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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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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용기와 도전

-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

by 추미경 / 2021.08.30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은? 세대 갈등, 남녀 갈등, 빈부격차, 혐오와 차별 등 우리 사회에는 갈등거리들이 지뢰밭 같이 널려있습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높이면서도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을 방안은 무엇일까요? 파시즘처럼 ‘전체’를 강요하지 않고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공동체를 가꾸어갈 방법은 무엇일지요?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인문 석학들이 공동체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혜안을 열어 드립니다.


〈열하일기〉에는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이야기가 나온다. 어두운 밤에 들리는 강물 소리에 박지원은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오만가지 안 좋은 상상을 내려놓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강을 아홉 번이나 자유롭게 건널 만큼 마음이 평안하고 자유로워지더라는 것이다. 박지원이 표현한 어두운 밤 강물에 대한 공포감을 우리가 지금 느끼는 불안감에 빗대긴 어렵다. 하지만 두려움이 만드는 위험한 상상에 맞서 강물과 자신을 분별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의 의미는 가늠해볼 수 있다.



잘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



불안과 두려움

불안과 두려움



사람이 불안하거나 두려워지는 것은 대체로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때이다. 코로나가 쏘아 올린 사회갈등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질병으로 인한 여러 이상한 상상이 불안과 두려움을 부풀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곧 종식될 줄 알았던 코로나가 변이를 만들며 거세게 확산되는 요사이 불안과 우울은 더 커지고, 이런 감정들은 우리 내면에 있던 혐오, 고약함, 불신 등을 스멀스멀 불러낸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집단감염이 확산된 특정 도시에 대한 혐오가 두드러졌다.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마주하면 불안해서 피할 뿐만 아니라 노골적 분노를 표현하기까지 이르렀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한편에서는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거나 정부의 고강도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사회 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사태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주 목격된다. 최근 여성, 남성, 성소수자, 청년, 노인, 외국인, 그리고 특정 세대와 집단 같은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다른 도시나 농산어촌 지역,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속단과 오해 등이 일상적으로 노골화된다. 공동체의 힘이 약해지고 개인화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상상 속에서 나를 제외한 대상을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 개인이 이해하기에 벅찰 정도로 사회가 복잡해지고, 급속한 변화가 일상화되면서 ‘세상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억울하다’는 피해 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자라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공정’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지는 것도 이런 경향과 연관이 있다. 그동안 쌓인 낡은 관행의 개선을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피해 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급속한 변화, 소화불량을 앓는 우리 사회



급속한 변화

급속한 변화



한국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와 조선 왕조의 몰락이 있었던 1910년대로부터 11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가 겪은 여정을 생각해보면 단기간의 엄청난 변화가 새삼 놀랍다. 일제 치하를 끈질기게 이겨내고, 한국전쟁을 견디고, 군부독재 하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한강의 기적도 만들어냈다.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는 비폭력 촛불혁명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너무나 빨랐고, 더불어 디지털 사회로의 진전이 급속하게 전개된 탓으로 우리 사회는 변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전 세계인과 함께 맞닥뜨린 코로나 상황은 나, 우리, 한국 사회의 틀 안에서 고민하던 일들을 국제 사회와 연결 짓게 만들었다. 환경을 파괴한 대가로 만들어진 초유의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은 우리의 시야를 더이상 인간 중심으로만 고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 변화는 개인에게 소화불량을 넘어 급체 수준이다. 웬만해서는 변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소화하기가 어렵고, 뭔지 모를 새로운 것을 마주해야 하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또한 갈수록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통해 코로나로 대표되는 범세계적 위기들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나뿐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성은 참 무섭다. 길게는 지난 100여 년, 짧게는 지난 수십여 년 간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은 그 뿌리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을 심하게 혐오하는 남성들은 여성이야말로 세상을 편하게 살고 남성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에게 거부감을 내비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 세상의 도덕률을 깨는 무리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친다. 그에 더해 반대되는 의견에 부딪힐수록 자신의 신념을 굳힌다. 또한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가져왔던 수직적이고 집단주의적 경향 때문에 가정이나 학교, 회사 등 집단과 개인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경우, 조직이 변하기보다는 개인이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한 사이, 나를 견디게 하고 지지해주던 다양한 공동체는 사라지거나 그 기능이 변했다. 우리를 가장 든든하게 지켜주던 가족, 이웃, 동네부터 달라졌다. 학교도, 직장도, 내가 사는 지역도 바뀌었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도 변했다. 과거의 눈으로 볼 때 회복해야 할 가치와, 미래의 눈으로 보아 다르게 생각하고 오늘의 가치로 재구성해야 하는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또 낯설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 피해 의식, 그에 따른 편견과 혐오는 대부분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이나 삶의 방식이 사회 변화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를 불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반대의 에너지 또한 불러온다.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여러 감각이 그 능력을 발휘해서, 두렵지만 그것을 대면하고 싶게 한다. 그리고 도전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두운 밤 강물 소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좌)와 〈열하일기〉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Wikipedia, 교보문고)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좌)와 〈열하일기〉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Wikipedia, 교보문고)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청나라에 조선 사절단으로 다녀온 여행기이다. 여기에는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이야기가 나온다. 어두운 밤에 들리는 강물 소리에 박지원은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오만가지 안 좋은 상상을 내려놓고 그대로 받아들이니 강을 아홉 번이나 자유롭게 건널 만큼 마음이 평안하고 자유로워지더라는 것이다. 박지원이 표현한 어두운 밤 강물에 대한 공포감을 우리가 지금 시대에 느끼는 불안감에 빗대긴 어렵다. 하지만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위험한 상상에 맞서서 강물과 자신을 분별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의 의미는 가늠해볼 수 있다.


이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익숙했던 집단주의적 사고를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가족, 학교, 직장, 동네, 도시 등 다양한 차원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을 들여다보아도 사실 그 속은 서로 알지 못하는 소우주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가족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유사 가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다채로운 모습의 가족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도 공동체가 얼마나 다양한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기존에 만들어 놓은 공동체의 틀 안에 가족, 이웃, 동료를 편입시키기보다, 다양한 공동체가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교류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존중해야 한다.



생애주기별 불안 공동체 벗어날 해법은 바로…



용기

용기



아울러 우리 내면에 잠재된 두려움을 부풀리는 고약하고 위험한 상상은 그만두자. 이제는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대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감각을 키우고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내는 도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10대는 학업 불안, 20~30대는 취업 불안과 주거 불안, 30~40대에도 이어지는 주거 불안, 고용 불안과 승진 불안, 50대 이후부터 죽는 날까지는 노후 불안에 시달린다. 현재 한국인의 삶은 생애주기별 불안의 연속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경쟁하고 두려워하고 단정 짓는 일에 익숙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런 공식을 해체하고 시민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어두운 밤, 오만가지 공포를 불러온 상상을 내려놓고 자신과 강물을 분별함으로써 자유로워진 박지원처럼,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인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현재를 관찰하고 미래를 대면할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불안을 공포와 혐오로 부풀리기보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해결해감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고 성숙해지며 동시대 삶의 의미를 익혀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만 불안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다.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는 모두이며, 서로 반갑게 맞이하고 함께 새로운 상상과 실천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용기와 도전

- 지난 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차라리 말을 맙시다”는 해결책이 아니다


불안 두려움 용기 열하일기 여행기 공포감 사회 변화 도전 주체적 상상 자유
추미경
추미경
(사)문화다움 대표
지역문화, 문화교육, 축제 등의 분야에서 24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영문학과 공연예술학, 비교문화를 공부하고 영국에서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1998년 설립된 ‘(사)문화다움’ 대표로서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문화도시, 인문학과 인문정신문화진흥, 근대문화재, 축제, 농어촌 활성화, 지역상생 등의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건강한 문화생태계 구축의 관점에서 문화정책과 문화현장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지역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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