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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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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거짓 없는...공자의 ‘사무사’(思無邪)를 떠올리다.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by 임건순 / 2021.02.18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위정편에 나오는 저 공자의 말을 어떻게 어떤 사례로 설명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문득 예전에 보았던, 계속 미소와 실소가 나오게 했던, 예쁜 장면들이 많았던 저 영화가 떠올랐다. 정말 순수한 인간 정감이 잘 표현된 영화라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데 밖에서 논어 강의를 하면서 공자가 말한 시의 본질, 공자의 예술정신을 알고 싶으시면 저 영화를 보시라고......



호젓한 달 아래, 상남자와 초능력 소녀



등려군 <월량대표아적심> 앨범커버(이미지 출처 : Discogs)

등려군 <월량대표아적심> 앨범커버(이미지 출처 : Discogs)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라는 노래가 있다. 한국인들은 대만 가수 등려군의 대표곡이자 영화 첨밀밀을 대표하는 OST로 많이 기억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OST로 사용된 영화는 따로 있다. 지금 소개하는 <화기소림>(花旗少林, Treasure Hunt, 1994)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호젓한 달 풍경 아래 많은 일이 벌어진다.


<영웅본색>의 상남자 주윤발, 그리고 그윽한 매력을 대표하는 오천련이 주연인 영화로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만든 유진위 감독 작품이다. 좋은 의미에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방긋하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큰 인기를 끌었던 것 같지도 않고 지루하게 보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역설적으로 그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장면과 어설픈 특수효과 때문에 인상 깊게 기억하는 영화이다.



화기소림 영화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화기소림> 영화 포스터(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주윤발이 중국계 미국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CIA 정보요원인 장정이라는 인물로 중국에 잠입해서 국보를 빼내오라는 지령을 받고 중국에 가게 된다. 중국 내에서 탈출을 원하는 자들이 국외로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제공해온 대장 동령과 접선하라는 지시를 받은 그는 동령을 만난 이후 소림사로 가게 된다. 소림사에 중국의 국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국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바로 초능력 소녀 메이(오천련). 초능력 연구소에 있던 그녀가 소림사에 사실상 감금되어 있었는데 주윤발의 임무는 오천련을 미국으로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주윤발은 풋풋하고 순진한 그녀의 매력에 금방 빠져들고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이 된다. 소림사 주지가 훼방꾼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자승 청량을 비롯해 소림사의 다른 승려들이 그들의 남녀상열지사를 돕는데 참 예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메이의 초능력으로 한겨울인데도 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 장면, 주윤발이 오천련을 등에 업고 하늘을 나는 장면, 연애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하고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 장면 등등. 뭐랄까 때 묻지 않는 예쁨과 순수함이랄까 그런 장면들이 참 많았는데 주윤발과 오천련을 돕는 동자승의 모습이 그런 순수함과 때 묻지 않은 선함과 아름다움이 연출되는 것을 돕는다. 1994년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어설퍼 보이는 특수효과도 그런 순수함이 잘 드러나고 느껴지도록 도왔고.



화기소림 스틸컷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화기소림> 영화 스틸컷(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소림사 안 숲속에서 그들은 첫 데이트를 나눈다. 메이(오천련)가 자기 사연을 털어놓는데 본래 초능력 연구소에서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고 자신은 이곳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데 이 힘의 근원을 강하게 하려면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힘을 키우려면 중개 혹은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주윤발의 손을 잡는데 오천련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주윤발은 내 손을 항아리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때 오천련은 바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면서 주윤발의 왼손을 크게 부풀어 오르게 하는데 항아리처럼 커진 왼손을 본 주윤발은 록키와 싸워도 이길 수 있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오천련의 초능력을 믿게 된 주윤발은 나뭇가지를 꺾어와 여기에 꽃을 피울 수 있겠냐고 묻고 메이는 바로 가지에 꽃을 피워 보인다. 겨울인데도 나무에 꽃이 핀다. 그런데 그들의 데이트는 오래가지 못한다. 늘 그렇듯 훼방꾼이 등장한다. 오천련을 찾는 스님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 둘은 도망을 가는데 오천련의 힘으로 아주 하늘까지 날아가 버린다. 그때 초능력 소녀의 힘을 강하게 만든 매개체는 무엇이었을까? 주윤발이라는 남자였을까? 아니면 그 순간만큼은 그저 순수했을 두 사람의 마음과 감정이었을까?


“내 첫사랑의 경험은 책 속의 칭칭과 비슷해요. 모두 애정 표현이 부족한 사람을 좋아했지요. 이 페이지는 만궁에 대한 칭의 마음을 표현한 것들이에요. 그녀는 만궁이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아늑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죠. 나도 칭칭과 같은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책의 몇 페이지를 제가 가졌어요, 당신이 이걸 보고 내 마음을 알았으면 해서죠, 곧 책을 다 읽어요, 결국 끝에서 칭칭과 만궁이 함께하는지 궁금해요”


오천련이 고백을 했다. 주윤발이 시장 서점에서 산 책을 읽어보라고 오천련에게 선물해줬는데 책의 중간 부분 몇 페이지를 찢어서 다시 돌려줬고 그러면서 저렇게 고백을 한 것이다. 주윤발은 궁금한 나머지 시장 서점에 가서 해당 부분을 읽게 되는데 오천련의 바람대로 그 둘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면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 뭘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까?



공자가 말하는 시의 본질은 ‘순수한 마음’



공자 이미지

공자 이미지



유가(儒家)의 종사1)였던 공자는 단순한 꼰대가 아니었다. 음악광이었고 예술 애호가였다. 특히 그는 시를 사랑했다. 공자는 예와 시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시를 사랑한 공자는 시경(詩經)이라는 경전을 편집, 완성했다고 한다. 공자는 시경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시삼백(詩三百)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왈(曰) 사무사(思無邪)


논어 위정(爲政)편에 등장하는 말인데 공자가 시경에 등장하는 시 삼백 개를 요약해보니 생각에 거짓이 없다,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 요새 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한통쳐 보자니 마음에 나쁜 것이 없다, 삿된 것이 없다고나 해야 할까? 공자의 이 말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저마다 엇갈렸다. ‘삿되지 않고 거짓이 없는 작자의 마음을 시들이 표현했다’, 혹은 ‘시를 읽으면 독자의 마음이 거짓됨과 사특함이 사라진다’, 혹은 ‘공자가 사특함이 없고 법도에 어긋나는 내용들이 담긴 시를 제외하고 순수한 인간 정감을 노래한 것들만 모아서 시경을 만들었다, 즉 편집의 제1 원칙이다’ 등등. 이렇게 말들이 분분한데 어떤 해석을 따르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순수한 감정, 삿되고 거짓됨이 없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지은이의 그런 마음이 담겨 있든, 독자가 읽으며 그런 마음을 가지든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

1) 종사(宗師) : 가장 존경받는 사람

 

늘 위정편에 나오는 저 공자의 말을 어떻게 어떤 사례로 설명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문득 예전에 보았던, 계속 미소와 실소가 나오게 했던, 예쁜 장면들이 많았던 저 영화가 떠올랐다. 정말 순수한 인간 정감이 잘 표현된 영화라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데 밖에서 논어 강의를 하면서 공자가 말한 시의 본질, 공자의 예술정신을 알고 싶으시면 저 영화를 보시라고 말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사랑한 시의 본질은 저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탁의 흔적 없는 자연미, 맹호연의 시들



맹호연 이미지

맹호연 이미지



봄잠에 새벽이 온 걸 깨닫지 못했는데

곳곳에 새 우는 소리 들리는구나

어젯밤 비바람 소리 들었는데

지금쯤 얼마나 꽃잎이 떨어졌을까

 

‘춘효’(春曉)라는 시이다. 청각만으로 시상을 전개하는데 능한 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맹호연으로 이 시를 쓴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청각으로 노래하고 시상을 읊어야 예술적 성취를 더 인정해준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청각이 주가 되어야 자연스러운 맛이 있고 인위적인 면이 보이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맹호연의 시가 그러한데 평이한 글자, 보이지 않는 수식과 기교, 청각 중심의 표현. 담백하게 생각나는 대로 쓰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절대 설명하지 않으면서 독자가 절로 느끼게 했던 예술가가 바로 맹호연이다. 그의 시를 공자처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바로 발호자연(發乎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 스스로 나온 시와 같다는 것이다. 조금도 인위적이지 않고 조탁의 흔적이 없는 시라는 찬사인데 발호자연을 다른 말로 자명(自鳴)이라고 한다. 스스로 시가 울린다는 뜻이다. 발호자연과 자명을 위해서는 진부한 말들의 나열, 언어의 유희는 있어서는 안 되고 애초에 만드는 이가 대상에 마음을 비우고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늘어놓은 비단 같은 시가 아니라 갓 피어난 연꽃 같은 시가 나올 수 있다. 두보도 있고 백낙천도 있고 이백도 있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예술세계를 보여줬던 시인이 맹호연이기에 그를 늘 최고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 <화기소림>을 보노라면 맹호연 같은 자연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억지가 없고 작위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없고 따로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없고 그냥 절로 미소 짓게, 절로 느끼게 해주기에...... 시 삼백 일언이폐지라는, 공자가 말한 시의 정신 말고도 맹호연의 시 세계와 예술정신을 말할 때 그 사례로 드는 게 바로 <화기소림>이라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감독의 기교와 인위가 보이지 않는 것 같기에.



재회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



화기소림 스틸컷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화기소림> 영화 스틸컷(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난 그동안 우리와 같은 달 아래 있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하지만 난 당신과 같이 갈 수 없어요”


오천련에게 주윤발은 서점에 갔었다고 말한다, 그 서점에서 책을 다 읽었다며 당신이 뜯어낸 페이지의 부분을 서점에 가서 다 읽고 왔다고 하는데 그 책에서 주인공인 칭칭과 만궁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떠나자고 하는데 그 둘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끝내 같이 떠날 수 있었을까? 달빛 아래에 같이 있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윤발이 말했는데 그 이후에 늘 달빛 아래서 함께할 수 있었을까?


주윤발이 흉계에 빠져 빼돌려질 뻔한 그녀를 구출했지만, 그는 갖가지 죄목으로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이별한다. 하지만 오천련은 말한다.


“난 당신이 다시 날 찾아오리라 믿어요, 언젠가 우리 다시 기차역에서 만나게 될 거예요.”



설렘

설렘



초능력 연구소에 다시 들어간 오천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초능력을 서서히 잃어버렸고 결국 연구소에서 나오게 되는데, 그녀는 기차역에서 서성거린다.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되고 다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이란 노래가 들리며 영화는 막을 내리는데……. 계속 느끼게 되는 순수한 마음과 감정, 공자가 말했던 대로 거짓이 없는 그런 마음, 맹호연식으로 절로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그 감정, 그 감정은 특히 어떤 재회에 대한 설렘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계속 기다리고. 감독은 그런 장면들을 통해 결국 설렘, 재회를 믿고 기다리는 설렘이라는 그 귀한 기분, 감정, 마음을 역시나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필자는 만으로 39세이다. 젊은 동양 철학자, 동양 철학계의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는데 더이상 어리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요 어느덧 젊다고 하기에도 미안한 나이가 되어 가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설렘, 특히 재회를 기다리는 설렘이 얼마나 귀한 감정이고 마음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이 영화도 귀하게 느껴진다. 자 그럼 이 영화도 한마디로 압축해볼까? 아니 그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순수한 감정과 마음이든 재회를 기다리는 설렘이든 아니면 다른 말이든 압축이 쉬운 영화인 건 분명한 듯한데 어쨌든 참 예쁘다, 예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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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임건순
동양철학자, 작가
1981년 충남 보령 출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 제자백가 전문가. 문체혁명만이 살길이고 철학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가독성 있는 글쓰기, 쉬운 우리말로 철학하기에 주력하고 있다. 유가 철학과 유가 경전만이 아니라 한비자와 손자, 오기 법가와 병가, 묵가 등 제자백가 텍스트 전반을 연구중이며 동양철학의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 펴낸책으로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대학, 중용』 『도덕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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