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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2021.08.30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권내현 지음 너머북스 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권내현 지음/너머북스/2021년/23,000원



권위와 특권, 경제력을 장남에게 집중시킨 유럽의 장자 상속제와는 달리 부계 공동체의 안정적인 존속을 기대했던 조선의 상속 방식은 장남을 우대하면서도 나머지 아들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농민들은 신분 상승을 기대하며 양반의 삶을 모방하였다. 그들 역시 부계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동성촌락을 형성해 나갔으며 장자 우대 상속을 수용하였다. 근대 이후 장남의 상속 몫은 더 늘어났는데 이는 지역과 계층을 불문하고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균분 상속은 부계 공동체와 그것의 장기 지속에 대한 염원이 아직 절실하지 않았을 때, 처가살이의 관행이 지속되고 딸에 대한 차별이 필요하지 않았을 때, 개별 가계의 경제력이 유지되거나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때 조선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317쪽



이 책은 미시사의 대가인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영감을 얻어 저술한 16세기 조선의 상속 제도에 관한 미시사 연구서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16세기 프랑스 지방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사라졌던 (가짜) 남편의 귀향과 그 이후 전개되는 상속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듯이, 『유유의 귀향』 역시 16세기 대구 지방을 배경으로 가출했던 유유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온 유유는 진짜 유유가 아니라 그의 행세를 하는 채응규라는 가짜 인물이었다. 종친이자 집안의 사위였던 이지가 유유의 동생인 유연에게 처음으로 그의 형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된다. 그가 형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 유연이 그를 관아에 고발했지만, 가짜 유유가 보석을 받아 풀려난 후 사라지자 이번에는 재산을 탐내고 형을 은밀하게 살해한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유연은 신문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백을 하고 능지처참형을 당하게 된다. 실제 유유는 15년 뒤 우연히 발견되어 자신이 유유임을 자백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상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죄로 100대의 장형과 3년 동안의 노역형을 받은 뒤 2년 후 사망한다. 가짜 유유인 채응규는 같은 해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자결하고, 그와 내통한 것으로 의심받은 종친 이지는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다. 결국 부실한 수사와 재판으로 만들어진 유연 사건은 한 집안의 몰락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아 필자가 조선 시대 상속 제도의 변화와 종법 질서의 확립 과정을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은 17세기를 전후로 하여 상속 제도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데, 이는 17세기 이후 장자상속제를 기반으로 한 종법 질서가 확립되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7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모두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면서 처가의 대소사에 관여를 했고 장인과 장모가 사망한 이후에는 제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장자를 중심으로 가문의 영속성을 확립하려는 종법 질서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처가살이 대신 시집살이가 보편화되면서 출가한 딸과 사위는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사색당파의 본격적인 전개과정과도 연동되어 있었다.


『유유의 귀향』은 상속 문제를 둘러싼 한 집안의 비극을 배경으로 16~17세기 조선 사회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면밀한 자료 분석, 풍부한 문제의식이 어우러진 흥미롭고 뛰어난 작품이다.


▶ 추천사: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나눔위원회 2021 <8월의 추천도서>

■  URL  https://www.readin.or.kr/home/bbs/20049/bbsPostList.do#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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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내현
권내현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역사연구회 연구위원장, 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 소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집행위원장 등 여러 학회와 단체의 임원을 역임했거나 맡고 있다. 현재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후기 사회경제사를 전공하였고, 특히 호적대장을 활용한 가족·친족·신분연구, 조선·청 간 교류와 은 유통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시사저널 임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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