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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불평등

잠 못 드는 현대인의 자화상

오찬호

2018-10-29


드라마에 종종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잠옷을 입은 부부가 자기 전 큰 침대에 기대 아름다운 조명 아래서 두꺼운 책을 읽는다. 그날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편안히 잠든다. 어릴 때는 이런 드라마 속 모습이 현실에서 쉽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해도 자는 거야 철저히 개인 시간과 공간을 쓰는 것 아닌가. 잠 줄여가며 공부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학창시절이 끝나면 편안히 수면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수면이라고 어찌 불평등하지 않겠는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마흔 살이 넘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잠옷 입고 양치질하고 제대로 이불 덮고 잠자기’를 그해의 신년목표로 세우곤 한다. 그건 그날 입었던 옷을 벗지 않은 채 양치도 하지 않고 소파에 엎어져 자는 경우가 많아서다. 생활습관의 문제라고 한다면 억울하다. 내 삶은 나태와는 거리가 멀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종일, 그것도 늦게까지 일한다. 오늘 오전에는 대학 강의를 했고 이를 위해 새벽부터 책을 읽고 자료를 준비했다. 오후에는 지방도서관에 강연을 다녀왔고, 저녁에는 바나나를 먹으면서 작업실에서 집필 했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지금은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몇 시간을 졸았는지 모르겠다.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피로가 누적되니 노동이 즐거울 리 없다. 스트레스를 잊고자 술을 찾는 경우가 잦아졌다. 심신이 지치니 조금만 마셔도 졸음이 몰려온다. 안방에 이불도 있고 옷걸이에 잠옷도 걸려 있지만 눈을 떠보면 언제 쓰러졌는지도 모르게 거실에서 새우처럼 자는 내게는 필요 없다. 꾸부정한 자세 때문인지 숙면을 하지도 못해 금세 눈이 떠진다. 아뿔싸, 할 일을 다 못했구나. 그러고는 다시 새벽부터 일, 또 일이다. 아내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커녕 부부가 같이 자기도 힘들다.


그런데 말이다. 이토록 열심히 사는데도 편안한 숙면을 도와줄 침대 하나가 없다. 돈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침대를 놓을 공간이 없다. 침실? 그건 신혼 초에야 잠시 있었지, 아이가 생기면서 늘어난 짐에 침대마저 버려야 했다. 넓은 집으로 가면 될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그게 무슨 마음먹는다고 가능한가. 나는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같은 단지의 동일 평수 아파트 가격이 무려 6억이다. 침대가 들어갈 만한 집은 8억이다. 지하철 종점에서 15분을 걸어가야 하는, 입지 조건도 그리 좋지 않은 아파트 가격이 이렇다.



병든 사회 속 병든 사람들


누구는 ‘수납의 달인’처럼 현재 공간을 잘 활용하든지, 아니면 지방으로 가서 삶의 질을 높이라고 한다. 달인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인생은 기인열전이 아니다. 지방으로 가면 일 한다고 서울로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만 축내고, 입은 옷 그대로 양치질도 안 하고 잘 게 뻔하다. 집값 때문에 지방에 살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지방이라고 정말 생각만큼 저렴할까. 20년 동안 꼬박꼬박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일상이 어찌 여유로울까. 침대 놓을 공간은 생기겠지만 편안한 수면은 어불성설이리라.


다행인 건 나만 이 지경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를 판단하는 좋은 항목(행복지수, 성 평등, 복지비용 등)은 OECD 국가에서 하위권이고, 나쁜 항목(자살률, 소득 격차 등)은 상위권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면시간에서조차 차별받는다. OECD가 발표한 국가별 하루평균 수면시간 조사(2015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역시나 최하위였다. 조사 대상 18개국의 평균은 한국보다 33분이나 긴 8시간 22분이었다. 아침에 33분이 더 보장되는 하루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무려 1시간 1분이나 더 길어 매일 8시간 50분이나 푹 잘 수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망하지 않았다. 게으름은 정량적 지표로써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하루에 8시간 넘게 잔다고 말을 하면 “할 거 다 하고 어떻게 살아갈래?”라는 빈정거림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자는 시간도 부족한 한국인들은 수면의 질도 좋지 않다. 필립스의 2015년도 조사에 따르면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면이 방해받는 경우마저도 한국인들이 43%로 가장 높다(브라질 33%, 중국 32%, 영국 24%, 일본 23%). 사회가 병드니 생물학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잠’마저 뒤척거리게 만들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하루가 활기찰 수 없고 결국 끝낼 수 있는 일도 제때 마무리 짓지 못한다. 그러니 종일 일만 하고 잠은 대충 자게 된다. 그게 억울하니 삶의 질은 바닥이고. 악순환의 완벽한 선순환이다.


병든 사회 속 병든 사람들

 

 

헤어 나올 수 없는 관습


잘못된 컨베이어 벨트라면 작동을 멈춰야 하겠지만,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이런 속성은 칭찬을 받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전형이랍시고 포장된다. 우리는 생애 전반에 걸쳐 ‘잠을 줄여가며’ 공부와 일을 했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수천 번 듣는다. 밤을 밝히고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열정’과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글의 단골 소재다. 남들 잘 때 안 잤다는 것에 긍정성을 부여하는 사회에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늦게 퇴근했다”식의 표현은 솔직히 진부할 정도다. 하지만 위로와 보상을 정당화하는데 이만한 효과를 지닌 말도 없다. 나부터가 그랬다. 나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했는데 당시 꽤 여러 장학금을 받았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누구보다 긍정적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유용한 자료였으니 내가 장학금을 받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는 ‘자는 걸 잘 챙겨가면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이미지에 길들여졌다. 침대 놓을 공간을 마련하고자 잠도 줄여가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마흔에 임대주택에 살면서 8시간이나 잔다는 것이 타인에게 혹 게으르게’ 비칠까 봐 두려웠다. 가난한 사람다움을 인정받으려는 내게 숙면은 사치였다. 깨끗하게 씻지도 않고 거실 바닥에서 자는 내가 한심해서 그러지 않기로 신년 계획을 세웠지만, 그 모든 게 가족에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열심히 사는 아빠’의 상징을 얻으려던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효과가 있으니, 지키지도 않는 다짐을 반복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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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찬호
오찬호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가능하다고 믿고 나쁜 고정관념을 깨는 글쓰기를 주로 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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