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마치 갖춰야 하는 '덕목' 같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배우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존경받기도 한다. 하지만 지하철역이나 관광 명소 속 종종 보이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책은 일상에 존재하지만 책 읽기는 생각보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읽는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이런 물음을 안고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북카페 ‘파이데이아’를 찾았다. 파이데이아는 ‘교육’, ‘교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마침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대한 독서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 북카페 파이데이아 외부 /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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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김선경 이하 K / 토론 참가자들 A, B, C, D, E, F
K : 읽어오신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해볼게요. 12고역을 끝내고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저주로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맙니다. 자살하려는 헤라클레스 곁에 테세우스가 다가옵니다.
A :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를 탁 쳐주는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테세우스가 죽고 싶어 하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그래 불행 참지 말고 죽어’라고 말해줘요. 그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지요. 헤라클레스를 다시 일으킨 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설득해준 친구였어요.
B : 주석에는 테세우스의 말이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은 너뿐이 아니라는 위로의 말이라고도 하네요. 해석이 여러 가지로 될 수 있죠.
K : 그렇게 작아진 헤라클레스에게 희망을 준 테세우스처럼 내가 진짜 절망에 빠졌을 때 탁하고 쳐 줄 수 있는 친구는 몇 명이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현명함을 가진 사람일지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독서 토론 중에
K : 주목을 해야 할 것은 이 작가가 12고역을 끝낸 헤라클레스가 가족을 죽이는 비극을 맞이한다고 그린다는 점입니다. 소포클레스나 다른 작가는 12고역 가운데 헤라클레스를 이 상황에 처하도록 그리기도 합니다. 작가는 왜 이렇게 구상하였을까요?
F : 우리 삶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만족이나 행복을 위해서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도 공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앞 본문에서 ‘인생이 고해임을 알아두게, 사는 것은 계속 투쟁일세’라고 한 것처럼, 끊임없는 투쟁으로 자기 자신의 의미와 큰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C : 저는 12고역은 외적인 고역이고, 이후는 내적인 고역이라 고역의 마지막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E : 맞아요, 저는 그 비극을 13고역이라 생각합니다. 헤라클레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헤라클레스를 죽이고 싶어하는 헤라에게 복수를 하는 거 같아요. 끝까지 살아남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한지 알 수 있었어요.
B : 헤라클레스 이름이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인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K : 어떻게 보면 헤라가 있었기에 헤라클레스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살면서 누구든 결핍이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 순간이 있기에 의지로 이겨내고 자신이 한 뼘 더 성장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헤라와 같은 고통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이겨낼 방법을 찾느냐에 따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나에 따라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 : 오늘 정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 그리스로마 고전을 읽을 때는 너무 잔인하다, 좀 더 아름다운 책으로 토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깊이 들어가 보니 우리 사는 모습 같았어요. 오늘도 반성 많이 했고, 새삼 다 제 잘못 같아서 부딪혔던 사람들에게 집에 가는 길에 미안하다고 문자를 넣으려고요.
D : 저는 개인적으로 ‘용기도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항상 소심하고 용기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배우고 용기를 길러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K : 시계바늘 위에 그냥 나를 올려놓고, 시간이 가니까 하루, 한 달을 살아지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힘센 헤라클레스가 아무 의지 없이 기둥에 묶여있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요? 삶의 방향과 속도, 깊이를 주체적으로 설정하는 힘은 자신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힘으로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풀어가는지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오늘 여기까지 진행하겠습니다.
▲ 카페 내부 책장 / 파이데이아 토론 시간과 메뉴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함께 ‘왜’를 찾고 있었다. 그 에너지가 좋았고,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이 좋았다. 책 읽기와 같은 하고 싶은 일은 때로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이 아무리 ‘그냥 하면 되지’라 말해줘도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럴 때는 그렇게 뻗대고 있는 자신을 끌어줄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네 책방에서 하는 작은 모임도 좋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상황만 늘어놨을 테지만, 함께 있으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일 수도 있으니까. 혹은, 나 혼자서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이유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찾아가는 자체가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꾸준히 쓰는 중입니다. 언젠간 쓰기만 하면서 밥 벌어먹길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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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의미를 찾아 가는 사람들 : 북카페 '파이데이아'
고전에서 의미를 찾아 가는 사람들 -북카페 '파이데이아'
인문쟁이 양다은
2016-10-24
독서는 마치 갖춰야 하는 '덕목' 같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배우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존경받기도 한다. 하지만 지하철역이나 관광 명소 속 종종 보이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책은 일상에 존재하지만 책 읽기는 생각보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읽는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이런 물음을 안고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북카페 ‘파이데이아’를 찾았다. 파이데이아는 ‘교육’, ‘교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마침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대한 독서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 북카페 파이데이아 외부 /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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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김선경 이하 K / 토론 참가자들 A, B, C, D, E, F
K : 읽어오신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해볼게요. 12고역을 끝내고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저주로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맙니다. 자살하려는 헤라클레스 곁에 테세우스가 다가옵니다.
A :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를 탁 쳐주는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테세우스가 죽고 싶어 하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그래 불행 참지 말고 죽어’라고 말해줘요. 그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지요. 헤라클레스를 다시 일으킨 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설득해준 친구였어요.
B : 주석에는 테세우스의 말이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은 너뿐이 아니라는 위로의 말이라고도 하네요. 해석이 여러 가지로 될 수 있죠.
K : 그렇게 작아진 헤라클레스에게 희망을 준 테세우스처럼 내가 진짜 절망에 빠졌을 때 탁하고 쳐 줄 수 있는 친구는 몇 명이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현명함을 가진 사람일지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독서 토론 중에
K : 주목을 해야 할 것은 이 작가가 12고역을 끝낸 헤라클레스가 가족을 죽이는 비극을 맞이한다고 그린다는 점입니다. 소포클레스나 다른 작가는 12고역 가운데 헤라클레스를 이 상황에 처하도록 그리기도 합니다. 작가는 왜 이렇게 구상하였을까요?
F : 우리 삶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만족이나 행복을 위해서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도 공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앞 본문에서 ‘인생이 고해임을 알아두게, 사는 것은 계속 투쟁일세’라고 한 것처럼, 끊임없는 투쟁으로 자기 자신의 의미와 큰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C : 저는 12고역은 외적인 고역이고, 이후는 내적인 고역이라 고역의 마지막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E : 맞아요, 저는 그 비극을 13고역이라 생각합니다. 헤라클레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헤라클레스를 죽이고 싶어하는 헤라에게 복수를 하는 거 같아요. 끝까지 살아남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한지 알 수 있었어요.
B : 헤라클레스 이름이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인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K : 어떻게 보면 헤라가 있었기에 헤라클레스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살면서 누구든 결핍이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 순간이 있기에 의지로 이겨내고 자신이 한 뼘 더 성장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헤라와 같은 고통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이겨낼 방법을 찾느냐에 따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나에 따라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 : 오늘 정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 그리스로마 고전을 읽을 때는 너무 잔인하다, 좀 더 아름다운 책으로 토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깊이 들어가 보니 우리 사는 모습 같았어요. 오늘도 반성 많이 했고, 새삼 다 제 잘못 같아서 부딪혔던 사람들에게 집에 가는 길에 미안하다고 문자를 넣으려고요.
D : 저는 개인적으로 ‘용기도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항상 소심하고 용기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배우고 용기를 길러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K : 시계바늘 위에 그냥 나를 올려놓고, 시간이 가니까 하루, 한 달을 살아지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힘센 헤라클레스가 아무 의지 없이 기둥에 묶여있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요? 삶의 방향과 속도, 깊이를 주체적으로 설정하는 힘은 자신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힘으로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풀어가는지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오늘 여기까지 진행하겠습니다.
▲ 카페 내부 책장 / 파이데이아 토론 시간과 메뉴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함께 ‘왜’를 찾고 있었다. 그 에너지가 좋았고,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이 좋았다. 책 읽기와 같은 하고 싶은 일은 때로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이 아무리 ‘그냥 하면 되지’라 말해줘도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럴 때는 그렇게 뻗대고 있는 자신을 끌어줄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네 책방에서 하는 작은 모임도 좋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상황만 늘어놨을 테지만, 함께 있으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일 수도 있으니까. 혹은, 나 혼자서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이유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찾아가는 자체가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진= 양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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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쓰는 중입니다. 언젠간 쓰기만 하면서 밥 벌어먹길 조심스레 바라봅니다.yde83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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