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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 자립은 청년만의 문제일까?

by 이성민 / 2016-09-07

자립은 청년만의 문제일까?


장 피아제 1896 ~ 1980

▲ 장 피아제 1896 ~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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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는 『아동의 도덕판단』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율성은 오로지 상호성과 함께 출현한다. 즉 상호존중이 충분히 강해서 개인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부로부터 느낄 때 출현한다.” 우리는 이 말을 세 번 곱씹어볼 수 있다.

첫째, 피아제에 따르면 자율성에는 반드시 상호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일방적 관계에는 자율성이 없다. 일방적 관계에는 자율성이 아니라 타율성이 있을 것이다. 둘째, 여기서 말하는 상호성은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응보적 상호성이 아니다. 오히려 자율성에 필요한 상호성은 상호존중을 뜻한다. 끝으로, 피아제의 저 말에는 성경을 읽은 사람에게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가 있다. 성경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예수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는 이 말은 서양에서 17세기부터 ‘황금률’이라고 불렸다. 피아제는 자율적인 인간을 황금률을 체득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

황금률은 기독교 성경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불교와 유교를 비롯해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보편 종교에서 발견된다. 가령 『논어』에서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고 말한다. 공자의 이 말도 황금률에 포함된다.
황금률은 당한 만큼 갚는 응보적 정의보다 더 성숙한 정의를 나타낸다. 그런데 피아제는 이 더 성숙한 정의 속에만 자율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아이들은 당한 만큼 갚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다. 은근슬쩍 당한 것에 조금 덧붙여 되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정확히 알아차리고 그만큼 되돌려준다. 피아제는 아이들이 10살이 넘어가면 이 응보적 정의를 버리고, 복수보다는 용서를 택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왜일까? 상대방보다 약해서가 아니다. 아이는 피아제에게 이렇게 정확하게 말한다. “복수에는 끝이 없어.” 피아제는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이제 도덕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상호존중이 충분히 강해서 개인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부로부터 느낄” 수 있는 자율적인 인간이 이제 막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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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도 서양에도 황금률이 있지만, 황금률이 동양과 서양에서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은 동기 간에 서열이 없으며, 사회적 관계도 기본적으로 평등하다. 나이를 따지지도 않으며, 선후배 관계를 따지지도 않는다. 반면 한국은 가정을 넘어 사회에서도 따진다. 즉 한국 사회는 알다시피 수직적 원리가 강고한 사회다. 공자는 바로 그런 사회에서 황금률이 어떻게 들어설 수 있는지, 수직적 관계에 어떻게 공정함이 깃들 수 있는지를 고민한 사상가다. 그래서 그는 서양보다 좀 더 복잡한 황금률 적용 방식을 발견해야만 했다.
『대학』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이 말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논어』에 나오는 황금률을 수직적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가령 선후배 관계를 생각해보자. 선배가 자신을 대하는 어떤 방식이 싫었던 후배=나는 바로 그 방식으로 나의 후배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후배가 자신을 대하는 어떤 방식이 싫었던 선배=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나의 선배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RESPECT IS A TWO WAY STREET

 

수평적 관계에서는 황금률 적용이 나와 너 양자 간의 문제다. 하지만 수직적 관계에서 황금률을 적용하기 위해서 나(=B)는 양자 관계가 아니라 A-B-C 삼자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A를 나의 선배라고 하고 C를 나의 후배라고 할 때, A-B 관계와 B-C 관계는 둘 다 동일한 선후배 관계다. 한국 사람은 황금률을 적용하는 삶을 살기 위해 복잡한 고려를 해야 한다. 나와 선배의 관계, 그리고 나와 후배의 관계, 나와 형의 관계, 그리고 나와 동생의 관계 등등. 한국인의 경우 서양 같은 방식으로 황금률을 적용할 수 있는 관계는 또래나 친구 관계 말고는 없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공적인 관계에서도 결국은 선후배를 따지고 나이를 따지는 일을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3 공자는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에도 황금률을 적용할 수 있으며, 성숙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꼭 공자가 수직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가 수직 관계가 공고한 동양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불화를 없애고 성숙한 관계와 성숙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했을 때 우리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선후배 관계에도 황금률은 적용될 수 있지만, 그곳에 자율성도 있을까? 피아제는 분명 황금률이 있는 곳에 자율성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때 그는 서양의 수평적 관계를 전제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상호존중은 평등한 나와 너의 상호존중이지 선배와 후배의 상호존중이 아니다. 그런데 선배와 후배가 상호존중을 하는 곳에, 이 성숙한 관계에 자율성이 있을까?

우리는 종종 지성의 전당인 대학교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기사를 읽곤 한다. 아마도 그것은 한 해에만 벌어진 일이 아닐 것이고, 오랫동안 내려오는 일종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행 속에서 선배는 후배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후배를 대했을 것이고, 그 후배는 다시 선배가 되어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는 일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멈추고 선후배가 서로 존중을 하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질문은 이렇다. 바로 그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곳에 자율성이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쪽이 선배고 다른 한쪽이 후배인 곳에 자율성이 있을까?
피아제는 자율성과 황금률이 만나는 지점을 예리하게 가리킨다. 그것이 그의 눈의 탁월함이다. 우리는 어쩌면 자율성과 황금률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동양인만이―관계의 곤궁 속에서―이를 수 있는 지점에.
하지만 나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겠다. 다만 수직적 관계가 강고한 문화 속에 상호존중과 황금률은 있을 수 있지만, 자율성은 없다는 것이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가능해지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청년들의 자립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책임과 의무만 많아지는 성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겉보기에 이는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예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 있었을까? 예전에는 한국인이 나이나 선후배 관계나 학번이나 기수를 덜 따졌을까? 물론 예전에는 수직 관계에 지금보다 더 많은 황금률이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황금률은 자율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쩌면 한국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자립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하여 남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점점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경험은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러한 경험은 자율성의 경험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자립”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새롭게 떠안아야 하는 과제를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향유하지 못한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人間)의 가능성을 열어줄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철학자들

 

 

철학 청년 이성민 장피아제 황금률 자율성
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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