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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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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언제나 훌륭한 소재였다

가족은 언제나 훌륭한 소재였다

명화 속 가족 이야기

by 조숙현 / 2019.05.08

이 가족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벨렐리 가족(La famille Bellelli)> 말이다. 이 그림은 드가가 아버지를 여의고 방문한 고모의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에는 드가의 고모 내외와 두 딸이 등장한다. 상중이기 때문에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집안의 인테리어와 의상 등은 중산층의 부유함을 반영하지만, 어딘가 모두 경직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안 어울리는 부부가 또 있을까? 허공을 응시하는 귀족적인 고모의 옆얼굴에 반해, 머리가 벗어지고 코끝이 뭉툭한 그녀의 남편은 흡사 시장 상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어색한 연결점을 그리며 엇갈리고 있으며, 두 인물 사이에 놓인 탁상 테이블의 세로 선은 심리적인 단절을 상징한다. 의자에 앉은 작은 딸의 부자연스러운 발 제스처, 그리고 숫제 캔버스에서 잘려나간 애완견은 마치 셔터 타이밍을 잘못 맞춘 스냅 사진처럼 보인다. 그는 왜 이런 그림으로 고모의 가족을 묘사한 것일까? 
 

에드가 드가, <벨렐리 가족>, 캔버스에 유화, Musée d'Orsay 

▲ 에드가 드가 <벨렐리 가족> 캔버스에 유채 200 x 250cm Musée d'Orsay(오르세미술관)

 


불안한 심리가 담긴 그림

 

드가는 인상주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으로, 일상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부드러운 파스텔 터치로 유명하다. 특히 발레리나들의 일상을 그려낸 <발레 수업(La classe de dance)>,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Danseuses montant un escalier)> 등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명화들이다. 그러나 로맨틱한 그림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실제 성격은 뾰족했으며, 일생은 불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프랑스에서 작업 활동을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고 홀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파리 인상파 화가들과 조우를 시작했다. <벨렐리 가족>은 바로 이 상황에 드가가 고모의 집을 방문하고 그린 그림으로, 작가의 삭막한 심리상태와 사진을 찍은 듯한 날카로운 관점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에드가 드가,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1890 

▲ 에드가 드가,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캔버스에 유채, 39 x 89 cm, Musée d'Orsay(오르세미술관)


드가는 당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가 그린 가족화 <미라몽 후작과 후작부인, 그들의 아이들(Portrait du marquis et de la marquise de Miramon et de leurs enfants)>에는 <벨렐리 가족>에 등장하는 조카의 어색한 포즈가 직접적으로 차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상주의 여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 역시 드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화가로 알려져 있다. 메리 카사트는 여성 화가들의 활동이 드물었던 시대에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제작했던 아티스트로, 그녀는 프랑스에서 드가와 그의 작품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녀만의 인상주의 색채와 화폭을 완성하였다. 특히 파스텔과 에칭 기법1 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드가는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를 인상주의 모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의 친분은 그림으로도 증명되는데, 드가는 <카드를 쥐고 앉아 있는 메리 카사트(Portrait of Miss Cassatt, Seated, Holding Cards)>로 그녀를 묘사하며 우정을 과시한 바 있다.


1. 산(酸)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판화의 한 방법

 

 

왼) 제임스 티소, <미라몽 후작과 후작부인, 그들의 아이들>, 1865, 캔버스에 유화, 177 x 217 cm, Musée d'Orsay(오르세미술관), 오) 에드가 드가, <카드를 쥐고 앉아 있는 메리 카사트>, 1884, 캔버스에 유화, 60 x 74 cm, 메이어 컬렉션
 ▲ 제임스 티소 <미라몽 후작과 후작부인, 그들의 아이들> 1865 오르세미술관, 에드가 드가 <카드를 쥐고 앉아 있는 메리 카사트> 1884 메이어 컬렉션

 


촛불처럼 따뜻하게 빛나는 가족의 사랑

 

화풍은 흡사할지 몰라도, 그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을 향한 두 작가의 시선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녀의 그림에는 항상 가족이 등장한다. <목욕 뒤에(After the Bath)>는 두 아이를 보송보송 씻기고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부드럽게 연출되어 있고,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 (Woman Sitting with a Child in Her Arms)>, <잠 오는 아기를 닦는 엄마(Mother About to Wash Sleep Child)> 등의 그림에서 언제나 아이들과 엄마의 교감을 주로 다루고 있다. 화사하지만 차분한 색채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눈빛과 스킨십이 그녀 특유의 화풍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어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의 섬세한 모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그림이 관객에게 호감을 주는 이유는 작가의 뛰어난 테크닉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왼) 메리 카사트,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81 x 65.5 cm, 빌바오미술관, 오) 메리 카사트, <잠 오는 아기를 닦는 엄마>, 1980년, 캔버스에 유채, 99.06 x 63.5 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 메리 카사트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 빌바오미술관, <잠 오는 아기를 닦는 엄마> 1980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카사트의 작가 열정은 말년까지 이어졌다. 이집트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고, 여성 화가들을 위한 위원회 조성에도 열의를 보이는 등, 여류 화가가 현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도 화가로서의 행보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지독한 창작열로 인해 훗날 눈이 멀어 작업을 중단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그녀의 그림은 미국 내셔널 미술 박물관, 시카고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5년에는 그녀의 작품 중 한 점이 2백8십7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여성 화가들의 활동을 고증하는 미술사 학자들과 여성 작가들에게 힘과 영감의 원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의 그림 속 어머니와 포동포동한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아티스트와 관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녀의 작품은 우울과 불안을 모티브로 하는 예술가들의 강렬한 이미지 가운데서 촛불처럼 따뜻하게 빛나며, 가족의 사랑 역시 훌륭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메인 이미지_ 메리 카사트, <목욕 뒤에(After the Bath)>, 1901년, 캔버스에 유채, 100 x 66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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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현
조숙현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퍼블릭아트>의 취재기자와 강원비엔날레 2018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유럽 레지던시를 취재하고 쓴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 등이 있으며, 2018년 현대미술 전문출판사 아트북프레스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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