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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생각'의 탄생 : 최초의 철학자들

by 안광복 / 2016-01-07

'생각'의 탄생

최초의 철학자들


솔론(Solon)의 모습

▲ 솔론(Solon)의 모습. 미국 국회의사당의 미국 하원 회의실에 걸린 23인의 법전 제전자 부조 중 하나. (wikipedia.org 제공)


“짧게, 올곧은 말을 하라."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허세가 심했다. 아테네의 지도자 솔론이 그를 찾아왔을 때, 크로이소스는 온갖 금은보화를 늘어놓으며 으스대었다. 아부를 모르는 강직한 사람이던 솔론은 왕의 자랑을 당차게 되받아친다

“리디의 왕이시여, 우리 아테네인들은 인생이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서 거들먹거리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행복을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왕의 표정은 굳어져버렸다. 썰렁해진 분위기, 곁에 있던 우화 작가 이솝이 솔론에게 속삭였다.

“솔론 선생님, 왕과 이야기할 때는 되도록 짧게, 좋아할만한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이에 솔론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

“아니지요. 왕과 이야기할 때도 되도록 짧게, 올곧은 말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상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일화다. 솔론은 고대 그리스 시대 7 현인(賢人)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되도록 짧게, 올곧게 말을 하라.”는 솔론의 대답 속에는 철학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오롯이 담겨 있다.”

 

“너 자신을 알라.” _킬론(Chilon)

 

“극단을 삼가라.” _클레오불루스(Cleobulus)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_피타코스(Pittakos)

 

“대부분의 인간은 악한 존재이다.” _비아스(Bias)

 

고대 그리스 시대 일곱 명의 현자들이 남긴 명언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짧고 강렬하다. 왜 그들은 간단하고 굵게 이야기했을까? 그 이유는 전달 수단이 마뜩치 않았다는 점에도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기록 수단도 변변치 않은 상황, 길고 정교하게 주장을 펼쳤다가는 뜻한 바가 제대로 전해지기 어려웠을 테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필요 없는 말은 안 할수록 좋다는 믿음에 있었을 것이다. 진리는 단순명료하다. 굳이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입에 발린 말로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말고, 상대가 꼭 들어야 할 진리를 이야기 하라. “되도록 짧게, 올곧은 말을 하라.”는 솔론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다.


그리스의 7현인

▲ 그리스의 7현인.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에 수록된 목판화. 1493년.(wikipedia.org 제공)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


7현인 가운데는 탈레스(Thales, B.C.624~545)도 있다. 그는 ‘최초의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해오는 그의 주장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세 마디뿐이다. 도대체 이런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로 일컫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레스는 지금의 터키 땅에 있던 그리스 식민 도시인 밀레투스 사람이다. 밀레투스는 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도시로 온갖 외국인들이 섞이던 곳이었다. 아마도 그곳 분위기는 지금의 뉴욕과 비슷할 듯싶다. 교류가 활기차게 이루어지는 곳에는 자유로운 생각이 꽃피곤 한다. 대대손손 모여 사는 시골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방식”이라는 한 마디는 새로운 제안을 뭉개버릴 만큼 힘이 세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전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새로 생긴 식민 도시에는 전통이랄 게 없다. 누가 더 옳은지는 전례와 관습이 가려주지 못한다. 토론과 설득, 행동과 결과를 통해 드러날 뿐이다. 철학도 다르지 않다. 철학자들에게는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사실은 설득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가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분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허점 없는 논리와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탈레스는 이 모두를 해냈던 사람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일식(日蝕)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 흐름에 따라 그림자 길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기도 했단다. 탈레스에게는 정확한 근거와 논리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 점이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로 꼽는 이유다.

 


탈레스(Thales)의 모습

▲ 탈레스(Thales)의 모습. 에르네스트 월리스(Ernest wallis),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Illustrerad Verldshistoria)』에 수록된 일러스트, 1875년.


피지스의 아르케


더 중요한 점은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처음으로 ‘피지스(physis)의 아르케(archē)’를 밝히려 했던 사람이다. ‘피지스의 아르케’는 우리말로 ‘세상 만물의 근본 원리’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짐승은 눈앞에 닥친 일만 신경 쓸 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따져 묻지 못한다. 예컨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짐승들은 허둥지둥 피할 곳을 찾을 따름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다르다. “왜 비바람이 칠까?”를 물으며 이를 이겨낼 방법 또한 찾아보려 한다.

 

원인을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세상 만물의 근본 원리”를 깨우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예측할 수 있겠다. 탈레스가 ‘피지스의 아르케’를 캐물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중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399)도 다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다운 처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다녔던 사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숱하게 생긴다. ‘인간다움의 원리’를 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일은 없다. 나아가, 옳지 못한 일에는 자신 있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_비아스(Bias)

 

탈레스에게는 아마도 ‘왕따 기질’이 있었던 듯하다. 어느 날, 그가 발을 헛디뎌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느라 넋이 빠진 채 걷고 있었던 탓이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트라키아(Thracia: 역사, 지리적으로 발칸반도의 남동쪽) 하녀가 깔깔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신다면서 정작 눈앞의 고난은 못 보시는군요!” 이 말을 듣고 탈레스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진리를 찾는다며 거리를 쏘다니며 토론을 벌이던 소크라테스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힘 있는 자들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할 때에도, 소크라테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들의 당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묻지 않아도 분명하겠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 내 앞에 당장 닥친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들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을 달게 받아들였다.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들의 삶은 눈앞의 손익에 일희일비하는 여느 사람들의 생활과는 이른바 ‘클라스’가 다르다.

 

심지 굳고 단단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물론,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탈레스의 주장은 틀렸다. 소크라테스가 옳다고 믿었던 인생의 길이 과연 맞았는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를 놓고 언제든 논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 칼 포퍼(K.Popper, 1902~1994)는 이를 두고,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라 부른다. 잘못된 신앙은 반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IS 같은 테러집단이 황당하고 무서운 이유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진리를 좇으면서도 늘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기꺼이 대화하려 한다. 그러는 가운데 오류는 점점 사라지고 진리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겸손은 철학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솔론은 겸허했지만 의연했다. 그는 사탕발림의 말 대신 상대가 꼭 알아야 할 지혜를 주저함 없이 펼쳤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철학자가 보여준 삶의 자세와 우리시대 철학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는 다르지 않다. 현실에 휘둘리지 않는 심지 굳고 단단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최초의 철학자들을 따라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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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안광복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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