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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은평을 만나다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

인문쟁이 구애란

2017-04-05

 

 

 

 

 

은평의 역사, 문화, 한옥의 미래를 유추하기

한옥은 한국인이 살아온 집이고 삶의 터전이자, 살림집이다. 그러나 요즘은 한옥마을이나 지방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한옥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옥의 대표적 특징을 살펴보면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를 균형 있게 결합된 건축양식에 있다. 온돌이 보편화된 것은 17~18세기이다.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친환경적 건축, 21세기 현대인이 편안하게살 수 있는 한옥이 보편화되길 바란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까?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 야외

▲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통일신라 기와 가마터와 석물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은 2005년 은평뉴타운 개발과 함께 발굴된 다양한 ‘인문·역사유물’과 우리의 전통주거 공간 ‘한옥’과 관련된 문화콘텐츠를 보존·전시·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조선 시대 은평은 한양과 개성을 잇는 주요한 길목이자, 한양에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통하는 출발점이었다. 지금도 남과 북의 교통로로서,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으로 펼쳐 나갈 미래 길목으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교통·통신, 장묘문화, 전통 민속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은평 한옥마을과의 연계성을 고려해서 한옥 콘텐츠를 선정한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을 통해 은평의 역사, 문화, 한옥의 미래를 유추해 보자.


유구 이전복원

▲ 은평 뉴타운 발굴,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마 이전 및 복원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의 주요시설인 상설전시실은 은평의 역사와 뉴타운발굴 유물이 전시된 은평 역사실(1층)과 실제 한옥과 한옥의 건축과정 및 한옥의 과학성, 자연 친화성 등이 전시된 한옥 전시실(2층)이 있다. 외부는(야외) 통일신라 시대 기와 가마터, 석물 전시장, 옥상 정자 용출정이 있다. 은평 뉴타운 개발과 함께, 많은 유물·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은평뉴타운 D 공구 2지점에서 총 11기의 통일신라시대 가마가 발굴되었다. 이는 서울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대규모 가마군이다. 그중 3호 기와가마는 역사성과 희귀성이 인정되어 이전·복원하여 연구와 교육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


용출정

▲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 야외에 있는 용출정


용출정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루마루와 툇마루로 이루어진 정자는 한옥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자에서 보이는 북한산 용출봉(龍出峰, 두 마리 용이 비상하고 있는 형상)의 기운을 받아 세상에서 이름을 드높이라는 뜻에서 용출정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2011년 국토해양부 지자체 한옥 지원 사업으로 건축됨)


작은 도서관

▲ 은평 작가의 작품이 비치된 작은 도서관


은평구는 서남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백련산(216m), 응봉(236m)과 북한산(837m) 줄기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이다. 북한산 계곡에서 시작되는 창릉천과 불광천은 은평의 중심부를 지나 한강으로 흐른다. 전체 면적의 53.5%가 녹지지역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지역 및 개발제한구역으로 보존되어 있어 쾌적한 주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한강 하류에 위치한 은평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경지역으로,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 때는 위례성 지역에, 신라 때는 신주 지역에 속했으며, 통일신라시대 때는 한산주 지역에 속했다가 경덕왕 16년(757년)에 ‘한주’라 했다, 이 지역에는 서울 외곽을 지키던 ‘한양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후 ‘한양’이란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1910년 국권침탈 이후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5부 35방 8면제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이후 1913년 각 도의 위치 및 관할 지역과 부, 군의 명칭이 결정되면서 이듬해 4월 ‘연은방’과 ‘상평방’ 지역에 은평면을 설치했다. 은평면은 191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에 다시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이후 1973년 7월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관내 구파발리와 진관내, 외리가 서울시 서대문구로 편입됨으로써 현재 은평 지역의 모습이 갖춰졌다.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리되면서 은평구(15개 동)로 거듭났고, 이후 여러 번의 행정구역 통폐합 절차를 거쳐 농지형태에서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69~1971년에는 기자촌 주거단지가, 1974~1978년에는 한양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이 대규모로 들어섰다. 지역 균형발전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하여 2002년 10월, 30여 년간 묶여있던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었다. 이후 2011년 10월까지, 주택건설을 비롯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이루어졌다. 은평 뉴타운으로 변모하여 지역 내에 한옥마을을 조성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주거공간을 꾸밀 방침이다.


김자근동 묘 발굴·재현 전시

▲ 김자근동 묘 발굴·재현 전시


2003년에 실시한 문화재 발굴 조사로 은평뉴타운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적과 유물 산포지 및 민속자료 등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이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문화재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기와 가마터, 청담 사명 기와 출토 건물지, 조선시대와 근대에 이르는 무덤 5,000여 기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 조사로 은평 지역이 조선시대 한양 인근의 대표적인 묏자리인 음택지였음이 밝혀졌다.


은평 역사실

▲ 1층 은평 역사실


은평에는 왜 무덤이 많을까? 한양도성 안의 인구는 15만 내외였다. 산 자가 있으면 죽음도 있다. 한양도성 내 시신들은 주로 서쪽으로는 소의문(서소문), 남쪽으로는 광희문(남소문)으로 나갔다. 은평 뉴타운 지역에서 5,000여 기에 이르는 무덤이 개발과 동시에 발굴, 조사되었다. 서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무덤들이 은평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이유는, 조선 시대에는 한양 도성과 도성 사방 10리, 즉 성저십리에는 무덤을 쓰지 못 하게 했다.

도성 밖 10리에 걸쳐있는 금장 지역(매장이 금지된 지역) 바깥에 위치한 곳이 한양 도성 서북쪽의 진관내외동이다. 도성에서 비교적 가깝고 지형적으로 무악재와 박석고개 등으로 공간이 분리되는 지역이라 집단 매장지로 많이 이용되었다.


은평의 조선, 은평 뉴타운 발굴 유물1층 은평 역사실에 전시된 유물들2층 한옥전시실

▲ 은평의 조선, 은평 뉴타운 발굴 유물 / 1층 은평 역사실에 전시된 유물들 / 2층 한옥전시실


2층 한옥전시실은, 한옥의 문화 정체성과 친환경성과 과학성, 한옥의 건축과정 등을 한옥 본래의 기능과 역할, 현대 주거문화의 비교, 서울의 한옥 체험을 통해 살아있는 한옥, 살고 싶은 한옥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옥전시실 도입부에 한옥 대문을 연출하고, 한옥의 변천사를 패널로 설명, 현재 북촌문화센터로 사용하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229호 민형기 가옥 사랑채 부분을 1:1 모형으로 재현했다. 마루, 온돌 등 한옥의 구성요소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한옥 재료의 친환경성과 자연성을 알아보고, 한옥 짓기 영상 관람과 한옥 구성 요소 조립 모형을 만들어 보는 체험공간이다.


2층 한옥 전시실한옥의 변천사

▲ 2층 한옥 전시실 / 2층 한옥전시실 집의 변천


민형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민형기 가옥으로, ‘민 재무관댁’, ‘계동 마님 댁’으로 알려졌다. 1921년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경단을 본 따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는 마당에서 보면 마치 독립된 듯 보이나, 툇마루가 있어 내부에서 서로 연결된다. 조선시대 한성부 도성 내에 지어졌던 중규모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북촌 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한옥의 건축과정을 기초부터 완공까지 단계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각 과정에 필요한 재료들을 소개하고, 아시아의 전통가옥과 비교를 통해 한옥의 특수성 및 일반성을 알 수 있다.


차장섭 작가노트


❝사람과 집은 하나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집에 가격(家格)이 있다고 여겨 집을 하나의 주체로 간주했다. 한옥의 역사는 그 건축물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 -차장섭 작가 노트-


한옥은 한국인이 살아온 집이다. 차장섭 작가 노트에 언급한 “한옥의 역사는 그 건축물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차 작가의 말은, 나와 내 가족이 사는 집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다.


한국 목조건축 유형별 모형

▲ 한국 목조건축 유형별 모형


한옥에서 살던 옛 조상들은, 친환경 건축과 자연과 조화를 이뤄 건강한 삶을사는 주거환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은 고층 아파트만 주거공간으로 선호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한옥, 21세기 우리 시대에 맞는 한옥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건 어떠할지…. 은평의 역사, 은평구민의 삶을 간직하고 있는 유물전시뿐만 아니라, 한옥의 미래, 21세기 우리가 살아갈 한옥, 살고 싶은 한옥, 한옥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인프라와 함께 한옥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 구애란

 

장소 정보

  • 은평
  • 한옥
  • 은평뉴타운
  • 문화재
  • 한옥박물관
  • 한옥문화정체성
  • 체험공간
  • 민형기가옥
구애란
인문쟁이 구애란

[인문쟁이 1,2기]


구애란은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고, 전하고자 하는 취재 현장은 전국 어디든 마다치 않고 발 빠르게 취재현장을 뛰어다닌다. 각 정부부처 정책기자단을 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인 물이 되기 싫어서 늘 흐르는 물이 되고자 노력하는 필자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주변에 무료 인문학 강의가 많은데도 정보를 알지 못해 강의를 못 듣는 분들을 위해 인문학강좌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원하게 되었다. 더불어 필자 역시 인문학과 인문정신을 배울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 벌써부터 설렌다. ren07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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