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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우석훈, 3포세대의 연애 경제학

연애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최민영

2018-07-11


책 〈88만원 세대〉가 세상에 등장한 지 10년. 88만 원은 당시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퍼센트를 곱해서 산출한 금액이다. 그때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던 20대는 이제 30대가 되었는데, 삶은 좀 나아졌을까? 안타깝게도 이제 그들은 스스로를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 부르며 사랑마저 가성비와 효율성을 따지며 팍팍하게 살아간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세상에 내놓았던 10년 전의 우석훈은 결코 이런 미래를 전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등의 저서와 강연활동을 통해 우리 삶을 경제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경제학자 우석훈에게 요즘 연애에 대해 들어보았다.


경제학자 우석훈


Q. ‘가성비’와 ‘효율성’이 삶 전반에 적용되는 시대입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연애 패턴에도 변화가 있을까요?

A. 확실히 연애 기간이 길어졌어요.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연애의 형태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직장도 흩어져있고, 한쪽이 외국에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죠. 그렇게 연애하다가 결혼하면 주말부부로 지내는 일도 많죠.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이동이 많고, 그래서 생겨난 독특한 현상이에요. 이런 형태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무용해요. 다만 경제적으로 보면 무조건 손해죠.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비용이니까요.

 

 

Q. 경제적 이유로 연애를 포기하는 이른바 ‘3포세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A. 저는 ‘연애 포기’라는 말보다 ‘연애 유예’라는 말을 사용해요.


실제로도 ‘연애를 포기했습니다’하는 사람은 본 적 없어요. ‘아직 누굴 만날 형편이 안되어서요’라고 말하죠. 다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순간처럼 형편이 좋아질 때를 기다리며 연애를 유예하는 중인 겁니다. 포기가 아니라.


이전 정부 초기에 일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있어요. 그들에게 ‘정규직 전환 이후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소개팅이 잡혔다’고 하더군요. 사실 2-30대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해도 연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런데도 단지 정규직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개팅 해준다는 연락이 줄기차게 온다는 겁니다. 비정규직일 때는 ‘너 비정규직이잖아’라는 말을 들을까봐 주변에 부탁도 못했는데 말이죠. 이것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입니다.


청년 고용률이 40~50%인 요즘입니다. 이 숫자 안에는 임시직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보통 정규직이 되면 결혼을 생각하는 풍조 상,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는 40%에도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죠. 이건 연애의 계급화와도 연결돼요.

 

 

Q. 연애의 계급화요?

A. 의사는 의사와, 교사는 교사와 결혼하는 일이 많아요.


저희 애들이 다니는 소아과는 병원장과 간호사가 결혼을 해서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간호사가 병원관리와 남편관리를 동시에 하는데, 참 실속 있죠. 그런데 요즘은 이런 조합이 흔치 않아요. 의사가 간호사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의사 동료들이 말린다고 해요. 같은 직종의 사람을 만나라고요.


물론 사람은 자주 보게 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는 의사와, 교사는 교사와 결혼하는 일이 많아요. 그런데 비정규직은 비정규직과 결혼하고, 저임금 노동자 역시 저임금 노동자와 결혼합니다. 하는 일도, 임금도 비슷한 부부가 늘었어요. 좀 더 확대해서 살펴보면 집 있는 사람은 집 있는 사람과, 전세 사는 사람은 전세 사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경향도 생겼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다들 그냥 그게 맞겠거니, 하고 살아요. 경제 논리가 사회적인 것들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어요. 결국 결혼과 연애에도 계급화를 부여하는 오늘에 이르게 된 거죠.

 

 

Q. 이런 사회 분위기가 젊은이들의 연애 의욕마저 저하시키는 걸까요?

A. 이 단계가 심화되면 초식남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죠.


일본에는 ‘초식남’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어요. 초식남은 자신이 몰입하는 취미가 따로 있어요. 굳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즐겁게 지낼만한 요소가 있는 겁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어덜트 키즈라는 말이 있죠? 어른이지만 장난감이 좋고, 갖고 놀 것이 많으니 굳이 연애 안 해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요. 이 단계가 심화되면 초식남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초식남은 본능 자체가 달라요. ‘난 풀만 먹고 살 거야’라는 거죠. 도전하지도 않고, 굳이 애쓰지도 않겠다는 겁니다. 한국은 다행히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3포세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포기란 무언가 하고자 하지만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현상이니까요. 적어도 의욕이나 도전의식은 아직 건재하다는 거죠. 다만, 경계상태이긴 해요.

 

경제학자 우석훈

 

Q. 연애의 계급화나 초식남 현상 등을 보면 사회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의 연애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요?

A. 줄어들진 않을 겁니다. 오늘의 현상은 경제적, 사회적 재난 같은 일시적 현상이에요.


인간이 고통을 인지하는 것은 뇌예요. 상처가 직접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에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치통이든 골절이든 아프면 진통제를 먹잖아요. 뇌에게 ‘아니야, 네가 과민한 거야’하고 진정을 시켜주는 거예요.


실연의 고통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은, 손발이 잘리는 것과 비슷한 통증이고, 진통제를 먹으면 마음이 괜찮아진대요. 결핍 때문에 아픈 것은 고통의 매커니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연애는 늘 해피엔딩일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애를 갈망하는 것은 결핍의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외로움이 더 아픈 거죠.


다만, 오늘의 현상은 경제적, 사회적 재난 때문에 일시적으로 멈춘 것이지 패턴화되거나 고착화되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출산율 저하로 큰 논란이 빚어졌을 때, 정책을 보완하니 금세 회복되었어요. 상황이 좋지 않을 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돼요.

 


Q.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사랑이나 결혼과 싸워서 이길 것은 생존밖에 없어요.


국가대표 축구 경기도, 우정도, 국적도, 부모도 모두 사랑 앞에서는 포기해도 괜찮아요.(웃음) 그저 연애를 포기하느냐 마느냐 고민하기에 앞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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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민영
최민영

듣는 내내 배우고 쓰는 내내 고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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