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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모습들

- 당신은 어떤‘가요’ -

김소연

2022-04-25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 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엄마가 말을 끊고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 채로 엄마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있었다. 저절로 엄마의 노래가 녹음이 되었다. 녹음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따라 부르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를 부를 때부터 엄마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끝까지 불렀다... ...



남들 앞 노래 부르기는 싫어했지만



노래 부르는 모습

노래 부르는 모습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꺼려 한다. 혼자서는 흥얼흥얼 노래를 자주 부르는 편이니, 부르는 걸 꺼려 한다기 보다는 누가 지켜보는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되는 걸 못마땅해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누군가가 내게 노래를 시키는 걸 싫어했다. 음치, 박치. 노래를 못하기 때문에 더 싫어했다. 옛날에는 왜 그렇게까지 술자리에서 노래들을 시키고 부르고 했을까. 노래를 잘 부르고 부르길 좋아하는 사람이 대개 먼저 노래판을 만들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시킨 다음에 못 이기는 척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나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를 때에 열심히 듣거나 따라 불렀다. 적어도 내 앞에서 누군가가 노래를 한 적이 있다면 나는 거의 모든 걸 기억해 낼 수 있다. 무슨 노래를 했는지, 눈을 감고 불렀는지, 목청은 좋았는지 혹은 소심하게 조용조용 불렀는지. 제스처는 어땠는지 같은 것들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다. 주로 술자리였고, 주로 의자 없이 맨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둘러앉았고 그 사람만 우뚝 서 있었다. 올려다보며 눈을 떼지 않고 그 모습을 보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거나 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서 그 노래를 들었을 때보다 감흥이 더 짙었다. 잘 불렀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만한 공기가 그 사람을 둘러싸고 고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 노래가 완벽하지 않아서 좋았다.



〈검은 장갑〉... 한 번 듣고 외우고 달 한 번 더 보며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 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 손시향 노래 〈검은 장갑〉 가사 중에서 -



孫時鄕 Top Hit

가수 손시향의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벅스)



1958년에 가수 손시향이 부른 노래이지만, 이 노래는 대학시절 현대시 전공 교수님이 잔디밭에서 불러준 노래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잔디밭에서 수업을 하자고 떼쓰던 학생들은 교수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 번 더 떼를 썼다. 교수님은 수줍은 표정으로 일어서서 조용하게 이 노래를 불렀다. 교수님은 이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멋쩍은 듯이 웃으며, 너희들끼리 놀라며 자리를 피하셨다. 흰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수님이 우리가 둘러앉은 잔디밭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뒷모양을 나는 내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래가 어찌나 교수님과 어울렸는지, 한 번 듣고 그 노래를 나는 외웠다. 나도 혼자 자주 흥얼거렸다. 특히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에 불렀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이 노래를 세 번 정도 부르면 집에 도착했다. 집 대문을 열기 직전, 한번 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을 한 번 더 보려고. 이 노래가 특히 좋았던 부분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대목에서 ‘검은 장갑’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굿바이 하면서 내미는 손이 검은 장갑이라니. 잘 가, 하며 악수를 하게 되어도 장갑 낀 손을 잡아야 할 것인데……. 의복의 최종 격식이 모자와 장갑이던 시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차림새로 데이트에 나섰을 누군가가 떠올랐고 노래에 담긴 그 마음에 호감이 갔다.



〈두리번거리다〉... 함께 목청껏 절규하듯 울며 씹어 삼키며



헐벗은 내 몸이 뒤안에서 떠는 것은

사랑과 미움과 배움의 참을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무너진 내 몸이 눌리어 우는 것은

눈물과 땀과 싸움의 참이

너로부터 가리워 알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텅 빈 내 마음이 굶주려 외침은

꿈과 노래와 죽음의 참이

너로부터 사라져 잃어버린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 김민기 노래 〈두리번거린다〉가사 중 -



김민기 1

가수 김민기의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벅스)



김민기의 노래다. 이 노래는 소위 ‘금지곡’이었다. 우리에게 시를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 저 우아한 노래를 수줍게 부르시던 그 시절에 우리들은 서클방에 모여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다 함께, 목청껏 불렀다. 절규하듯이 신음하듯이 불렀다. 사랑과 미움과 배움, 눈물과 땀과 싸움, 꿈과 노래와 죽음 같은 단어들을 꼭꼭 씹어삼키듯이 불렀다. 칙칙했고 먼지가 자욱했던 그 방에서, 누군가가 기타를 안고 C 코드를 잡아 첫 소절을 먼저 부르면 다 같이 둘러앉아 이 노래를 합창했다. 3절까지 다 불렀다. 노동요처럼 불렀다. 술에 취해서도 불렀고 맨정신으로도 불렀다. 어떨 때는 누군가 울면서 불렀고, 우는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면서도 불렀다. 같은 마음으로 입을 모아 불렀지만, 각자의 내면 속에 각자의 격정들을 눌러가며 불렀다. 누군가는 노랫말의 무게에 짓눌려 부르다가 말 때, 그 눈빛을 바라보면서도 불렀다. 앉아서 부르다가 서서 부르기도 했다. 1절보다는 2절을, 2절보다는 3절을 더 힘차게 불렀다. 이 노래가 끝나면, 한참 동안 모두가 침묵했다.



〈동그라미〉... 음치모녀 함께 부르던, 서툴러도 좋았다



고아/얼굴 JIGU 윤연선 매혹의 노래모음

가수 윤연선의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벅스)



엄마는 나만큼이나 음치셨다. 나만큼이나 노래 부르는 것을 꺼려 했다. 아빠가 ‘보리수’나 ‘동무생각’ 같은 노래들을 한 소절 한 소절씩 자식들에게 가르쳐줄 때에도 빙그레 웃으며 구경만 했다. 어느 날엔가 엄마는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사 와서 카세트 플레이어 앞에 바짝 붙어 앉아 계속 노래 연습을 하고 계셨다. 두 손으로 노랫말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꼭 쥐고서. 수십 번을 되감고 재생하고 되감고 재생하면서. 호피 무늬가 새겨진 벨벳 소파에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던 엄마 옆에 다가가 나도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 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 윤연선 노래 〈얼굴〉가사 중 -


가곡이었던 노래를 포크로 바꾸어서 윤연선이 1974년에 다시 불러 화제가 됐던 노래다. 엄마와 함께 듀엣으로 익혀갔던 이 노래는 유일무이한 엄마의 십팔번이 되었다. 나는 엄마와 자주 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나설 때에 특히 자주 불렀다. 음치 모녀에게 이 노래는 안성맞춤이었다. 다른 노래들은 내가 부르면 어쩐지 다른 노래로 변질되어가는 느낌이 엄습해왔는데, 〈얼굴〉은 안 그랬다.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부르고 있으면, 내 목소리로 그 노래가 되어갔다. 조금씩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엄마와 나는 서로 괜찮았다.



핸드폰 녹음

핸드폰 녹음



몇 해 전, 엄마가 이 노래 가사를 조금 잊은 것 같다며 내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에 또박또박 노랫말을 적어드렸다. 그리고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 노래를 같이 불렀다. 엄마를 만날 때면 일부러라도 이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하면서 듀엣 놀이를 이어갔다. 어느 날은 병원에 모시고 가던 차 안에서,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엄마가 말을 끊고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 채로 엄마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있었다. 저절로 엄마의 노래가 녹음이 되었다. 녹음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따라 부르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를 부를 때부터 엄마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끝까지 불렀다. 저절로 엄마의 울먹임까지 녹음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 때에 이 녹음파일이 있다는 걸 기억해 내어 찾아서 들었다. 비가 왔던 날이어서 와이퍼 소리에다 깜빡이 소리까지 배경음으로 흘러나왔다. “동그랗게”라는 노랫말이 나오기 직전에 나는 스톱 버튼을 눌렀다. 아주 나중에 다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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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 사진
김소연

시인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i에게』와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한 글자 사전』,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그 좋았던 시간에』를 펴냈다. 노작문학상, 현대문학상, 육사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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