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스페인의 알퐁소 6세는 톨레도를 함락시킨다. 유럽에서 기독교세력이 이슬람을 몰아내는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그리고 바로 그 톨레도에서 아랍세계로 넘어갔던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된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등 수학과 과학 분야의 보석 같은 저작들이 비로소 유럽인에게 소개되었다. 거의 1,000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피렌체나 베네치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등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서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번역본들은 누구나 베낄 수 있어, 필사에 필사가 더해지며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독일과 북유럽,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전해졌다.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번역가들의 수고는 유럽 지식인들에게서 고대 그리스를 복권시키고 새로운 유럽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번역은 유럽 전역에 공유되었고, 그리스의 오래된 선진문물 또한 공유되었다.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는 동양의 인쇄 기술에 관해 전해 듣고 배웠다. 그는 유럽에서 최초로 인쇄기를 통해 다량의 인쇄물을 찍었다. 첫 책은 성서였다. 여전히 지식이 비전(祕傳)으로 이어지기를 선호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인쇄기술의 발달은 르네상스 시기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더 다양한 책을, 더 싸게, 더 광범위하게 공급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책이 일부 지식인들만 쓰는 라틴어가 아닌 각각의 모국어로 인쇄되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인쇄된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교육기관도 늘어났다. 수도원에서만 읽고 쓰기를 배우던 중세를 넘어 유럽의 도시마다 대학이 설립되고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문맹률은 낮아지고, 일반 평민도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비로소 철학과 과학, 예술이 귀족의 손에서 해방되어 민중에게 공유되었다.
2
과학 혁명 이후 눈부신 발전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의학적 발견, 생물학적 발견, 기계공학적 발명은 모두 공유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전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 혜택은 빈부의 격차나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비교적 골고루 누려졌다. 그러나 이제 과학 지식이 모두에게 열리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던 시기는 지났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지식에 대한 자본의 독점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이 논문을 게재하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대해 불만이 크다. 연구자들은 ‘돈을 내고’ 투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문을 읽는 사람도 ‘돈을 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는 그 논문을 읽을 권리를 돈을 주고 사서, 내부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적을 두지 않은 이들이 이곳의 논문을 검색하고 읽어내기 위해선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든다. 제3세계의 가난한 대학과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AIDS는 이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마치 당뇨병처럼 잘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병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약값이 비싼 이유는 독점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불하는 휴대폰 비용에는 꽤 높은 비율의 특허료가 포함된다. 삼성과 애플이, 애플과 퀄컴이 싸우는 지점은 바로 이 특허에 대한 것이다. 크리스퍼의 ‘유전자 가위’ 특허와 관련된 법적 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생물학 연구, 특히 유전공학 분야에 획기적인 기술로 자리했지만 이 역시 누가 특허의 권리를 가지느냐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기업들은 플랫폼 자체의 특허권을 주장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 발견한 화합물에 특허를 주장하기도 한다.
3
조너스 소크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이다. 그에게 언론이 물었다. “백신의 특허는 누가 갖게 되는 건가요?”이 물음의 진정한 의미는 ‘어느 기업에게 백신의 특허를 팔 건가요?’였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글쎄요, 아마도 사람들이겠죠. 특허 같은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그러나 이제 지식의 공유는 조너스 소크 같은 의인(義人)에게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연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댄 이들이 이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법과 규제로 강제할 수밖에 없다. 그를 통해 연구자를 자본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과학 지식에 대한 기업의 배타적 권리는 강화된다. 우리는 교육이 개별 자본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을 지는 사회에 산다. 마찬가지로 의료 행위가 자본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국가가 의료보험를 실시하는 곳에 산다. 한정된 땅이 일부 개인과 자본에 의해 과점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다양한 부동산 정책이 아직 부족하나마 시행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지식의 빈부 격차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도서관을 세우고 무료로 도서를 빌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정책이 혜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인터넷이나 보다 높은 수준의 과학 및 기술 정보에 대해서도 누구나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자본으로부터 그 권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유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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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과학의 공유
박재용
2017-06-19
11세기 스페인의 알퐁소 6세는 톨레도를 함락시킨다. 유럽에서 기독교세력이 이슬람을 몰아내는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그리고 바로 그 톨레도에서 아랍세계로 넘어갔던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된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등 수학과 과학 분야의 보석 같은 저작들이 비로소 유럽인에게 소개되었다. 거의 1,000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피렌체나 베네치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등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서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번역본들은 누구나 베낄 수 있어, 필사에 필사가 더해지며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독일과 북유럽,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전해졌다.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번역가들의 수고는 유럽 지식인들에게서 고대 그리스를 복권시키고 새로운 유럽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번역은 유럽 전역에 공유되었고, 그리스의 오래된 선진문물 또한 공유되었다.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는 동양의 인쇄 기술에 관해 전해 듣고 배웠다. 그는 유럽에서 최초로 인쇄기를 통해 다량의 인쇄물을 찍었다. 첫 책은 성서였다. 여전히 지식이 비전(祕傳)으로 이어지기를 선호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인쇄기술의 발달은 르네상스 시기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더 다양한 책을, 더 싸게, 더 광범위하게 공급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책이 일부 지식인들만 쓰는 라틴어가 아닌 각각의 모국어로 인쇄되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인쇄된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교육기관도 늘어났다. 수도원에서만 읽고 쓰기를 배우던 중세를 넘어 유럽의 도시마다 대학이 설립되고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문맹률은 낮아지고, 일반 평민도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비로소 철학과 과학, 예술이 귀족의 손에서 해방되어 민중에게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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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 이후 눈부신 발전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의학적 발견, 생물학적 발견, 기계공학적 발명은 모두 공유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전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 혜택은 빈부의 격차나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비교적 골고루 누려졌다. 그러나 이제 과학 지식이 모두에게 열리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던 시기는 지났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지식에 대한 자본의 독점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이 논문을 게재하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대해 불만이 크다. 연구자들은 ‘돈을 내고’ 투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문을 읽는 사람도 ‘돈을 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는 그 논문을 읽을 권리를 돈을 주고 사서, 내부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적을 두지 않은 이들이 이곳의 논문을 검색하고 읽어내기 위해선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든다. 제3세계의 가난한 대학과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AIDS는 이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마치 당뇨병처럼 잘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병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약값이 비싼 이유는 독점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불하는 휴대폰 비용에는 꽤 높은 비율의 특허료가 포함된다. 삼성과 애플이, 애플과 퀄컴이 싸우는 지점은 바로 이 특허에 대한 것이다. 크리스퍼의 ‘유전자 가위’ 특허와 관련된 법적 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생물학 연구, 특히 유전공학 분야에 획기적인 기술로 자리했지만 이 역시 누가 특허의 권리를 가지느냐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기업들은 플랫폼 자체의 특허권을 주장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 발견한 화합물에 특허를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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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스 소크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이다. 그에게 언론이 물었다. “백신의 특허는 누가 갖게 되는 건가요?”이 물음의 진정한 의미는 ‘어느 기업에게 백신의 특허를 팔 건가요?’였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글쎄요, 아마도 사람들이겠죠. 특허 같은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그러나 이제 지식의 공유는 조너스 소크 같은 의인(義人)에게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연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댄 이들이 이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법과 규제로 강제할 수밖에 없다. 그를 통해 연구자를 자본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과학 지식에 대한 기업의 배타적 권리는 강화된다. 우리는 교육이 개별 자본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을 지는 사회에 산다. 마찬가지로 의료 행위가 자본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국가가 의료보험를 실시하는 곳에 산다. 한정된 땅이 일부 개인과 자본에 의해 과점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다양한 부동산 정책이 아직 부족하나마 시행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지식의 빈부 격차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도서관을 세우고 무료로 도서를 빌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정책이 혜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인터넷이나 보다 높은 수준의 과학 및 기술 정보에 대해서도 누구나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자본으로부터 그 권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유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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