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문실험의 궤적과 메아리:
‘변방의 북소리’ 이경렬과의 대담
대담
Between Us
“변방의 북소리는 인문실험을 통해 사소한 성공을 맛봤다.
이경렬, 「사소한 것에 삼삼오오 정성을 모으는 일」, 2019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사례집 『청년 인문실험 읽기』, p.363.
누군가 말했듯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작지만 값진 성공이다.
아마도 인문실험의 소중함은 사소한 것에 삼삼오오 모이는 정성에 있지 않나 싶다.”
2년 연속 청년인문실험에 참여한 이경렬은 인문실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소한 것에 모이는 정성’과 ‘사소한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8년 청년사업으로도, 인문사업으로도 새로운 지원사업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3명 이상의 청년이 모여 일상에서 마주하는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인문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인문 생활실험실(리빙랩)이라는 설명이 따랐다. ‘나’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인지, 인문적 사유에 기반한 실험인지가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이었고, 청년들이 자신의 고민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방향이었다.
그래서 신청서 양식에 ‘실험을 시작하는 질문’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나’로부터 출발한 실험의 문제의식을 담고자 했다.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그 답을 찾는 과정은 어땠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를 다시 성찰하며, 성과나 평가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의미가 청년 참여자에게 어떻게 남았는지가 더 중요한 사업이었다.
인문실험을 통해 탄생한 변방의 북소리
이경렬은 이렇게 시작된 청년인문실험의 첫해 참여자이다. 2017년 동두천에 새로 생긴 독립 서점 ‘코너스툴’에 드나들며 친해진 사람들과 “우리끼리 뭔가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평생교육동아리 사업에 지원했다가 탈락했지만,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그맣게 서평집을 만들어 동네에 뿌렸고 그것을 본 문화시설 관계자가 인문실험이라는 사업을 추천해 줬다. 코너스툴 책방지기 김성은, 작은도서관 사서 양지윤, 지역활동가 이경렬 셋이 모여 변방의 북소리라는 팀명으로 인문실험에 지원하게 됐다. 그저 세 명이 마음이 맞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동두천에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가 실험 주제였거든요. 책방과 작은도서관의 단골손님인 회사원, 주부, 대학생, 사서, 직업 군인 등 여러 직종의 독서 애호가 11명 정도를 인터뷰했어요. 어떻게 책 읽게 됐는지, 책을 읽을 때 좀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지, 동네의 이런 독립 서점이나 작은도서관 같은 생활문화 시설이 본인의 독서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앞으로 동두천에서 신경 써줬으면 하는 점들은 무엇인지, 이러한 주제로 질문과 답을 엮어 인터뷰집 『동두천에서 책 어떻게 읽어?』를 독립 출판했어요.”
책에는 인터뷰와 함께 동두천시의 독서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언도 포함했다. 인문실험을 통해 동두천 안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동두천시 문화체육과에서 보도자료를 내어 청년 주도로 독서 문화가 움트는 형상을 조명했다. 이와 같은 사소한 성공을 바탕으로 독립 서점과 작은도서관을 근거지 삼아 지역 사회의 변화를 도모해 보고자 비영리단체 ‘변방의 북소리’를 만들고 2019년에 다시 한번 인문실험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지역 서점 활성화 조례 제정 프로젝트와 독립 출판 프로젝트 두 개를 진행했어요. 지역에 있는 네 개 정도의 서점들과 연합해서 시의회에 찾아가 조례를 만들어달라 했는데, 3개월인가 5개월 만에 만들어졌어요.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 굉장히 빠르게 된 거죠. 그 당시 파트너였던 시의원도 이런 청년들의 활동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하면서 좋아했어요. 지금도 이것 때문에 공공 도서관에 지역 서점이 책을 납품하는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어요.”
두 번의 인문실험 이후 활동은 계속 확장되었다. 지역문화진흥원이나 경기문화재단 등 규모가 더 큰 지원사업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해마다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반려견 인터뷰집, 탐조 사진집, 마을 인문역사를 담은 매거진 『둥둥』, 이주 배경 어린이들의 백일장 수기집까지 지금까지 낸 책만 열세 권에 이른다. 2023년에는 동두천시립도서관에 지역작가실이 생기면서 전시를 개최했는데, 변방의 북소리가 낸 책들이 많이 선보여졌다. 또 팀원들은 동두천시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고 인근 지역에 강의를 나가며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아래) 지역문화 잡지『둥둥 1~4』(변방의 북소리, 2020~2021) ©변방의 북소리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 여파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독립 서점이 문을 닫았고 시 정책 변화로 작은도서관은 폐관되었다. 활동의 근거지가 사라지고 활동의 폭이 좁아졌다. 올해는 지원사업 없이 숨을 고르는 중이다. 2018년 인문실험 참여 이후 쉼 없이 달려온 탓도 있다. 그렇지만 오래 쉬지는 못할 것 같단다. 5~6년 전부터 변방의 북소리 프로젝트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10명 정도 되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활동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 이주 배경 아이들을 위한 예체능 특화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자는 제안들이다. 셋이 시작한 일이 지난 시간과 과정을 통해 열 명의 사람으로 늘어났다. 잠시 쉬어간다고 해도 다시 무언가를 함께 도모할 든든한 동료가 생긴 것이다.
“작년에 에디터 양성 과정을 진행했어요. 예전에는 참여자들에게 저희가 계속 서비스나 케어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년에는 열린 상태로 두니 본인들이 알아서 주도적으로 하시더라고요. 어디에 갈 때도 서로 차편을 나누어 함께 운전하기도 하고요. 참여자의 주체성이 보였어요. 변방의 북소리 모임 외에도 자기들끼리 별도의 글쓰기 모임도 계속하시고요.”
인문실험은 이렇게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과 밀착된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동두천 안의, 동두천 밖의 동료들이 생긴 것은 덤이다. 그는 또한 인문실험 사업에 참여한 전국의 100팀을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지역 활동을 지속하는데 인문실험이 큰 역할을 한 부분이 있어요. 구체적인 과제나 동기가 생기고, 비영리단체를 만들게 되었고요. 이 과정에서 (인문실험 운영자였던) 우지연 선생님, (멘토였던) 심한기 선생님도 알게 되었죠. 전국에 있는 다른 인문실험 팀들의 활동을 보고 배우며, 뭔가 보는 시야가 점차 넓어진 것 같아요. 지역 안에서 혼자 하다 보면 우리 지역만의 어려움 때문에 낙담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전국에 비슷한 것들이 많고, 또 서울이라고 다 쉽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면서 공통의 과제이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국적으로 저와 같은 고민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지지를 받게 되더라고요.”
(아래) 2023년 동두천생활문화센터 에디터 양성 과정 수료식 ©변방의 북소리
이경렬은 인문실험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2022년 청년인문실험과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 지원사업의 현장 취재에 참여해 글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경렬에게 전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시 현장 취재에 응한 실험 팀들에게 후기를 들어보면 취재하러 온 분은 누구냐며, 그가 마치 우리 팀원처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놀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울다 갔다며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로부터 시간이 다소 흐른 지금도 이경렬은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청년인문실험의 연차가 쌓이면서 사업 참여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멘토, 심의, 현장 취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만남도, 과정도 청년이 주체가 되어 인문을 통해 만들어가는, 그리고 청년인문실험을 통해 경험한 것을 다른 청년들과 나누는 선순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문실험의 힘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도 괜찮다고, 고민하던 것을 해보라고, 잘하고 있다고 사회가 청년들에게 건네는 작은 손길이 되었다.
“인문실험은 보조금 사업이 갖는 어떤 구속력이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세 명 이상만 모이면 되고 주제도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다는 조건 덕분에 진입장벽이 되게 낮아요. 사업 과정 중에 워크숍에 참여해보면 주최 측에서 되게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구나 싶어서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있죠. 워크숍에서 멘토들도 진지하게 신뢰 가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고 인문실험이 갖는 특별성이나 과정이 귀하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더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졌던 것도 있어요.”
많은 청년들이 인문실험을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순간들,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주변 탐구를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했다. 이경렬은 “지역 안에서의 확장, 전국과의 연결, 지역별 차이와 공통된 특성. 그런 것들을 느끼며 우리 지역의 고유함이나 특화된 문제, 혹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들을 다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실험 속 과정 자체가 좋아요. 워크숍에 가면 거기서 느껴지는 것들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워크숍이나 멘토링 같이 사업 자체에 되게 특별한 구석이 있었어요. 지역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에 관해서도,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어요.”라며 “다른 팀들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아래) 2023년 작은도서관 폐관 반대 운동 ©변방의 북소리
필자는 운 좋게도 청년인문실험의 운영자로 전국의 청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인문실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응원받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사전 워크숍의 백미는 팀별 소개였는데 1시간 반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려도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토록 다양한 실험을 한다는 것에 다들 놀라워했다.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눠 소모임을 진행하며 지역 내 관계망을 만들어가기도 했다. 실험비 구성도 실험에 필요한 내용을 기준으로 청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기만의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많은 청년들과의 만남은 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도태된 삶이 아니라 느린 삶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지금의 속도에 질문을 던지는 실험, 무쓸모의 쓸모를 찾는 실험, 상실과 부재를 적극적으로 껴안는 한 사람을 위한 애도 실험, 각자 떨어져 사는 가족 간 일상 공유와 문화 공유를 통한 소통의 실험, 주거와 고용이 불안정한 비혼 여성의 안정을 찾는 실험, 원폭 피해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실험, 재개발로 사라지는 마을을 기록하는 실험, 한 사람의 선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반려 식물과 삶의 변화에 대한 실험, 서로의 일상 관찰을 통해 듣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찾는 실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지점에 관한 실험, 육아 속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실험, 예술 전공자의 현재에 대한 실험, 이웃을 인터뷰하며 함께 사유하는 실험, 느슨한 관계망 실험, 반려동물 문화 실험, 코로나 시대 서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편지 실험,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의 대안을 찾는 실험 등 수많은 인문실험이 있었다. 이 수많은 실험들은 또 어디에서 어떤 궤적으로 이어지고 있을지, 치열하게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용한 응원을 건네본다.
“인문 가치는 환산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확산되어야지. 어쨌든 이 사업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가) 지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성장했지, 라는 성장 기록물이 되어서 많은 확산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경상권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참여자 박00“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에 있어서 제약 없이 믿어준다는 것, 집중해서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보면 팀원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저희는 온라인 기반에서 접점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마무리 단계에서 확장성을 가지면서 참여자 200명 규모로 마무리가 되었어요. 순식간에 성장했는데, 과연 저희가 그만큼 폭발적으로 준비하고 시도해서 지금까지 왔을까? 그냥 아무런 기반 없이 시도했을 때보다 이 사업에 참여해서 2~3배의 성장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경상권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참여자 김00“단점을 느끼기에는 너무 좋은 사업이었어요. 이런 어른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정도로요. 제가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했을 때의 시선이 두려웠었고,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의 생각을 펼쳤다가 무시당하면 어쩌지,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었죠. 용기를 가졌던 건 실패해도 된다는 것. 따뜻한 시선으로 열심히 해보라는 마음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청년들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니까 이 기회를 통해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길러준 것 같다고 느꼈어요.”
강원권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참여자 홍00 신동호 외, 『생활문화시설 ‘길 위의 인문학’ 사업 발전방안 연구보고서』(코뮤니타스, 2020),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FGI 중 발췌,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