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다방’이라는 맞선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선다방은 맞선 프로그램이라지만 사랑의 작대기나, 남자 3호-여자 2호 등이 나오던 기존의 짝짓기 프로그램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신선한 구성으로, 사람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 방송,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기대 반, 의심 반을 담아 벌이는 탐색전
원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나 로맨틱 코미디물은 금서로 지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온 나였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춘 선다방에서는 의외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뇌를 비운 채 방송을 보던 중 문득, 아련하게 숨어 있는 옛 추억이 살며시 떠올랐다. 마음 설레던 그 사람과의 첫 만남 그때... 일리는 없고, 모 회사에서 겪었던 1:1 면접 때 느낀 기억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대 반, 의심 반을 담아 벌이는 탐색전과 미묘한 긴장감이라니.
선다방에서 내가 본 광경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예비 연인이 아니라, 취업을 놓고 분투하는 취업준비생과 면접관의 모습이었다.
연애는 취업 과정과 비슷하다. 취업에는 구직자와 구인자, 두 당사자가 있다. 가끔 길거리 캐스팅이나 스카우트같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서류심사와 면접이라는 과정을 통해 취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 역시 두 명의 당사자가 있다. 사내커플이나 캠퍼스커플 같이 자연스레 둘이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소개팅이나 선 자리를 거쳐 연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구인자는 능력 있는 직원을 뽑고 싶어 한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는 구직자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출신학교, 전공, 학점, 어학 점수 등의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중간지표를 통해 구직자의 능력을 짐작한다. 따라서 스펙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취업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소개팅도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에, 중간지표를 통해 상대방의 매력을 짐작한다. 키, 외모, 신체사이즈, 학벌, 소득수준 등의 스펙은 상대방을 아는데 필요한 사전 정보이다. 따라서 스펙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연애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여기에는 소위 거듭제곱의 법칙이 적용된다. 스펙 수준과 취업 기회는 단순 비례하지 않는다. 능력이 약간만 좋아도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간다. 소개팅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소개팅 등의 연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가져간다. 인기 좀 있는 지인들에게는 소개팅을 시켜 주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였다.
결국 스펙보다 '느낌이 먼저다'
물론 구직자의 스펙이 꼭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구인자들은 스펙을 비롯한 기본 정보가 담긴 지원서류를 통해 지원자를 거른 뒤, 몇 차례에 걸친 면접을 통해 구직자를 꼼꼼히 살펴본다.
소개팅 과정은 어떨까? 사진을 비롯한 기타 프로필로 만나 볼지 그냥 넘길지를 결정한 뒤, 만남과 애프터라는 절차를 통해 그 사람이 ‘내 연인으로 적합한가?’를 판단한다. 서류 심사-면접이라는 취업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보기에 일 잘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좋은 남친/여친, 혹은 배우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남친/여친,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좋은 남친/여친 및 배우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도 막상 시켜보니 일 처리가 별로일 수도 있다. 능력이 좋아도 조직원들과 손발이 맞지 않아 성과가 지지부진할 수도 있다. 반면에 몇몇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어도, 손발을 맞추면 시너지를 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지만 막상 지내보니 별로일 수도 있고, 심지어 흠잡을 곳은 전혀 없는 사람이고 매력도 넘치지만, 이상하게 함께 있을 때, 즐겁지 않을 경우도 있다. 반면에 몇몇 측면에서는 부족하지만, 함께 있으면 괜히 즐겁고 편안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모두 궁합과 관련되어 있다. 연애든 취업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넘쳐도 궁합이 맞지 않으면 괴롭고, 모자라도 궁합이 잘 맞으면 즐겁다. 그리고 서로 간의 궁합은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취업과 연애에서 모두 당사자들 간의 느낌이 중요하다. 면접관들은 대화 도중 ‘아 이 사람이다!’ 싶으면, 설령 다른 구직자들보다 스펙이 더 떨어지더라도 소위 Feel이 오는 사람을 선택한다. 연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와 연인이 되고 싶어 한다.
종국에는 조건보다 ‘느낌이 먼저다.’
취업과 연애는 능력을 채점하는 기준이 아니다
한편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업은 언제 하니?’, ‘남자친구/여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등등의 질문에 시달린다. 때로는 질문 수준을 벗어나 간섭이나 훈계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무능의 증거라며 비아냥대는 사람들마저 있다.
취업에 실패했다 해서 그 사람이 무능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취업에는 운이나 타이밍, 의지, 기타 환경적 요소들이 상당 부분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특수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해외에서 발생한 이슈로 인해 그 분야가 침체기로 돌아서면 그의 취직 전망은 불투명해진다. 본인이 취업보다는 창업이나 다른 업을 선호하기도 한다.
역시 연애를 하지 못했다 해서 그 사람이 매력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연애에도 운, 타이밍, 환경적 요소 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매력적인 남자라도 고립된 지역의 남초 사회에서는 연애하기 힘들다. 딱히 연애에 관심 없거나, 연애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취업 못하냐, 연애 못하냐는 걱정이나 잔소리는 할 필요 없다. 취업 못했다고, 연애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저 사람은 취업도 못했대, 저 사람은 연애도 못한대 라며 비아냥대는 것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아니 된다.
연애와 취업의 닮은꼴
궁합이 잘맞는 상대를 찾는 머나먼 여정
김해룡
2018-07-04
최근 ‘선다방’이라는 맞선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선다방은 맞선 프로그램이라지만 사랑의 작대기나, 남자 3호-여자 2호 등이 나오던 기존의 짝짓기 프로그램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신선한 구성으로, 사람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 방송,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기대 반, 의심 반을 담아 벌이는 탐색전
원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나 로맨틱 코미디물은 금서로 지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온 나였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춘 선다방에서는 의외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뇌를 비운 채 방송을 보던 중 문득, 아련하게 숨어 있는 옛 추억이 살며시 떠올랐다. 마음 설레던 그 사람과의 첫 만남 그때... 일리는 없고, 모 회사에서 겪었던 1:1 면접 때 느낀 기억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대 반, 의심 반을 담아 벌이는 탐색전과 미묘한 긴장감이라니.
선다방에서 내가 본 광경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예비 연인이 아니라, 취업을 놓고 분투하는 취업준비생과 면접관의 모습이었다.
연애는 취업 과정과 비슷하다. 취업에는 구직자와 구인자, 두 당사자가 있다. 가끔 길거리 캐스팅이나 스카우트같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서류심사와 면접이라는 과정을 통해 취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 역시 두 명의 당사자가 있다. 사내커플이나 캠퍼스커플 같이 자연스레 둘이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소개팅이나 선 자리를 거쳐 연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구인자는 능력 있는 직원을 뽑고 싶어 한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는 구직자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출신학교, 전공, 학점, 어학 점수 등의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중간지표를 통해 구직자의 능력을 짐작한다. 따라서 스펙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취업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소개팅도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에, 중간지표를 통해 상대방의 매력을 짐작한다. 키, 외모, 신체사이즈, 학벌, 소득수준 등의 스펙은 상대방을 아는데 필요한 사전 정보이다. 따라서 스펙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연애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여기에는 소위 거듭제곱의 법칙이 적용된다. 스펙 수준과 취업 기회는 단순 비례하지 않는다. 능력이 약간만 좋아도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간다. 소개팅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소개팅 등의 연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가져간다. 인기 좀 있는 지인들에게는 소개팅을 시켜 주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였다.
결국 스펙보다 '느낌이 먼저다'
물론 구직자의 스펙이 꼭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구인자들은 스펙을 비롯한 기본 정보가 담긴 지원서류를 통해 지원자를 거른 뒤, 몇 차례에 걸친 면접을 통해 구직자를 꼼꼼히 살펴본다.
소개팅 과정은 어떨까? 사진을 비롯한 기타 프로필로 만나 볼지 그냥 넘길지를 결정한 뒤, 만남과 애프터라는 절차를 통해 그 사람이 ‘내 연인으로 적합한가?’를 판단한다. 서류 심사-면접이라는 취업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보기에 일 잘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좋은 남친/여친, 혹은 배우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남친/여친,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좋은 남친/여친 및 배우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도 막상 시켜보니 일 처리가 별로일 수도 있다. 능력이 좋아도 조직원들과 손발이 맞지 않아 성과가 지지부진할 수도 있다. 반면에 몇몇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어도, 손발을 맞추면 시너지를 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지만 막상 지내보니 별로일 수도 있고, 심지어 흠잡을 곳은 전혀 없는 사람이고 매력도 넘치지만, 이상하게 함께 있을 때, 즐겁지 않을 경우도 있다. 반면에 몇몇 측면에서는 부족하지만, 함께 있으면 괜히 즐겁고 편안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모두 궁합과 관련되어 있다. 연애든 취업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넘쳐도 궁합이 맞지 않으면 괴롭고, 모자라도 궁합이 잘 맞으면 즐겁다. 그리고 서로 간의 궁합은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취업과 연애에서 모두 당사자들 간의 느낌이 중요하다. 면접관들은 대화 도중 ‘아 이 사람이다!’ 싶으면, 설령 다른 구직자들보다 스펙이 더 떨어지더라도 소위 Feel이 오는 사람을 선택한다. 연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와 연인이 되고 싶어 한다.
종국에는 조건보다 ‘느낌이 먼저다.’
취업과 연애는 능력을 채점하는 기준이 아니다
한편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업은 언제 하니?’, ‘남자친구/여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등등의 질문에 시달린다. 때로는 질문 수준을 벗어나 간섭이나 훈계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무능의 증거라며 비아냥대는 사람들마저 있다.
취업에 실패했다 해서 그 사람이 무능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취업에는 운이나 타이밍, 의지, 기타 환경적 요소들이 상당 부분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특수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해외에서 발생한 이슈로 인해 그 분야가 침체기로 돌아서면 그의 취직 전망은 불투명해진다. 본인이 취업보다는 창업이나 다른 업을 선호하기도 한다.
역시 연애를 하지 못했다 해서 그 사람이 매력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연애에도 운, 타이밍, 환경적 요소 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매력적인 남자라도 고립된 지역의 남초 사회에서는 연애하기 힘들다. 딱히 연애에 관심 없거나, 연애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취업 못하냐, 연애 못하냐는 걱정이나 잔소리는 할 필요 없다. 취업 못했다고, 연애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저 사람은 취업도 못했대, 저 사람은 연애도 못한대 라며 비아냥대는 것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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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김치냉장고의 지배자, 분리수거의 달인, 청소기 마스터, 설거지 도사, 그리고 빨래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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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산
릴케와 니체, 프로이트를 사로잡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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