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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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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엇을 사는가?'에서 '왜 사는가"로 질문을 바꿀 때

by 범상규 / 2019.12.02



쇼핑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연결된다



소비, 인류 문명의 이유이자 결과 



현대인의 먼 조상인 유인원이 마침내 나무에서 내려온 사건은 수백만 년 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남긴 것과는 다른 ‘첫’ 발자국이었다. 유인원의 첫발은 생존문제인 반면, 암스트롱의 그것은 미래 희망을 담았다. 나무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야생에서의 적자생존을 위한 수많은 도전은 시작되었고,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은 의식주 해결이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한 인류는 살아남았고, 지구 넘어 달까지 향하게 되었다. 


원초적 욕망인 의식주의 충족(해결)은 초기엔 부족 공동으로, 그 후 점차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행해졌지만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우연한(?) 비약적 기술 진보에 힘입어 잉여물이 생기고, 물물교환은 자원의 효용성을 높여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다. 이후 상업기술은 막대한 경제적 부를 가져왔고, 생존은 보장된 듯 보였지만 여전히 더 큰 문제는 남았다. M. 매슬로의 주장처럼 단순한 의식주가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소비’와 관련된 문제다. 인류에게 소비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쾌락의 쳇바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비는 물건을 사용하여 소모하거나 구매하는 단순한 경제개념이라기보다는 현대인의 정체성이자 욕망의 결정체인 것이다. 소비 행위는 인류 진화에 따른 결과물인 동시에 인류를 진보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명품은 왜 매력적일까?



인간의 욕망은 개인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기에 소비 수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소비는 일차적으로 욕망이나 습관 등 주관적 요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론 외부 자극인 이웃이나 회사 동료처럼 타인의 소비 생활 양식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더불어 이미 길들여진 소비 생활 양식은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일정기간 지속된다. 이를 고려해 볼 때 현대인의 대표적인 소비 현상인 명품 중독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과시적, 본능적 소비다. 매력적인 명품이 주는 쾌감은 인터넷게임 혹은 약물중독에 버금가는 강력한 중독성을 보인다. 즉 명품을 보자마자 뇌의 특정부위에서 발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쾌감중추를 자극하여 벌어지는 신의 한수다. 


과시적 소비는 19세기 말 미국의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미국의 상류 유한계급이 신분을 명시하는 전통적 수단인 일이나 직업대신, 이른바 ‘과시용 소비’를 통해 그들의 신분을 표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데서 유래되었다. 유럽 귀족처럼 뼈대 있는 가문을 갖지 못한 미국의 부자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베블런은 이러한 소비 경향이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이 자기 과시적 선물 잔치인 포틀래치1 관습과 본질적으로 같다며 비판했다. 


1. 포틀래치 potlatch: 아메리칸 인디언의 한 종족인 콰키우틀족에서 벌어지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일종으로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값비싼 재화를 불에 던진다든가 파괴하는 등의 행위로서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상대방의 지위에 도전하는 의례를 말한다. 출처-인적자원관리 용어사전


명품에 대한 열망 ; 명품 브랜드숍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현대인의 명품에 대한 선호 논리는 별다를 게 없다. 미국 부자나 인디언 부족처럼 명품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외부로 보여준다는 ‘외부 신호화이론’에 따른 행동이다.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단들은 외제승용차를 몰고, 명품 핸드백을 메야만 성공했다는 묵시적 기준을 만들고, 초등학생들은 몇 십만 원짜리 패딩을 입어야 ‘왕따’가 되지 않고 또래집단에 섞일 수 있다고 여긴다. 결국 과시욕은 장 브드리야르가 말한 파노폴리 효과2가 반영된 소비심리다. 즉 ‘명품을 가졌으니 나도 이젠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희망적인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니 ‘짝퉁’이라도 있어야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더라도 명품백을 사겠다는 심리, 저가 청바지도 명품로고가 찍힌 종이백에 담아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2. 파노폴리 효과 panoplie effect: 개인이 특정 상품을 소유하면서 그와 비슷한 제품을 소비하는 특정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는 현상

 

특히 명품 중독 현상은 가격이 비쌀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격=품질’이라는 상관관계의 착각은 늘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외국 유명브랜드가 국내시장을 공략하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은 무조건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봉’이라는 국민적 공분을 사게 만들곤 한다. 



이성적인 현대인의 비이성적 소비 



현대인은 스스로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이성적인 소비자라고 여긴다. 때문에 명품 중독은 졸부나 허영심 많은 부류의 비이성적인 소비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도 제품과 관련된 정보를 평가하면서 인지적 편향에 따른 판단 오류를 종종 경험하는 비이성적인 소비자에 가깝다. 1만 원짜리보다 9900원 가격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앵커링 효과’에 기인한 편향에 빠진다. 또 상황을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내로남불식 자기중심적 편향도 보인다. 방금 산 주식은 오를 것으로, 팔았던 주식은 떨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는다. 또 공짜 즉 공돈 심리도 종종 우리를 비이성적으로 현혹하는 편향이 되곤 한다. 쇼핑몰에서 일정 금액 이상 구매 고객에게 무료 배송을 한다면 예정에 없던 추가 구매를 하는데, 무료 배송을 공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쇼핑하는 여성


그런가 하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더 싫어하는 손실회피성향도 비이성적 판단을 불러온다. 손실주식은 보유하면서 오른 우량주식을 매도하는데 손실주식을 매도하면 손해로, 우량주식을 팔면 당장 이익이라는 편향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또 선택 시점의 상황이나 기분도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르게 만든다. 슬프거나 우울할 땐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고 즉각적인 행복감을 줄 수 있는 비싼 가격을 선호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울할 땐 쇼핑으로 기분전환하지 말자.



소비, 시대를 반영하다



특정 소비 패턴은 그 집단의 문화코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남자는 사고자 했던 물건을 보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사는 반면, 여자는 매장 안을 샅샅이 뒤진 후 마지막으로 원하는 물건을 고른다. 부자들은 고급 주택, 수억 원대의 슈퍼카나 명품 핸드백 등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목적보다는(이미 많은 것을 경험해봤기에)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주는 새로운 물건에 돈을 쓴다. 최근 가장 비싼 이불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3억2000만 원짜리 이불은 미국 메이저리그 유명 선수의 숙면을 위한 특별한 투자일 것이다. 또 레고사가 독일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조립설계도를 각 단계별로 넣어둠으로써 성취감을 불어넣어 궁극적으로 업그레이드 제품을 반복적으로 사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반대로 멋진 설계도를 무시하고 자기 취향대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기를 좋아하는 미국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소비는 문화코드를 반영한다. 거대 쇼핑몰의 풍경


이처럼 문화코드는 경험에 바탕을 둔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을 이끄는 소비 요인이다. 요즘 새로운 소비 문화가 뜨고 있다. 유독 사회적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밀레니엄 세대의 소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1980년에서 2004년 사이 출생해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디지털기기에 익숙하여 SNS를 통해 사회적 관심사를 공유하는 세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남들이 산다고 무작정 따라서 구매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취향저격' 당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 소비를 추구한다. 그런가하면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는 기업 혹은 환경문제를 등한시한 기업의 제품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불매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수익의 일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하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소신 소비도 한다. 결국 현대인들의 소비 행위에 대한 이해는 ‘무엇을 사느냐?’ 보다는 ‘왜 사는가?’에 달렸다. 



범상규
범상규
경영학박사. 심리마케팅연구소 ‘봄’을 운영하는 소비 심리 전문가, 건국대학교에서 마케팅 및 소비자행동 등을 강의하며 언론과 기업체 강연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일상에서 겪는 소비 행동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심리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마케팅에 접목한 ‘심리마케팅’ 분야를 개척, 비합리적인 소비 행동에 대한 이유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NON 호모이코노미쿠스』, 『심리학이 소비자에 대해 가르쳐준 것들』, 『멍청한 소비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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