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심어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러 가다
취재
Understory
작은도서관에서 스무 해 넘게 일을 했다. 그동안 수많은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없어지면 또다시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개 책을 읽으러 왔다가 사람을 만나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 사이 아주 가끔, 책 한 권이 사람의 생을 통째로 흔드는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다. 춘천의 작은도서관caru에서 모여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러 함께 떠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 드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caru 이선미 관장에게 나는 자꾸 되물었다. 왜 하필 울프였는지, 왜 감자였는지, 왜 영국이었는지. 대답은 매번 단순했다.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그 단순함 뒤에 얼마나 긴 시간이 쌓여있는지 이제부터 그 ‘켜’를 하나씩 들춰보려 한다.
어쩌면 책 읽기는 우연히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세상에 있는 책은 무한하다. 그러니 우리는 흘낏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한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을 안고 지나쳐 갈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 울프, 「거리 헤매기: 런던 탐험」,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최리외 옮김, 마음산책, 2026)
작은도서관caru에게는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문장이 하나 있었다. “여성에게 연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는 울프의 문장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버지니아 울프 읽기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계획은 1년 남짓 묵혀졌다.
그러던 2023년, caru가 후평 3동으로 공간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래전 등단한 소설가 김한숙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춘천으로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도서관 리플릿에 적힌 ‘울프의 책상’이라는 읽기 모임 홍보 문구를 보고 그가 먼저 언제부터 시작하느냐고 물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이선미 관장은 그의 내공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렇게 강사가 정해졌고 마침 그해 지원사업의 기회도 생겼다.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실현된 ‘울프의 책상’ 첫 모임의 풍경은 지금도 회자된다. 김한숙 선생님은 A4용지 여섯 장짜리 빼곡한 원고를 작성해 와서 참여자들을 압도했다. 그 카리스마에 놀란 사람들은 1회부터 5회까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숨죽이고 강의를 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정년을 앞둔 교사와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는 청소 노동자, 오랫동안 요리를 가르치며 자기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 버지니아 울프 책을 읽어왔던 사람도 있지만,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등장하는 이름으로만 울프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해 주 2회씩 총 25회의 스파르타 일정이 이어졌다.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이듬해에는 16회차로 줄였다는 후일담이 ‘웃프게’ 남았다.
이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남달랐다. 사는 곳이나 직업이 아니라, 각자 좋아하는 책과 그 안의 문장을 함께 나눴다. 지식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좋아하는 책을 말할 때 달라지는 눈빛을 서로 알아보는 자리였다. 그 익명에 가까운 평등함이 사람들을 계속 도서관으로 불러들였다.
쓰기라는 실천을 견뎌내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 쓰는 듯하기 때문이다. 펜을 움직이는 신경은 우리 존재의 모든 섬유조직을 휘감고, 심장을 꿰뚫고, 간을 관통한다.”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같은 책에서 재인용
읽는 일에는 사실 용기가 크게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쓰는 일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4년 2년 차로 접어든 caru ‘울프의 책상’ 일원들은 읽기를 넘어 쓰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과제는 단편소설 분량의 글쓰기였다. 다 쓰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끝내 써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 글들을 모아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도 없는 자체 제작 무크지 『울프의 책상』을 펴냈다. 예산은 인쇄비 정도밖에 없었지만, 도서관 측에서 편집을 맡아 책의 꼴을 갖췄다. 그리고 그들은 출판 기념회까지 열었다.
이선미 관장이 쓴 『울프의 책상』 서문에는 멤버들 이야기가 ‘K’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로 엮여있다. 신춘문예에 몰래 글을 보내본 적 있는 사람, 매일 저녁 부모님 집으로 출근하듯 밥을 차리러 가는 사람, 근엄한 시 낭송 자리에서 갑자기 “쫄깃쫄깃한 국수”를 외쳐 분위기를 바꿔버린 사람. 모두의 일상이 한 사람 안에 녹아있었다. 사람들은 그 서문을 읽고 어떻게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담아냈냐고 반가워했다고 한다.
사실, 쓰기는 쉽지 않았다. 청소 노동자인 H는 쉬는 날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문 여는 시간부터 문 닫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소설을 완성했다. 맞춤법도 문장 호응도 서툴렀지만, 기어이 써냈다. 카페 사장님은 이 이야기를 전해주며 “정말 끙끙 앓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쓰더라고 했다.
글을 쓰다 보면 다들 비슷한 지점에 다다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기를 표현하려고 애쓰지만, 점점 읽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자라나는 욕심은 합평 자리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잘 쓰는 사람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의 온도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견뎠어요.” 이선미 관장은 이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견뎌내기’는 함께 쓰기의 한 과정이기도 했다.
영국에 가기 위해 감자를 심었다
“그 어떤 사실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내버려둘 만큼 사소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상상력의 힘으로 사실들을 변화시키는 기묘한 능력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 「몽테뉴」, 같은 책에서 재인용
2년 동안 마흔한 번을 만났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사이가 되었다. 2025년 여전히 읽고 쓰던 어느 날, 누군가 영국에 가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실이 있는 영국 이스트 서식스 주 로드멜 마을의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다들 품고 있었지만, 경비는 생각보다 비쌌다. “감자를 심으면 어때? 지금 심어서 하지 전에 팔 수 있는 작물이야. 농지는 내가 알아볼게.” 농사를 지어보았던 사람은 두 명. 하지만 일단 실행하기로 했다. 책과 펜을 들었던 사람들이 호미를 들었다. 정말이지 농사는 너무 힘들었다. 본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한마디로 ‘개고생’이었다.
돈을 마련하는 방법도 낯설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멤버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크라우드펀딩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작은도서관 안에도 이런 공동체가 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감자만 파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글도 넣기로 했다. ISBN을 발급받기 위해 출판 기획자와 사전 컨설팅도 거쳤고, 지역의 협동조합과 연결된 디자이너에게 도움도 받았다.
책의 형식은 잡지에 가까웠다. 에세이를 쓴 사람, 시를 쓴 사람, 인터뷰를 맡아 원고를 쓴 사람이 따로 있다. 올해 여든이 된 K는 감자 요리 레시피를 개발하고 원고와 함께 앞치마를 두른 사진까지 보냈다. 서로가 사례로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자 몇 박스뿐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힘을 보탰다. 펀딩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의 작은도서관 사람들이 SNS에 소식을 퍼날랐다. 이선미 관장은 그 장면을 캡처해 ‘울프의 감자’ 멤버들 단체 메신저 방에 올렸다. 다들 아이처럼 신이 났다. 그렇게 감자는 전국으로 갔고, 사람들은 영국으로 갔다.
영국에서 거룩함을 만났다
“하지만, 노을도 참 아름답네요. 저는 이따금 사라지는 게 우리가 쓰는 것보다 우리가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버지니아 울프, 『밤과 낮』, 같은 책에서 재인용
공항에 도착해 ‘UK’라는 글자를 본 순간,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초등학교 특수교사인 W는 새벽부터 몰래 준비한 손팻말을 캐리어에서 꺼냈다.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게 조금 민망하면서도, 그 민망함마저 좋았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울프 부부가 20여 년 세월을 보냈던 몽크스 하우스였다. 서툰 영어와 번역 앱을 동원해 질문을 던지자, 내셔널트러스트 소속 안내원은 천천히, 맞춤형으로 설명해 줬다. 실제로 본 몽크스 하우스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집필실도 오두막에 가까웠다. 오히려 앞에 선 나무가 더 커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버지니아 울프가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날의 진짜 여정은 계획에 없던 곳에서 시작됐다. 몽크스 하우스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우즈강, 관광객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다. 구글 지도만 보고 걷다 보니 남의 목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이 길이 맞나 망설이는 사이, 겁 많은 사람들은 뒤에서 머뭇거렸고, 성격 급한 두 명은 이미 저만치 앞서 목장 문을 열고 있었다. 염소가 지나가고 젖소 무리도 스쳐 갔다. 무섭다고 웃으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강가에 도착해 다리를 두드리며 주저앉았을 때, J가 말했다. “날씨가 거룩하다.” 무더운 한국의 여름을 뒤로하고 마주한 서늘한 가을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울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세계대전 중이었고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절이었다. 지지해 주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그토록 힘든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오래 헤아렸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단상을 강물에 흘려보냈을 뿐이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리가 해냈다”라는 자긍심이 도서관 전체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무언가 새로운 모임이 생길 때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지 먼저 살피는 사람들이 늘었다. 누구는 caru의 심야도서관을 여는 ‘북스카우트 모임’ 대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도서관에 대한 신뢰는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늦여름, 감자를 캐내고 난 빈 밭에 들깨를 심었다.
마을에서 여전히 읽고 쓰다, 그리고 번지다
“걸작이란 홀로 고립되어 태어나지 않아요. 걸작은 오랜 세월을 거쳐 함께, 공동체 전체가 축적해 온 사유의 산물이며 그렇기에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는 다수의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같은 책에서 재인용
작은도서관caru의 감자 농사는 계속되고 있다. 2026년에는 스마트스토어를 열어 직접 판매했고, “울프의 감자, 언제 파나요?”라고 묻는 동네 사람들 덕분에 상표 등록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지역 감자빵 업체와 연결이 되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울프의 감자’ 밭에서 농사지은 감자로 빵을 만든다. 들깨 농사도 짓는다. 지난해에는 도서관 책 축제에서 〈들깨 이행시 백일장〉을 열었다. 상품이 농사지은 깨로 만든 들기름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대단했다. 여든 가까운 동네 어르신들까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들깨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밭에서 들깨를 뽑아와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를 활동가라고 하던데 그게 뭐예요?” 어느 날 감자 농사를 짓고 오는 길에 H가 이렇게 물었단다. 그 말을 들은 이선미 관장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관장 혼자 움직여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서로가 움직여야 시너지가 나죠.” 이제 ‘울프의 감자’ 멤버들은 참여자가 아니라 활동가라고도 불린다. 독서 대전과 지역 자체 도서전 북토크에 초대받기도 했다. 9월 5일에는 강원도시농업 사회적협동조합과 손잡고 리딩파티를 개최했다. 작은 유리온실을 ‘울프의 도서관’으로 꾸미고 토종 벼가 자라는 논 앞에서 벼꽃 투어도 하고, 지역 인디밴드와 함께 북콘서트도 진행했다. 책을 함께 읽고 버지니아 울프와 영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감자를 심고, 영국에 다녀온 ‘울프의 감자’가 이제는 마을 안에서 읽기를 확산하는 주체가 되어 있었다.
ⓒ작은도서관caru
인문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강의실과 책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caru의 4년을 들여다보면, 인문은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문장을 누군가와 함께 겪는 일에 더 가까웠다. 울프의 문장을 곱씹던 사람들은 밭에서 흙을 만졌고, 낯선 강가를 나란히 걸었고, 지금은 동네 논둑 위에 함께 앉는다. 감자였다가 손팻말이었다가 노래가 된 것들은 결국 켜켜이 쌓인 시간이었다. ‘울프의 감자’는 울프의 문장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각자의 문장을 찾아가고 있다. 문득, 그들의 다음 문장이 궁금해졌다.
“행복이란 고요하고 평범한 것들 안에 깃들어 있다. 탁자 하나, 의자 하나, 책갈피 대신 종이칼이 꽂힌 책 한 권에. 그리고 장미에서 떨어지는 꽃잎에. 우리가 고요하게 앉아있는 동안 일렁이는 불빛에.”
버지니아 울프, 『파도』, 같은 책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