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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이달의 답변
소통 관계 언어

균형 감각, 시스템 개선, 연대 의식 통해 당장의 불공평 해소부터

- 이달의 답변 -

by 정대현 / 2021.07.09

인문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달의 질문]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요? / 질문자 - 김선희(철학자)

 

Q.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요? 즉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남녀 갈등 및 정치 경제적 갈등을 해결할 이론적, 실천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실천적으로, 다양한 관점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민주시민의 자세나 대화 방식은 무엇일까요?



[이달의 답변] / 답변자 - 정대현(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A. 균형 감각, 시스템 개선, 연대 의식 통해 당장의 불공평 해소부터



진리 발견보다 거짓 제거가, 행복 증진보다 불행 제거가 우선인 것처럼 공평 강화보다 불공평 축출이 긴급하다. 공평 강화는 불공정 담론에 그칠 수 있지만 불공평 축출은 불공정 경험의 제거이기 때문이다. ‘불공정 담론’은 관점의 차이를 갖지만, ‘불공정 경험’은 구체적인 아픔이기에 관점의 차이를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뒤통수 치는 LH 청년들은 분노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에 분노한 청년들 (이미지 출처: 민중의 소리)



2021년 4월 7일에 치러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는 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선거였다. 일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야당의 승리 요인 중 하나는 2·30대의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였다. 불공정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이렇게 투표로 선명하게 반영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조국 씨 가족,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한국토지주택공사(LH), 평창올림픽 선수 선발 등에서, 젊은이들에게 열려있어야 할 기회들이 불공정하게 처리됐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성 기준은 언어적으로 구성되기에 의견이나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은 ‘관점의 차이’에 기인하기도 하고 ‘불공정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회적 갈등을 둘러싼 두 차원의 관계는 세심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 사회가 공정하다 해도 79억 인구가 지문이 다른 만큼 다른 의견, 상이한 관점 때문에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지만, 어떤 인간 사회라도 불공정을 경험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를 넘어서 배려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야생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라는 시구에 진실이 있다면, 불공정을 겪은 사람이 입은 인격 손상은 무엇보다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문적 꿈의 진실이고 이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이 글은 “사회적 갈등은 관점의 차이건 불공정 경험 때문에건 간에 인간 연대를 강요하는 인간 조건일 수 있다”라는 가설을 소개한 후 이에 대한 타당성을 따져보고 해결 방안도 모색하고자 하는 인문적 성찰이다.



저마다의 언어체계와 서로 다른 관점



서로 다른 언어체계

서로 다른 언어체계



사람들은 지문이나 홍채를 통해 ‘자기 신체적 정체성’을 유지하듯, 자신에게 맞는 맞춤 안경으로서의 언어를 습득하여 ‘자기 관점적 정체성’을 확보한다. 사람들의 자기 관점이란 자기 언어체계의 정체성이다. 언어학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기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관점의 정체성은 바로 자신의 언어체계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자신의 언어 체계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언어체계와 더불어 하는 〈언어놀이〉이다.


과거 지성사가 보였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모든 사람이 매여 살아야 하는 천상의 언어체계는 없다.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료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가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을 수용하여 〈언어놀이〉 개념을 유행시킨 이래, 데카르트나 칸트가 상정했던 선험적이고 단일한 개념 언어체계의 전통은 소멸하고, 사람들마다 사용하는 언어놀이들의 다양성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언어놀이들의 체계는 다음 표에서처럼, 담론적일수록 더 공유점이 많아 통약(通約: 체계들이 공유하는 공약)적이지만 이론적일수록 더 공유점이 없어 비통약적이다. 공유점이 많을수록 소통이 수월하지만 공유점이 적을수록 갈등은 불가피하다.


참고로 ‘이론’은 종교, 과학 언어의 체계 등 특정 목적을 설명하고자 하는 추상적, 계산적 문맥 등에 국한돼 사용되는 경향이 있고, ‘담론’은 총체적 삶의 결에 충실한 구체적 문맥, 인간의 생활양식 등에 사용된다. 담론은 생활 양식을 통해 인간을 ‘자연종’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또한 ‘사회종’으로서의 다양성을 허용한다. 인간의 다양성과 연대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언어놀이인 것이다.



이론적 체계들 : 뉴튼,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 프롤레미

이론적 체계들 (이미지 출처: 『한국 행정학의 한국화론』 59쪽 자료 재구성)



태양에 대한 네 과학자의 이론 체계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원뿔로 표상되고 있다. 네 개의 원뿔이 만나는 지점 ☆은 “태양”이라는 지시어가 나타내는 지시체이다. “태양”이라는 기호는 네 개의 체계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 다른 단어이다. 네 체계는 “태양” 같은 〈동일한 기호를 사용하면서도 공유하는 단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비통약적이고 서로 대화할 수 없다. 그러나 태양 지시체에 대해 어느 체계의 설명이 우리의 요구나 필요에 더 만족스러운가는 비교할 수 있다.



담론적 체계들 : (a), (b)

담론적 체계들 (이미지 출처: 『한국 행정학의 한국화론』 65쪽 자료 재구성)



그림 (a)는 네 개의 오각형이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 개의 오각형은 한 가족의 부모 자녀의 네 식구를 나타낸다. 그림 (b)는 네 식구가 각기 갖는 오각형의 구조이다. 이 오각형의 흰색 사각형은 네 식구가 공유하는 믿음들의 집합이고 오각형의 회색 삼각형은 네 식구가 각기 달리 갖는 믿음들의 집합이다. 네 식구는 〈공유하는 믿음들의 사각형을 기반〉으로 통약 가능하여 소통할 수 있다. 사각형이 클수록 대화는 그만큼 용이하지만, 사각형이 작을수록 상호 이해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임계점을 넘어 표출된 불공정의 경험들



관점의 차이들이 이론화될수록 개인들 간의 손익(損益)이 분명해지고 또한 집단으로 나뉠수록 사회적 갈등은 증폭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태양에 대한 천문학이나 종교나 경제체제에 대한 이론 체계들이 야기했던 사회적 갈등을 떠올려 보라. 또한 이는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공정하다는 믿음하에서는 얼마 동안 수면 밑에서 잠잠하지만 표출 임계점을 넘고 나면 여러 비참하고 불공정한 사례들이 급격하게 표출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갈등 사례들은 표출 임계점을 넘으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느낀 불공정 경험에 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온 결과이다. 실제로 세대 간, 남녀, 종교, 지역, 정치 이념, 재산 유무 등을 둘러싸고 집단들 사이에서 나타난 갈등 담론은 첨예하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를 샀다. 인천국제공항은 대학생이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전체 직원이 1,484명이었는데 갑자기 비정규직 1,9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 오랫동안 준비해 온 취준생의 취업 기회를 무참하게 박탈하는 것이 된다. 또한 언론들은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끊임없이 저지른 부정부패를 두고 ‘LH’와 한글 ‘내’의 글자 형상이 비슷한 것에 착안, ‘LH노남불(LH가 하면 노후 준비 남이 하면 불법)’, ‘LH땅LH산(LH 땅은 LH가 산다)’, ‘LH부자들(LH 내부 정보로 땅투기를 해 부자가 된 LH 직원들)’ 같은 신조어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유학의 『주역』 / 불교의 『대무량수경』 / 기독교의 성경

유학의 『주역』, 불교의 『대무량수경』, 기독교의 『성경』 



그리고 남녀 갈등의 오랜 뿌리 하나는 여러 종교들이 오랫동안 보여온 여성 혐오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유학의 『주역』은 남녀를 ‘천지, 해와 달, 귀천의 음양’으로 분류하고, 불교의 『대무량수경』은 여성이 성불하기 위해 먼저 ‘변성남자(變成男子, 부처님 공덕을 입어 여자가 남자로 바뀌어 태어나는 일)’ 해야 한다고 한다. 기독교는 ‘인간 타락은 여성 때문’이라 하며 성직을 남성에 한정하였다. 종교들의 이러한 여성 혐오는 많은 부수적 여성 혐오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어떤 젊은 여성들은 이를 미러링(mirroring, 모방)하여 남성에게 되돌려주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 현상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추정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사회적 갈등은 공정한 사회에서조차 ‘나는 관점의 차이를 참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갈등이고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은 ‘나는 실패로 죽을지언정 불공정은 참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그런데 전자는 국가의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는 절차로 해소될 수 있지만, 후자는 여의치 않다.


우선 ‘관점 차이’가 야기하는 갈등 표출의 임계점은 사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임계치가 북유럽은 높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경우 낮아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 반면 ‘불공정’이 수반하는 갈등 표출의 임계점은 어떤 사회를 불문하고 낮기 때문에 쉽게 폭발할 수 있다. 부당한 아픔을 겪게 하는 행위는 어떤 것이든 세계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불공정을 겪게 하는 여러 제도나 정책 역시 ‘관점의 차이’를 넘어 지구촌적 비난에 열려있다.



불분명하고 해석도 달라지는 공정의 기준



어떤 누구도 불공정을 참을 수 없다면, 도대체 “공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느 상황이건 자신이 가져야 하는 몫(due, share)이 있다. 그 몫을 어떻게 나누는가가 정의의 핵심이다. 몫을 나누는 대표적인 기준은 평등(平等)과 공적(功績)이다. 평등(equality)은 시민들의 공동체에서 기회, 임금, 상벌 등이 합의된 절차에 따라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동전 던지기 같은 우연적인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적(desert)은 사람들이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보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피리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피리를 불려는 사람이 많은 경우 더 잘 부는 자에게 피리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불공정은 평등과 공적의 조화로운 기준을 버리고 특정 권력이나 조직이 자의적(arbitrary)으로 행패를 부리는 일이다.



평등-공적(옳음/그름 - 이익/손해 저울)

평등과 공적



문제는 평등과 공적이라는 공정성 기준이 선명하지 않고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관 속에 살기 때문에 평등과 공적에 대해 달리 생각할 뿐 아니라 평등과 공적의 관계를 독특하게 해석하여 우선순위를 달리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다양해도 사회나 국가의 법률체계는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시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는 법률은 적법성과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의론』을 펴낸 롤즈(J. Rawls)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적법성(legitimacy)은 법률이나 정치의 강제적 권력의 합리성이고, 안정성(stability)은 시민들이 서로 생각이 달라도 뜻을 모을 수 있는 공동체의 틀에 대한 합의 가능성이다.


하나의 법률 체계하에서도 공정의 기준은 달라질 수가 있다. 공정은 올라타기 쉬운 말이지만, 그걸 타고 어디로 가는지가 문제이다. 현재 한국의 사회 질서, 세계 질서는 신자유주의 구조로 고착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세계의 경제적(무역, 투자, 금융, 서비스, 기술, 정보) 통합을 지향하는 ‘세계화주의’이고 다른 한편으로 기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최소주의’이다. 케인즈적 복지국가 자본주의를 해체하여 민영화·자유화를 요구하고 노동조합의 활동은 억제하고 사회 보장은 축소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표면적으로 제도적 효율성을 위해 개편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양극화를 야기한다. 신자유주의의 수혜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이고, 유산자(有産者)이고, 자산, 금리, 이윤의 소득자이며, 전문직, 기술직이다. 그 피해자는 후진 자본주의 국가이고, 무산자, 임금소득자, 채무자, 미숙련 노동자이다. 신자유주의도 공정의 기준으로 평등과 공적을 언급하지만 공적을 평등보다 훨씬 더 우선시한다.



갈등 상황의 언어를 의미론적으로 상승시켜야



신자유주의가 결과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등과 공적의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한 이론적인 과제는 먼저 의견의 차이들을 개념적 차원에서 갈등 관계가 아니라 조화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갈등 상황의 언어를 의미론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상반된 의견의 표출은 빈번하고 당황스럽고 갈등적이다.


예를 들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애국”이라고 하지만 “살인”이라고도 한다. 한반도 21세기의 제일 과제는 “통일”이라고도 하고 “공존”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선행”이라고도 하고 “악행”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그것은 선행이다”라거나 “그것은 악행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일주의적‘이며 대상적 차원의 평가로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이며 합리적 타당성을 완전히 부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처한 것은 대화가 대상적 차원에서 사용되는 사건의 수준에 머무를 때 의견의 다름이 쉽게 충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충돌 없이 의견의 다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화가 유일주의를 요구하는 ‘사건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다원주의를 허용하는 ‘의미 기술의 수준’으로 의미론적 상승(semantic ascent)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논리학자이자 분석철학자인 콰인(W. Quine)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미국의 논리학자이자 분석철학자인 콰인(W. Quine)



미국의 논리학자이자 분석철학자인 콰인(W. Quine)은 의미론적 상승이라는 개념을 다음의 예로 설명한다. “태즈메이니아에는 일각수(인도와 유럽의 전설상의 동물)들이 있다”라는 존재 사실적 문장은 “태즈메이니아에는 ‘일각수’라는 술어가 참인 생물들이 있다”라는 언어 문법적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풀어 볼 수도 있다.


미국의 논리학자이자 분석철학자인 콰인(W. Quine)은 의미론적 상승이라는 개념을 다음의 예로 설명한다. “태즈메이니아에는 일각수(인도와 유럽의 전설상의 동물)들이 있다”라는 존재 사실적 문장은 “태즈메이니아에는 ‘일각수’라는 술어가 참인 생물들이 있다”라는 언어 문법적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풀어 볼 수도 있다.


단종이 영월에서 억울하게 죽은 후에 회자되었던 “영월에 부임했던 부사들은 단종 귀신 때문에 죽었다”라는 문장은 이해가 어렵다. 의미론적 상승은 이 ‘존재 인과적 대상 언어 문장’을 “영월에 부임했던 부사들의 죽음은 ‘단종 귀신이 이러저러한 짓을 했다’가 참인 사건에 의해 야기되었다”라는 ‘개념적 상위 언어 문장’으로 고쳐 써 보는 것이다. “단종 귀신 때문에”라는 불분명한 술어를 “단종 귀신이 이러저러한 짓을 했다”라는 분명한 진리 조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불투명한 존재 기술의 대상 언어를 보다 투명한 언어 기술의 상위 언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력, 입자, 점, 직선, 마일, 수, 속성, 명제, 진리뿐만 아니라 악마, 천사, 신, 영혼, 이드(Id), 에고(Ego), 실체 같은 존재 기술의 대상적 이야기를 언어 기술의 상위적 이야기로 전환해 상승시킬 때 더 명료해지고 논리적 추구의 절차가 선명해진다. 의견의 차이는 ‘일원론적’ 사건 기술의 대상적 수준에서는 쉽게 충돌을 야기하지만 ‘다원론적’ 언어 기술의 상위적 수준에서는 대상적 차이가 체계적 차이로 전환되어 그 차이를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추상화시켜 만나게 된다.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의견 차이의 갈등적 관계가 상호 존중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언어 – 의미론적 상승 : 상위 언어 →(←) 대상 언어 →(←) 사물 대상 경험 영역

두 언어 – 의미론적 상승 (이미지 출처: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 21~26쪽 자료 재구성)



이러한 의미론적 상승의 실천은 현실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정의 재판이 그러하다. 구체적으로 초상권 침해나 성추행에 대해 의견 차이가 크고 법률적 지침이 없던 상황에서, 대법원은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헌법 10조를 적용하는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초상권 침해의 불법성(대법원 선고 2010다39277)과 성추행의 불법성(대법원 선고 201774702)을 명문화했다. 일부 남성의 여성혐오와 일부 여성의 혐오 미러링이 불러오는 갈등도 의미론적 상승을 필요로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거의 모든 종교는 여성 혐오의 전통을 가지고, 일부 기독교 교파는 일원론적 대상 기술적 명제인 “남성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를 참이라고 믿으며 성직을 남성에게 한정해 왔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교파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원론적 상위 기술적 명제인 “남성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은 대부분의 체계에서 참이 아니다”를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남성만이 성직을 맡는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여성 혐오에 따른 갈등을 ‘의미론적 상승’시키기 위한 일반적 처방은 대한민국 헌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대한민국 헌법은 여성 혐오에 대해 언어 문법 구성적으로, 헌법 조문에 의해 의미론적으로 전체 국민들을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자 중에는 ‘헌법적 여성주의’에 대해 이러저러한 조건을 추가하여 변형된 여성주의로 나아가고자 할 사람이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적 여성주의’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자유주의, 보수 진보 관계 재설정 등 구체적 노력도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까를 두고 비롯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념의 재정립 외에도 사회의 집단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공정자유주의”라 부를 수 있는 길의 선택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 질서는 세계화로 인한 국제기구들의 요구나 강요에 의해 신자유주의 체제에 들어서 있다.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국면에서 국가최소주의를 지향한다. 대내적으로는 사회 복지 등을 축소하고 대외적으로는 금융 등의 국경 장벽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공정이 요구하는 평등과 공적의 두 가치 중에서 영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F. Hayek)가 주장한 공적성을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두 가치가 균형을 이루어 제대로 된 공정자유주의를 향하는 것이다. 롤즈는 사회적 약자에게 분배의 이익이 가장 많이 돌아가게 하자는 ‘차등의 원칙’을 강조하는 ‘평등자유주의’로 경쟁이나 공적의 가치를 충분히 강조하지 않고, 반면 하이에크의 ‘자유지상주의’는 운 없는 개인의 필요를 충분히 주목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형식의 자유주의를 조화시킬 수 있는 ‘공정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평등(equity) 공정(equality)

평등과 공정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두 번째 집단적 노력은 한국 사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이승만 체제가 통일을 위해 반공을, 반공을 위해 경제 발전을 지향하면서 우선순위에서 인권을 뒤로 미루었고, 박정희 체제는 이승만 체제를 무력으로 이념화, 선명화했다. 한국의 진보는 김영삼 체제가 통일을 향하여 공존을, 공존을 위해 인권이 앞선 경제발전을 지향했고, 김대중 체제는 IMF 위기 속에서도 김영삼 체제를 체계화, 효율화했고 노무현 체제는 이를 희생으로 이념화했다.


한국의 보수 이념과 진보 이념은 그 시대마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시대적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은 기미년 3·1운동 이후 독립, 민주화, 경제 성장을 향하여 생명을 걸고 투쟁해 왔다. 작금의 보수와 진보 두 진영 간의 관계는 이러한 역사적 발전의 과정 속에서 바라볼 때 ‘갈등’이 아니라 호흡이 긴, 큰 단위의 ‘대화’로 볼 수 있다. 세계적 평가 기구들도 이러한 시각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 현실에 긍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호흡이 긴 대화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보수는 남북 관계, 시장, 성장, 개인과 같은 기존의 가치를 ‘소수자 배려의 평등 질서’ 안에서 조정하고, 진보는 남북 공존, 복지, 공동체 같은 가치를 ‘경쟁과 공적의 질서’ 안에 조화시켜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두 진영 간의 거시적 대화는 ‘공정자유주의’로 귀착하게 될 것이다.


갈등 해소를 위한 또 하나의 집단적 노력은 국가 권력의 체제 변화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 책임제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것이다.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의 정점에는 대통령 중심제가 강요하는 국회의 양당 제도가 있다. 정치를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합법적 모든 활동’이라 규정할 수 있다면 국회에 있는 두 정당은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대통령 중심 체제는 ‘승자 독식’ 체제이기 때문에 두 정당은 차기 대통령 당선을 위해 합법적 규범 내에서 가능한 모든 극한적 장치들의 사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국회 내 토론은 물론 국회 밖 장외 투쟁도 벌이는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 두 정당 간의 극단적인 표현 문법이 한국 사회의 공적인 담론은 물론 사적인 담론의 공간까지 지배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담론은 그 지배적 문법이나 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체제하에서는 국회 양당의 갈등을 중재할 제3의 당이 설 자리가 미약하거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살기식’으로 싸우는 대통령 체제의 양당제보다는 타협의 고리를 마련하는 제3당, 제4당들도 참여하는 다당제 내각 체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정치는 특정 정당의 ‘진리 실현’의 정치, 또는 ‘진리’의 정치가 아니라, 여러 정당들이 소통하는 ‘타협’의 정치여야 한다.



연대를 위한 개인의 노력…… 사랑, 분노, 슬픔



사랑을 느끼는 가족

시민들의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또 하나의 차원은 시민들의 개인적 노력이다. 사람들은 일상언어의 문법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일상언어적 인문학을 수행한다. 사람은 모두 현재 처하여 있는 부자유의 언어로부터 자유의 언어를 지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향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은 하나’라는 의식을 공유하게 한다.


어떻게 그러한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의무이고 필연이다. 동북아의 전통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향하여 측은한 마음을 갖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라고 선언하여 ‘측은한 마음’을 사람됨의 필요조건으로 내세워왔다. 또한 부당한 폭력을 당하는 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그 가해자에 대해 분노를 공유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인간은 측은한 마음, 분노, 슬픔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인간의 온전성을 향한 지향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사랑”, “분노”, “슬픔” 등 일상언어의 문법이 보이는 인문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라는 연대 의식이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공적 문법의 인문 조건이라면, 인간 연대를 실천할 수 있는 사적 문법의 인문 조건 역시 필요하다. 인문성이란 어떤 국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이웃과의 삶을 감사하는 실천’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공적 사적 문법들을 아우르는 헌법에 대해 감사해야 하고 즐겨야 한다. 예를 들어, 종교다원주의의 필요충분조건을 ‘종교들 간의 다름의 인정’이라 하고, 여성주의의 필요충분조건을 ‘부당한 성차별이 존재하므로 그 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종교다원주의자이고 여성주의자이며 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은 아직 개선될 여지가 있다. “고난이 있는 곳에 억압 언어가 있다”라는 가설을 수용하면 한국 사회의 고난의 해소를 위한 헌법 개선의 꿈을 지속적으로 꾸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헌법으로도 인간 연대의 실천을 통해 억압적 고정관념을 깨는 데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사회적 표면에 나타나는 갈등의 많은 경우는 일부 공직자들의 개인적 처신에서 발생해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공직자 개인의 정책 입안, 정책 수행, 사적 차원의 활동 등에서 갈등을 촉발해 왔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권력 집행의 재량 때문에 여러 가지 유혹에 열려있는 동시에 언론이나 SNS의 매서운 감시에도 노출되어 있다. 공직자는 먼저 한 시민으로서 시민이 갖추어야 할 시민의식의 수행자라야 한다. 시민 개개인이 ‘부자유의 언어’로부터 ‘자유의 언어’를 향해 인문적 꿈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공직자 개인은 그 꿈의 실천을 돕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또한 시민 개개인이 다양하고 차별화된 담론 문화를 실천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면 공직자 개인은 그러한 담론 문화의 강화자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실직자, 미취업자, 환자, 미혼자, 독신자,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 등에 대해 제도적 보살핌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있다. 공직자 개인은 제도의 파수꾼을 넘어서 사회의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



한 손으론 음식을 나머지 손으론 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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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대의 공동체가 이뤄지는 순간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리 발견보다 거짓 제거가, 행복 증진보다 불행 제거가 우선인 것처럼 공평 강화보다 불공평 축출이 긴급하다. 공평 강화는 불공정 담론에 그칠 수 있지만 불공평 축출은 불공정 경험의 제거이기 때문이다. ‘불공정 담론’은 관점의 차이를 갖지만, ‘불공정 경험’은 구체적인 아픔이기에 관점의 차이를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불공평 축출의 우선성 원리가 법치국가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민불복종’의 행태가 허용될 뿐 아니라 요청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진리 발견, 행복 증진, 공평 강화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관점의 차이는 언어경기의 규칙에 따라 조정되고 언어의 문법에 따라 상호 존중될 수 있다. 어떠한 갈등도, 어떠한 시민불복종도 일종의 언어 소통 행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대화 방식이고, 보다 나은 민주 사회를 향한 발걸음일 것이다. 모든 대화가 인간 연대를 향한 몸짓이라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도 인간 연대에 필요한 쓴 약이라 할 수 있다. 시각을 넓히면 그러한 갈등의 요소들을 너그럽게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각자 한 손으로는 자신의 입으로 음식물을 나르지만 또 나머지 손으로는 다른 사람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연대의 공동체’가 이뤄지는 순간일 것이다.



7월 [이달의 답변] 균형 감각, 시스템 개선, 연대 의식 통해 당장의 불공평 해소부터

- 지난 글: 7월 [이달의 질문]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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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현
정대현
철학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고려대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화여대에서 30년 동안 언어철학을 가르치다가 2006년에 퇴직하였다. 한국철학회 회장,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 『교수신문』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맞음의 철학: 진리와 의미를 위하여』, 『이것을 저렇게도: 다원주의적 실재론』, 공저로 『표현 인문학』, 『정대현 철학을 토론하다』, 논문으로 「놀이 인문학 서설: 로봇이 일하고 사람은 노는 세계」 등을 썼고, 블로그(https://blog.naver.com/chungdhn)를 한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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