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염불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또 뭔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들통에 미꾸라지들을 산 채로 넣고 끓이다 물이 뜨거워져서 미꾸라지들이 몸부림을 칠 때에 찬 두부를 풍덩 넣는다거나, 유난히 피가 시뻘건 생물 꽁치를 토막 내고 있거나 또는 살아서 두발 집게를 딱딱 부딪치며 방어하는 꽃게의 집게발을 사정없이 분지르는 중이거나.
불교신자인 엄마가 그렇게 주방에서 염불 소리를 내는 날이면, 식구들은 ‘추어탕’과 같은 별미음식을 먹든지 ‘생선조림’과 ‘꽃게조림’을 먹게 된다. 그러니 엄마의 염불소리는 식구들에게는 미각을 돋우는 소리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꽃게조림은 온 식구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춧가루를 푼 간장양념에 꽃게를 조린 것으로,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어디 다른 데서는 본 적도 맛본 적도 없으니 엄마만의 고유 조리법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유별히 꽃게를 좋아하시는데, 꽃게탕을 끓이면 꽃게 속살 잡숫는 재미에 시원한 국물은 본체만체라 늘 국물만 멀거니 남곤 했다고. 그래서 아예 국물로 꽃게 맛과 영양을 분산시키느니 꽃게에 양념장을 배게 해서 바특하게 끓이면 어떨까 궁리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가 아주 오래 전으로, 내 유년 시절의 두리반 상위에서도 꽃게조림은 한 가운데 선명하다. 깨물어 씹다가 채 여물지 못한 이가 상하기라도 할까봐 집게발만은 못 집어 들게 하셨는데. 집게발의 몸통 쪽 끄트머리를 엄마가 이로 잘라낸 뒤 동생 하나 나 하나 사이좋게 나누어주면 살을 쏙 빼먹고도 미련이 남아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입에 물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단물(?)을 빨아먹고 나면 이젠 집게발을 손에 들고 서로 꼬집겠다며 뛰어다녔다.
부부싸움이 있거나 하여 식구들이 서로 눈 마주치기가 서먹한 뒷날에는 슬그머니 꽃게조림이 상 위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 때는 온 가족이 묵묵히 가운데 놓인 꽃게조림에만 바지런히 손이 오갔다. 젓가락으로 집기 보다는 손으로 다리를 잡고 깨물어먹어야 제 맛이었던 때문이다. 두리반에 둥글게 모여 앉아 동그란 냄비에 담긴 꽃게조림에 서로서로 손을 넣다보면 손과 손이 부딪히기도 하고, 집어든 꽃게에서 삐져나온 살을 차마 한 입에 넣기 미안하면 다른 식구의 밥 위에 슬쩍 얹어주기도 하면서 뭉쳤던 감정이 풀리고 포만감까지 더해져 나른해지곤 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날의 상차림에도 주홍빛 꽃게 등껍질과 꼭 같은 색으로 앙그러지게 조려진 꽃게조림은 오르기 마련인데, 점잖은 친척 어른들이 처음엔 젓가락으로 집거나 수저로 없는 국물을 헤적이다가 척척 손으로 먹성 좋게 드시는 아버지를 따라서 체면불구하고 기어이 그릇을 비우고 마는 음식이었다.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된 뒤에는 혼자 사는 재미에 좀체 부모님 댁에 가지 않았는데, 엄마로부터 “꽃게조림 했다”라고 전화가 걸려오면 두말없이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 사정은 장가를 가 제 가정을 꾸려 독립한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꽤 늦은 나이에 주부가 되었으나 할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라는 게 뻔해 상차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로 꽃게조림법을 물었다. ‘적당히’ ‘알맞게’ 라는 계량어를 종잡을 수 없었지만, 전화로 배워 만든 그날의 꽃게조림은 성공이었다. 내 손으로 했는데도 엄마가 한 음식과 맛이 같은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남편도 장모님이 해다 주신 게 아니고 당신이 한 게 맞는가 하고 거푸 물어 올 정도였다. 이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집 음식 메뉴도 꽃게조림이 되었다. 꽃게가 제철인 때나 다투어 서먹한 뒷날이면 화해의 제스처로 꽃게조림을 올리니, 손등을 부딪혀가며 넌지시 상대의 밥 위에 게 속살을 얹어주기도 하는 모습이 오래전 엄마네 집 밥상 풍경 그대로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꽃게조림이라는 하나의 음식을 통해 엄마와 가족의 삶을 살뜰히 ‘살리는’ 그런 살림을 하셨던 것 같다. 비록 꽃게에게는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을 빌어줘야 했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밥] 나무아미타불 꽃게
박미경
2015-11-26
우리 엄마밥 '엄마'와 '엄마 음식'에 관한 소소(小笑)한 이야기
‘나무아미타불’ 꽃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주방에서 염불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또 뭔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들통에 미꾸라지들을 산 채로 넣고 끓이다 물이 뜨거워져서 미꾸라지들이 몸부림을 칠 때에 찬 두부를 풍덩 넣는다거나, 유난히 피가 시뻘건 생물 꽁치를 토막 내고 있거나 또는 살아서 두발 집게를 딱딱 부딪치며 방어하는 꽃게의 집게발을 사정없이 분지르는 중이거나.
불교신자인 엄마가 그렇게 주방에서 염불 소리를 내는 날이면, 식구들은 ‘추어탕’과 같은 별미음식을 먹든지 ‘생선조림’과 ‘꽃게조림’을 먹게 된다. 그러니 엄마의 염불소리는 식구들에게는 미각을 돋우는 소리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꽃게조림은 온 식구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춧가루를 푼 간장양념에 꽃게를 조린 것으로,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어디 다른 데서는 본 적도 맛본 적도 없으니 엄마만의 고유 조리법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유별히 꽃게를 좋아하시는데, 꽃게탕을 끓이면 꽃게 속살 잡숫는 재미에 시원한 국물은 본체만체라 늘 국물만 멀거니 남곤 했다고. 그래서 아예 국물로 꽃게 맛과 영양을 분산시키느니 꽃게에 양념장을 배게 해서 바특하게 끓이면 어떨까 궁리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가 아주 오래 전으로, 내 유년 시절의 두리반 상위에서도 꽃게조림은 한 가운데 선명하다. 깨물어 씹다가 채 여물지 못한 이가 상하기라도 할까봐 집게발만은 못 집어 들게 하셨는데. 집게발의 몸통 쪽 끄트머리를 엄마가 이로 잘라낸 뒤 동생 하나 나 하나 사이좋게 나누어주면 살을 쏙 빼먹고도 미련이 남아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입에 물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단물(?)을 빨아먹고 나면 이젠 집게발을 손에 들고 서로 꼬집겠다며 뛰어다녔다.
부부싸움이 있거나 하여 식구들이 서로 눈 마주치기가 서먹한 뒷날에는 슬그머니 꽃게조림이 상 위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 때는 온 가족이 묵묵히 가운데 놓인 꽃게조림에만 바지런히 손이 오갔다. 젓가락으로 집기 보다는 손으로 다리를 잡고 깨물어먹어야 제 맛이었던 때문이다. 두리반에 둥글게 모여 앉아 동그란 냄비에 담긴 꽃게조림에 서로서로 손을 넣다보면 손과 손이 부딪히기도 하고, 집어든 꽃게에서 삐져나온 살을 차마 한 입에 넣기 미안하면 다른 식구의 밥 위에 슬쩍 얹어주기도 하면서 뭉쳤던 감정이 풀리고 포만감까지 더해져 나른해지곤 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날의 상차림에도 주홍빛 꽃게 등껍질과 꼭 같은 색으로 앙그러지게 조려진 꽃게조림은 오르기 마련인데, 점잖은 친척 어른들이 처음엔 젓가락으로 집거나 수저로 없는 국물을 헤적이다가 척척 손으로 먹성 좋게 드시는 아버지를 따라서 체면불구하고 기어이 그릇을 비우고 마는 음식이었다.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된 뒤에는 혼자 사는 재미에 좀체 부모님 댁에 가지 않았는데, 엄마로부터 “꽃게조림 했다”라고 전화가 걸려오면 두말없이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 사정은 장가를 가 제 가정을 꾸려 독립한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꽤 늦은 나이에 주부가 되었으나 할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라는 게 뻔해 상차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로 꽃게조림법을 물었다. ‘적당히’ ‘알맞게’ 라는 계량어를 종잡을 수 없었지만, 전화로 배워 만든 그날의 꽃게조림은 성공이었다. 내 손으로 했는데도 엄마가 한 음식과 맛이 같은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남편도 장모님이 해다 주신 게 아니고 당신이 한 게 맞는가 하고 거푸 물어 올 정도였다. 이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집 음식 메뉴도 꽃게조림이 되었다. 꽃게가 제철인 때나 다투어 서먹한 뒷날이면 화해의 제스처로 꽃게조림을 올리니, 손등을 부딪혀가며 넌지시 상대의 밥 위에 게 속살을 얹어주기도 하는 모습이 오래전 엄마네 집 밥상 풍경 그대로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꽃게조림이라는 하나의 음식을 통해 엄마와 가족의 삶을 살뜰히 ‘살리는’ 그런 살림을 하셨던 것 같다. 비록 꽃게에게는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을 빌어줘야 했지만 말이다.
꽃게조림 만드는 법(4인분)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그림
양념장: 간장 4큰술, 고춧가루 1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마늘, 다시마물
1. 꽃게의 가운데를 십자 형태로 잘라 4등분한다.
2. 집게발은 따로 떼어서 냄비에 넣는다.
3. 양념장 재료에 양파 한통을 갈아 넣고 다시마물(귀찮을 땐 맹물로도 가능하다)을 더해
한 대접 분량으로 함께 뒤섞는다.
4. 냄비에 토막 낸 꽃게를 넣고, 양념장을 고루고루 붓고 생강도 어슷 썰어 넣는다.
5. 센 불에 끓이다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국물이 자작자작 남을 때까지 졸여준다.
이름에 ‘자유’가 들어가는 것에 반해, 기업체 홍보실을 그만 두고 자유기고가가 되었다.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로,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현재는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의 관장으로 전시기획을 포함한 류가헌의 살림을 관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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