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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12. 문학적 우정의 공동체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by 이광호 / 2022-05-13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은 문학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있지만, 또한 아무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과 지식들은 문학을 잘 향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문학을 납작하게 만든다.  문학의 적이 문학을 호명하는 제도와 교육이라는 것은 문학이 처한 불행이다.  이 연재는 문학제도 안에서 문학을 규정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테면 문학의 정의, 장르와 문학성을 둘러싼 익숙한 개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문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문학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그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일이 나날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면.


완전하고 절대적인 공동체는 불가능한 관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학과 예술의 내밀한 경험을 통해 연결된 개인들은 그런 완벽한 공동체의 이미지에 자신도 모르게 접근하게 된다. 문학의 공간이 우정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문학을 통해 하나의 집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오히려 모든 획일적인 집단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하나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집단에서 문학과 예술은 추방 당하거나 이념적으로 이용될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집단의 반대편에서 문학적 우정의 공동체는......



코로나로 인한 삶의 변화와 커뮤니케이션 장애



팬데믹이 일상적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조금씩 팬데믹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에 이르렀다. 코로나가 삶의 감각을 바꾸어 놓은 사태의 기저에는 모든 접촉에 대한 혐오감이 자리한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자체를 두려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자체가 주는 공포를 경험했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익숙한 이미지가 되었다. 오히려 얼굴을 모두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인간만이 얼굴의 표정을 통해 말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것은 표정이라는 언어를 박탈하는 것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았던 지난 몇 년 간은 ‘얼굴의 언어’를 상실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팬데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장애를 가져왔다. 비대면의 언어들은 소통의 장애를 가져온다. 회의를 비대면 온라인 회의를 바꾸었을 때 사람들 사이의 실시간의 미묘한 정서적 의사소통은 포기된다. 비대면 접촉에서는 표정과 대화의 뉘앙스와 장소의 분위기 같은 것은 전달될 수 없다. 거기에 남는 것은 형식적인 커뮤니케이션 뿐이다. 문자나 카톡의 언어들은 상대방의 상황이나 표정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대화는 생동감 있는 뉘앙스를 갖기 어렵다. 이모티콘과 캐릭터가 사람의 표정을 대신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SNS의 소통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를 부여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폭력성이 존재한다. 사람과의 접촉의 기피는 온라인을 통한 주문의 언어만을 확대시켜 놓았다. 주문의 언어는 상대방의 상황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만 물건이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비대면 언어들은 실시간의 정서적 교감이 불가능한 일방적인 언어이며, 상대방이 어떤 정서적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 수 없는 언어들이다. 코로나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은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소통의 포기라고 할 수 있는 사태이다.



비대면 언어의 시작은 ‘책’



독서

독서



인류의 역사에서 비대면의 언어의 시작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 사람의 내밀한 생각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언택트’의 시대 이전에 ‘북택트’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종이책이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즉각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하나의 책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한 독자들은 보이지 않은 연대감과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독서로 연결된 우정의 공동체는 조직도 이름도 없는 잠재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공동체는 조직과 이름과 정체성을 갖게 되면 그 안에 억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와 가족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과 연인 사이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하며 억압 없는 대화와 투명한 소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에 조직이 있다는 것은 위계가 있다는 것이며, 이름과 정체성이 부여되면 그 정체성에 맞지 않은 것은 ‘우리’의 바깥으로 밀어내게 된다. 한 작가를 사랑하는 잠재적인 독자 집단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 속에 있지만, 그들이 만약 팬클럽을 만들고 조직을 만든다면 그 공동체는 위계와 이름을 갖게 된다. 책을 통해 연결된 보이지 않는 공동체는 고유한 독서 경험으로 연결된 우정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공동체는 특별한 목적도 정체성도 갖지 않기 때문에 이름 붙일 수도 없고 타인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문학과 영화라는 예술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의 이미지들은 ‘함께 있음’의 감각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최인훈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한국문학대표작어문특선 어문각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책 표지(이미지 출처: yes24)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라는 단편은 최인훈의 등단작이며, 최인훈 소설의 맹아들이 숨어 있는 작품이다. 전후 젊은이들의 내면적 좌절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행동을 거부하는 철저한 무위’를 주창하는 ‘그레이 구락부’라는 비밀스러운 모임에 참여한다. 이 모임은 현실의 부대낌을 피하고 행동 자체를 거부하는 청춘들의 유폐된 모임에 불과하다. 닫힌 현실과 청춘의 무기력은 이런 방식의 아무 쓸모도 없는 ‘비밀결사’를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하잖은 모임은 ‘국가를 전복할 의논’을 하는 불온 단체로 오인받고 형사의 취조를 받게 되면서 모임은 해산에 직면한다. 현실에 대한 무위를 주창하던 모임이 국가권력의 개입을 통해 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젊음의 순수와 무기력을 보여 주면서,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는 공동체조차 허락하지 않는 국가의 억압적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이런 무위의 공동체는 전후 세대 청춘의 무력증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 무력한 공동체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 공동체의 실패의 과정에 여성 인물과 ‘사랑’이 개입한다. 이 단체의 강령과 분위기에 균열을 만드는 여성 인물 ‘키티’의 존재이다. 그레이 구락부의 남성들 사이에는 낡은 남성 우월주의가 깔려 있지만, 문제적인 부분은 여성 ‘키티’에 의해 이 남성 집단의 허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 무력한 남성 집단은 키티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못난 남자들은 ‘키티’를 조금은 사랑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여성을 통해 남성 집단의 윤리적 허위와 자기 분열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 실패한 공동체에도 문학적 우정의 순간은 있었을 것이다.



영화 〈몽상가들〉 스틸컷(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몽상가들〉 스틸컷(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완전하게 자유로운 공동체는 지속되기 힘들지만 청춘은 그것을 향한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몽상가들」에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연결된 쌍둥이 남매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순수한 소년은 영화에 미친 청춘들이다. 프랑스 68혁명이 시작되면서 이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아파트 안에 틀어박혀 영화와 음악과 책 속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은밀한 공동체를 만든다. 그들이 하는 일탈적이고 때로 반사회적이고 광기 어린 행위들은 영화 속의 이미지들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그들의 일탈적인 퍼포먼스는 오로지 영화를 향한, 영화를 위한 것들이다. 이들에게 자유와 혁명은 영화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관념이다. 68혁명이 만드는 한 시대의 폭발적인 분위기는 이 기이한 청춘의 공동체를 통해 에로틱하고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부여받는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기성의 질서와 제도적인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에 의해 이 청춘의 은밀한 낙원이 파괴되고, 거리에 나선 쌍둥이 남매는 화염병을 던지지만 기성의 질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온한 청춘의 공동체는 한 시대의 혁명의 일부로서 남아있을 것이다.



0%를 향하여 서이제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0%를 향하여〉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젊은 작가 서이제의 「0%를 향하여」에서는 삶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 젊은 ‘씨네필’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영화에 대한 청춘의 열정은 현실 속에서 굴절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영화 할 돈을 벌기 위해 과외나 방과 후 교사를 하거나, 영화를 그만두고 지방에 내려가 사진 스튜디오를 차리거나, 독립영화를 찍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기이한 감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주인공은 단편영화제에서 만난 할머니가 자기 영화를 보러 와달라는 부탁 때문에 2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작은 영화관을 찾는다.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가 만든 영화에 대한 초대는 독립영화라는 공간의 초대이기도 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보러 가는 시간은 독립영화의 이상한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은 소설의 제목처럼 0%의 영화라는 가능성에 속한 사람들이다. 0%는 없음이 아니라, ‘0이라는 존재’의 있음이라면, 그 있음은 ‘지속’으로서의 있음이다. 0%는 모든 것이 소진된 상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잠재성의 지속으로서의 0%이다. 완전한 의미의 ‘독립’ 영화는 불가능한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을 향한 삶이 지속되는 한 0%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운동이 된다. 영화를 통해 모인 익명의 사람들은 아무런 위계도 목적도 없이 영화를 둘러싼 우정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문학 내의 공동체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몽상가들」과 「0%를 향하여」의 공동체는 실패한, 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이미지들이다. 그 공동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연대와 우정이 현실과 제도 속에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공동체는 불가능한 관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학과 예술의 내밀한 경험을 통해 연결된 개인들은 그런 완벽한 공동체의 이미지에 자신도 모르게 접근하게 된다. 문학의 공간이 우정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문학을 통해 하나의 집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오히려 모든 획일적인 집단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하나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집단에서 문학과 예술은 추방 당하거나 이념적으로 이용될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집단의 반대편에서 문학적 우정의 공동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네트워크를 만든다. 문학과 예술은 철저히 개인적인 창조와 향유의 경험이면서, 이 예술적 과정을 공유한 사람들을 조용하게 연결시킨다. 그것은 어떤 목적과 이해관계와 권력관계의 바깥에 있는 보이지도 않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연결이다. 연인들의 은밀한 공동체가 계산과 권력의 바깥에서 과도한 사랑의 열정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문학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 채 문학의 연인들이 된다. 문학을 만난다는 것은 서로에게 미지의 대상인 문학의 연인들이 된다는 것이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12. 문학적 우정의 공동체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11. 문학은 왜 애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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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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