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담론의 망망대해에서 반짝이는 부표를 호명하기
집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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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는 전 사회가 신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창조에의 열정과 낙관적 정조로 충만했던 시기이며, 이 창조충동은 새로운 국가/문화/문학을 건설하려는 요구로 분출하기도 하고, 과거와 단절하려는 요구로 분출하기도 했다. 청년은 창조와 파괴 열정의 표상으로 호출된, 미래를 담지하는 상징적 주체의 이름이다.
소영현, 「청년과 근대―『少年』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no.11』(한국근대문학회, 2005) pp.42~70.
시대나 문명마다 주조했던 청년의 형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닮은 점이 있다.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 낡아진 과거에 안녕을 고하고 수평선 너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주체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년 담론은 텅 비어있다. 과거와 미래란 언제나 그 내용이 변할 수밖에 없으므로. 소영현은 논문에서 1908년도에 발간한 잡지 『소년』을 인용하며 청년 담론을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라는 넓고 깊고 푸른 용기(用器)만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면서도 낙관적인 미래상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담론의 망망대해에서 우리 시대 청년들의 구체적인 얼굴들은 어떻게 표류하고 있을까? 저마다 열심히 반짝이는 부표가 되어 나름의 항해를 이어가는 그들을 다시 호명하고자 한다.
“청년은 굉장히 중요한 화두이죠. 그런데 정작 인문-청년을 연결해 사유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정책에서도 ‘힐링’, ‘쉼’ 같은 어젠다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우리 사회 청년이 어떻게 인문을 사유하고 있는지, 인문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어떤 동기나 의도로 함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인문을 통해 무엇을 나누고 싶어 하는지 알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의회 의원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노주비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벌써 10여 년 차 경력을 지닌 기획자로서, 원주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온 경험을 돌이켰다.
“막상 프로그램을 열어도 청년들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분명 어디선가 파편적인 모임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인문 사업을 통해 만나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왜 그런지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삶의 조건이 된 지금, 공동체와 미래 혹은 고립과 우울처럼 인문을 통해 사유해야 하는 시대성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청년들의 치열한 ‘먹고사니즘’과 연결 지어볼 수 있을까.
대구에 거주하며 경북 칠곡군 기반으로 지역문화 활동을 이어가는 문화기획자 김승훈, 성격검사를 기반으로 세미나와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마리썬 대표 김미현이 함께 만났다. 자신들의 삶과 현장에 기반한 언어로 ‘청년’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과 답변을 교차했다.
노주비, 김미현, 김승훈이 만나 집담을 나눴다. ⓒ켜켜진
청년의 일상,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미현저는 제 일상을 ‘고구마’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고구마를 무척 좋아하는데, 어떤 고구마든지 어떻게 요리하든지 다 좋더라고요. 품종도 요리법도 다양할 수 있잖아요. 일상도 매일 반복되는 일과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요소와 변화들이 제각기 맛있달까요?
주비‘고구마’는 보통 퍽퍽하고 답답한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걸 비틀어서 맛있다고 해주셨어요.
승훈제 청년 시기 일상의 키워드는 ‘발견’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직업을 바꿨거든요. 문화기획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새로운 일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었죠. 그 기저에는 내가 누구인지 재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제야 그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제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도 다른 경험들을 통해 계속 바뀌고 조정될 테지만요.
요즘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고민들
미현저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부모님에 관한 것인데요, 노년이 되셔서 하체 근육이 아주 약해지셨어요. 조금씩 보행이 어려워지더라고요. 자연스레 노인분들이 주변 환경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죠. 또 하나는 저의 취미와 관련된 것인데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추억이 생기면 직접 음악을 만들어요. SUNO(수노)라는 AI를 쓰고 있어요. 3년 차가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요.
주비3년이나 되었으면 곡이 많이 쌓이셨겠어요. 수익 창출도 하시나요?
미현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만들어요.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 업로드했고 스트리밍하면 저작료도 적게나마 들어오죠. 무엇보다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주 들어줘요. 더 많은 마음과 시간을 쓰고 싶어요.
승훈저의 고민은 업이 주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센터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가 너무 중요한 문제예요. 지금은 누가 계속 불러주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기도 하는데, 다음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일단은 하반기가 일이 쏟아지는 시기이다 보니 다른 것을 고민할 여력은 없고요. 현재는 저의 업과 커리어에 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아, 우리가 이전 세대와 조금 다르구나’ 느꼈던 순간은?
승훈저는 이제 청년기의 끝물인 것 같아요. 제가 칠곡을 중심으로 그곳의 주민분들, 어르신들 생애사를 많이 들었잖아요. 세대보다는 각자 삶을 통해 어떤 경험을 쌓아가느냐에 따라 일상과 삶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르신들마다도 어떤 마을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느냐에 따라 같은 세대임에도 다른 생각과 삶의 모습을 가지셨으니까요. 세대 사이의 갭은 물론이고, 동시에 나와 같은 세대 중에서도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과는 어떤 갭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돼요.
주비저는 비혼주의자예요. 지금 당장 결혼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저의 확고한 가치관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렇게 결심한 지 10년이 넘었고요. 제 또래들은 그러려니 하는 것 같은데, 어르신들은 이걸 못 참으시더라고요. 저를 엄청 설득하려고 하세요. 거기서 차이를 느끼죠. 결혼 같은 제도가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나 다른 것 같아요.
미현저는 근래 부모님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고 놀라웠어요. 자극적인 AI 콘텐츠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데 부모님은 그런 영상을 보며 크게 어색함을 느끼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빠르게 AI 콘텐츠를 분별해 내잖아요. 세대별로 흔히 접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서 그런지, 받아들이는 방식도 상당히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청년 세대에 대한 입체적 감각들
승훈제가 얼마 전에 대구의 모 센터에서 개최하는 청년 축제 기획에 참여하게 되어 회의에 갔었어요. 기획단이 제안한 주제가 청년을 위로하는 축제여서 방향성을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청년은 위로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사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즐기는 사람도 있고요.” 추상적인 시대감각과 행정적 지표만으로 우리가 너무 청년들의 삶을 암울하게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어요.
미현저는 요즘 청년들이 부수입과 재테크에 매우 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느껴요. 그중에서도 지식이 상당한 친구들은 준전문가 수준이더라고요. 그 격차가 너무 커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경제적 감각과 지식이 많이 차이 나더라고요.
주비저도 몹시 공감해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지금 모이면 주식, 코인, 자산 형성을 위한 이야기들이 오가는데 저는 전혀 끼어들 수 없어요. 우리처럼 비슷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모이면 다 가난하잖아요.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왜 이런 모양일까, 이런 이야기만 하고. 서늘하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다르죠.
승훈이야기를 들어보니, 청년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뜩이나 정보도 많아지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으니까요.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공존하다 보니 이들을 하나의 기표로 모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청년’을 함께 그려볼까요?
주비맞아요. 하지만 문제는 정책을 비롯해 많은 현장에서 청년을 호명하고 규정하는 틀이 있다는 것이죠. 제가 의정 활동 중에 감지하게 되는 청년은 표상이 있어요. ‘취업을 준비하는 남성 청년’이요. 여성 청년의 이미지는 잘 상상되지 않아요. 무의식적으로 남성 청년을 상정하게 되는 것 같고, 취직을 준비하고 있거나 혹은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의욕적인 모습, 이 두 가지만 떠올라요.
미현저는 ‘청년’ 하면,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특히 〈SNL 코리아〉 같은 코미디 쇼에서 재생산되고 유통되는 밈과 유행어들이 먼저 떠올라요. 청년이 누군가를 지시한다면, 저는 그런 공통의 사고방식과 트렌드에 공감하고 이것을 시대정신으로 공유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승훈저는 두 분과 다르게 가장 직관적으로 ‘나이’가 먼저 떠올랐어요. 아무래도 제 청년기가 끝나간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감각이 불화하거든요. 청년이 아니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책적 규명으로서의 청년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달라지나? 내 삶은 전혀 변함없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하루아침에 ‘청년’에서 ‘청년 아님’이 되는 갑작스러운 전환이 묘하게 느껴졌어요.
주비아무래도 법적으로 규정한 나이가 있으니까요. 통계청에서는 만 15세~29세,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34세, 일부 지자체 조례에서는 19세~39세로 정해져 있어요. 각종 청년 지원과 청년 대상 사업의 참여 조건도 이 나이 기준을 많이 따르는 편이죠.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문화기획자 선배 중에는 분명 청년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셨던 분들도 계시고요.
승훈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네요.
주비저는 오늘날의 청년이라고 하면, ‘불안’이라는 키워드도 떠올라요. 미래가 예측이 안 되고 기후 위기 문제도 심각하니까요. 과연 내가 노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죠.
승훈저는 ‘혼란’과 ‘즐거움’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해요. 변수가 너무 많은 한 편, 자율성도 높아져서 더 많은 모험과 탐구도 가능해졌으니까요.
청년과 인문, 그 사이에 돌다리를 놓아보자
승훈사전 질문지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궁금증이 일었어요. 여기서 우리가 말하려는 ‘인문’이란 과연 무엇일까?
주비학구적 측면에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좀 더 분명하긴 하죠. 철학, 사학, 미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등. 그런데 그냥 인문, 인문실천, 인문정신하면 갑자기 추상적으로 느껴져요. 나름대로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승훈칠곡인문학마을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저 나름대로 고민하며 찾아갔던 답이 있어요. 자기 인식, 그리고 교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주변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고민하는 거요. 칠곡에서 법정 문화도시를 준비하며 시민들과 인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거든요. 인문이 文(글월 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무늬를 만드는 여정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기억나요. 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인문의 문이 門(문 문)일 수도 있겠다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통로이자 문. 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미현저도 비슷해요. 나와 나 사이, 나와 남 사이, 나와 세상 사이. 그 사이를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이냐 생각해 보는 거죠. 나와 나 사이에서는 작은 행복이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와 남 사이에는 따뜻한 교류. 나와 세상 사이에서는 커리어가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이게 지혜라는 측면으로도 보이더라고요. 지혜는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살아가는 법을 전해주는 형식이잖아요. 그런 지혜가 잘 전수된다면 사실 인문이 따로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갈수록 그렇지 않죠. 한국이 전 연령대에서 자살률 수치가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데, 고령 자살률도 최고 수준이거든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요. 지혜나 인문이 이 문제에 대해 의식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 청년들은 너무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남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돈이 많으면 다 해결될 거야, 이런 식으로.
주비제가 문화기획자가 아닌 청년 당사자의 시선에서 인문을 떠올리면 뭔가 진득이 공부해야 할 것 같고,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지죠. 그런데 지금 대화를 나눠보니, 그것보다는 훨씬 우리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승훈맞아요. 칠곡에서 어르신들이 일상적으로 말씀하세요. “우리 인문학하러 간다”라고. 처음에는 어렵게 여기시다가 경험이 쌓이고 나니까 더 편히 생각하더라고요. 용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렇게 환기하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어요.
미현일상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니 새롭네요. 저는 성격검사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커플과 부부를 많이 만나는데요, 더 나은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한결같아요. 바로 관찰이에요. 그런데 관찰을 잘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해요.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랑 비슷하죠. 5분만 해도 좋은데, 그 5분을 내기도 힘든 거.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원래 소중한 일들이 그렇듯 우선순위가 자꾸 밀리는 거죠. 당장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렇게 매일 5분씩 운동처럼 꾸준히 해서 근육을 늘려가는 거. 그게 인문을 위한 태도인 것 같아요.
주비원주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 정년 이후에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신 분들이 많이 오세요. 한창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 비로소 인문을 위한 여유가 생기신 것 같아요. 인문사업을 경험하신 후에 만족도도 굉장히 높으신데, 다만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키고 사람을 모아 시도해 볼 에너지는 없으세요. 여유가 있으면 에너지가 없고, 에너지가 있으면 여유가 없는 거죠.
미현선배들을 보면서 느낀 것도 있어요. 이십 대에 그토록 낭만적이고 열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던 선배들이 취업 시기 이후에 갑자기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면서 몸도 마음도 생각도 말투도 비슷해진 경우가 많아요. 같이 생기발랄한 꿈을 꿨던 사람들이 살아가며 점차 세상이 부여하고 기대하는 모습으로 물들어 가는 걸 지켜보곤 해요. 모르죠, 저도 그들과 닮아가게 될지.
인문사업 현장에서 청년을 만나기 어려운 까닭은?
승훈어렵기는 하지만, 못 만나는 건 또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년에 밀양에 사는 청년들을 만난 적 있어요. 그중 서울에서 열정적인 삶을 즐기시다가 개인 사정으로 밀양에 오신 분이 계셨어요. 서울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 보니까, 직접 프로그램을 꾸리러 오셨더라고요. 이렇게 어떤 욕구, 욕망, 뚜렷한 목적이 있는 청년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우리가 현장에서 ‘어떤 청년’을 만나고자 하는가?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느껴요.
주비그런 분들은 또 사업을 통해 금방 잡히죠. 안 잡히는 분들은 어떻게 오게 할 수 있을까요?
승훈그런데 그분들을 오게 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이게 저의 질문이에요. 좋아하시고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들하고 작당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파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인문에 무관심한 분들을 모시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만남이 유효하지 않을까요?
미현저는 특히 이십 대, 삼십 대 남성분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분들이 거의 모든 문화 사업 현장에서 참여율이 가장 저조하거든요. 너무 궁금해서 여기저기 여쭤봤어요. 제 주변 또래 남성들은 주로 e스포츠, 그리고 랜덤 소개팅을 많이 언급하시더라고요. 어쩌면 그들이 문화 사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고 싶은 문화의 형식이 다른 건 아닐까 싶었어요.
승훈맞아요.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프로그램을 보면 분명 공통된 취향이 있거나, 명확한 관심사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라이트노벨 문학 창작, 방 탈출 등 체험형 콘텐츠, 와인 모임이나 러닝 크루처럼요. 그리고 미현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남녀 매칭 프로그램에 정말 많은 분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더라고요.
주비그런데 그런 모임 역시 여성 청년의 참가 비율이 훨씬 높죠. 남성분들은 청년이나 노년이나 대체로 참여율이 다 저조한 것 같아요. 저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의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승훈칠곡인문학마을에서 취했던 전략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버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 교실을 열면 아무도 안 오시거든요. 그런데 조금 표현을 달리해서, 직접 술안주를 만들고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하면 정말 많이 오세요. 같은 프로그램인데도 명확한 표적화와 셀링포인트를 재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주비저는 기후 위기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원주에는 50~60명 정도가 활동하는 익명의 환경 커뮤니티가 있어요. 플로깅, 비건, 독서 등 환경 주제의 소모임들이 자주 있죠.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플로깅 한다고 해서 세계가 바뀌지 않잖아요. 답답함을 조금 해소할 순 있을지라도 당장 기후 위기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이 자기만족과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 사이에 인문이라는 연결 통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세계가, 일상과 환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사유하고 감각해야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분이 강의실에 가는 것보다는 치악산에서 야생 동물의 흔적을 찾아보는 활동이나, 원주 백로 서식지에서 백로를 관찰하는 활동 현장에 더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이를 통해 깨달았죠. 아, 사유는 현장에서 시작해야 하는구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험을 통해야 인문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겠구나. 문화기획자로서 프로세스에 관한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었답니다.
청년-인문을 위한 작고 큰 상상들
미현친구들마다 속해 있는 커뮤니티가 다르고, 연결성도 다르고, 정보의 편차도 너무 커요. 저는 예전에 일상의 작은 슬픔을 애도하는 장례식 형식의 참여형 전시를 기획한 적 있어요. 원래는 워크숍이나 세미나 형식을 많이 취하다가 참여형 전시로 확 틀었는데 반응이 좋았죠. 가족 단위로 와서 일상의 슬픔과 고단함에 대해 메모하고 국화 봉헌하고 애도하고, 다들 쉽고 재밌게 따라오시더라고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우리가 어떻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가. 저는 많은 인문사업에 오시는 분들이 사실 이미 삶 속에서 인문을 잘하고 계시는데, 더 잘하고 싶어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낯선 분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요?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만큼 홍보 방안도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경직된 형식보다는 생생하고 자세하게, 배려하면서 친근히 다가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승훈인문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같아요. 미현 님 말씀처럼 이미 인문에 관심이 있고 인문을 잘하는 분들이 더 잘하러 오신다는 것에 공감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는 그들을 매개자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각자의 현장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분명 그다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거고, 다섯 명 또다시 다섯 명 이렇게 연쇄적으로 퍼질 테니까요.
미현마치 다단계의 피라미드 계급표처럼요. 그걸 잘 활용해야겠어요.
승훈맞아요. 문화도시 사업할 때도 다단계 아니냐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근데 원래 그렇게 확산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처음부터 억지로 불특정 다수를 끌어모으는 것보다는 결이 맞는 사람으로부터 또 다른 결의 사람에게로.
미현저는 일자리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게 사회적 과제여서가 아니고 청년들을 이 세상과 연결되게 하는 매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커리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계를 확장할 수 있죠. 저는 취업 준비생이나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는 수험생들도 일주일에 하루이틀 꼭 일하면 좋겠어요. 경제적 조건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쓸모를 확인하는 것이 선순환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인문의 최소 단위. 그건 사회에서 내 존재감을 인식하는 거죠.
우리 아직 대화를 끝내지 말까요?
승훈사실 청년이나 중장년이나 욕구는 비슷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그리고 타자들과 관계 맺는 것이 핵심이죠. 사는 것이 바빠 여력이 없는 와중에도 그런 시도를 위한 매개, 장소, 시간,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 자신도 사실 제 이야기를 잘 못했던 것 같아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문화기획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칠곡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학원도 가고 현장의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점차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그걸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이 여정이 저의 인문인 것 같아요.
미현내 이야기를 하는 것, 쉽지 않아요. 간단하지만 용기가 필요하죠.
승훈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니까요. 주변의 수용성과 평판을 염려하고 눈치도 많이 보고 높은 기대도 감당해야 하고 자기 검열도 해야 하죠.
미현그렇다면 인문은 용기네요.
승훈네, 저는 인문을 통해 용기를 얻었어요. 칠곡에서 만난 분들이 저를 기다려주셨던 것 같아요. 맞아주시고 안전한 기분이 들도록 해주시고. 그래서 저의 장기적 목표 중 하나가 이런 안전망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인문은 안전지대.
주비정작 저야말로 인문이 시혜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나 봐요. 오늘 대화를 나누며 어쩌면 인문이란 어떤 사람이든 자기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와 형식으로 꺼내 나눌 수 있는 넓고 깊고 푸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라는 넓고 깊고 푸른 공간만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면서도 낙관적인 미래상을 담아낼 수 있다. 우리가 계속 먹고살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고립, 우울, 좌절, 혼란, 차이, 만남, 연결, 즐거움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각자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 인문의 유효한 역할이라는 믿음을 나누며,
우리 이 대화를 끝내지 말고 계속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