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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켜볼 수만 없었던 명과 왜의 화의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드라마 <징비록>, 류성룡의 명황제 기패 참배 거부'

by 최희수 / 2021.02.19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은? 영화, 드라마 등 일반시민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콘텐츠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역사 속 특정 장면은 그 앞뒤로 어떤 시대적 상황과 맥락, 역사적 진실과 논란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걸까.  역사 전문가들의 친절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접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가깝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송된 류성룡은 왜와의 강화를 위한 기패에는 예를 갖출 수 없다고 버티자, 경략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이 장 100대를 때리라는 처분을 내린다. 조선의 재상이 곤장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당시 세자였던 광해가 정탁, 이덕형, 이항복을 거느리고 나타나 대신 고두례를 행하고 류성룡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는 류성룡에게 고두례를 권하자, 울면서 “황상 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 ...



명나라에 곤장 맞을 뻔했던 조선의 재상



kbs 드라마 징비록 한 장면 출처 kbs 스토리매거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 KBS 스토리매거진)



2015년 2월부터 KBS 1TV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대하드라마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재상이었던 류성룡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왜란의 배경과 경과를 분석하여 국난에 대비하고자 남긴 전란 기록 『징비록』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극이다.

이 드라마 제33회(2015.6.6. 방영) 중반에 명나라 유격 심유경이 왜의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강화회담을 한 후에 평안도 숙천에 있던 행재소1)의 선조에게 와서 회담 결과를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유경의 보고 – 왜군이 한양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 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은 윤두수와 류성룡이 심유경을 추궁하자, 심유경은 오히려 류성룡에게 몸조심하라며 겁박을 했다. 때마침 명나라 장수 조승훈이 명군을 이끌고 류성룡이 황제의 기패2)에 대한 참배를 거부했다며 체포해서 송응창(명나라의 고위 군사 지도자)이 있는 평양성으로 압송한다.

1)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궁을 떠나 멀리 나들이할 때 머무르던 곳. 출처:표준국어대사전)

2) 기패(旗牌. 군대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깃발)



압송된 류성룡은 왜와의 강화를 위한 기패에는 예를 갖출 수 없다고 버티자, 경략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이 장 100대를 때리라는 처분을 내린다. 조선의 재상이 곤장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당시 세자였던 광해가 정탁, 이덕형, 이항복을 거느리고 나타나 대신 고두례3)를 행하고 류성룡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는 류성룡에게 고두례를 권하자, 울면서 “황상 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고두례를 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광해와 신하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송응창은 조소를 머금는다.4)

3) 고두례(叩頭禮. 절의 마지막 끝에 무수히 예경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 출처:문화콘텐츠닷컴)

4) 출처 : https://url.kr/EsfZXD (KBS <징비록>, 제작: KBS, 연출: 김상휘·김영조. 극본: 정형수·정지연, 편성: KBS 1TV)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제33회의 장면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제33회의 장면



국왕 앞에서 한 나라의 재상이 다른 나라의 장수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은 약소국이었던 조선의 서러운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대국인 명나라라 할지라도 그런 외교적 결례를 범할 수 있었을까.



기패 참배 거부는 외교 문제



류성룡 저 징비록 책 표지

류성룡 저 <징비록> 책 표지



기패 참배 거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징비록』에 의하면, 명나라 제독 이여송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전한 후 전투 의지를 잃고 파주-동파-개성부로 잇따라 후퇴를 한 와중에 왜가 강화를 청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조선 정부는 거부하였으나 명나라 원군 지휘부는 응하려고 하였다. 강화 교섭을 위해 유격 주홍모를 왜의 진영이 있는 용산에 보냈는데, 류성룡이 머물고 있던 파주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류성룡의 앞을 명나라 강화 교섭단 일행이 기패를 앞세우고 지나가자, 류성룡이 가는 곳을 물었더니 경성에 있는 왜의 진영이라 하였다. 류성룡은 왜의 진영으로 화의하러 가는 기패에는 머리를 숙일 수 없다며 기패에 대한 참배를 거부했다. 이 같은 상황은 자칫 명나라와 조선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류성룡과 김명원은 1593년 4월 20일 기패 참배를 거부한 다음 날 바로 선조에게 치계5)하여 해당 사건의 전말을 명확하게 보고하였다.(『선조실록』37, 선조 26년 4월 20일 갑진)

5) 치계(馳啓, 보고서를 올린다는 뜻, 출처:문화콘텐츠닷컴)


명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제독 이여송은 군율로 류성룡을 다스리겠다고 군영으로 불러들여 빗속에서 반나절이나 세워두었다. 그리고 류성룡을 만나 해명을 듣고는 자신의 입장도 있으니 문서로 소명해 달라는 말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곤장에 처했다는 것은 기패 참배 거부 때문이 아니었다.


강화 교섭을 앞두고 이여송이 휘하에게 임진강의 도강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휘하의 부하들이 류성룡이 임진강의 배를 모두 막아서 도강하기 어렵다고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화가 난 이여송이 류성룡을 곤장 40대에 처하고자 소환하였고, 류성룡이 소환되어 오는 도중에 다시 임진강 도강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철회한 사실이 있었다.(『징비록』)



드라마와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드라마의 내용과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류성룡은 행재소에서 평양성으로 압송된 것이 아니라 파주에서 개성부로 소환되었다. 둘째 류성룡에 대한 장 100대 처결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며, 임진강 배 문제로 장 40대에 처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 셋째 광해 일행이 류성룡을 구명한 것이 아니라 이여송이 류성룡의 해명을 듣고 단지 문서로 해당 사실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드라마가 당시 조선이 처한 약소국의 입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사실들을 첨가한 것이다.


왜와의 강화 교섭을 하려고 가는 명 황제의 기패에 대한 참배 거부는 왜와의 강화 교섭을 결사반대한다는 조선 정부의 의지를 류성룡이 대표해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었다. 당시 명나라와 왜는 전쟁 당사자인 조선을 배제한 채 강화 교섭을 진행하였고, 조선 정부는 이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가진 상태였다. 명나라는 조선의 반대를 무릅쓰고 왜 강화에 임하려고 한 것일까. 이는 명나라의 조선 원군 파병 결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맞아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조선 정부는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명나라는 논란 끝에 원군을 파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명분은 조선이 함락되면 왜군의 다음 공격대상이 명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1차 원군으로 왔던 조승훈 부대는 평양성에서 왜군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1592년 12월 2차 원군으로 온 경략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의 군대는 1593년 1월 초 평양성을 탈환했다. 전란 초기 패전을 거듭하며 국왕이 피난하며 계속 후퇴만 했던 조선에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퇴각, 후퇴만... 조선과 달리 느긋했던 명나라



류성룡 초상화

류성룡 초상화



조선은 이 기세를 몰아서 한양을 수복하고, 왜군을 조선 땅에서 몰아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명나라는 이 전쟁에 적극적일 이유가 별로 없었다. 왜군이 평양성에서 도망친 상황에서 이들이 명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느긋해진 이여송은 진격을 서두르지 않았다. 당시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국방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류성룡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명나라의 자세가 달가울 리 없었다.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대는 얼음이 풀린 임진강을 칡 부교를 이용해 건너고 파주에 도착했다. 이여송 스스로는 전투의 의지가 별로 없었지만, 부총병 사대수(査大受)가 벽제역에서 왜군을 만나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작스러운 출병을 결정한다. 1천여 명의 단출한 병력만을 거느리고 공격에 나선 이여송은 1593년 1월 27일 벽제관 전투에서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의 1/4을 잃는 등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왜군을 얕잡아본 결과였다.


패배를 당한 이여송은 파주로 돌아왔고 다음날 동파로 퇴각하려 했다. 이를 막아선 것은 류성룡과 우의정 유홍, 도원수 김명원이었다. 류성룡 일행은 이여송에게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며 위로하고 형세를 살펴 다시 진격할 것을 권했으나 이여송은 이미 전투 의지를 상실한 뒤였다. 비가 와서 싸우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핑계로 그 다음날 임진강을 건너 파주 동파역으로 퇴각하였고, 이어서 개성부로 다시 물러나려 했다. 류성룡은 명나라 군대의 후퇴가 민심을 어지럽히고 적들이 다시 기세가 살아날 것이라 만류하였지만 이여송은 끝내 후퇴하였다.


개성부로 후퇴한 이후 명나라 군사는 시간만 허비한 것이 아니라 군량미도 허비하였다. 명나라 군사들을 먹일 군량미는 조선에 의해 제공되었는데 왜란으로 인해 육로로의 군량미 운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직 수로를 통해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세곡이 운반되어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던 것이다. 크게 화가 난 이여송은 류성룡 등을 호되게 질책했고 군법에 따라 책임을 물으려고도 했다. 애초에 싸울 의사가 없었던 이여송에게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은 없었다. 끝내 그는 평양성으로 후퇴하였다.




행주산성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행주산성(이미지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여송의 전투 의지 상실은 그의 의사 뿐 아니라 명나라 조정의 입장이 왜와의 강화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왜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조선군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 행주대첩이었다. 권율은 명나라 군대가 한양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행주산성에 들어가 지키고 있었다. 왜군이 행주산성을 공격하였지만 권율은 왜군을 애써 물리쳤던 것이다. 이것이 행주대첩이다. 행주산성에서 패한 이후 왜군은 한양 주변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명나라와의 마찰을 상징하는 사건



펄럭이는 깃발

펄럭이는 깃발



1593년 3월 14일 왜는 함경도에서 포로가 된 황정욱 황정욱 : 조선 중기 문신. 선조때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음. 을 통해 창의사 창의사 :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던 임시 벼슬. 김천일 장군 진영으로 강화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조선은 당연히 거부하였지만, 명나라 경략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은 바로 강화 회담에 응하였다. 유격 심유경을 왜 진영에 보내 화의 교섭을 하게 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류성룡은 바로 이여송에게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강화 소식을 들은 행재소의 선조와 대신들도 경악했다. 선조가 강화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김천일 진영에 대한 불만을 류성룡에게 토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정부와 명나라 원군 지휘부와의 마찰을 필연적으로 예고한 것이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명나라 황제 기패에 대한 류성룡의 참배 거부 사건이다. 명과 조선은 책봉-조공 관계로 맺어졌다. 따라서 명 황제의 기패는 명 황제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 명나라와 왜와의 강화 회담이 용산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때 이 기패는 바로 왜와의 화의 교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류성룡 등은 불구대천의 원수 왜와의 강화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굳은 결의를 기패에 대한 참배를 거부함으로써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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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수
최희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전공은 한국고대사이지만, 역사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대하드라마 《징비록》 등의 자문을 맡았다. 한국고대사와 드라마나 사극 등의 역사콘텐츠, 디지털인문학, 디지털기술 기반의 다양한 문화유산콘텐츠 기획 및 개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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