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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영화 환경/생태 일상

영화《맥전》과 뉴노멀, 혹은 어제까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by 김시천 / 2020.12.15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길로 움직이던 두 탈영병은 결국 조나라의 산속 어느 마을 보리밭에서 탈진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두 병사를 구출하여 치료하고 음식을 내어 준 후 묻는다. “누가 이겼나요?” 두 병사는 자신들이 진나라 병사인 것이 들통날까봐 “우리가 이겼다”라고 답하며 조나라 병사인 척한다. “우리가 이겼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



태양 없는 여름, 팬데믹...정말 새로웠던 2020년

 


코로나, 장마 이후의 뉴노멀 시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최장 장마 등 새로웠던 2020년



인간에게 늘 모든 시간이 새로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2020년은 아마도 지금 살아있는 모든 인간에게 정말 ‘새로운’ 해가 될 것이다. 분명 코로나19, 공식적으로 코비드-19(COVID-19)이라 불리는 작은 바이러스는 세계의 관광, 경제, 교육은 물론 모든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전세계 수 천 만 인구를 감염시킨 팬데믹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름내내 뜨거운 태양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길고도 긴 장마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기후변화라는 말을 넘어 ‘기후위기’라는 말을 모두가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노멀’이란 말을 붙이기도 한다.



뉴노멀, 어제에 대한 향수가 깃든 말일수도

 


김재인 뉴노멀의 철학 이미지출처 알라딘

김재인 <뉴노멀의 철학>(이미지 출처 : 알라딘)



감각이 예민한 철학자 김재인은 재빠르게 《뉴노멀의 철학》(2020) 에서 “어떤 변화는 일시적이지만 어떤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진단하고, “세상은 다시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예언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 팬데믹 그리고 인공지능(AI)으로 초래되는 ‘뉴노멀’의 시대에 접어 들었으며, 이제야말로 진정한 포스트-근대 혹은 탈근대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이 있듯이 우리는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뉴노멀’은 ‘어제까지의 일상’에 대한 진한 향수가 배어 있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미래, ‘무하유지향’은 과거


허핑 감독의 영화 <맥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다음

허핑(何平) 감독의 영화 《맥전(麥田)》(2009)(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이상하게도 나는 ‘뉴노멀’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고대 중국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과 허핑(何平) 감독의 영화 《맥전(麥田)》(2009)이 떠올랐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무하유지향’이란 말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디에도’(何) ‘없는’(無) ‘마을’(鄕)이란 뜻이기에 마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명한 책 ‘유토피아’(Utopia)를 위해 준비해 놓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란 말이 인류가 진보를 통해 미래에 도달하게 될 이상향인 것과 달리 무하유지향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란 점에서 다르다. 고대 중국의 전국(戰國) 시대 대국(大國)이었던 위나라 재상인 친구 혜시(惠施. 기원전 370-310년)가, 자신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줄기도 곧지 않고 옹이도 많아 재목으로 쓸모가 없다고 하면서, 장자의 사상이 무용(無用)하다고 비판하자 장자는 왜 그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리고, 낮잠이라도 자면서 소요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사람들은 장자의 이 대꾸에서 자연에 파묻혀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은자(隱者)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나는 오히려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의 ‘뉴노멀’을 떠올리곤 했다. 영화《맥전》은 그런 상황을 아주 절묘하게 보여준다.



탈영한 두 병사의 거짓말 “우리가 이겼어요”

 


추수를 위해 탈영한 두 진나라 병사(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맥전(麥田)》 中 추수를 위해 탈영한 두 진나라 병사(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기원전 3세기 중반 서쪽의 강국으로 떠오른 진(秦) 나라는 동쪽의 강국 제(齊) 나라를 치기에 앞서 그 옆의 조(趙) 나라와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결국 진나라는 천하(天下)를 통일하고 왕은 최초로 ‘시황제’(始皇帝)라 칭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농사짓던 농부가 쟁기 대신 창과 칼을 들고 싸워야 했던 그 때가 바로 영화 《맥전》의 시대 배경이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장군도 왕도 아닌 이름 없는 진나라의 두 병사들이다. 두 병사는 진나라가 끔찍한 전투 후에 20만의 조나라 병사를 산 채로 매장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전쟁이 끝나고도 귀환 명령이 없자 탈영하여 도망을 친다. 농사꾼이었던 두 병사는 제때에 추수하지 못하면 가족이 굶어 죽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화롭던 어제의 일상만이라도

 


여성, 아이, 노인에게 구출된 두 병사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영화 《맥전(麥田)》 中 여성, 아이, 노인에게 구출된 두 병사(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하지만 귀향길 관문마다 탈영병을 잡아내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진나라 군대를 피해 산길로 움직이던 두 탈영병은 결국 조나라의 산속 어느 마을 보리밭에서 탈진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두 병사를 구출하여 치료하고 음식을 내어 준 후 묻는다. “누가 이겼나요?” 두 병사는 자신들이 진나라 병사인 것이 들통날까봐 “우리가 이겼다”라고 답하며 조나라 병사인 척한다. “우리가 이겼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내 아들, 우리 남편, 우리 아빠가 곧 돌아올 것이라며 희망에 들뜬다. 왜냐하면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장자에 묘사된 ‘무하유지향’은 바로 이런 모습의 마을을 그리고 있다. 고된 농사일이지만 종종 나무 그늘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낮잠도 자던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가 사라진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는 그 쓸모 없는 나무가 “도끼에 잘릴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장자의 ‘무하유지향’은 그래서 미래의 이상향이라기보다 힘들고 고되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어제까지의 일상을 뜻한다.



반갑지 않았던 뉴노멀들, 그리고 <어제까지의 세계>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뉴노멀’의 시대가 있었다. 1346년 크리미아 반도의 항구 카파(Kaffa)로부터 1347년 시칠리아의 메시나, 1348년 마르세유까지 상선을 따라 전파된 페스트 이후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던 ‘사라예보에 울린 총성’ 이후 세계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었던 ‘뉴노멀’의 시대에 돌입했다. “세상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았던” 그런 시대는 수없이 많았다. 카파의 상선이든, 우한에서 날아온 비행기든, 세계 제1차대전과 제2차대전의 수많은 군함들이든 뉴노멀은 ‘죽음의 배들’을 통해 온다는 점에서 공포스럽다. 분명 뉴노멀은 어떤 식으로든 반가운 소식과 함께 오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이미지 출처 알라딘

재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이미지 출처 : 알라딘)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저서 중에 《어제까지의 세계》라는 묘한 제목의 책이 있다. 2006년 4월 30일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공항을 이용하며 그가 떠올린 추억과 감정은, 장자가 말했던 ‘어제까지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유럽인들이 1931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처음 만났던 고산지대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하고 폭력적이게 되는 경험이었지만, 2006년 포트모르즈비 공항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나 두려움은 찾을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다고 대조시킨다. 


2006년 포트모르즈비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보았던 기이함은 사실 특이할 것이라곤 전혀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난 조종사, 스튜어디스, 수하물 검색관, 여행객들 등 다양한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1931년의 상황에서 이렇게 서로 무신경하게 제 갈 길, 제 할 일을 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커다란 진보는 낯선 사람에게 폭력을 당할 확률이 1/16로 줄었다는 점일 것이라고도 말한다.



‘뉴노멀’을 어떻게 떠올릴 지는 지금 우리 선택에



어쩌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추억하는 ‘어제’보다는 ‘내일’이 분명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자가 떠올렸던 ‘내일’은 분명 ‘어제’보다 못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어제까지 찬란해 보였던 서구적 자유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라는 부조리로 바뀌어 버린 현실, 전세계가 하나의 교역권으로 묶이고 수많은 관광객이 지구 구석구석에 넘쳐나던 어제와 달리 총을 든 군인이 다시 국경을 지키는 오늘을 보면, 과연 그 ‘뉴노멀’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일상을 가져올지 두렵기만 하다. ‘뉴노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먼 훗날 아니 몇 십 년 후의 다음 세대가 ‘어제’를 재레드 다이아몬드처럼 떠올릴 지 아니면 장자처럼 떠올릴지는,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린 것이 아닐까?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사람들이 평화롭게 거닌다고 느꼈던 그 때의 2006년의 모습이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제는 사라진 ‘무하유지향’이든, 그런 말들 속에 숨겨진 비밀은 생명과 안전, 평화와 공존이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영화 《맥전》과 뉴노멀, 혹은 어제까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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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김시천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동양철학을 인간의 생동하는 삶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지식 비평적인 관점에서 동양 고전학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과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를 2014년부터 제작, 진행하였으며, 2020년부터는 유튜브 〈휴프렌즈〉와 〈휴애니프렌즈〉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간 옮기고 쓴 책으로 《철학에서 이야기로》,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 《똥에도 도가 있다고?》, 《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자》, 《펑유란자서전》(공역),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공역) 외에 여러 책과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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