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SNS에서 이 글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다. ‘늦잠 병 환자’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지옥일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취침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 새벽을 훌쩍 넘어 잠든 후,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 맞는 최악의 순간. 너무도 피곤하지만, 출근은 해야 한다. 머리는 멍하고 짜증이 난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상태에서 출근길에 오른다. 그리고 다짐한다. ‘진짜 오늘부터 빨리 잔다. 또 늦게 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 날 밤 곧잘 사람이 아니게 된다. 다짐이 무너지는 과정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딱 게임 한 판만 하고 자야겠다.’ ‘드라마 에피소드 하나만 보고 자야지.’ ‘낮에 조금 잤으니까 약간 늦게 자도 될 거야.’ 이상하게도 밤에는 뭔 일이든 다 재밌고, 난 그 재미의 유혹에 넘어가 또다시 늦잠을 자고 만다.
7시간? 다들 저렇게 오래 자?
6시간 48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 따른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평균 8시간 22분)라고 한다. 그러나 저 숫자를 본 나는 ‘다들 저렇게 오래 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6시간 이상 자는 건 기껏해야 일주일에 토요일 한 번 밖에 안된다. 그나저나 OECD 국민들은 8시간이 넘게 잠이 오긴 하는 건가. 약간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적정 수면 시간이란 사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꼭 8시간을 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확히 이 마음가짐이 나와 당신을 늦잠 지옥에 빠뜨리는 근본적 원인이다. 늦잠 병 환자들은 그냥 말로 하면 안 된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전하는 수면의 과학 이야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8년 8월호엔 흥미진진한 기획기사가 실렸다. 수면에 관한 최근 연구 자료를 통해 전하는 ‘수면의 비밀’이었다.
잠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뇌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 답했다면 반만 맞춘 셈이다. 잠에 빠지면 뇌는 스위치 OFF가 아닌 평소와 다른 일을 한다. 그리고 그 활동은 일종의 코스 요리처럼 세트로 이뤄진다. 정확히는 대략 60~90분짜리 코스 요리를 여러 번 먹는 형태에 가깝다.
수면은 1, 2, 3, 4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잠자리에 든 첫 5분이다. 뇌가 온몸에 ‘밤이 왔다는 시그널’을 온몸에 보낸다. 멜라토닌이 뿌려지며 “어두운 거 보이시죠? 밤입니다.” “저기요! 눈님. 밤이에요” “코님 잘 때 됐어요.” 감각을 느끼는 부분들이 약화되며 우리는 스르륵 잠에 빠진다.
2단계는 기억을 편집하는 시간이다. 깨어 있는 동안 경험한 것들을 정리한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경험이야. 오래오래 기억하라고!”라며 장기 기억으로 넣기도 하고, 데이터만 차지하는 필요 없는 일상사는 지워버린다. 대뇌피질을 자극하는 ‘방추파’라는 게 있다는데, 낮에 기억할 만 거리가 많으면, 그날 밤 더 많은 방추파가 관찰된다고 한다. 즉, 당신이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 있다면 그날 밤 당신의 뇌는 흥미진진한 편집에 열을 올린다는 것.
3단계에서 뇌는 의식의 세계와 관련 없는 생리적인 부분을 정리정돈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를 조절하는데도 쓰인다. 혈압과 체온을 유지하고, 근육을 조절한다. 수면의 3단계에선 이 기능을 정리한다. 4단계는 거의 혼수상태와 비슷하다. 짧은 순간으로 우리 뇌는 기능을 정지하고 굳이 ‘문과생’적으로 표현하자면 ‘리셋’된다. 1단계에서 2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처음엔 90분 정도며 점점 짧아진다. 2단계 없이 1단계에서 3단계로 직행하는 일은 없다. 모든 게 순서대로 일어나야 한다. 1시간씩 끊어 수면을 취하는 것은 당신이 초식동물인 사슴이 아닌 이상에야 소용없다.
수면이란 코스 요리를 먹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낮에 겪은 경험들이 장기기억으로 쓸모 있게 편집되지 않는다. 읽은 책, 겪은 경험, 눈으로 본 풍경은 어렴풋한 인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사색하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전전두피질’은 망가진다. 문돌이 여러분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전전두피질’은 흔히 인간이 인간으로 행동하게 하는 부분이라 일컬어지며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폭력적으로 되거나 부끄러움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신체 필수 기능을 정비하는 시간이 부족해 면역력도 떨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이 기사를 쓴 마이클 핑클 씨는 “계속해서 6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는 사람은 우울증과 정신병, 뇌졸중, 비만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잠을 적게 자면 몽땅 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래. 수면 관련 에세이를 이제 다 썼다! 딱 밤 12시로구만. 내일 출근하려면 7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7시간 자려면 지금 취침해야겠군. 근데 잠시만, 퇴근 후 글 쓴다고 재밌는 일들은 하나도 못 했잖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보고 자도 되겠지. 그냥 자면 내 인생 너무 지루하잖아.
읽고 나면 늦잠 못 잘걸
신비로운 수면의 비밀
주간 개복치(이정섭)
2018-10-24
“늦게 잠자는 놈들이 가는 지옥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다음 날 아침이란다.”
우연히 SNS에서 이 글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다. ‘늦잠 병 환자’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지옥일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취침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 새벽을 훌쩍 넘어 잠든 후,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 맞는 최악의 순간. 너무도 피곤하지만, 출근은 해야 한다. 머리는 멍하고 짜증이 난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상태에서 출근길에 오른다. 그리고 다짐한다. ‘진짜 오늘부터 빨리 잔다. 또 늦게 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 날 밤 곧잘 사람이 아니게 된다. 다짐이 무너지는 과정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딱 게임 한 판만 하고 자야겠다.’ ‘드라마 에피소드 하나만 보고 자야지.’ ‘낮에 조금 잤으니까 약간 늦게 자도 될 거야.’ 이상하게도 밤에는 뭔 일이든 다 재밌고, 난 그 재미의 유혹에 넘어가 또다시 늦잠을 자고 만다.
7시간? 다들 저렇게 오래 자?
6시간 48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 따른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평균 8시간 22분)라고 한다. 그러나 저 숫자를 본 나는 ‘다들 저렇게 오래 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6시간 이상 자는 건 기껏해야 일주일에 토요일 한 번 밖에 안된다. 그나저나 OECD 국민들은 8시간이 넘게 잠이 오긴 하는 건가. 약간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적정 수면 시간이란 사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꼭 8시간을 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확히 이 마음가짐이 나와 당신을 늦잠 지옥에 빠뜨리는 근본적 원인이다. 늦잠 병 환자들은 그냥 말로 하면 안 된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전하는 수면의 과학 이야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8년 8월호엔 흥미진진한 기획기사가 실렸다. 수면에 관한 최근 연구 자료를 통해 전하는 ‘수면의 비밀’이었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2018년 8월호, 한국판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YBM SISA
잠자는 동안 뇌는 OFF 상태가 아니다
잠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뇌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 답했다면 반만 맞춘 셈이다. 잠에 빠지면 뇌는 스위치 OFF가 아닌 평소와 다른 일을 한다. 그리고 그 활동은 일종의 코스 요리처럼 세트로 이뤄진다. 정확히는 대략 60~90분짜리 코스 요리를 여러 번 먹는 형태에 가깝다.
수면은 1, 2, 3, 4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잠자리에 든 첫 5분이다. 뇌가 온몸에 ‘밤이 왔다는 시그널’을 온몸에 보낸다. 멜라토닌이 뿌려지며 “어두운 거 보이시죠? 밤입니다.” “저기요! 눈님. 밤이에요” “코님 잘 때 됐어요.” 감각을 느끼는 부분들이 약화되며 우리는 스르륵 잠에 빠진다.
2단계는 기억을 편집하는 시간이다. 깨어 있는 동안 경험한 것들을 정리한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경험이야. 오래오래 기억하라고!”라며 장기 기억으로 넣기도 하고, 데이터만 차지하는 필요 없는 일상사는 지워버린다. 대뇌피질을 자극하는 ‘방추파’라는 게 있다는데, 낮에 기억할 만 거리가 많으면, 그날 밤 더 많은 방추파가 관찰된다고 한다. 즉, 당신이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 있다면 그날 밤 당신의 뇌는 흥미진진한 편집에 열을 올린다는 것.
3단계에서 뇌는 의식의 세계와 관련 없는 생리적인 부분을 정리정돈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를 조절하는데도 쓰인다. 혈압과 체온을 유지하고, 근육을 조절한다. 수면의 3단계에선 이 기능을 정리한다. 4단계는 거의 혼수상태와 비슷하다. 짧은 순간으로 우리 뇌는 기능을 정지하고 굳이 ‘문과생’적으로 표현하자면 ‘리셋’된다. 1단계에서 2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처음엔 90분 정도며 점점 짧아진다. 2단계 없이 1단계에서 3단계로 직행하는 일은 없다. 모든 게 순서대로 일어나야 한다. 1시간씩 끊어 수면을 취하는 것은 당신이 초식동물인 사슴이 아닌 이상에야 소용없다.
수면이란 코스 요리를 먹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낮에 겪은 경험들이 장기기억으로 쓸모 있게 편집되지 않는다. 읽은 책, 겪은 경험, 눈으로 본 풍경은 어렴풋한 인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사색하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전전두피질’은 망가진다. 문돌이 여러분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전전두피질’은 흔히 인간이 인간으로 행동하게 하는 부분이라 일컬어지며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폭력적으로 되거나 부끄러움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신체 필수 기능을 정비하는 시간이 부족해 면역력도 떨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이 기사를 쓴 마이클 핑클 씨는 “계속해서 6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는 사람은 우울증과 정신병, 뇌졸중, 비만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잠을 적게 자면 몽땅 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래. 수면 관련 에세이를 이제 다 썼다! 딱 밤 12시로구만. 내일 출근하려면 7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7시간 자려면 지금 취침해야겠군. 근데 잠시만, 퇴근 후 글 쓴다고 재밌는 일들은 하나도 못 했잖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보고 자도 되겠지. 그냥 자면 내 인생 너무 지루하잖아.
디지털 마케터로 일하며 때때로 글 쓰는 노동자. 소심한 성격과 낯가림을 텍스트로 승화(?)시켜 브런치에 ‘주간 개복치’라는 글을 연재하며, ‘따봉(좋아요)’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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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고수리
세상 속 ‘나’를 찾습니다
인문쟁이 양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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