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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마을’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미산마을 사진가, 가림토

인문쟁이 김세희

2017-12-12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오늘도 윗집은 바닥에 핸드폰을 놓고 잠이 든 모양이다. 10분마다 울려대는 알람소리. 이번엔 한 시간 동안 지독하게 이어졌다. 얼마 전 리모델링 굉음과 함께 온 윗집 사람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파트 바닥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 아랫집도 들릴 수 있다는 것. 편지를 써볼까, 과일을 들고 말해볼까 했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과 첫 인사로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아 순간 슬퍼졌다. 

 

 


 

우리 동네가 성미산마을이었으면, 싶었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포토그래퍼, 가림토(김명집)

 ▲ 성미산마을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포토그래퍼, 가림토(김명집) ⓒ가림토



Q. 카페에 들어오기까지 5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인사를 나눈 분이 3명이나 된 거 아세요?

A. 그랬나요? 함께 조용한 카페를 찾던 그 짧은 순간에 제가 그랬군요. 멀리서 저를 보고 “형!”이라고 반갑게 손인사를 하던 잘 아는 동생, 이 동네 토박이인 카페 주인분, 실험적인 음악으로 “언젠가 저도 잘 되겠죠?”라고 웃던 어린 친구까지… 그렇네요. 모두 성미산마을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던 귀한 인연이죠. 게다가 인문쟁이 김지영 씨도 성미산마을에서 활동했던 사람인데 오랜만에 봐서 좋네요. 세희씨가 깜짝 이벤트를 꾸며준 것 같아 행복합니다. 

 

 

97년 성미산마을 페스티벌마을극장

 ▲ 2007년 성미산 마을 축제(좌)과 마을극장(우)의 요즘 모습 ⓒ가림토



Q. 인문쟁이 김지영 씨를 ‘짝지’라고, 작가님을 ‘가림토’라고 서로 부르고 있잖아요!

A. 네, 저는 가림토예요. 지영씨는 저에게 ‘짝지’로 기억됐죠. 서로 동등하게 소통하는 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회사에서도 부장님, 주부에게도 누구 엄마 등등의 서열이나 자녀에게서 비롯된 층위가 있잖아요. 자신의 이름이 가려지게 되는 거고요. 별명문화는 그런 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취지였어요. 어린 아이들도 저를 “가림토!”라고 합니다. 나이나 지위로 인한 소통의 장벽을 해소하고자 하는 성미산마을의 공동체 철학이에요. 그 마음은 각종 마을축제를 탄생시키고, 우리들만의 추억을 영글게 되죠. 

 

 

성미산마을의 훼손 위기(좌)와 성미산학교(우)

 ▲  성미산마을의 훼손 위기(좌)와 성미산학교(우) ⓒ가림토


 

Q. 작가님이 성미산마을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순간이 궁금해지네요.

A. 제가 겪어왔던 학창시절의 한계가 지금의 교육계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선진화된 환경을 탐색하고 있었어요. 이민도 하나의 방법이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기사를 보게 됐어요. 당시 성미산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 시작되던 때였죠. 정확하게 말하면, ‘성미산’이라는 자연을 훼손하고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촉발된 겁니다. 그런데 결국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성미산을 지켜내더군요. 감동을 받고 있었는데, ‘성미산 학교 설립위원 모집’이라는 내용도 접하게 된 거예요. 마음의 걸음은 1세대 짱가(유창복 :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를 만나게 됐고, 2004년 2학기 성미산학교 개교를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사진가인 저에겐 성미산마을이 가장 사랑스러운 오브제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성미산마을 이야기가 담긴 책들

 ▲  성미산마을 이야기가 담긴 책들 ⓒ가림토

 

 

Q. 사실 저는 <성미산마을 사람들>과 <우린 마을에서 논다>는 두 가지 책을 미리 보고 왔어요.

A.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오름(윤태근)’이 쓴 책이고, <우린 마을에서 논다>는 ‘짱가(유창복)’가 만들었죠. 오름은 성미산마을에서의 공동육아 이야기로 시작했고, 짱가는 성미산마을의 전반적인 에피소드를 모았던 걸로 기억해요. 예전에는 교육에 대한 갈증으로 성미산마을을 찾았다면, 요즘은 더 다양해졌습니다. 부모이자 어른인 자신부터가 ‘행복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린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세상을 보다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가치가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거죠.



성미산의 아카시나무아카시 숲길

(좌)성미산의 아카시 숲, (우)영화상영

 ▲ <상> 성미산의 아카시 잎사귀(좌)와 성미산의 전나무 모습(우) / <하>성미산의 아카시 숲(좌)과 영화상영(우) 모습 ⓒ가림토



Q.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성미산마을의 기둥인 성미산이 비오톱(biotop) 1등급지라는 언급이었어요.

A. 성미산은 아주 작은 산이지만 서울시에 10%밖에 없다는 생물 다양성이 뛰어난 지역이었죠. 위 사진은 ‘아카시나무와 전나무’예요. 파헤쳐질 위기가 있기 전 성미산은 아카시 향기로 가득했거든요.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사연이 가득합니다. 산딸기, 애기똥풀 등 성미산이 가진 아름다움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어요. 성미산이 전해주는 놀잇감으로 놀던 아이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죠. 그 기억들을 사진으로 보존하는 건 저의 소명이 됐습니다. 



성미산마을 연극축제1성미산마을 연극축제2

 ▲ 성미산마을 연극축제 ⓒ가림토



Q. 작가님이 보여주는 공연 사진들 속 배우들은 성미산마을 사람들인가요?

A. 네 맞아요. 전문 배우가 아닌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공연 모습들이에요. 11월의 절반은 ‘성미산마을 동네연극축제’가 열렸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우리 마을을 살찌우는 행사죠. 사실 더 큰 행사는 5월부터 열립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마을을 되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새롭게 다져지는 거죠. 



Q. 성미산마을이 작가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 사뭇 궁금해지네요.

A. 각자의 방식으로 성미산마을은 꾸려지고 있어요. 되살림가게, 비누두레 공방, 동네부엌, 다정한 마켓, 마을극장, 소소한 동아리 등 치솟는 마포구의 임대료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생 조합이죠. 개인이 시작했으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었던 것들이 공동체의 힘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 쓰러지지 않고 함께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현재 살아있는 그 애틋한 감정이 선물인 거죠.



가림토 작가의 ‘The 서울’ 사진전 작품들1가림토 작가의 ‘The 서울’ 사진전 작품들2

 ▲ 가림토 작가의 ‘The 서울’ 사진전 작품들 ⓒ가림토



Q. 저희 인문360도 단골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있어 인문이란 무엇인지요?

A. 성미산마을에서 흐르는 다양한 시간들이 있고 변화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주는 ‘흐름을 멈추게 하는 사진’이에요. ‘살아있는 정지된 순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살아있다는 것과 정지됐다는 게 상충되긴 하죠? 프레임에 정지된 순간도 꺼내어 추억하면 지금 흐르고 있는 물결과 이어지잖아요. 그때의 시간들이 현재와 함께 다시 흐르는 거예요. 가령, 성미산학교의 아이들로 기억된 사진이, 성년이 된 성미산마을 청춘들과 만나 진보적인 마을살이를 꿈꾸는 건 어떨까요. 저에게 인문이란 현재를 살고 있는 성미산마을 사진가로서의 작업입니다.

 

 


 

성미산마을 소행주처럼, 우리도.

 

성미산마을엔 ‘소행주’라는 게 있다. 소통이 행복한 주택. 그들이 누워있는 아랫집과 윗집은, 모두 울고 웃던 이웃인 셈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반찬을 나눠먹던 사이이기에, 작은 소음에도 배려가 먼저인 공간. 한 순간에 우리 모두가 소행주로 갈 수 없다면, 지금 있는 우리 집이 소행주처럼 될 수는 없는 걸까.




사진=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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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링크

성미산마을이 잘 표현된 YTN 스페셜 ‘마을이야기 1, 2부’ 

http://tv.naver.com/v/1235288

http://tv.naver.com/v/1250847


성미산마을 1세대 짱가 유창복 씨의 강연 

 https://youtu.be/7GrcSBgxxuY


성미산학교(미인가 도시형 대안학교) 

 http://www.sungmisan.net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 성미산은 ‘성산’이라고 하며 성서초등학교 근처에서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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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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