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 어디든 인문학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부산에서 가장 사람 때가 많이 묻었고, 여전히 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남포-중앙동 일대가 아닌가 싶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최근 현대의 모습까지, 압축적으로 변화해온 한국의 모습이 이 일대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모퉁이극장’은 중심 상권에서는 약간 떨어져 한적하고 걷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퉁이극장은 우리가 주로 영화를 보는 CGV나 메가박스 같은 영화관과는 다르다. 2012년에 탄생한 모퉁이극장은 ‘관객들이 중심이 되어, 관객문화를 만들어 가는 극장’이다. 그리고 관객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소화하고 공유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관객문화응원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관객이 중심?’, ‘관객문화?’, ‘관객문화응원운동?’
개념이 생소하다. 처음 들었을 때 ‘관객들의 관람 태도에 대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모퉁이극장이 내거는 ‘관객문화응원’이라는 슬로건이 ‘사고(思考)의 작은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영화문화에 새로운 시각을 여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보통 영화관에서는 이미 선정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은 이를 관람하는 반면, 모퉁이극장에서는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어 영화를 선정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함께 영화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눈다. 보통 영화를 보고나면 혼자 감상을 정리하거나, 친구나 가족과 같이 제한적인 범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퉁이극장의 김현수 대표는 극장을 개관한 이래로 이런 활동을 해왔고, 이를 인정받아 영화의 전당에서 강연도 하고, 영화제 부스운영에도 참여하여 영화제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오랜 활동이 결실을 맺어, 지난 달 21일부터는 아마도 세계 최초로 관객이 주인이 되는 영화제, ‘제1회 모퉁이 관객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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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
문_극장을 열게 된 배경과 많은 콘텐츠 중에서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답_보통 자기한테 친숙한 매체가 있지요. 저는 영화나 영상을 좋아했어요. 살아오면서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20대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직업 전선에 뛰어 들게 되었을 때 생각하고 고민했던 게, ‘영화를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였고, 그들과 함께 꾸려 갈 수 있는 생활터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으레 사회의 생리가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던 것과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가 단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모퉁이극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문화의 상황을 돌아보니 영화장르 안에서 '관객의 자리'가 소극적으로만 비춰지거나, 전혀 조명이 되지 않고 있었어요. 앞으로 ‘관객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아래 극장 일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국내에서도 최초고, 해외에는 이런 공간이 있는지 잘 모를만큼 새로운 영역이라 부딪혀가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소통의 매체로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미국에서도 5달러 5센트 극장이라고 해서 영화 볼 때만큼은 그런 차별 없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었거든요. 요즘도 보이지 않게 계급과 차별이 있지만, 영화라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을 소통하게 해주는 보편성의 힘을 가진 매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영화의 특성을 살려, 영화를 통해 소통해 가는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관객들의 극장’이란 표현을 썼어요. 그래서 모퉁이극장은 ‘사람이 중심인 영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_영화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답_2013년도에 ‘모퉁이 관객살롱’이라는 행사에서 관객 프로그래머로 참여하신 이종옥 여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분이 말씀해 주신 게, 영화라는 게 혼자 볼 수도 있지만 함께 영화를 볼 때 화합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게 영화의 큰 힘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가족이 함께 보면 가족 간에 대화 주제가 생기고, 친구들과도 안하던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영화가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이런 부분을 다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지만 이런 영화의 힘을 뚜렷하게 잡아서 살리려고 하는 공간이 없어요. 영화에 물론 수많은 부분이 있겠지만 모퉁이극장에서는 이런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나단 로젠바움이란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네 가지 성격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정보, 그리고 예술이지요. 이것들은 영화가 가지는 속성인데 감독의 성향과 개성에 따라 영화의 성격이 다 달라질 수 있죠. 그렇다면 관객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일단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는 것이고, 저마다의 생각을 한데 모으면 서로가 보완될 수 있음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가 될 수 있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면서 지속적으로 영화를 보고 교류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가고 있습니다.
문_모퉁이극장에서는 ‘관객문화활동’이란 것을 계속 해오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를 통해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답_우선 관객문화는 기존 문화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야할 방향을 설정해 가고 있어요. 기존 영화문화라고 하면, 영화의 산업적 측면(이윤)을 제외한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고 문화적인 성장을 기하는 활동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잘 성장해 왔어요. 근데 이 안에 관객이라는 것은 황무지에 가까워요. 관객이란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물을 주는 정원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없었어요. 관객을 일시적인 존재로 볼 뿐, 관객이란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죠. 이런 부분에서 볼 때 다른 영화 영역이 크게 성장해온 것에 반해, 관객이란 영역에서 문화적인 역사가 축적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부분에서 모퉁이극장이 기여할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까지 모퉁이극장에 관객들이 모여 자치활동을 꾸준히 해 온 성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중심’의 참여 프로그램도 가능했고, 관객영화제 활동가로도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영화감독이 되거나 비평가가 되는 등의 기존 방식으로만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객활동가’라는 자리에서 내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자랑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있겠다는 생각이 가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문_관객문화활동이 인문학과 어떻게 연결될수 있을까요?
답_제가 인문학 모임에서도 오래 활동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쌓는 이론이나 지식, 지혜는 실제 삶과의 격차가 컸어요. 인문학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론이나 지식들을 얼마나 생활영역으로 가져오는가에 달려있고, 인문학적 소양이 잘 발휘되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면 굉장히 좋은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내용과 생활의 격차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점차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학자는 이런 결을 ‘액체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기존 영화문화에서도 매카니즘적으로 분석하거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이 관객의 살아있는 정서나 감흥을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간극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글쓰기에서도 이런 글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퉁이에서는 조금 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글로 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감 한 토막을 바로 이야기한다던지, 잡지에 넣을 때 자기 생활을 에세이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사실 영화문화란 말도 대중에게 그리 익숙한 말은 아니잖아요. 그런 게 분명히 이 시대의 온도라, 관객문화라는 말을 가져오는 게 되게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관객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란 뜻의 ‘관객문화’는 관객들이 너무 어렵게 받아들일 말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직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_관객문화에 대해 더 설명해주신다면?
답_모퉁이극장의 커튼도 섬유미술작가이신 윤필남 작가도 나름대로 영화와 모퉁이극장에 대한 영감으로 만든 것이고, 극장 내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도 그렇거든요. 이런 게 관객문화죠. 관객이 영화를 보고 매체와 상관없이 영화를 본 피드백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 관객들이 영화로부터 자신을 풀어내는 방식, 그 자체가 관객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적으로 접근하자면 그런 문화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판단하는 창구가 현재 없기 때문에 모퉁이극장에서 그런 가치매김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죠. 관객문화는 글쓰기만이 관객들의 활동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 가능해요. 관객이 새로운 것을 하면 그것 역시 관객문화가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관객들도 그냥 영화만 보는 수동적인 차원에 있지 않고, 영화를 보고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운동들을 추동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응원’이라는 말인데, 저희는 ‘관객문화응원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관객문화들이 전파가 잘되면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결국 듣고 싶은 것은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데 관객문화가 형성되면 제작자들과도 용이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관객들도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는 게 좋은 비평은 아니잖아요. 서로 조금은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서 ‘응원’이란 말로 모퉁이극장의 다양성을 하나로 모아보고, 상생할 수 있는 문화, 소통가능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모퉁이극장에서 함께 모색해가고 싶어요.
문_이번에 개최한 ‘제1회 모퉁이 관객영화제’가 관객문화응원운동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_한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 모퉁이가 지향해온 관객문화의 총체라고 생각해요. 첫째로, 영화제 이전에 관객들이 애프터시네마클럽 등에서 자치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었고, 오랜 활동을 통해서 사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서 공적인 역할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했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적인 정체성으로부터 조금 더 넓게 영화문화, 영화의 제도적인 부분,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공적인 관객으로 성장하고 활약하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관객영화제에서 살리고 싶은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서로 이런 혜택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영화를 선정하고 행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프로그래머로서 영화를 선정하는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서로를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관객영화제에서는 영화를 보고 나면 보통 1분 내외 자기 이야기 시간을 가지게 되요. 그럼 이제 모퉁이극장에 오는 사람들이 모퉁이에 가면 한마디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퉁이극장에 오면 다른 관객의 이야기를 30~40마디씩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가 발화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발화를 듣고 그 이야기를 품는 공간이 되는 거죠. 모퉁이극장은 이런 방향이 선명하고, 그래서 관객문화응원은 연대적이고 공동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새로운 영화를 보는데 급급한 관객들은 모퉁이극장에 올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좀 더 대우받고 알아주길 바라는 명사들도 그렇고요.
문_마지막으로 시간을 되돌려 만나고 싶은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다면, 누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_이 질문은 깊게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은데, 당장에는 쇼펜하우어가 생각이 나네요. 모퉁이극장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헤아리는 방법이고, 그런 게 소통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실감하거든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명랑함에 대한 것이에요. 쇼펜하우어는 예를 들면 ‘명랑함의 순간이 오면 그것을 즐겨라. 명랑함은 굉장히 좋은 것이니까.’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명랑함이 오는데도, 그 순간에 그게 맞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숙고한다는 거죠. 숙고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오는지도 불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부터 혹은 주위를 통해 명랑한 순간이 있을 때, 그것을 즐기고 향유한다면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이득이 있다는 게 쇼펜하우어의 생각이에요. 이렇게 봤을 때, 쇼펜하우어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고요. 모퉁이극장에서는 '영화를 보고 이 영화는 이런 부분이 있고 이래서 좋다는 이야기를 정말 재치 있게 해줄 수 있는 관객' 같은 철학자인 것 같네요.
모퉁이 관객영화제는 강연 2회와 상영 8회로 구성되어 2015년 10월 21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1회씩 12월 10일까지 진행된다. 매 회 다른 관객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매주 개성 넘치는 행사 형태와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특징이다. 함께 관람한 관객들과 다양한 배경의 영화 감상평 또한 나눌 수 있다.
오용택은 강과 바다가 가까운 부산 광안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자립을 꿈꾸다가 2015년 새해 결심으로 부모님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부산 청년주거공동체 잘자리에 기거하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든 잘 살기 위해 나,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이 많다. 밥벌이를 위해 버둥거리던 중, 원고료가 탐이나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이참에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더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yongtaek16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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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 모퉁이극장
모퉁이 극장
인문쟁이 오용택
2016-01-04
▲모퉁이극장 내부
관객이 만들어가는 모퉁이극장
사람 사는 곳 어디든 인문학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부산에서 가장 사람 때가 많이 묻었고, 여전히 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남포-중앙동 일대가 아닌가 싶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최근 현대의 모습까지, 압축적으로 변화해온 한국의 모습이 이 일대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모퉁이극장’은 중심 상권에서는 약간 떨어져 한적하고 걷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퉁이극장은 우리가 주로 영화를 보는 CGV나 메가박스 같은 영화관과는 다르다. 2012년에 탄생한 모퉁이극장은 ‘관객들이 중심이 되어, 관객문화를 만들어 가는 극장’이다. 그리고 관객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소화하고 공유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관객문화응원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관객이 중심?’, ‘관객문화?’, ‘관객문화응원운동?’
개념이 생소하다. 처음 들었을 때 ‘관객들의 관람 태도에 대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모퉁이극장이 내거는 ‘관객문화응원’이라는 슬로건이 ‘사고(思考)의 작은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영화문화에 새로운 시각을 여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보통 영화관에서는 이미 선정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은 이를 관람하는 반면, 모퉁이극장에서는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어 영화를 선정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함께 영화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눈다. 보통 영화를 보고나면 혼자 감상을 정리하거나, 친구나 가족과 같이 제한적인 범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퉁이극장의 김현수 대표는 극장을 개관한 이래로 이런 활동을 해왔고, 이를 인정받아 영화의 전당에서 강연도 하고, 영화제 부스운영에도 참여하여 영화제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오랜 활동이 결실을 맺어, 지난 달 21일부터는 아마도 세계 최초로 관객이 주인이 되는 영화제, ‘제1회 모퉁이 관객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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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
문_극장을 열게 된 배경과 많은 콘텐츠 중에서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답_보통 자기한테 친숙한 매체가 있지요. 저는 영화나 영상을 좋아했어요. 살아오면서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20대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직업 전선에 뛰어 들게 되었을 때 생각하고 고민했던 게, ‘영화를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였고, 그들과 함께 꾸려 갈 수 있는 생활터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으레 사회의 생리가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던 것과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가 단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모퉁이극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문화의 상황을 돌아보니 영화장르 안에서 '관객의 자리'가 소극적으로만 비춰지거나, 전혀 조명이 되지 않고 있었어요. 앞으로 ‘관객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아래 극장 일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국내에서도 최초고, 해외에는 이런 공간이 있는지 잘 모를만큼 새로운 영역이라 부딪혀가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소통의 매체로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미국에서도 5달러 5센트 극장이라고 해서 영화 볼 때만큼은 그런 차별 없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었거든요. 요즘도 보이지 않게 계급과 차별이 있지만, 영화라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을 소통하게 해주는 보편성의 힘을 가진 매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영화의 특성을 살려, 영화를 통해 소통해 가는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관객들의 극장’이란 표현을 썼어요. 그래서 모퉁이극장은 ‘사람이 중심인 영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_영화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답_2013년도에 ‘모퉁이 관객살롱’이라는 행사에서 관객 프로그래머로 참여하신 이종옥 여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분이 말씀해 주신 게, 영화라는 게 혼자 볼 수도 있지만 함께 영화를 볼 때 화합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게 영화의 큰 힘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가족이 함께 보면 가족 간에 대화 주제가 생기고, 친구들과도 안하던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영화가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이런 부분을 다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지만 이런 영화의 힘을 뚜렷하게 잡아서 살리려고 하는 공간이 없어요. 영화에 물론 수많은 부분이 있겠지만 모퉁이극장에서는 이런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나단 로젠바움이란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네 가지 성격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정보, 그리고 예술이지요. 이것들은 영화가 가지는 속성인데 감독의 성향과 개성에 따라 영화의 성격이 다 달라질 수 있죠. 그렇다면 관객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일단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는 것이고, 저마다의 생각을 한데 모으면 서로가 보완될 수 있음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가 될 수 있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면서 지속적으로 영화를 보고 교류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가고 있습니다.
문_모퉁이극장에서는 ‘관객문화활동’이란 것을 계속 해오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를 통해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답_우선 관객문화는 기존 문화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야할 방향을 설정해 가고 있어요. 기존 영화문화라고 하면, 영화의 산업적 측면(이윤)을 제외한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고 문화적인 성장을 기하는 활동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잘 성장해 왔어요. 근데 이 안에 관객이라는 것은 황무지에 가까워요. 관객이란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물을 주는 정원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없었어요. 관객을 일시적인 존재로 볼 뿐, 관객이란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죠. 이런 부분에서 볼 때 다른 영화 영역이 크게 성장해온 것에 반해, 관객이란 영역에서 문화적인 역사가 축적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부분에서 모퉁이극장이 기여할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까지 모퉁이극장에 관객들이 모여 자치활동을 꾸준히 해 온 성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중심’의 참여 프로그램도 가능했고, 관객영화제 활동가로도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영화감독이 되거나 비평가가 되는 등의 기존 방식으로만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객활동가’라는 자리에서 내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자랑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있겠다는 생각이 가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문_관객문화활동이 인문학과 어떻게 연결될수 있을까요?
답_제가 인문학 모임에서도 오래 활동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쌓는 이론이나 지식, 지혜는 실제 삶과의 격차가 컸어요. 인문학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론이나 지식들을 얼마나 생활영역으로 가져오는가에 달려있고, 인문학적 소양이 잘 발휘되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면 굉장히 좋은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내용과 생활의 격차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점차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학자는 이런 결을 ‘액체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기존 영화문화에서도 매카니즘적으로 분석하거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이 관객의 살아있는 정서나 감흥을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간극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글쓰기에서도 이런 글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퉁이에서는 조금 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글로 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감 한 토막을 바로 이야기한다던지, 잡지에 넣을 때 자기 생활을 에세이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사실 영화문화란 말도 대중에게 그리 익숙한 말은 아니잖아요. 그런 게 분명히 이 시대의 온도라, 관객문화라는 말을 가져오는 게 되게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관객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란 뜻의 ‘관객문화’는 관객들이 너무 어렵게 받아들일 말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직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_관객문화에 대해 더 설명해주신다면?
답_모퉁이극장의 커튼도 섬유미술작가이신 윤필남 작가도 나름대로 영화와 모퉁이극장에 대한 영감으로 만든 것이고, 극장 내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도 그렇거든요. 이런 게 관객문화죠. 관객이 영화를 보고 매체와 상관없이 영화를 본 피드백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 관객들이 영화로부터 자신을 풀어내는 방식, 그 자체가 관객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적으로 접근하자면 그런 문화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판단하는 창구가 현재 없기 때문에 모퉁이극장에서 그런 가치매김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죠. 관객문화는 글쓰기만이 관객들의 활동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 가능해요. 관객이 새로운 것을 하면 그것 역시 관객문화가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관객들도 그냥 영화만 보는 수동적인 차원에 있지 않고, 영화를 보고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운동들을 추동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응원’이라는 말인데, 저희는 ‘관객문화응원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관객문화들이 전파가 잘되면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결국 듣고 싶은 것은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데 관객문화가 형성되면 제작자들과도 용이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관객들도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는 게 좋은 비평은 아니잖아요. 서로 조금은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서 ‘응원’이란 말로 모퉁이극장의 다양성을 하나로 모아보고, 상생할 수 있는 문화, 소통가능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모퉁이극장에서 함께 모색해가고 싶어요.
문_이번에 개최한 ‘제1회 모퉁이 관객영화제’가 관객문화응원운동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_한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 모퉁이가 지향해온 관객문화의 총체라고 생각해요. 첫째로, 영화제 이전에 관객들이 애프터시네마클럽 등에서 자치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었고, 오랜 활동을 통해서 사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서 공적인 역할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했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적인 정체성으로부터 조금 더 넓게 영화문화, 영화의 제도적인 부분,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공적인 관객으로 성장하고 활약하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관객영화제에서 살리고 싶은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서로 이런 혜택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영화를 선정하고 행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프로그래머로서 영화를 선정하는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서로를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관객영화제에서는 영화를 보고 나면 보통 1분 내외 자기 이야기 시간을 가지게 되요. 그럼 이제 모퉁이극장에 오는 사람들이 모퉁이에 가면 한마디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퉁이극장에 오면 다른 관객의 이야기를 30~40마디씩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가 발화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발화를 듣고 그 이야기를 품는 공간이 되는 거죠. 모퉁이극장은 이런 방향이 선명하고, 그래서 관객문화응원은 연대적이고 공동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새로운 영화를 보는데 급급한 관객들은 모퉁이극장에 올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좀 더 대우받고 알아주길 바라는 명사들도 그렇고요.
문_마지막으로 시간을 되돌려 만나고 싶은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다면, 누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_이 질문은 깊게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은데, 당장에는 쇼펜하우어가 생각이 나네요. 모퉁이극장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헤아리는 방법이고, 그런 게 소통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실감하거든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명랑함에 대한 것이에요. 쇼펜하우어는 예를 들면 ‘명랑함의 순간이 오면 그것을 즐겨라. 명랑함은 굉장히 좋은 것이니까.’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명랑함이 오는데도, 그 순간에 그게 맞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숙고한다는 거죠. 숙고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오는지도 불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부터 혹은 주위를 통해 명랑한 순간이 있을 때, 그것을 즐기고 향유한다면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이득이 있다는 게 쇼펜하우어의 생각이에요. 이렇게 봤을 때, 쇼펜하우어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고요. 모퉁이극장에서는 '영화를 보고 이 영화는 이런 부분이 있고 이래서 좋다는 이야기를 정말 재치 있게 해줄 수 있는 관객' 같은 철학자인 것 같네요.
모퉁이 관객영화제는 강연 2회와 상영 8회로 구성되어 2015년 10월 21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1회씩 12월 10일까지 진행된다. 매 회 다른 관객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매주 개성 넘치는 행사 형태와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특징이다. 함께 관람한 관객들과 다양한 배경의 영화 감상평 또한 나눌 수 있다.
사진_김영광, 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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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부산광역시 중구 계단길40 7 4층
☎051-468-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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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1기]
오용택은 강과 바다가 가까운 부산 광안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자립을 꿈꾸다가 2015년 새해 결심으로 부모님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부산 청년주거공동체 잘자리에 기거하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든 잘 살기 위해 나,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이 많다. 밥벌이를 위해 버둥거리던 중, 원고료가 탐이나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이참에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더 자유로워지려고 한다.yongtaek16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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