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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철학 영화 인물

인간은 어떻게 해야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가?

- 영화 〈블랙스완〉과 니체의 ‘정신의 세 가지 변화’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by 박찬국 / 2021.09.29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영화를 두 번째 보았을 때, 비극적인 작품이 아닌, 치열한 투쟁을 통해 사회와 어머니의 꼭두각시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를 찾은 뒤 행복한 얼굴로 죽어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사자의 정신’에서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니체의 사상을 떠올렸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릴 적부터 가정이나 학교 등을 통해서 주입된 사회적 규범과 가치에 따라서 살 때가 더 많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규범과 가치는 우리 자신이 정립한 것이 아니라 ‘익명의 세상 사람(das Man)’이 정립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 사람의 가치에 충실한 삶을 비본래적인 실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비본래적인 실존을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낙타의 정신’이라고 부른다.



‘낙타의 정신’, 모범생으로 사육되던 발레리나



〈Black Swan〉 : A Film by Darren Aronofsky. With Natalie Portman, Vincent, CasselMila Kunis.

영화 〈블랙스완〉 포스터 (이미지 출처: flickr)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나탈리 포트만 주연으로 2010년에 개봉했던 〈블랙 스완〉은 ‘낙타의 정신’으로 사육되던 발레리나가 참된 자기를 찾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를 ‘낙타의 정신’으로 사육한 것은 바로 어머니(바버라 허시 분)다. 원래 발레리나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어머니는 니나를 통해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려는 욕심 때문에 니나가 발레에만 매진하게 한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순종하는 니나를 ‘내 착한 딸(My sweet girl)’이라고 부르면서 예뻐하지만, 니나가 자신에게 조금만 반항해도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다. 어머니의 이러한 철저한 관리 감독 아래서 니나는 발레의 규범을 완벽할 정도로 소화한 ‘모범적인’ 발레리나가 되었다.


그런데 발레단 단장 토마스(뱅상 카셀 분)가 〈백조(白鳥)의 호수〉를 흑조(黑鳥)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고 싶어 하면서, 니나의 삶은 격렬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니나를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하는 주인공으로 발탁한 토마스가 니나는 착하고 가녀린 백조 역으로는 완벽하지만, 거리낌 없이 왕자를 유혹하는 관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흑조 역으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고 끊임없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낙타의 정신’은 이중의 두려움에 시달린다. 사회적 규범과 가치뿐 아니라 그에 반발하면서 분출을 원하는 자신의 욕망까지도 두려워한다. 사회적 규범과 가치에 대한 니나의 두려움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자신의 욕망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중의 두려움 속에서 살면서 니나의 얼굴은 항상 불안과 초조로 그늘져 있다. 이로 인해 니나가 받는 스트레스는 손톱으로 등을 상처가 날 정도로 긁는 자해 행위까지 할 만큼 극심하다.


니나 내면의 욕망과 자유로움과 패기를 상징하는 인물이 릴리(밀라 쿠니스 분)다. 릴리는 아직 발레의 규범을 완벽하게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을 분출하는 춤사위로 토마스를 매료시킨다. 릴리는 니나의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니나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도록 인도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릴리는 니나가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망과 자유로움과 패기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니나의 욕망과 자유로움 그리고 패기를 분출하도록 부추기는 또 다른 사람은 단장인 토마스다. 토마스는 심지어 니나에게 자위를 해 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토마스는 니나에게서 흑조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았으며 이를 일깨우려고 하는 것이다.



‘사자의 정신’, 억압적인 기존 규범에 반항하게 해



영화 〈블랙스완〉 스틸 이미지 (이미지 출처: flickr)

영화 〈블랙스완〉 스틸 이미지 (이미지 출처: flickr)



이렇게 릴리와 토마스의 인도를 받아 니나는 ‘낙타의 정신’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시작한다. 이러한 투쟁은 기존의 가치와 규범을 상징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반항하는 정신을 니체는 ‘사자의 정신’이라고 부른다. 니나는 자위를 하고, 릴리를 따라서 간 나이트클럽에서 술과 마약을 한다.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를 즐기고 릴리와 동성애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해버린 니나를 보며 어머니는 당혹해하면서 다시 온순한 낙타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니나는 격렬하게 반항한다. 니체는 낙타를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용에 비유하고 있는 바, 어머니에 대한 니나의 투쟁은 ‘용에 대한 사자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어머니라는 용에 대해 사자가 된 니나는 ‘나는 원한다’라고 외치면서 용감하게 발톱을 세운다.


이렇게 사자가 되어 어머니와 투쟁하면서도 니나는 쉽게 완전한 흑조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릴리가 흑조 역을 맡겠다고 나서자, 니나는 릴리를 깨진 유리 조각으로 찔러 죽인다. 하지만 이는 환상이었고 사실 니나는 자신을 찌른 것이었다. 여기서 니나가 찌른 릴리는 아직 니나 내면에 존재하던 ‘자신은 결코 흑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열패감’이라고 할 수 있다. 열패감을 완전히 극복한 니나는 완벽하게 흑조를 연기한 후, “그것을 느꼈어요. 완벽함을”이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얼굴로 죽어간다.



‘아이의 정신’, 자신의 욕망과 가치의 주인공으로 거듭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 장희창 옮김 | 민음사

철학자 니체(좌)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교보문고)



이렇게 완벽하게 흑조가 된 니나를 우리는 ‘아이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할 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 ‘사자의 정신’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정신을 니체는 ‘아이의 정신’이라고 부른다. ‘낙타의 정신’이 이중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이고, ‘사자의 정신’이 부정하고 투쟁하는 정신이라면, ‘아이의 정신’은 긍정하는 정신이다.


‘아이의 정신’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한다. 이렇게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마약중독이나 섹스중독에 빠지는 것처럼 단순히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아이의 정신’이 추구하는 욕망은 기존의 가치와 규범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의 건강한 삶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치와 규범을 창조한다. 이러한 ‘아이의 정신’을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주권적인 개인’이라고 부른다. ‘주권적인 개인’은 자신의 욕망과 가치의 주인으로 사는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인생을 아이처럼 유희하듯이 살아간다.



자기완성의 정점에서 행복하게 자살한 여주인공, 비극적인가



〈블랙 스완〉은 단순한 발레 영화가 아니라, 니나라는 하나의 인간이 발레를 매개로 하여 참된 자기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완벽을 추구하다 광기에 빠진 한 발레리나를 그렸다고 생각했고 연민에 사로잡혔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완벽을 향한 강박에 사로잡혀 정신 분열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생을 끝마치는 발레리나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작품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두 번째 보았을 때, 비극적인 작품이 아닌, 치열한 투쟁을 통해 사회와 어머니의 꼭두각시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를 찾은 뒤 행복한 얼굴로 죽어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사자의 정신’에서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해 나간다‘ 는 니체의 사상을 떠올렸다.


물론 이 영화에는 정신 분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는 자기완성을 향해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는 행복이란 안락함이 아니라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니나는 자신의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온갖 저항을 완전히 극복하고 자기완성의 정점에 도달하여 행복하게 죽었던 것이다.



〈블랙스완〉 영화평에 자주 인용된 서구의 철학자들. 프로이트, 융, 라캉의 모습(왼쪽부터) (이미지 출처: Wikimedia, Pinterest)

〈블랙스완〉 영화평에 자주 인용된 서구의 철학자들. 프로이트, 융, 라캉의 모습(왼쪽부터) (이미지 출처: Wikimedia, Pinterest)



〈블랙 스완〉은 거의 고전적인 명작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기에, 국내외에서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글들은 프로이트이나 융 혹은 라캉의 심리학을 통해서 해석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프로이트든 융이든 라캉이든 니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니체를 통해서 이 영화를 해석하는 글이 있을 법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해외에서는 이 영화를 니체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개념들을 원용하여 해석한 글이 있었다. 백조로서의 니나를 ‘아폴론적인 것’에, 흑조로서의 니나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상응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온순하고 가녀린 백조로서의 니나를 니체의 ‘아폴론적인 것’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니체가 말하는 ‘아폴론적인 것’은 백조처럼 연약하고 주체성을 결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인 것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온순하고 가녀린 백조로서의 니나를 아폴론적인 것에 비유하기보다는 낙타의 정신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인간은 어떻게 해야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가?

- 지난 글: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벗어남과 떠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만나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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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 교수 사진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 비교를 중요한 연구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 『니체와 불교』, 『내재적 목적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니체와 하이데거』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는 『니체 I, II』, 『아침놀』, 『비극의 탄생』, 『안티 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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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영화를 통한 철학적인 관점에서 다룬 글이라 정말 감명깊게 봤습니다.

    신성민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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