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 『가족이라는 병』, 시모주 아키코 지음, 살림
우리는 신기한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이전에 겪지 못했던 변화가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당연한 절차처럼 예정돼 있다. 게다가 그 변화 그래프의 기울기 역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삶의 구성 요소에 비롯됐다. 사람들은 덜 태어나고 더 오래 산다. 삶의 모습이 근본부터 바뀌면서 곳곳에서 부적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적응하기 위해서 결국 스스로 서야 한다는 숙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 『가족의 발견』 최광현 지음 | 윤나리 그림 | 부키
개인이 사회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자립이라고 하면, 자립의 첫 번째 무대는 당연히 가족이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은 한 세대 만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가족 구성원의 평균 숫자, 결혼과 이혼의 시기, 이혼하는 부부의 숫자,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 가족 모임의 풍경까지 바뀌었다.
저자 최광현은 강단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풍부한 실제 상담 사례를 경험했다. 독일에서 수많은 가족을 상담하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엔 가족 치료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미 전작 베스트셀러 『가족의 두 얼굴』을 통해 많은 독자를 만났다. 전작이 상담 사례 중심으로 정리한 모음집이라면 『가족의 발견』은 이를 좀 더 주제에 맞게 정리한 에세이에 가깝다.
물론 모든 가정에 상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 풀어놓은 상담 사례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행복하지 못한 착한 사람’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상담실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한 사마리아인’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고 가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이유는 그들의 가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듣고 동생에게 양보하고 착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왜곡된 사고의 틀에 길들어 있다. 지나친 겸손과 조심성, 대개 소극적인 태도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라고 명명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빠와 남동생들을 위해 늘 희생해야 했던 이전 세대의 고모, 이모들을 떠올렸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 더숲
한국 사회의 변화는 거의 모두 일본에서 이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서점가가 몇 년 동안 대안적인 삶, 특히 경제적 자립을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을 펴내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가운데 몇 권은 이미 한국어로 소개됐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등이 그것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가장 큰 반응을 얻은 책이다.
이런 책들의 시작점은 모두 거의 비슷하다.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했던 이전의 패러다임을 ‘확대 균형’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일본 경제는 자영업 위주의 ‘축소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는 지적이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젊은 시절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원예농업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막연히 농촌 생활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전환점은 농산물유통업체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생긴 고민이었다. 그것은 소진되지 않으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직업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발효 빵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 자란 쌀(밀이 아니다)로 효모를 얻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재료로 빵을 만든다는 원칙으로 시골빵집 ‘다루마리’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가 권했던 『자본론』은 그의 고민과 노력에 시작점 역할을 했다. 일 년에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운영 비용 외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방침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 운영 방식이 아직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또, 모든 자영업자가 이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의미가 큰 것은 이 시골빵집의 사고방식이다. 확장보다는 운영에 초점을 맞췄고, 이익 이전에 목표를 확실히 했다. 이 책의 성공 이후, 다루마리는 좀 더 큰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또 천연효모를 이용한 빵집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 사업도 시작했다고 하는데, 다루마리가 그저 시골빵집이라기보다는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시골빵집의 실험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정은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자립은 단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명이 늘면서 평생 두세 가지 직업이 자연스러운 시기가 올 것이다. 내 사업을 가지는 것은 많은 직장인의 꿈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창업이나 사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은영은 두 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창업 경험담은 아니다. 창업한 지 3년을 넘긴 ‘크리에이터’ 13명의 인터뷰를 통해 ‘작은 회사’의 경험을 정리했다.
저자가 가진 창업의 경험도 책의 신뢰도를 높인다. LG미디어공연사업팀, LG애드 등에서 콘텐츠와 미디어 관련 경력을 쌓은 저자는 통영에 ‘남해의봄날’이라는 출판사를 차려서 활발하게 책을 펴내고 있다. 지역 출판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선뜻 뛰어든 용기와 기획력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업체들은 디자인, 컨설팅 등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분야에 있다. 어떤 분야의 회사에나 바로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 던진 열다섯 개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자기 사업을 통해 자립하려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인 건 분명하다.
(예스24 도서사업본부장)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마쳤다. 석사 논문은 2,5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 썼다. 2001년에 인터넷서점 예스24로 첫 출근한 이래 서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 철학자 외엔 중요한 저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점 일은 철학 외 다른 과목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부끄럽게도 사들이는 책에 비해 읽는 건 여전히 턱없이 적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엠디의 서가 : 혼자 서려는 당신을 위해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엠디의 서가 : 혼자 서려는 당신을 위해
김병희
2016-09-20
혼자 서려는 당신을 위해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 『가족이라는 병』, 시모주 아키코 지음, 살림
우리는 신기한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이전에 겪지 못했던 변화가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당연한 절차처럼 예정돼 있다. 게다가 그 변화 그래프의 기울기 역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삶의 구성 요소에 비롯됐다. 사람들은 덜 태어나고 더 오래 산다. 삶의 모습이 근본부터 바뀌면서 곳곳에서 부적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적응하기 위해서 결국 스스로 서야 한다는 숙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 『가족의 발견』 최광현 지음 | 윤나리 그림 | 부키
개인이 사회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자립이라고 하면, 자립의 첫 번째 무대는 당연히 가족이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은 한 세대 만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가족 구성원의 평균 숫자, 결혼과 이혼의 시기, 이혼하는 부부의 숫자,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 가족 모임의 풍경까지 바뀌었다. 저자 최광현은 강단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풍부한 실제 상담 사례를 경험했다. 독일에서 수많은 가족을 상담하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엔 가족 치료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미 전작 베스트셀러 『가족의 두 얼굴』을 통해 많은 독자를 만났다. 전작이 상담 사례 중심으로 정리한 모음집이라면 『가족의 발견』은 이를 좀 더 주제에 맞게 정리한 에세이에 가깝다. 물론 모든 가정에 상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 풀어놓은 상담 사례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행복하지 못한 착한 사람’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상담실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한 사마리아인’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고 가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이유는 그들의 가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듣고 동생에게 양보하고 착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왜곡된 사고의 틀에 길들어 있다. 지나친 겸손과 조심성, 대개 소극적인 태도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라고 명명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빠와 남동생들을 위해 늘 희생해야 했던 이전 세대의 고모, 이모들을 떠올렸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 더숲
한국 사회의 변화는 거의 모두 일본에서 이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서점가가 몇 년 동안 대안적인 삶, 특히 경제적 자립을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을 펴내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가운데 몇 권은 이미 한국어로 소개됐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등이 그것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가장 큰 반응을 얻은 책이다. 이런 책들의 시작점은 모두 거의 비슷하다.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했던 이전의 패러다임을 ‘확대 균형’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일본 경제는 자영업 위주의 ‘축소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는 지적이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젊은 시절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원예농업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막연히 농촌 생활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전환점은 농산물유통업체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생긴 고민이었다. 그것은 소진되지 않으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직업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발효 빵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 자란 쌀(밀이 아니다)로 효모를 얻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재료로 빵을 만든다는 원칙으로 시골빵집 ‘다루마리’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가 권했던 『자본론』은 그의 고민과 노력에 시작점 역할을 했다. 일 년에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운영 비용 외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방침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 운영 방식이 아직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또, 모든 자영업자가 이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의미가 큰 것은 이 시골빵집의 사고방식이다. 확장보다는 운영에 초점을 맞췄고, 이익 이전에 목표를 확실히 했다. 이 책의 성공 이후, 다루마리는 좀 더 큰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또 천연효모를 이용한 빵집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 사업도 시작했다고 하는데, 다루마리가 그저 시골빵집이라기보다는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시골빵집의 실험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정은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자립은 단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명이 늘면서 평생 두세 가지 직업이 자연스러운 시기가 올 것이다. 내 사업을 가지는 것은 많은 직장인의 꿈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창업이나 사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은영은 두 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창업 경험담은 아니다. 창업한 지 3년을 넘긴 ‘크리에이터’ 13명의 인터뷰를 통해 ‘작은 회사’의 경험을 정리했다. 저자가 가진 창업의 경험도 책의 신뢰도를 높인다. LG미디어공연사업팀, LG애드 등에서 콘텐츠와 미디어 관련 경력을 쌓은 저자는 통영에 ‘남해의봄날’이라는 출판사를 차려서 활발하게 책을 펴내고 있다. 지역 출판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선뜻 뛰어든 용기와 기획력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업체들은 디자인, 컨설팅 등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분야에 있다. 어떤 분야의 회사에나 바로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 던진 열다섯 개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자기 사업을 통해 자립하려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인 건 분명하다.
(예스24 도서사업본부장)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마쳤다. 석사 논문은 2,5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 썼다. 2001년에 인터넷서점 예스24로 첫 출근한 이래 서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 철학자 외엔 중요한 저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점 일은 철학 외 다른 과목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부끄럽게도 사들이는 책에 비해 읽는 건 여전히 턱없이 적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엠디의 서가 : 혼자 서려는 당신을 위해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디딤널 : 건축가 없는 건축, 건축주 없는 건축
정다영
트라토리아 : 인류는 혼자서 행복하기는 힘듭니다
최낙언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