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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가수의 목

- 당신은 어떤‘가요’ -

임철우

2022-10-06

한국인은 노래방에 들어서면 누구나 가수가 된다. 마이크를 쥐자마자 당장 두 눈 지그시 감고 열창을 쏟아내는 그 경이로운 재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추억의 힘이다. 노래 한 곡, 가사 한 줄, 멜로디 하나마다 각자 이마의 주름만큼씩이나 빼곡하게 새겨진 추억의 힘. 그러므로 전 국토에 깨알처럼 흩어져 있는 노래방들은...



한 장의 낡은 사진 속엔 찰나의 한순간이 채집되어 있다. 이젠 흐릿한 그림자로 남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그 어느 날의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물의 모습들. 그러기에 오래된 사진 한 장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단숨에 세월을 역류해 기억 속 그때 그곳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노래는 사진을 똑 닮았다. 노래야말로 또 하나의 타임머신이다. 거리에서 혹은 버스 안에서 무심코 멜로디 하나가 귓전에 흘러드는 순간, 우리의 기억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강물 같은 세월을 거슬러 바로 그날, 그 사람들 곁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어쩌면 인간 기억의 항목 중에서 노래는 가장 질기고 오랜 생명력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내 어머니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래 부르는 어머니

노래 부르는 어머니



어머니는 3년 전, 95년의 생애를 접고 하늘로 떠나셨다. 말년엔 거동이 몹시 불편하고 알츠하이머로 인해 가족들 얼굴만 겨우 분별해낼 정도였음에도, 자식들이 찾아가면 금세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노래를 부르시곤 했다. 제법 여러 곡을 그것도 음정, 박자, 가사까지 완벽하게 말이다. 소학교 때 배운 일본 동요에서부터 우리 민요와 현대 가요까지, 다채로운 메들리였다.


그중에서 어머니의 십팔 번은 <처녀 뱃사공>이었다. 휠체어나 침대 위에서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청하면 금세 환한 얼굴로 손뼉을 치며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를 노래하셨다. 세상에, 어머니는 타고난 진짜 노래꾼이셨다. 90대 여인의 목청이 저리도 고울 수 있다니! 저 무서운 기억력이라니! 저런 예술적 재능을 평생 묻어두고 사셨음을 여태 까맣게 몰랐다니!


뒤늦은 깨달음과 죄스러움에 자식들은 저마다 가슴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이젠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래도 착한 막내가 그동안 어머니 말년의 모습을 꼬박꼬박 동영상에 담아놓은 덕분에, 언제라도 어머니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요’보다는 ‘유행가’라는 말이 더 친숙한 세대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 ‘흘러 다니는 노래’라는 뜻도 있어서 더 정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애창곡 몇 개씩은 가지고 있다. 애창곡이 꼭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건 아닐 터이다. 평소 즐겨 듣는 노래, 나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노래,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노래라면 다 애창곡이다.



마이크를 쥔 손

마이크를 쥔 손



한국인은 노래방에 들어서면 누구나 가수가 된다. 마이크를 쥐자마자 당장 두 눈 지그시 감고 열창을 쏟아내는 그 경이로운 재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추억의 힘이다. 노래 한 곡, 가사 한 줄, 멜로디 하나마다 각자 이마의 주름만큼씩이나 빼곡하게 새겨진 추억의 힘. 그러므로 전 국토에 깨알처럼 흩어져 있는 노래방들은 추억의 불꽃을 타고 오천만 남녀를 언제라도 우주로 날려 보내는 타임머신 캡슐이다.


물론 내게도 그런 노래들이 있다. 기억하건대 내 생애 맨 처음 배운 유행가는 <유정천리>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1959년 영화 주제가로 발매된 음반인데 당시 영화보다 노래가 더 큰 인기를 끌었다”고 나와 있다. 그때 내가 대여섯 살 즈음이었으니, 연대가 딱 맞아떨어진다.


내가 그 노래를 알게 된 내력이 조금 특이하다. 내 고향은 남해안의 아주 작은 섬마을이다. 다들 가난하고 궁벽한 살림에 전기조차 구경해 보지 못한 처지여서, 마을을 통틀어 신문은커녕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 가진 집이 아예 없었다. 라디오가 없으니 당연히 유행가를 들어볼 기회도 없었을 터. 그런데 코흘리개인 내가 그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우리 마을에 한 청년이 있었다. 우리 집을 자주 왕래했던 걸 보면 아마 가까운 친척이었던 성싶다. 그 청년의 십팔 번이 <유정천리>였다. 그는 또 어디서 그걸 배웠을까. 아마 군대 있을 때, 혹은 콧바람 쐬러 잠시 육지에 나갔을 때 귀동냥으로 배웠을 법하다. 어쨌건 세상에 흔해 빠진 유행가임에도, 고립된 섬에 갇힌 코흘리개 아이에겐 난생처음 들어본 그 노래가 사뭇 놀랍고 신기했었으리라. 정작 그 청년의 이름과 얼굴은 잊었지만, 그 노래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구비냐/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


- <유정천리> 중에서 -



생의 곤경과 곤궁함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고 유치한 언어로 표현한 노래가 더 있을까. 대중가요로서의 순화된 언어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랄까 기준치를 간단히 벗어나 버린 민낯 그대로의 노랫말. 그러나 그 적나라함과 유치함이 그 어떤 언어보다 통렬한 빛을 발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시대적 현실 그 자체, 생생한 민중의 초상이기 때문일 터이다.


이 노래 속에서 나는 50년대, 60년대의 낯익은 공간과 사람들과 풍경을 다시금 만난다. 모든 것이 모조리 뿌리 뽑힌 채 거품처럼 떠돌아다니던 시대. 어디나 가난하고 비참한 인생들로 가득 차 바글거리는 도시. 수백만의 전쟁 피난민, 또 황폐한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 그 모두에게 세끼 밥 먹는 삶이 그나마 최선의 꿈이자 목표였던 시절.


그럼에도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겨웠다. 비정하고 냉혹한 도시에서 끝끝내 살아남겠노라 어금니 악물고 잠드는 밤들. 그래도 꿈에서나마 그들을 변함없이 찾아와주던 고향 집, 고향 마을…….


물론 그런 막막하고 암울한 풍경들에는 어린 시절 나 자신의 낯익은 허기와 외로움, 그리고 세상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기억들이 어쩔 수 없이 덧칠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의 노래 <대전 부르스>도 나는 좋아한다.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대전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 그 대목에 이르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진다. 실제로 나는 기차와 역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밤 기차, 시골역, 그것도 겨울밤이라면 더욱 좋고. 그래선지 그동안 기차와 역을 소재로 여러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남진 <울려고 내가 왔나> 앨범 표지 (출처: VIBE)

남진 <울려고 내가 왔나> 앨범 표지 (출처:VIBE)



남진의 데뷔곡 <울려고 내가 왔나>는 내게 가설극장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광주로 이사한 후 내가 중학생일 때였다. 농촌인 고모님 댁에 놀러 갔는데, 마침 떠돌이 영화 패가 마을에 들어와 극락강 천변에 천막을 쳐놓고 밤에만 영화를 돌렸다. 온마을 주민들이 관람료를 내고 자갈밭에 모여앉아 울다가 웃다가 하는 동안, 바람 때문에 천막 스크린 속 남진과 남정임의 얼굴도 종종 빈대떡처럼 확 부풀었다가 쭈그러들곤 했었다.


자, 이 정도에서 수다를 그만 접어야 할 성싶다. 내게도 가요에 대한 추억이라면 소설 한 권 분량은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 들려주고 싶은 게 있다. 뭐냐면, 이미자 이야기.

 

이미자. 한국인이면 다 아는 이미자. 엘레지의 여왕.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라는 그 이미자. 특히 60년대는 그야말로 통째로 이미자의 시대였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랬다. 좀 과장하자면 남한 땅 어딜 가건, 눈을 떠도 감아도, 이미자 노래만 들렸다. 나의 초, 중, 고 시절은 오로지 박정희 그리고 이미자의 시대였다. 박정희는 사후에도 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미 생전에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신화를 나는 동네 아줌마들한테 처음 들었다.


“이미자가 죽으면 이미자 목은 일본으로 건너간다네. 진즉 그러기로 약속이 다 되어있다드랑께. 목이 건너가다니, 어떻게? 일본 동경대학 의과대학에서 가져간다네. 워메, 그걸 뭣에다 쓸라고? 뭣이냐. 이미자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보통 인간의 목소리일 수가 없다고. 사람 목에서 어떻게 그리 기맥힌 꾀꼬리 소리가 나올 수 있겄느냐고, 이건 진짜로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그래서, 일본 의과대학에서 자기들이 직접 그 목을 가져가가꼬 한번 연구해 볼란다고. 아, 그렇게 요청을 했다드란 말이여. 누구헌테? 아, 누구기는, 이미자한테 그렇게 요청을 했겄제. 워메, 그것이 참말이여? 원 세상에, 별일도 다 있네이. 하기사, 이미자 목이라믄야 얘기가 다르긴 하겄네. 맞어. 이미자 목청이라믄 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제이. 아암.”


대충 이런 소문이 한동안 온 나라에 퍼져 강물처럼 흘러 다녔다는 얘기다. 독자들도 더러 이 소문을 알고 있을 터이다. 어쨌건 당시엔 나 또한 잠시 그 소문을 절반 정도는 믿었던 것 같다. 뭐, 어쩌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미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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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소설가
소설가. 한신대 명예교수. 1954년 전남 완도에서 남.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연대기, 괴물], 장편소설 [붉은 산, 흰 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백년 여관], [황천기담], [이별하는 골짜기], [돌담에 속삭이는], 대하장편 [봄날] 전 5권. 한국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단재상, 요산 김정한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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