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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이야기 공모전 - 에세이 최우수상작] 엄마는 옷을 왜 그렇게 촌스럽게 입어? /김경주

2017-02-17

세대공감 이야기공모전 수상작 - 에세이 최우수상

 

엄마는 옷을 왜 그렇게 촌스럽게 입어?


김경주

 

내가 어린 시절, 항상 입었던 옷은 엄마가 사주던 옷이었다. 옷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양인지 길이는 또 어떤지에 대해서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고 그저 ‘엄마가 사주니까 예쁜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옷을 입었다.

 

그 어린 시절, 엄마는 내 눈에 가장 예쁜 사람이었고 어떤 옷을 입어도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흘러 내가 나이가 들고 스스로 옷을 사 입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엄마의 옷은 ‘옛날 사람이 입는 옷’이 되어버려 있었다.

 

옛날에는 그랬다고 한다. 마치 영화 ‘써니’ 혹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것처럼 입고 다녔고 꾸미고 다녔다고 말이다. 우리 엄마는 94년도에 꽃다운 나이 22살을 지나고 있었다. 한창 예쁘게 꾸미고 유행을 따라갈 나이에 우리 엄마는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입고 다녔다.

 

이걸 증명하는 일화로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본 사진 속에서 엄마는 앞머리를 조금 남긴 채로 뽕을 잔뜩 줘 옆으로 살짝 넘겨주고 머리는 단발인 상태에서 반소매 티셔츠 하나에 빛바랜 통자 청바지를 입어 벨트를 꿰어 맨 유행을 따라간 20대의 젊은이가 있었다. 맞다, 내가 사진 속에서 본 엄마와 젊은 날의 엄마와 같이 그 시절에는 엄마처럼 입은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렇게 입어야 옷을 잘 입었으며 멋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지금의 내가 조심스럽게 상상해 보자면 여자들은 깻잎 머리를 하고 체크무늬 남방 안에 셔츠를 입고 나팔바지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 거리로 나와 형형색색의 빛깔을 자랑하고 있고, 남자들은 그 시절 유행했던 문희준 머리를 하고 통바지를 허리까지 올려 입어 벨트를 매고 티셔츠나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고서 거리로 나와 자신의 패션을 뽐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렇게 상상하는 것처럼 그 때에는 그런 옷들이 유행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눈에 멋있었으며 연예인들까지 그 시대의 옷을 입고 나왔으니 옛날의 엄마는 그 옷을 당연하게 입고 다녔었다.

 

그렇게 옷을 입던 시대를 지나, 유행이 바뀌고 사람들의 옷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우리 엄마가 입었던 94년도의 옷들은 그저 ‘유행이 지난 옷’, ‘촌스러운 옷’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시대에서 옷을 사고 입고 자랑했던 엄마는 이제 옷을 살 나이를 지나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점점 유행에 뒤처지게 되었고 그 시절 입던 옷은 고스란히 옷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쯤의 일이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옷을 꺼내면서 옷 정리를 하다가 엄마의 옛날 옷을 발견한 적이 있다. 빛바랜 통 청바지, 주머니가 허벅지 양쪽에 달린 카고바지 혹은 꽃무늬 원피스 등 지금 누군가가 그런 옷을 입는다면 촌스럽다고 할 수 있을 만한 디자인의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옷들 중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의 꽃무늬 원피스를 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었어?”

 

엄마는 이상한 표정으로 옷을 들고 있는 나를 한번 보고, 그 손에 들려져 있는 원피스를 힐끗 보더니 “옛날에는 다 이렇게 입었어.”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옛날 사람들은 다 촌스럽게 입고 다녔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 옷들은 지금은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러웠고 이상한 패턴이나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옷들을 정리하다가 하나를 집어 들고 유심히 보더니 나에게 그 옷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이 옷 너한테 맞을 것 같은데 한번 입어 봐.”

나는 엄마의 말에 진저리를 치며 “엄마! 요즘 누가 그런 옷을 입어?”하고 대답했다. 엄마는 그래도 의견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입어보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나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아이처럼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예쁘기만 한데 뭘 그래!”

 

내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맨 처음 엄마가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예쁘지 않고 이상하기만 한데 예쁘다고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빨리 이 옷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엄마의 품평회가 끝나고 옷을 벗으면서 생각했다. ‘아 역시 엄마는 옛날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흔히들 말하는 ‘시골’이다. 동네주민들끼리 다 알고 있는 사이이며 아파트가 없는 주택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이런 시골 마을에도 ‘시내’가 있는데 그 곳에 나가 장을 보고 옷을 사고 혹은 필요한 화장품 같은 걸 산다.

 

엄마와 함께 종종 시내에 나가곤 했는데 엄마들 마음은 다 그런지 항상 무엇인가를 사주고 싶어 하시는 엄마는 나를 자주 옷가게로 데려가셨다.

 

시내에는 여러 옷가게가 있는데 그중에서 요즘 학생들이 입는 옷은 많이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옷을 많이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우리 엄마는 젊은 층들이 많이 들어가는 가게에 들어가셨다. 엄마는 날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옷들을 골라보고 나한테 입혀보시곤 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엄마가 골라주는 스타일은 그 때의 나에게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옷들이었다.

 

그러나 신나게 옷을 고르고 입혀주는 엄마의 모습에 차마 얘기할 수 없었고 골라주는 옷 중 가장 나은 것, 가장 요즘 애들이 입는 옷으로 골라 사고는 했었다. 아마 그 때였을까, 엄마와 내가 살아온 세대가 조금은 다르다고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살아온 세대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보기에는 약간 촌스럽긴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가장 멋있고 아름다웠던 한 세대이다. 그 세대를 거치면서 엄마가 배우고 익혔던 옷들이 지금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아직 엄마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엄마가 골라주는 옷들을 나는 촌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마는 이 옷을 입은 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예쁘고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입어보라고 권하셨을 것이다. 이건 아마 엄마가 살아온 패션의 세대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패션의 세대가 달라서가 아닐까.

 

지금 사람들은 스키니 진을 입고 롱코트를 입으면서 디자인이 새롭고 창의적인 니트를 입는다. 또한, 안에 이너를 입어 포인트를 주거나 구두 또는 머리를 새롭게 바꿔 변화를 주고는 한다. 이렇게 개성을 살린 옷들을 입고 다니는 요즘 세상은 내가 사는 세대이다.

 

나는 더는 엄마가 주는 옷을 입지 않는다. 또한, 엄마가 추천해주는 옷은 잘 사지 않고 오직 나만의 개성을 살린 옷을 찾으면서 사려고 노력한다. 요즘 세대에서 옛날 사람들이 입던 옷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 조금 힘들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옛날과 똑같은 패션은 이제 사라져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사람들은 더욱 새롭고 개성 있으며 예쁜 옷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옛날에 입었던 옷을 입고 나갔다가 촌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정말 좋아하던 셔츠가 하나 있었다. 그 시기에는 물방울무늬가 조금은 유행했었는데 난 검은색 바탕에 하얀 땡땡이가 있는 조금은 큰 셔츠를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3번 이상은 그 셔츠만 입었고 항상 옷걸이에 걸어서 보관했었다. 그 셔츠를 입으면 난 자신감이 생겼으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옷을 잘 입었다는 착각에 빠질 만큼 행복했었다. 친구들도 그 시절 그 옷을 입은 나를 볼 때면 항상 옷을 잘 입었다고 말했으며 그 셔츠를 아무리 입고 다녀도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 없이 오히려 물방울무늬 셔츠를 입는 사람이 늘어났을 정도로 우리들 사이에서만인지 모르겠지만, 물방울무늬가 유행이었고 그만큼 자랑스러운 셔츠였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좀 넘어섰을 때 그 셔츠는 원래 큰 치수라서 2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한테 아직은 조금 크게 맞았었다. 그 셔츠를 발견한 나는 기쁜 마음에 셔츠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지만, 옛날과는 다르게 친구들의 반응은 달랐다.

 

예전에는 예쁘다며 좋아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내가 입은 물방울무늬 셔츠를 보면서 “야, 요즘 누가 그런 옷을 입고 다녀!”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친구의 그 한마디에 이 옷이 창피해지면서 ‘더는 옛날에 내가 좋아하던 예쁜 옷’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단 2년이라는 시간 만에 유행이 바뀌었고 내가 좋아하던 옷이 그저 촌스러운 옷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행하는 옷들을 찾아보며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러면서 내가 옛날에 입었던 옷들을 보관하지 않고 버리는 나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가 옛날에 입었던 옷들을 보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옷들이 단 하루만에 촌스럽고 유치한 옷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철이 없던 시절 엄마한테 맨날 “엄마, 다른 옷은 없어? 다른 거 입으면 안 돼?”라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내가 저렇게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시곤 하셨다. 내가 저런 말을 건넬 때마다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자식을 위해서 유행을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내 딸이 혹은 아들이 더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어린아이 옷을 고르던 엄마. 옛날 유행했던 옷을 지금까지 입으면서 자식에게 저런 말을 들은 엄마는 슬프셨을까, 덤덤하셨을까. 아니면 내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처럼 창피했을까?

 

엄마는 엄마의 시각에서 가장 예쁜 옷, 가장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옷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눈에는 그 시절 그 때 입었던 옷이 가장 예쁜 옷이고 그 옷을 입었던 지난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이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우리가 보기에는 창피하고 유행이 지난 옷을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아직 젊은 시절의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 사람의 시선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저런 말 한마디로 아마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한참 꾸미고 다닐 나이에 우리 언니가 태어났다. 그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돼버린 이십 대의 여자는 더는 유행을 따라가지도, 연예인이 무슨 옷을 입고 나왔고 어떠한 머리를 하고 왔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언니를 낳은 95년도의 유행에 갇혀 있었고 본인의 옷이 아닌 아이의 옷을 더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의 옷장에는 새로운 옷들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만약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옛날에 사람들이 많이 입었던 색의 옷 혹은 디자인을 종종 선호하고는 했다. 그렇게 엄마는 95년도의 패션에 머물러 있었고 거기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걸 배우고 터득하면서 세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린 더 이상 옛날 사람들의 패션에 공감할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창피하다로 엄마들의 옷들을 무시하게 되었다.

 

옛날에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세대차이는 세 대 때려서 극복하는 거야!’ 하면서 서로 때리며 놀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대 차이는 세 대 때려서 극복될 만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대차이라는 건 극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다른 간단한 예시를 하나 들어본다면 스마트 폰이 새롭게 나오고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은 잘 적응해서 사용하지만 폴더폰을 사용하던 어른들은 새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른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세대차인 극복하게 되고 이렇게 두 세대는 연결된다.

 

이미 옛날은 지나버렸고 옛날에 유행했던 옷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내가 당장 어제 입었던 옷들도 그 유행이 지나 촌스러운 옷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는 더욱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힐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의 세대차인 더욱 벌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016년의 유행 또한 과거에 묻힐 것이며 당장 내일 유행이 바뀔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새로운 유행이 있고 새로운 개성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전 시대에 내가 입던 옷은 또다시 유행이 지난 옛날 옷이 되어 있었고 지금의 나에게 새롭게 입으라고 한다면 절대 입지 않을 그런 옷들이 되어 있다.

 

내가 다시 그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간다면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의 패션과 옷들은 옛날 엄마의 패션과 같이 촌스럽고 유치한 것이 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그 옷을 가리키면서 “이 옷 너무 촌스럽지 않아?”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엄마가 대답한 것과 같이 “그 시절에는 그게 유행이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지금 세대 차이를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지금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본다면 옛날에 입었던 옷과 유사한 옷들이 있다. 다시 꽃무늬 원피스가 유행하는데 옛날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새롭게 나와 사람들이 입고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요즘 ‘복고풍’이라고 칭하며 옛날 사람들이 입었던 ‘촌스러운’ 옷들을 아직은 좀 촌스럽지만, 그것보다 좀 더 신식으로 바꿔 입고 다니고 있다. 이렇게 옛날과 유사하게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시내를 나가면 우리 엄마는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20대 사람들을 보면서 “엄마 옛날에 저렇게 입었었는데”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요즘 가게를 가면 우리 엄마 취향대로 골라도 별로 이상하지 않고 “응, 요즘 다들 그렇게 입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음에 들고 예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싶어 생각해 봤더니, 유행은 돌고 돈다. 우리 엄마 세대가 입었고 지나왔던 유행이 지금 세대를 거쳐 새롭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새로 나타난 유행은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옛날답지 않게 신식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더는 엄마가 옛날에 입었던 옷은 촌스러운 옷이 아니게 변하고 있고, 지금 당장 엄마와 함께 길거리를 나간다고 하면 옛날과 같이 멋있고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가 될 것이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옛날에 입던 나팔바지를 입고, 통자바지를 입는다. 패션쇼 또한 복고풍 옷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전시하고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고 요즘 나오는 연예인들 또한 복고풍 옷들을 입으며 새로운 유행을 창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유행이 돌고 도는 것 말고도 부모님 혹은 우리의 인식이 변해가고 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입는 옷을 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어 요즘 유행을 알아가고 자신의 개성을 찾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은 복고풍 유행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어떻게 입든지 간에 자신들의 사랑하는 엄마가 입는 옷을 이해해 보려고 하며 어떻게 보면 또 예쁜 그 옷들을 보면서 약간은 닮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한다면 닮는다는 말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이에 따라서 세대차이가 생겨났지만, 그래도 닮아간다. 서로 얼굴이 닮았고 살아온 환경이 닮았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닮았으니 서로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회)에서 진행된 인문360˚ 세대공감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내용을 무단복제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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