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다독이는 언어와 자연의 숭고를 담아내는 시선으로 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해온 김용택의 열세번째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문학과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김용택은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첫 시집 『섬진강』(1985)을 비롯하여 그동안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며 전통 서정시의 경계를 꾸준히 넓혀왔다.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도 시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이번 시집에서는 말하는 이와 보이는 대상의 구체성을 모두 지우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의 확장을 도모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아무런 것이 될 때/그때 기쁘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돌아갈 때 편안하다”(「기적」)라는 구절처럼 시적 의도를 명징하게 드러내던 기존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미를 텅 비움으로써 열리는 무한 가능성’에 도달하고자 한다. 하여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는 시인의 원숙하고 관조적인 시선을 따라 부지불식간에 어떤 깨달음과 마주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의미에서 해방된 시어들이 언어의 가장 순수한 차원으로 돌아가는 신비 속에서 일상의 낯섦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책소개
우리는 시집을 언제 읽는가? 어떤 날 어떤 마음으로 독자들은 시를 찾게 되는 것일까.
『섬진강』이라는 시집 때문에라도 김용택은 이미 국민시인이며 충분히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시집을 밀어두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의 많은 시집처럼 쉽고 평이한 언어로 자연을 바라보며 일상의 애틋함을 노래할 거라고 짐작했고, 그런 위로와 말이 더 필요한 날에 읽어야겠다고. 그런 날은 빨리도 찾아왔다. 지치고 풀이 죽을 때는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가의 작품이라 해도 긴 시간 집중해서 읽기 어렵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손길, 아침이 오면 다시 힘을 내라고 보내는 따뜻한 눈빛 같은 것을 기대하며 시집을 펼친다. 시인은 매만지고 매만진 둥근 언어로 아픔과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생활’을 세워 그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나비로, 때로는 눈사람으로. 시인의 시선은 순간이어도 生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데 나는 놀랐다. 그것도 젊고 신선한 감각으로.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이 원로(!) 시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새로운 시적 문법과 시선으로 시를 썼었지? 하고.
그는 이미 가진 언어적 포용력 외에 “새로운 말”을 찾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 시들을 쓰기 위해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감각을 새로 익혔을 것이다. 마치 시를 처음 배울 때처럼 설레며 어떤 떨림 속에서. 그 수년간의 결과가 모인 시집이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가 아닐까. 그 중 <나비가 날아오르는 시간>의 전문은 이렇다.
교회당 종소리가 다섯 번째 울리면/나는 사과밭으로 달려갈 거예요/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사과밭 셋째 줄 여섯 번째 나무 아래 서 있을래요/오세요/종을 여섯 번만 치고/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나비는 얼마나 먼 데서 달려오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요
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이 공감각 안에서 다 보여주고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발문을 쓴 후배 시인의 말처럼 그가 이 얇은 시집에서 “서정시의 국경”을 넓혔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12월엔 따뜻한 불빛 아래서 이런 행을 같이 읽어도 좋겠다.
눈보라 속에 서 있는 나무들아/첫 문장에 오래 머물러 내 등에/눈이 쌓이는구나/평행을 이루려는 눈발의 각도를 잡아다닌다/눈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 그렇다,
시인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등 산문집 다수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있다. 그 외 『콩, 너는 죽었다』 등 여러 동시집과 시 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그림책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사랑』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는데 용케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여 고맙고 부끄럽고, 또 잘 살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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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2021-12-06
김용택 지음/문학과지성사/2021년/9,000원
“물 위를 걷는 말은 아직 내게 오지 않았다”
말갛게 비어 있는 생의 진실을 향하여
무한히 걸음을 내딛는 시인의 운명
일상을 다독이는 언어와 자연의 숭고를 담아내는 시선으로 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해온 김용택의 열세번째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문학과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김용택은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첫 시집 『섬진강』(1985)을 비롯하여 그동안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며 전통 서정시의 경계를 꾸준히 넓혀왔다.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도 시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이번 시집에서는 말하는 이와 보이는 대상의 구체성을 모두 지우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의 확장을 도모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아무런 것이 될 때/그때 기쁘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돌아갈 때 편안하다”(「기적」)라는 구절처럼 시적 의도를 명징하게 드러내던 기존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미를 텅 비움으로써 열리는 무한 가능성’에 도달하고자 한다. 하여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는 시인의 원숙하고 관조적인 시선을 따라 부지불식간에 어떤 깨달음과 마주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의미에서 해방된 시어들이 언어의 가장 순수한 차원으로 돌아가는 신비 속에서 일상의 낯섦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책소개
우리는 시집을 언제 읽는가? 어떤 날 어떤 마음으로 독자들은 시를 찾게 되는 것일까.
『섬진강』이라는 시집 때문에라도 김용택은 이미 국민시인이며 충분히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시집을 밀어두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의 많은 시집처럼 쉽고 평이한 언어로 자연을 바라보며 일상의 애틋함을 노래할 거라고 짐작했고, 그런 위로와 말이 더 필요한 날에 읽어야겠다고. 그런 날은 빨리도 찾아왔다. 지치고 풀이 죽을 때는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가의 작품이라 해도 긴 시간 집중해서 읽기 어렵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손길, 아침이 오면 다시 힘을 내라고 보내는 따뜻한 눈빛 같은 것을 기대하며 시집을 펼친다. 시인은 매만지고 매만진 둥근 언어로 아픔과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생활’을 세워 그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나비로, 때로는 눈사람으로. 시인의 시선은 순간이어도 生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데 나는 놀랐다. 그것도 젊고 신선한 감각으로.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이 원로(!) 시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새로운 시적 문법과 시선으로 시를 썼었지? 하고.
그는 이미 가진 언어적 포용력 외에 “새로운 말”을 찾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 시들을 쓰기 위해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감각을 새로 익혔을 것이다. 마치 시를 처음 배울 때처럼 설레며 어떤 떨림 속에서. 그 수년간의 결과가 모인 시집이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가 아닐까. 그 중 <나비가 날아오르는 시간>의 전문은 이렇다.
교회당 종소리가 다섯 번째 울리면/나는 사과밭으로 달려갈 거예요/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사과밭 셋째 줄 여섯 번째 나무 아래 서 있을래요/오세요/종을 여섯 번만 치고/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나비는 얼마나 먼 데서 달려오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요
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이 공감각 안에서 다 보여주고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발문을 쓴 후배 시인의 말처럼 그가 이 얇은 시집에서 “서정시의 국경”을 넓혔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12월엔 따뜻한 불빛 아래서 이런 행을 같이 읽어도 좋겠다.
눈보라 속에 서 있는 나무들아/첫 문장에 오래 머물러 내 등에/눈이 쌓이는구나/평행을 이루려는 눈발의 각도를 잡아다닌다/눈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 그렇다,
이제 12월이다. 다음 생활로 가자.
▶ 추천사: 조경란, 소설가
■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나눔위원회 2021 <12월의 추천도서>
■ URL https://www.readin.or.kr/home/bbs/20049/bbsPostList.do#none
시인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등 산문집 다수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있다. 그 외 『콩, 너는 죽었다』 등 여러 동시집과 시 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그림책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사랑』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는데 용케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여 고맙고 부끄럽고, 또 잘 살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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