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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이별

2024-02-05

블루아워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이사짐을 보내던 날이었다. 이사 현장은 남편이 지키기로 하고 아이와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텅 빈 집. 아 이런...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간 텅 빈 집.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내려앉고 말았다. 워낙에 세간이 없던 집에 그나마 있던 가구조차 사라지니 작은 소리조차 왕왕울리는 듯했다. 세간도 없이 집 자체와 마주하니 마음 한 가운데가 뻥 뚫려 버린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이별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귀국 날이 정해지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계획하느라 정작 우리가 머물던 집과의 이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내 아파트 생활을 하다 처음 경험했던 땅 위에 발을 딛고 사는 공간. 사방에 널찍하게 난 창으로 멋진 풍경을 담아내던 공간. 봄이면 빨갛고 노란 들꽃이, 여름이면 짙은 초록을 띤 너른 들판이, 가을에는 낙엽의 내음을 담은 바람이, 겨울에는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 같은 끝도 없이 펼쳐진 설경이 하얀 테두리 창에 담겨 한 폭의 액자가 됐다.

 

어느 아침에는 느닷없는 음매소리에 잠을 깨 나가보니 소떼들이 집앞을 가득 메운 적도 있었다. 소 떼와 차들이 엉켜 어찌할 바 모르는 황당한 아침 풍경에 잠옷 바람으로 박장대소를 했다. 어느 오후엔 집 앞 넓게 펼쳐진 숲에서 온 사슴을 발견하고 아이와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하며 구경한 적도 있다. 한번은 어디선가 날아온 새가 매일 같이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오더니 지붕 틈에 둥지를 크게 지어놓기도 했다.

 

이 시간과의 이별이었다. 그 이별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 같다. 테라스에 앉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음악, 창밖으로 보이던 해 질 무렵의 붉은 하늘과 들판을 춤추게 했던 저녁 바람. 이 모든 것과의 이별과 다름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우리는 마음을 담은 편자를 남긴다. 진심을 담은 눈빛을 교환하고, 서로를 꼭 안아주기도 한다

 

그곳의 집과 이별할 때 차마 그러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공간이 주었던 선물 같은 시간이 내 삶에 영원히 스며들길 바랄 뿐이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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