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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맞춤법 폐지론에 답한다

- 국가가 모든 걸 정하기보다 시민들 교양 존중하고 다양성 인정을 - 이달의 답변 -

by 변정수 / 2021.10.08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성문화된 표준어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알타리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총각무의 잘못’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특정 사전의 주장이 아니라 아예 표준어 규정에서 그렇게 못 박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그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전 편찬자가 있다 한들 어떻게 버젓이 성문 규범을 벗어나는 풀이를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폭력입니다. 나아가 국가가 주체라는 점에서 ‘국가 폭력’입니다.



성문화된 한글맞춤법을 없애자는 김진해 선생님의 논지에 큰 방향에서 동의합니다. 더구나 한국어를 공부하던 풋내기 대학생 시절부터, 또 30년 남짓 출판편집자로 현장에서 일하면서, 규범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주류의 분위기에 의문을 표하거나 미력하나마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처지인지라 새삼 든든한 우군을 만난 듯해서 반갑기도 합니다. 우선 이 점을 분명하게 전제하겠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으로 좀 더 정밀하게 들어가 보면, 방점을 찍는 대목이 조금은 엇갈리는 사소한 이견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김 선생님의 견해에 반대한다기보다는 보완을 꾀한다는 취지에서, 제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소중한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이쁘다’는 왜 안 돼?... 맞춤법보다는 표준어 규범이 문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 책자 표지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 책자 표지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정한 소릿값을 가진 말을 특정한 글자에 대응시키는 규칙’, 즉 철자법(맞춤법)의 문제와 ‘소릿값이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언어 표현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구분해서 접근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령 ‘꽃이 예쁘다’라는 말이 있을 때, 이 말을 ‘꽃이’로 적을지 ‘꼬치’로 적을지, 혹은 ‘예쁘다’로 적을지 ‘옛브다’로 적을지 ‘옙브다’로 적을지가 전자의 문제라면, ‘예쁘다’라고 쓰는 게 옳을지 ‘이쁘다’라고 쓰는 게 옳을지가 후자의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대중은 양자를 서로 구별하지 않고 ‘맞춤법’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두 문제는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수용 양상도 사뭇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출판편집자들이 모여들어 실무상의 고민을 주고받던 사이트 ‘북에디터’의 질문답변 게시판에 올라온 어문규범 관련 질문 가운데, 굳이 분류하자면 ‘맞춤법 규정’과 관련된 질문은 (띄어쓰기 문제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 관련 질문입니다’라고 제목을 붙인 게시물조차도 내용을 보면 맞춤법 규정이 아니라 표준어 규범과 관련된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언중들이 성문화된 규정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고 할 때, 그것은 대부분 표준어 규정(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독단적 권위)과 관련된 것이지 철자법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한 방증일 수 있습니다. 또는 한국어 철자법의 관행은 (사이시옷 등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대단히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어 그 관행이 성문화된 규범으로 표현되든 않든 대다수 대중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뜻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정작 선생님이 지적하시는 문제의 ‘주범’은 성문화된 표준어 규정과 국가기관이 편찬 주체라는 권위에 기대 대중들에게는 사실상의 표준어 규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이지 ‘성문화된 철자법 규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맞춤법은 ‘규범’이지만 표준어는 규범이 아니라 ‘정보’라고 강조하면서 이 둘을 구별해서 접근하자고, 일반인들보다 어문 규범에 한결 예민한 출판편집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제안해 왔습니다. 여기서 맞춤법이 ‘규범’이라는 것은 단지 성문화된 맞춤법 규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할 때는 편의상 현행 규정에 기대고는 있습니다만, 설령 선생님 주장대로 성문 규정이 사라진다 해도 오랜 역사에 걸쳐 축적된 표기 관행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결국 현행 규정의 조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되지 않을까 감히 짐작합니다.



언중들에게 영향 미치는 건 맞춤법 규정 아닌 관행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의 맞춤법 규정 14항/5항/ 띄어쓰기 관련 규정 일부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의 맞춤법 규정 14항/5항/ 띄어쓰기 관련 규정 일부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사실 대다수의 언중은 맞춤법 규정 14항에서 ‘체언과 조사를 구별해서 적으라’고 했기 때문에 ‘꼬치’로 소리 나는 말을 ‘꽃이’라고 적는 것도 아니고 맞춤법 규정 5항에서 ‘한 단어 안에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겹글자로 적으라’고 했기 때문에 ‘옛브다’나 ‘옙브다’가 아닌 ‘예쁘다’로 적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글자를 배운 이래로 무수히 많은 ‘꽃이’와 ‘예쁘다’를 접해 왔기 때문에 그저 직관적으로 그렇게 쓰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는 것은 설령 저 성문 규정들이 사라진다 해도 ‘꼬치 옙브다’처럼 관행에 어긋나는 표기가 언중들에게 용인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탈적 표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대다수는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을) 성문 규정에 얽매여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안정적인 표기 관행에 지속반복적으로 접촉했던 경험에 근거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어문 규범과 관련해서 현장 편집자들을 가장 골탕 먹이고 있는 띄어쓰기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령 ‘밥을 먹는다’를 ‘밥을먹는다’라고 쓰거나 ‘밥을 먹 는다’라고 쓴다면 띄어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고 눈총을 받기에 십상이겠지만, 그것이 성문 규정에 근거한 타박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사실 띄어쓰기에 자신 없어 하는 일반 대중들도 대부분의 띄어쓰기는 안정된 관행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잘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저 어떻게 써야 할지 가늠이 안 되어 곤란을 겪는 일이 잦다 보니 마치 띄어쓰기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양 일종의 ‘착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띄어쓰기가 헷갈리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합성어 인정 여부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표기 규범으로서의 띄어쓰기 규정이 아니라 표준어 사정(査定; 표준어에 포함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현행 규정은 편의에 따라 붙여 쓸 수도 있고 띄어 쓸 수도 있다고 융통성의 여지를 꽤 폭넓게 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는 대다수 편집자가 골치를 썩이는 띄어쓰기 문제의 대부분은 ‘규범(성문 규정)에 들어맞는가 어긋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독자에게 얼마나 친절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니 엉뚱한 규범 강박에서 벗어나 표현의 적절성과 의사소통의 효율성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예컨대 맞춤법 규정 50항에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성골수성백혈병’도 허용한다고 예시되어 있지만, 의료업 종사자나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서적이 아닌 이상 ‘만성골수성백혈병’을 택하는 편집자는 없을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오히려 이런 띄어쓰기를 보면 규범(관행)에 어긋난 띄어쓰기라는 지적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지점은 맞춤법 규정이 이런 말들조차 한 단어처럼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하는 취지가 무엇인가입니다. 극소수의 예외라도 그편이 더 효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를 규범이 가로막지 않겠다는 좋은 취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더 독자들에게 수용 가능성이 큰 말이라면 이미 성문 규범의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성문 규정으로서 띄어쓰기 규정이 있든 없든 이미 띄어쓰기의 관행은 언중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과도한 권위... 경쟁 없는 사전시장도 문제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 상, 중, 하』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선생님은 예컨대 “‘지난주, 지난달, 지난해, 지난여름’은 붙여 쓰면서 ‘이번 주, 이번 달, 이번 해,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는 왜 띄어 써야 하는가?”를 물으셨지만, 이것이 맞춤법의 띄어쓰기 규정에서 비롯된 문제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저 표준국어대사전이 앞의 말들은 합성어로 인정하고, 뒤의 말들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표준국어대사전에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한을 부여했느냐는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 맞춤법으로 상징되는 어문 규범 일반을 싸잡아 막연하게 불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애당초 표준국어대사전이 그런 권위를 가지는 것을 승인하지 않기에, “아뇨, 꼭 그래야 한다는 성문 규정은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특정 사전 편찬자들의 의견일 뿐이고, 다른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립니다. 그 다른 의견을 표출할 통로가 사실상 없거나 매우 좁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업출판사들이 하나둘 사전 편찬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은 넘은 일 같습니다. 지금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표준국어대사전과 교차 검색이 가능한 사전은 고려대한국어사전이 유일합니다. 저는 더 다양한 사전이 경쟁해야 한다고,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이 존재 그 자체로 그 길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성문화된 표준어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알타리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총각무의 잘못’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특정 사전의 주장이 아니라 아예 표준어 규정에서 그렇게 못 박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그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전 편찬자가 있다 한들 어떻게 버젓이 성문 규범을 벗어나는 풀이를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폭력입니다. 나아가 국가가 주체라는 점에서 ‘국가 폭력’입니다.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국립국어원 허락 없인 표준어 인정 안 돼



2011년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짜장면’

2011년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짜장면’



표준어 규정이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알타리무’와 함께 제가 즐겨 예로 들던 ‘이쁘다’ ‘-길래’ ‘까탈스럽다’ 등이 최근 10년 사이에 줄지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문제는 특정한 어휘가 표준어로 인정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도대체 그걸 왜 국립국어원이 결정하느냐입니다. 그리고 전향적인 복수표준어 인정은 문제의 본질을 매우 효과적으로 은폐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쓰는 말이라도 국립국어원이 인정해야 표준적인 말이 되고, 이 국가기관의 인정을 못 받으면 표준적인 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건 민주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억설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대신 그 예산을 다양한 사전 편찬에 배분해 지원함으로써 이미 형해화된 민간의 사전 편찬 역량을 다시금 북돋고 사전들 사이의 경쟁과 상호 보완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기초 위에서만, 말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가려 쓰고 골라 쓰는 것은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적절성과 의사소통의 효율성 문제라고 대중들을 설득하고 말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규범과 정보를 구별하는 것이 시민의 ‘교양’으로 자리 잡게 되면, 그제야 성문화된 철자법에서 언중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행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는 일부 문제들도 전향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사이시옷 문제가 있고, 나아가 언뜻 안정적인 관행이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 두음법칙 표기 문제도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남한과 북한의 맞춤법이 판이하게 다른 점으로 바로 이 두 문제를 꼽을 수 있기도 합니다. 남북한의 인적・물적 교류가 지금보다 활성화되고 언어적 접촉이 활발해진다면, 반세기 이상 축적된 양쪽의 관행이 충돌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 충돌 과정에서 새로운 관행이 형성되고 정착될 터인데, 고압적인 성문 규정이 그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겠지요.


저는 현행 두음법칙 표기가 직관적으로 안정돼 보이는 것은 한자 혼용에 익숙한 세대에 국한된 편협한 습속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한글 전용 세대에게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맞춤법 체계 전반을 조망하더라도, 이를테면 ‘꼬치’ ‘꼰만’ ‘꼬또’ 등으로 소릿값이 달라지더라도 표기를 ‘꽃’으로 고정함으로써 의미 파악을 용이하게 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예컨대 ‘이익’보다 ‘리익’이 ‘편리’와의 유연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유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것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뀔 일은 아니지만, 북한식으로 표기된 문헌을 자주 접하다 보면 그편이 더 편하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아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뜻입니다. 성문 규정이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는다면 폐지 압력을 더 크게 받게 될 것입니다.



규정과 직관의 충돌, 대략 난감 ‘사이시옷’은 복수 표기 허용을



사이시옷 문제는 그보다 복잡합니다. 예컨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에서 현행 규정을 정확히 따르자면 ‘도낏자루’라 표기하는 게 옳겠지만, 이걸 정확하게 표기하는 사람도 매우 드물뿐더러 규범에 어긋나게 표기한들 그걸 짚어내는 이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규정대로라면 ‘개수’ ‘대가’로 써야 하는 말을 자꾸만 ‘갯수’나 ‘댓가’로 쓰고 싶어지는 직관의 반란이 자주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싯구’가 있지요. 이걸 규정대로 ‘시구’라고 쓰면 아예 가독성이 뚝 떨어져서 ‘싯구’로 고치고 싶어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이런 딜레마와 관련해 편집자들 사이에 도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수놈’ ‘수소’는 너무 어색하고 그렇다고 ‘숫놈’ ‘숫소’라고 대놓고 규정을 거스르기도 여의치 않으니 아예 ‘수컷’ ‘황소’로 고쳐서 고민의 여지를 없애는 꼼수를 발휘하는 통에 한국어 문어에서 ‘수놈/숫놈’ ‘수소/숫소’라는 어휘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잇소리 표기를 아예 없애버린 북한식의 해법도 썩 마땅치는 않습니다. 북한식 표기 관행과 접촉이 늘어난다고 뾰족한 해법이 찾아질 성싶지는 않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어쩌면 사잇소리 표기는 일률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예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단어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언중이 직관적으로 더 선호하는 표기를 따르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수 표준어를 인정하듯이 복수 표기를 인정하면 언중들의 대세가 형성될 것이라 낙관하는 편입니다만 대세가 형성되지 않고 두 표기가 공존한다 해도 그조차도 언중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지요. 가령 ‘막내동생/막냇동생’ ‘머리말/머릿말’ ‘장마비/장맛비’ 같은 말들에 두 표기를 모두 허용한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에서 'light'를 ‘lite’로 쓰는 이들이 많아지자 권위 있는 사전에도 버젓이 ‘lite’가 표제어로 올랐지만, 그 때문에 무슨 혼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여러 개의 선택지 가운데는 반드시 ‘정답’이 있고 또한 그 정답은 딱 ’‘하나’뿐이라는 거야말로 사지선다형에 길들여진 타성은 아닐지가 짚어지는 대목입니다.



층위 겹쳐 복잡한 어문 규범, 일괄처리보다 사안별 대처 필요



그리고 그건 외래어 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 ‘디지털’이든 ‘디지탈’이든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카페’든 ‘까페’든 더 많은 사람이 쓰는 쪽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고, 혹은 둘 또는 그 이상의 표기가 공존한다 해도 문맥 속에서 무리없이 뜻을 파악할 수 있다면 오로지 하나의 표기만을 규범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외래어 표기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규범의 진정한 필요성은 이런 외래어들을 표기하는 것과는 다른 데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맥 속에서 뜻이 드러나지 않는 말들, ‘자기동일성’이 확인되어야만 의미 파악이 온전해지는 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명, 인명 등의 고유명사는 일관된 원칙에 따라 표기를 통일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둔한 탓인지, 중학생 때부터 익히 접했던 ‘모택동’(당시 대중매체의 표기)과 ‘마오쩌둥’(교과서의 표기)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대학생이 될 무렵에서야 알아채고 허탈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추리자면, 어문 규범에도 그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들을 한몫에 싸잡기보다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아 ‘정밀 타격’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각개 격파’가 능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각 사안들 사이의 유기적인 연관을 놓치지 않도록 총체적인 방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김진해 선생님과 제 생각 사이에 이견이 있다기보다는 김 선생님이 ‘전략’을 제시했다면 제가 세부적인 ‘전술’로 화답한 셈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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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수
변정수
출판평론가
토마토출판사, 인물과사상사, 삼인 등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서울북인스티튜트 등에서 출판 편집을 강의하면서 지식 산업의 후속 세대 재생산을 위한 고민에 주력해 왔다. 『편집에 정답은 없다: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 에세이』로 2009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으며, 강의록 『한판 붙자, 맞춤법: 현장 실무자를 위한 어문규범의 이해』를 비롯하여 비평집 『출판생태계 살리기: 자기기만과 무기력을 넘어』, 『그들만의 상식』, 『만장일치는 무효다』, 『상식으로 상식에 도전하기』와 에세이집 『나는 남자의 몸에 갇힌 레즈비언』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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