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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맛

<고독한 미식가>의 함미

박찬일

2018-09-12


오직 그는 음식에 집중한다. 심지어 술도 곁들이지 않는다(주인공 역의 배우는 실제로는 애주가다). 그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즉흥적이지만, 예민한 촉수를 동원한다. 식당의 바깥에서 이미 맛과 분위기를 감지한다. 감식안이 있다. 더러 실패하기도 한다. 주인의 인간성이 나빠서 뛰쳐나오기도 한다. 한 끼의 소중함을 망친 주인에게 화도 낸다. 만화가 원작인 이 드라마를 기획할 때까지만 해도 선뜻 받아주는 방송국이 없었다고 한다. 출연료로 아주 적고, 제작비 자체도 적다. 그런 드라마가 대히트를 쳤다. 한국에서도 역시 인기다. 주인공의 역의 배우는 이 드라마로 몸값까지 올랐다고 한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TV도쿄 홈페이지



혼밥, 온전히 나에게로 몰두하는 한 끼


예전에, 그러니까 십여 년은 된 일인 듯하다. 친구가 아주 재미있는 책이 있다고 권했다. 번역한 일본 만화였다. <고독한 미식가>. 표지가 엉성하고 얼핏 보았을 때 그다지 흥미를 불러오지 못했다. 이 만화의 작화를 맡은 작가가 그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인 줄도 몰랐다. 물론 나중에 나는 그의 팬이 되어서 번역된 모든 만화를 사서 읽었다. 그는 최근 타계해서 슬픔을 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는 두 번째 고독한 미식가 번역본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고독한 미식가 표지

▲ 고독한 미식가 ⓒ이숲


제목은 고독한 미식가이지만, 실은 미식가라고 하기에는 모호하다. 수수한 점심 한 끼다. 이 만화(드라마)에 나온 집에 실제 가보고 실망했다는 사람도 많다. 너무 평범하다는 게 이유다. 아마도 역설일 것이다. 실은, 우리가 무언가에 몰두할 시간이 점심밥 외에는 거의 없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한 끼만이라도 온전히 내 것으로, 집중해서,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제안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늘 호젓한 시간대에 식당에 들르도록 설정한다. 식당은 작아서 식사행위가 압축될 수 있는 공간 규모를 제공한다. 주인과 작은 교환행위(대화나 계산할 때의 사소한 대면)가 존재한다. 주인(요리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더해진다. 맛있게 음식을 먹기 위한 설정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실 많은 유사 고독한 미식가들을 배출했고, 즐겼다. 인터넷 블로거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음식에 집중할 수 있고, 촬영과 기록에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한 방편도 있지만 음식 먹는 행위의 고독함에 동의하거나 즐기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미 고독한 미식가였고, 현재도 그렇다. 이 드라마와 만화가 갑자기 뜬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독한 서정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또는 이 드라마와 만화를 보고 본격적으로 고독한 미식가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한 창작품이 사회 속으로 깊게 들어와 존재감을 확장시켰다. 과거 일본에서 혼자 밥 먹고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을 오타쿠라고 불렀다. 이제는 그것이 우리 삶의 주요한 양태를 보여준다. 더 이상 오타쿠가 아니라 대세의 증명이다.



혼술, 나를 철저히 외롭게 하고 위안하는 시간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시가 있었지만, 우리는 사회 속의 작은 섬들이다. 밖으로 나가기도 힘겹고, 누가 들어오기도 어렵다. 혼자서 보고 먹고 잔다. 사회 경제의 변화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기도 하다. 결혼은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미래의 한 선택지에 불과하다.


아마도, 모르지만, 이제 혼밥의 재미를 넘어서 혼술의 시대가 오리라 예견한다. 밥은 몰라도 술은 혼자 마시면 ‘청승’이라고들 했다. 술꾼 정철도 친구가 불러서 술 마시러 간다고 했다. 혼자 마시는 술은 혼밥보다 더 깊게 자기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혼술은 무섭다. 과잉과 청승도 동반한다. 혼밥하다 우는 이는 없지만, 혼술은 눈물 유발자다(술은 실은 강력한 약물이니까). 그러나 다수의 혼술 애호가들은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기술을 가졌다.


혼술남녀

▲ 혼술 애호가들은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줄 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 이미지) ⓒtvN


혼술 왕국 일본에서는 술집 소개 기사에 더러 이런 항목이 있는 경우가 있다.

“혼술(히토노미) 비율: 20퍼센트”

가게 안에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이 대략 20퍼센트 정도 된다는 뜻이다. 이 집에 혼자 갈 사람에게는, 20퍼센트의 동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외로워서 혼자 술을 마시고,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옆자리 혼술꾼에게 말을 건다. 우리도 이런 혼술의 시절이 있었다. 60~80년대를 풍미했던 포장마차다. 혼술꾼이 절반 가까이 되는 집도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은, 통음(痛飮)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아프게, 깊게 마셨다. 세상이 바뀌어서 외롭다지만 그 시절도 외롭고 힘들었다.


혼술에 대해 사회학자들이나 의사들은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그 가격으로 두 시간쯤 철저하게 외로움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이 어디 흔한가. 철저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외로움을 느낌으로써 관계에 대한 욕망을 키우기도 한다. 상처를 쥐어뜯어 터뜨려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결핍이 만드는 각성도 좋은 수확물이다. 이런저런 말을 떠나, 혼자 수저를 들고 혼자 술잔을 집을 때 우리는 겸손해진다. 말수 없는 사람이 된다. 나를 둘러싼 외면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깊게 고려할 수 있다. 혼밥, 혼술이 훌륭하다면 아마 그것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자, 스스로에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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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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