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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음악 역사 일상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 당신은 어떤 ‘가요’ - 조용필의 Q 가 콕콕 박히던 날들

by 안도현 / 2021.01.27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Q"는 3절의 가사가 일품이다. 배신의 아픔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배신 이후의 시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화자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둬두는 일이 된다. 화자는 상대방을 잊음으로써 용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바로 그것.



해직, 빈 허공, 스물아홉 청춘



학교 운동장

학교 운동장



1989년 8월 7일, 나는 전교조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북 이리중학교에서 해직되었다.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8월 말 개학이 되자 나는 학교로 출근했다. 해직이 부당하다는 것을 학교 안팎으로 알리기 위한 ‘출근 투쟁’이었다. “교실로 가서 아이들을 만나시면 안 됩니다.” 교감 선생님이 짧게 말했다. 교무실에서는 싸워야 할 대상이 없었다. 나는 교무실 내 낡은 책상의 책꽂이와 서랍을 정리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내 어깨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할 말이 없네. 간간이 건네는 악수는 미지근했다. 격려도 위안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교무실에는 수천 명이 모인 집회에서 외치던 구호도 없었고, 거리에서 나눠주던 홍보 전단지도 없었고, 자정을 넘긴 토론도 없었다. 내게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조목조목 따져 설명할 기력도 없었다. 나는 텅텅 빈 허공, 스물아홉 살의 청춘이었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막혀 있던 물꼬가 터진 것 같았다. 이거, 뭐야, 뭐야. 학생주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생님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흐릿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수백 명의 ‘중딩’들이 운동장 가운데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왜 밖으로 뛰쳐나왔는지 가만히 짐작할 따름이었다. 이 아이들의 움직임이 교실로 가지 못하는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하고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숙직실 뒤편으로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하지만 진실을 외칠 힘도, 치켜들 주먹도 내게는 없었다.



노래는 삶을 지배한다



나는 노래가 삶을 지배한다고 믿는 편이다. 군대 생활의 치욕과 억압과 불편을 잠시나마 견디게 해주는 것은 군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일과 은혜를 받는 일을 동일시한다. 교사로서 교육 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민중가요를 지독히도 편애했다. 80년대를 ‘현장’에서 보낸 이들이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노래가 나를 달구는 연탄불이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는 대중가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해서 북한 방송 듣듯이 혼자 듣던 가요가 있었다. 조용필의 "Q"다.



조용필 Q 앨범 표지 이미지 출처 지니

조용필 Q 앨범 표지(이미지 출처 : 지니)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이리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그날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던 그 ‘중딩’들 속에 나중에 소설가가 된 백가흠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국어를 가르치지 않았지만, 교내 백일장에서 제법 단단한 문장을 쓸 줄 아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 밖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매번 그를 끼워 넣어 출전팀을 만들었고, 행사가 끝나면 중국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주었다. 백가흠은 어떤 글에서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선생님을 다시 돌려달라고 데모라는 것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퍽이나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다. 안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치던 2층의 5, 6, 7반과 내가 반장이던 4반이 합쳐 운동장에 모였다. 1, 2, 3반은 불참했다. 운동장에 나가서 아무것도 한 것은 없다. 뙤약볕 내리쬐던 한낮, 우리는 반별로 줄 맞춰 운동장에 앉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나와서 무슨 일인가 물어도, 수학 선생이었던 교감 선생님이 다그쳐도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침묵하라 하지도 않았고, 뭘 하자고도 한 적 없었다. 주동자라고 하기에 좀 뭣한, 좀 웃기는 일이지만 네 반 반장들이 모여 그 일을 꾸민 것이었는데, 우린 뒤에 숨어 숨 졸이고 있었다. 운동장으로 나가기 전 교탁에 서서 왜 우리가 운동장에 나가야 하는지 반장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혹시 누가 그걸 얘기할까 봐 실은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출처 : 레이디 경향 2011년 10월호)

 

 

교장 선생님과 학생주임이 운동장으로 나가 맨 앞줄에 앉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면 그 아이는 마지못해 일어나서는 엉덩이를 털고 맨 뒷줄로 가서 다시 앉았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당황한 나머지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윽박지를 뿐이었다. 그러면 맨 앞줄이 된 아이도 앞의 아이처럼 맨 뒷줄에 가서 앉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아이들이 굳게 잠긴 교문을 열고 이리역 광장으로 갈 기세였다고, 백가흠이 말했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준비가 없었고,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억울하고 답답한 분위기.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모두 무언가를 침묵으로 말했던 날. 아이들의 즉흥적인 항의성 ‘데모’는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겁도 없이 말이다. 그 어린 ‘중딩’들을 다독여 교실로 돌아가게 한 것은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술잔과 함께 울고, 잊으며 용서하고



소주잔을 부딪히는 사진



하얀 꽃송이 송이 웨딩드레스 수놓던 날

우리는 영원히 남남이 되고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 그날은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남남이 되는 날 뿐이랴. 술잔과 함께 울고 싶은 날이 우리 생에는 많다. 나도 그날 술잔과 함께 울었을 것이다. 조용필의 <바람이 전하는 말> 가사에도 술잔이 나온다고 뜬금없이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타버린 그 잔 속에 숨어 있는 불씨의 추억”이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의 2절은 내 영혼이 너를 떠나기 전에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꽃씨를 하나 심고, 그 꽃씨가 꽃나무로 자라나서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연기를 피우며 낙엽을 태우면 재 속에 숨어 있는 불씨의 추억이 살아날 거라는 내용이다. 조용필은 노래의 절정 부분에서 유독 강한 된소리를 낸다. “타버린 그 재”를 나는 “타버린 그 잔”으로 오해하면서 들었다. 무려 이십 년이 넘게. 나는 지금도 ‘재’보다 ‘잔’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훨씬 크다고 우기고 싶어진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Q"는 3절의 가사가 일품이다. 배신의 아픔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배신 이후의 시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화자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둬두는 일이 된다. 화자는 상대방을 잊음으로써 용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바로 그것. 화자의 이 현명한 선택은 노래를 듣는 대중에게 모종의 해방감을 부여한다. 네가 나를 놓아버렸으니 나도 너를 놓아 버리겠다는 것. 그게 한때의 미혹이거나 착각이었다고 해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결연한 결별. 1980년대를 어떤 이들은 가시밭이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뜨거운 불볕이었다고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1990년에 태어난 아들은 ‘아부지, 또 80년대 이야기인가요’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다.




 

[당신은 어떤 ‘가요’]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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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어느 신문의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등을 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되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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