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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 타인을 다루는 방식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 - 타도 대상 혹은 적에서 종, 초월 파트너까지 -

오영욱

2020-12-28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는? 흔히 웹툰, 웹소설, 만화, 게임 같은 장르와 이들 장르가 사용하는  맨스, 추리, SF, 스릴러, 무협, 코미디같은 패턴 등을 아울러 ‘장르문화’라고 부른다. 이상한 것은 이들 ‘장르문화’가 점점 큰 인기를 얻고 산업적으로도 크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아직 예술작품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교과서, 언론 등에서도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점이다.  이에 이미 일상과 문화 곳곳에 깊숙이 파고든 다양한 장르문화 콘텐츠들과 그 속에 숨어있던 인문적 가치와 요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새롭게 발굴해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발자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우리가 흔히 벽돌 깨기라고 부르는 〈브레이크 아웃〉의 아이디어를 플레이어가 총을 쏴서 적을 죽이는 형태로 변형시켰다. 그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적을 사람으로 하려고 했으나 문제가 될 것 같아 외계인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중략) 원래 외계인은 먼저 공격해오는 존재이기도 하니, 인간이 반격하여 외계인을 죽이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설정이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만, 외계인은 죽여도 괜찮... ....



한국 장기의 차별점... ‘전쟁’설정



한국의 장기(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국의 장기(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국의 장기는 다른 나라의 장기와 규칙이 다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바로 왕에 해당하는 ‘궁’이 초나라와 한나라를 상징하는 ‘초’와 ‘한’으로 되어있으며, 진영 역시 초와 한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초와 한은 항우와 유방으로 널리 알려진 초한지의 바로 그 두나라 인데, 전쟁을 다루는 보드게임에 어울리는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장기의 기원은 인도의 차투랑가로 보고 있고, 다른 나라의 장기에서는 이러한 설정을 찾아볼 수 없으니 장기에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이란 설정이 붙은 것은 게임이 만들어진 이후일 것이다.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기 전부터 많은 게임들에는 이러한 설정이 붙어있었고, 특히 전쟁을 다루는 워게임(wargame) 같은 경우는 각 나라 군대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면서 경기의 형태보다는 컴퓨터가 내놓는 수많은 문제들을 주로 적들을 제거하는 형태로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외계인은 죽여도 괜찮아



<어드벤처> 게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이스터에그 <어드벤처>(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러한 설정은 온전히 게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타리2600’ 게임기용 명작 게임이자 최초로 발견된 이스터에그1)로 유명한 〈어드벤처〉(1980년 출시)는 테이블RPG인 던전스 앤 드래곤스의 영향을 받아 게임 속 적들로 용이나 박쥐 등을 등장시켰다. 이러한 적들은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1970년대의 SF물이나 펄프픽션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1) 이스터에그 :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장난삼아 숨겨두는 설정 혹은 표시같은 것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슈팅게임 장르의 원조 격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개발자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우리가 흔히 벽돌 깨기라고 부르는 〈브레이크 아웃〉게임 아이디어를 플레이어가 총을 쏴서 적을 죽이는 형태로 변형시켰다. 그는 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적을 사람으로 하려고 했으나 문제가 될 것 같아 외계인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또한 이 외계인은 그가 즐겨 읽던 SF소설의 영향을 받아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당시 SF소설에서 외계인의 침공은 흔한 클리셰이기도 했던 것. 지금은 너무 뻔하다고 사용되지 않을 소재지만, 미국과 소련이 냉전 중이던 시대 상황이었기에 서로 다른 나라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외계인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외계인이 먼저 공격해왔으니 인간이 반격을 가해 죽이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설정이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만, 외계인은 죽여도 괜찮았다.


 

게임 표현 기준이 제대로 안 세워졌던 시대



영화 죽음의 경주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죽음의 경주>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당시에는 게임의 표현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던 시대라 물의를 일으키는 게임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오락실에 출시된 〈죽음의 경주〉는 운전대가 달린 평범한 운전게임과는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보행자를 치어 죽여서 점수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게임 개발자의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었다. 1975년에 나온 영화 〈죽음의 경주(DeathRace2000)〉에 사람을 치어 죽일수록 점수를 얻는 레이싱 경기가 먼저 등장했던 것이다. 게임 제작사는 게임과 영화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 미친 레이스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장치로 인정 받았으나, 게임에서는 이것을 게임 이용자가 직접 사람 형태의 캐릭터를(게임 안에서는 ‘그렘린’이라 칭했다) 치어 죽이도록 만들었고 결국 논란이 되고 말았다.



<커스터의 복수> 게임 스크린샷

<커스터의 복수> 게임 스크린샷



한편 아타리 2600 게임기용으로 나온 게임 〈커티스의 복수〉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장군을 모델로 한 캐릭터를 플레이어가 조종하여, 미국 원주민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을 가진 성인용 게임이었다. 아타리 2600의 해상도는 매우 낮은 데다가 스프라이트2)의 한계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사각형이 매우 커 간신히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많은 판매량을 얻었고, 판매량보다 더 큰 논란을 가져왔다.

2) 스프라이트 : 게임 등에서 사용되는 움직이는 2차원 비트맵 개체를 가리키는 용어



게임 속 주적을 누구로 표현할 것인가



게임 속 적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

게임 속 적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



이러한 문제작들의 등장과 함께 게임에 대한 표현 기준은 시대의 흐름과 게임업계의 분위기 등 안팎의 영향을 받으며 점점 잡혀 나갔다. 많은 게임이 적들을 죽이는 것을 이용자에게 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죽여도 되는 것. 죽일 수 있는 것에 대한 표현수준이 개발사와 이용자, 그리고 외부 기관에 의해 묵시적으로 합의되는 지점이 생겨났던 것이다. 게임이 국경을 초월하며 팔리는 상황이 되면서 국가, 법률, 사회 분위기뿐 아니라 상업적인 고려 또한 이 합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이라면 아무래도 총을 들고 싸우는 슈터 장르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게임들이 다루는 전쟁도 다양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2차대전뿐만 아니라, 훨씬 더 과거 혹은 미래의 전쟁이 될 때도 있다. 국내에서는 사람과 사람끼리의 대결만을 지원하는 온라인 게임이 일반적이지만, 해외의 비디오 게임 콘솔3)을 통해 판매되는 게임들 사람과 사람간의 대결이 주가 아니라, 제작사가 제공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플레이하는 모드가 중심이 될 때가 더 많다.

3) 콘솔 : 1인 이상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컴퓨터 장치

 


홈프론트 게임 공식 이미지

<홈프론트> 게임 공식 이미지



이러한 게임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소속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되는 편이고, 주적은 그 반대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에 태평양전쟁이 무대라면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의 유럽이 무대라면 독일군이 주적이 되는 식이다. 그러니 플레이어가 일본군이나 독일군을 사살한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편 근미래를 다루는 게임들은 소설이나 영화 원작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을 밝히는 등을 통해 주적 설정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기도 하고 현재 자기 나라와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게임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국가들의 경우 엉뚱한 적들을 대신 설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크라이시스〉나 〈홈프론트〉 같은 게임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주적을 중국 대신 북한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홈프론트〉의 경우엔 북한군이 미국 본토에 쳐들어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참고로 이 게임이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가 안됐다는 사실은 덤으로 알려드린다.


요즘 나오고 있는 근미래나 현대를 다루는 슈터 게임의 경우 국가 간의 관계가 중요해지고, 강대국(특히 서방세계와 적대국) 간의 전쟁 가능성도 많이 줄어들면서 게임에 등장하는 주적들 역시 국가보다는 테러 단체나 악당 기업 등으로 변경되는 추세다. 또 이슬람권을 주로 테러리스트로 그린다는 비판과 러시아나 중국을 무조건 악당으로 쓰기가 곤란하다는 점 때문에 국가가 위기를 맞을 정도의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에는 차라리 외계인들이나 좀비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슈터 장르의 주적은 쏘아죽여야 하는 존재가 대부분이지만 다른 장르로 가면 상황이 좀 바뀌게 된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4)들은 대부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준비해놓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선택할 여지가 슈터게임보다는 넓어진다. 많은 슈터 게임이용자들은 혼자 즐길 때는 주인공인 미군이나 서방군을 많이 고르지만 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전략 게임을 할 때는 독일군을 선택하는 이용자들이 상당수다. 만약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이 돼서 한국을 침략하는 게임이 나오면 어떨까. 90년대에 출시된 임진왜란을 다룬 국산 전략 게임인 〈충무공전〉이나 〈임진록〉 등에서는 조선군이 돼 일본을 막아내고 일본으로 쳐들어가는 임무도 존재했지만, 일본군을 조종하여 역사적 사실 그대로 조선군과 싸운 후 안전하게 퇴각하는 임무들도 존재했다.

4) 시뮬레이션 : 플레이어가 시간을 멈추어놓고 정해진 만큼의 명령을 수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게임



엑스컴 에노미 언노운 공식 이미지

게임 공식 이미지



턴제 전략 게임 중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시리즈인 〈X-COM〉 시리즈는 90년대 출시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은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전 지구가 힘을 합쳐 조직한 특수부대인 X-COM을 지휘하여 불리한 상황에서 외계인의 기술을 연구해가며 부대를 성장시켜 외계인을 싸워 물리치는 구조를 가졌다. 이 시리즈는 육성과 전략이 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부대원 하나하나를 조작해 주의 깊게 전술을 구사하지 않으면, 외계인의 반격 한번에 열심히 키웠던 부대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어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인기 게임이었다.


또한 2010년에 〈X-COM〉시리즈 1, 2탄의 게임성을 현대에 맞춰 잘 풀어내서 리메이크한 〈XCOM〉 시리즈(리메이크되면서 –가 빠졌다)는 좀 더 편하면서도 원작의 긴장감과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수작이기도 했고 간단하게나마 게임 안에 대전할 수 있는 모드를 구현해놓기도 하였다. 이 대전 모드는 게임 안의 전술 부분만을 옮겨놓았는데, 실제 게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외계인 유닛과 XCOM 특공대 유닛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또한 게임 한판 한판이 독립적인 바둑, 장기,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인간 부대를 성장시키는 요소가 있는데다가, 외계인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특수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아 유닛간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적군으로만 대하던 외계인들을 직접 조종할 수 있고, XCOM의 인간 대원들을 섞어서 팀을 구성하는 독특한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게임 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했지만 대전모드로만 존재했던 조합들을 실제 게임 줄거리로 풀어낸 것이 바로 XCOM 외전으로 새로 출시된 <키메라 스쿼드>이다. 



게임에선 외계인과도 협력... 우리 현실은



엑스컴 키메라 스쿼드 이미지 출처 엑스컴 홈페이지

게임 공식 이미지(이미지 출처 : XCOM 공식 홈페이지)



〈XCOM : 키메라 스쿼드〉는 외계인과의 전쟁이 끝난 후 외계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던 종족이 사라진채 지구에 남은 외계인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안의 대테러부대가 주인공이다.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병사에 캐릭터를 부여해서 일반 군대보다는 좀 더 특수부대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도 했다. 도시가 가진 특수한 상황 때문에 특수부대는 지난 시리즈까지만 해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인간과 외계인들이 섞여서 팀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상대하는 적들은 인간과 외계인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며 도시의 치안을 위협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이민자나 자신과는 다른 인종들을 점점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인종도 아닌 아예 다른 인류가 전쟁 상대가 아닌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임은 우리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타인을 게임이라는 콘텐츠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게임 속에서 타인을 다루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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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욱
오영욱

게임평론가
2006년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한 게임 프로그래머. <한국게임의 역사>와 <81년생의 마리오> 등의 저서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현재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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