영


Q. 천연염색을 더 잘 헤아리기 위한 방법을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A. 천연염색을 체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깨달음을 주지만, 몇 번 정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천연염색 상품들은 색이 잘 바랩니다. 한두 번 해보시고는 실용성 부분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여러 번 천연염색으로 만들어진 것은 꼭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일반 컬러를 볼 때 예쁘다고는 하지만, 자연이 펼쳐놓은 색채 앞에선 감탄하잖아요? 예를 들어 빨간 색종이와 빨갛게 물든 단풍잎을 마주할 때 감흥이 다른 것처럼요. 천연으로 염색된 멋진 상품은 자연을 입는 것과 같아요. 그 설렘으로 천연염색을 꾸준히 해본다면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이 되는 겁니다. 


쪽염색을 만들어내는 식물, 쪽 / 한일규방교류전(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모습

 ▲ 쪽염색을 만들어내는 식물, 쪽 / 한일규방교류전(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모습


Q.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대표님께 있어 인문이란 무엇인지요?

A. 저도 인문 360도 덕분에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문구를 만나게 됐죠. 순간 제 스스로가 하고 있는 작업과 접점이 만들어지더군요. 천연염색은 참 광범위해요. 같은 염재라도 햇볕과 습도 등의 어떤 기후 조건이냐에 따라 색의 태생이 달라지죠. 한국에서 접하는 염재와 다른 나라에서 재배되는 염재에 따라서 각각 다른 천연염색 문화가 형성되는 이유예요. 게다가 같은 염재를 가지고도 사람마다 만든 천연염색의 색채가 전부 다 달라요. 천염염색 공방마다 분위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주문을 하는 고객과 천연염색 작품을 만들어낼 때 소통은 정말 중요합니다. 부단히 니즈에 맞추어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거예요. 어쩌면 그런 것이에요. 사람이 가진 수많은 요소들과 변수만큼 천연염색의 세계도 무한히 펼쳐지고 있다는 믿음 말이죠. 

 


 

‘오래가게’처럼 ‘오래들 가게’도

 

창작의 새로움이란 것만 생각하고 갔던 서울여성공예센터에서 뜻밖의 전통을 만났다. ‘한국 쪽염색의 뿌리’를 들을 수 있던 <하늘물빛 in 청담> 공방. 서울시에서 ‘오래가게’가 지정된 것처럼, 앞으로 ‘오래들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오래들 가게’도 장려된다면 어떨까. 한국 쪽염색을 구현해줄 정성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사진= 조혜영, 김세희, 나주천연염색박물관 홈페이지

----------------------------

* 관련링크

서울여성공예센터(The Arium) 205호 : <하늘물빛 in 청담> https://seoulcraftcenter.kr/studio/residency/?uid=33&mod=document&pageid=1 

장소 정보

  • 서울
  • 쪽빛
  • 미술
  • 천연
  • 공방
  • 천연염색
  • 하늘물빛
  • 오래가게
  • 서울여성공예센터
  • 더아리움
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자연을 물들이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