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영화가 가진 밝은 톤이었다. 도무지 <에일리언>을 만든 그 감독이 맞을까 싶은 정도로 경쾌하고 코믹한 시선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변화를 사뭇 궁금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SF 영화라고 할 때 그간 우리가 보았던 비장한 대서사와는 사뭇 결이 다른, 긍정적인 처세 영화에 가까웠다고 할까. 화성 탐사를 떠난 아레스 탐사대의 팀원 마크(맷 데이먼)는 폭풍 때문에 대원들을 모두 잃고 홀로 우주에 고립되는데, 결국은 이 막막한 상황에서 지구로 살아 돌아온다. 그가 돌아온 것이야말로 기적인 일이지만, 내게 그보다 더 기적적인 사실은 마크가 그 적막한 우주공간에 남겨졌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나갈 궁리를 끊임없이 하는 데 있었다. 홀로 남겨진 절망 속에서도 마크는 힘을 내어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식수를 만들고, 동료들이 남기고 간 인분으로 감자를 재배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마크의 이 ‘서바이벌’ 도전기에 영화의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화면을 향해 혼자 말하는 마크를 지켜보는 것이 마치 <‘아프리카 TV’>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류의 1인 방송을 보는 듯한 감흥을 안겨주었다. 정말, 아니 혹시라도 내가 우주에 고립된다면. 마크의 조언을 따라야지 하는 마음을 되새기면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실용적인’ SF라는 측면에서 <마션>이 주는 소소한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정말 그런 환경이 충족되면 감자가 자랄까?’ 같은 과학시간에 할 질문을,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흥미롭게 소비한다. 여전히 <스타워즈>, <스타트렉> 시리즈 같은 소위 상상에 입각한 스페이스 오페라 류의 SF물이 주는 감흥은 전율을 일으키지만, 최근 흥행한 SF물이 대부분 과학적 근거, 사실에 충실하게 입각한 하드 SF물이라는 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SF가 말하는 미래의 현실이 우리 곁에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 생명체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싶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래비티>의 박사 스톤(산드라 블록)이 생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서 두 발로 지구에 착륙하던 장면은, 관객들이 화면 속 스톤 박사가 내딛던 질퍽한 발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인터스텔라>에서 나사(NASA) 소속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헤이) 역시 그렇게 살아 돌아온 의지의 인간 중 하나다. 우주의 1시간이 무려 지구의 7년에 해당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해, 사랑하는 지구의 가족들과 20년간 떨어져 있어야 했던 그 어머어마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 돌아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화면에 구현한 블랙홀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보는 감흥도 대단했지만, 그만큼이나 이 영화의 설정인 자원고갈 및 식량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미래를 보여주는 광활하고 황폐한 옥수수밭이 주는 사실적인 충격도 컸다. 실제 촬영을 위해 땅을 매입해 집을 짓고, 옥수수밭을 경작했다는 이 영화의 프로덕션 뒷이야기는 영화 속 현실을 더 실감 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인터스텔라>에서 확인한 5차원을 경험하는 세계에 살게 될지 모른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리들리 스콧이 묘사한 <블레이드 러너>의 먼 미래인 2019년을 고작 1년 앞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영화 속 가상의 미래가 아니라, 화성 탐사 로봇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고 탐사 계획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시대. 더 이상 우주에서의 삶에 대해서, 실질적인 고민을 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사회를 미래적인 상황에 적극 반영한 닐 블롬캠프 감독의 <엘리시움>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인 2154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SF물로 <인터스텔라>의 지구 배경이 식량난으로 황폐해진 농촌이었다면, <엘리시움>은 인류의 미래를 그보다 더 극한 환경에 위치시킨다.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가 살고 있는 지구는 자원 고갈로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가 쌓인 채 황폐해져 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공장에서 일한다. 돈 없는 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동안 상위 1%에 해당하는 극소수의 특권층은 지구 대기권 밖 ‘엘리시움’에서 풍족한 생활환경, 최상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불법 난민이 되더라도 기를 쓰고 편의가 보장된 엘리시움으로 진입하려고 한다. 노동자로 살아가던 맥스 역시 엘리시움으로 향하는데, 근무 중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되어 5일 밖에 살지 못하게 되면서 의료혜택이 시급해진 탓이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소명의식이 투철하다거나 우주비행사나 우주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아니었던, 한낱 노동자인 그가 엘리시움에 반격을 가하게 된 건 소수의 사람들만이 혜택을 받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출신인 닐 블롬캠프 감독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점철된 사회상을 반영해 미래의 사회를 묘사함으로써, 결국 맥스라는 평범한 노동자 영웅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대기오염과 정국의 불안. 매일 아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상이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지구에서의 삶을 비난하게 되는 요즘이다. 세상의 불균형은 더욱 확산됐고, 빈부 격차 또한 갈수록 날로 심화되고 있다. 대기권 밖까지 이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크린 속 미래의 SF가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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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o : 우주, 생각보다 가까운 -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
이화정
2017-02-16
우주, 생각보다 가까운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영화가 가진 밝은 톤이었다. 도무지 <에일리언>을 만든 그 감독이 맞을까 싶은 정도로 경쾌하고 코믹한 시선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변화를 사뭇 궁금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SF 영화라고 할 때 그간 우리가 보았던 비장한 대서사와는 사뭇 결이 다른, 긍정적인 처세 영화에 가까웠다고 할까. 화성 탐사를 떠난 아레스 탐사대의 팀원 마크(맷 데이먼)는 폭풍 때문에 대원들을 모두 잃고 홀로 우주에 고립되는데, 결국은 이 막막한 상황에서 지구로 살아 돌아온다. 그가 돌아온 것이야말로 기적인 일이지만, 내게 그보다 더 기적적인 사실은 마크가 그 적막한 우주공간에 남겨졌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나갈 궁리를 끊임없이 하는 데 있었다. 홀로 남겨진 절망 속에서도 마크는 힘을 내어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식수를 만들고, 동료들이 남기고 간 인분으로 감자를 재배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마크의 이 ‘서바이벌’ 도전기에 영화의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화면을 향해 혼자 말하는 마크를 지켜보는 것이 마치 <‘아프리카 TV’>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류의 1인 방송을 보는 듯한 감흥을 안겨주었다. 정말, 아니 혹시라도 내가 우주에 고립된다면. 마크의 조언을 따라야지 하는 마음을 되새기면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실용적인’ SF라는 측면에서 <마션>이 주는 소소한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정말 그런 환경이 충족되면 감자가 자랄까?’ 같은 과학시간에 할 질문을,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흥미롭게 소비한다. 여전히 <스타워즈>, <스타트렉> 시리즈 같은 소위 상상에 입각한 스페이스 오페라 류의 SF물이 주는 감흥은 전율을 일으키지만, 최근 흥행한 SF물이 대부분 과학적 근거, 사실에 충실하게 입각한 하드 SF물이라는 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SF가 말하는 미래의 현실이 우리 곁에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 생명체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싶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래비티>의 박사 스톤(산드라 블록)이 생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서 두 발로 지구에 착륙하던 장면은, 관객들이 화면 속 스톤 박사가 내딛던 질퍽한 발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인터스텔라>에서 나사(NASA) 소속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헤이) 역시 그렇게 살아 돌아온 의지의 인간 중 하나다. 우주의 1시간이 무려 지구의 7년에 해당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해, 사랑하는 지구의 가족들과 20년간 떨어져 있어야 했던 그 어머어마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 돌아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화면에 구현한 블랙홀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보는 감흥도 대단했지만, 그만큼이나 이 영화의 설정인 자원고갈 및 식량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미래를 보여주는 광활하고 황폐한 옥수수밭이 주는 사실적인 충격도 컸다. 실제 촬영을 위해 땅을 매입해 집을 짓고, 옥수수밭을 경작했다는 이 영화의 프로덕션 뒷이야기는 영화 속 현실을 더 실감 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인터스텔라>에서 확인한 5차원을 경험하는 세계에 살게 될지 모른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리들리 스콧이 묘사한 <블레이드 러너>의 먼 미래인 2019년을 고작 1년 앞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영화 속 가상의 미래가 아니라, 화성 탐사 로봇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고 탐사 계획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시대. 더 이상 우주에서의 삶에 대해서, 실질적인 고민을 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사회를 미래적인 상황에 적극 반영한 닐 블롬캠프 감독의 <엘리시움>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인 2154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SF물로 <인터스텔라>의 지구 배경이 식량난으로 황폐해진 농촌이었다면, <엘리시움>은 인류의 미래를 그보다 더 극한 환경에 위치시킨다.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가 살고 있는 지구는 자원 고갈로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가 쌓인 채 황폐해져 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공장에서 일한다. 돈 없는 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동안 상위 1%에 해당하는 극소수의 특권층은 지구 대기권 밖 ‘엘리시움’에서 풍족한 생활환경, 최상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불법 난민이 되더라도 기를 쓰고 편의가 보장된 엘리시움으로 진입하려고 한다. 노동자로 살아가던 맥스 역시 엘리시움으로 향하는데, 근무 중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되어 5일 밖에 살지 못하게 되면서 의료혜택이 시급해진 탓이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소명의식이 투철하다거나 우주비행사나 우주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아니었던, 한낱 노동자인 그가 엘리시움에 반격을 가하게 된 건 소수의 사람들만이 혜택을 받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출신인 닐 블롬캠프 감독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점철된 사회상을 반영해 미래의 사회를 묘사함으로써, 결국 맥스라는 평범한 노동자 영웅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대기오염과 정국의 불안. 매일 아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상이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지구에서의 삶을 비난하게 되는 요즘이다. 세상의 불균형은 더욱 확산됐고, 빈부 격차 또한 갈수록 날로 심화되고 있다. 대기권 밖까지 이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크린 속 미래의 SF가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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