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먼저 고려대를 졸업하신 선배님이고, 남동생 또한 학교 후배라는 끈끈한 가족력이 있기도 하다. 사회에 나와 보니 이미 동종 업계는 물론 곳곳에 많은 선배들이 포진해 있어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건방지게 그 은혜를 선배들한테 도로 갚을 수는 없고, 물이 늘 아래로 흐르듯 내 능력에 맞추어 도움을 청하는 후배들에게 미력하나마 돌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동문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4년 내내 멋지고 역사 깊은 캠퍼스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훌륭하신 교수님들께 가르침을 받은 것만으로도 대학생으로서 큰 혜택을 받았다. 거기에 더하여 동창들 간에 이런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요즘처럼 개인화가 날로 심해지는 사회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축제’라는 것의 힘
▲ⓒ고려대학교
물론 학연을 자랑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이제는 학연만으로 모든 게 술술 해결되는 세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고려대학교가 다른 대학에 비해 동창들끼리, 혹은 선후배들끼리 잘 소통되는 비결은 대체 뭘까. 예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유독 많아서 향우회 중심으로 뭉쳤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내 독단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중 하나의 이유로, 아니 커다란 이유로 ‘고연전’을 들고 싶다.(연세대학교의 학연 연구에 대해선 그쪽 졸업생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만.)
‘고연전’은 매년 가을 정기적으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운동 선수ㅊ들이 친목을 목적으로 야구, 축구, 럭비, 농구, 아이스하키 등 다섯 가지 종목의 스포츠 게임을 겨루는 축제를 말한다. 대학을 다닌 4년 동안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특이한 경험을 얘기해 달라고 할 때마다 ‘고연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과 학생들과 다같이 어깨를 걸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를 높여 으쌰라으쌰 응원가를 부르면서 흥겹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응원하는 시간만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 흥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학교 앞으로 옮겨가서 우리끼리 길게 꼬리를 잡고 기차놀이를 하며 질질 끌려 다니다가, 동그랗게 둘러서서 구호를 목청껏 외친다. 그러다 상대편인 연세대학교 응원단을 만나면 마치 초등학생 때 했던 ‘우리 집에 왜 왔니’처럼 갈라져 선의의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금세 그들과도 친해져서 언제 싸웠냐는 듯 얼싸 좋다 어깨를 걸고 논다. 다 큰 대학생들이 완전히 초등학생이 되는 순간이다.
숙제하는 것도 잊고 캄캄해질 때까지 뛰어노는 초등학생처럼, 정말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휘저으며 괴롭히던 과제, 시험, 연애, 취업 같은 온갖 잡다한 걱정이 싹 사라진다. 사실 그런 걱정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겠는가. 잠시 새카맣게 잊는 것이지. 그렇게 3일 동안 신나게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이런저런 고민들이 슬그머니 찾아들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뭔가 좀 달라졌다. 이전보다는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진 게 사실이고, ‘자, 실컷 놀았으니 이제 해볼까’ 싶은 의지도 슬그머니 생긴다.
이런 것이 바로 축제의 힘이요, 우리가 잘 놀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쩌면 다 같이 하나가 되어 노는 그런 공간을 공유했던 동창들이기에, 더 정겹고 아끼고 도와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는 건, 여전히 철없는 짓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많은 학자들이 규정을 하면서 경제적 동물이라는 의미로 호모 이코노미쿠스, 창조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모 파베르 등, 여러 단어들이 탄생했다. 요즘 가장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네덜란드의 문화인류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칭한 ‘호모 루덴스’ 즉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란 연구이다.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하위징아는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노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이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나태한 것이고,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사회적 판단에 푹 젖어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있어도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혹시 놀 기회가 생기더라도 일말의 죄의식을 갖고 남의 눈치를 봐왔던 게 사실이다. 또한 무의식중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일과 그 외의 것으로 양분하여, 일 이외의 활동은 오로지 일하고 남는 한가한 시간에만 해야 하거나, 아니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누워 있는 아기 때부터 영어 테이프를 들어야 하고, 걷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자기계발을 시작하여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시달린다. 초등학생 때의 학습에 모든 미래가 결정난다는 부모의 신념 아래 공부를 시작, 중학교부터는 외고를 목적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대학을 목적으로 쉬지 않고, 놀지 못하고 경주말처럼 달려야 하는 것이 대다수 청년들의 초상이다.
그렇다고 대학에 가면 끝인가. 아니, 취업을 향한 진짜 어른들의 치열한 경주는 이제부터다. 다행히 그렇게 원하던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OECD 가입 국가 중 자랑스럽게도 노동 시간 1위라는 위업을 달성한 만큼 1년이면 2,285시간을 일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장 짧게 일하는 독일보다 무려 114일을 더 일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대로 놀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시간이나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일만 죽도록 하는 소진 상태에 빠진다. 아니면 텔레비전 시청이나 게임 같은 고립되고 수동적인 활동밖에 할 줄 모른다. 따라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풀리지 않고 쳇바퀴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결국은 일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여 젊은 나이에 조로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그런 청년들이 어떻게 수명 100세 세상을 살 것인가.
미국 최고의 놀이 전문가인 스튜어트 브라운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놀이의 본질을 깨닫고 일상 생활에서 진정한 놀이를 즐길 때 비로소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놀 줄 아는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현대인의 병인 만성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 동안 미친 듯이 놀아야 하고, 그래야 오히려 진짜로 미치는 것을 예방하며 현실 문제들을 극복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이어나갈 힘을 얻는다. 개인이 혼자 노력하여 풀 수도 있지만, 공동체가 다같이 모여서 억눌려 있던 마음과 광기를 풀어주는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다름 아닌 카니발이요, 축제인 것이다.
축제가 삶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 ⓒ고려대학교
그동안 외국에서 살 거나 여행을 많이 하면서 느낀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국가적인, 또 문화적인 축제가 생생한 삶의 공간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은 그 축제를 온몸으로 즐기면서 몸에 쌓인 젊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억눌린 광기를 해소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지켜야 할 사회의 룰이나 윤리를 배운다. 그런 축제를 준비하거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동안 본인은 알지 못했던 재능을 깨달아 그것이 곧 또 다른 일이나 취미 활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축제는 많다. 하지만 거의 예술 수준인 니스의 인형 축제, 전 국민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도 하나가 되는 태국의 송크란 축제, 내가 살던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토마토 축제 등과는 달리 매우 허술하고 형식적이다. 실컷 웃거나 하나가 되는 느낌은커녕 예쁜 아가씨 뽑기, 아니면 꽃구경 하러 갔다가 차 꽁무니나 남들 엉덩이만 보고 와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름만 축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교장선생으로 있는 이태원의 ‘인생학교 서울’은 지난 11월에 문을 열었는데, 통계를 보니 그 사이 다녀간 1천 명이 넘는 학생 대부분이 20~30대의 고민 많은 청년들이다. 그러나 인생학교를 찾았다는 것은 막연하게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만 보고 달리는 트랙에서 빠져 나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업을 하는 세 시간 동안 선생님과 학생은 완전히 몰입하여 내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는다. 앞으로는 교실을 벗어나서 다같이 노는 수업도 많이 늘릴 것이다. 비록 화려하고 거대한 축제는 아니더라도, 인생학교가 이왕이면 걱정 많고 희망 꺾인 청년들에게 내가 누렸던 ‘고연전’ 같은 해소 효과를 널리 전파하는 ‘축제 같은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여행 작가이자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편집인, SOHNMINA&CO.의 대표. 현재는 인생학교 서울의 창립자이자 교장 선생님이다. 오랜 시간 동안 KBS의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돌연 사표를 내고 스페인으로 유학, 귀국 후 여행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스페인 너는 자유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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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공간 : “젊을수록 함께 미칠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손미나
2016-04-01
“젊을수록 함께 미칠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먼저 고려대를 졸업하신 선배님이고, 남동생 또한 학교 후배라는 끈끈한 가족력이 있기도 하다. 사회에 나와 보니 이미 동종 업계는 물론 곳곳에 많은 선배들이 포진해 있어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건방지게 그 은혜를 선배들한테 도로 갚을 수는 없고, 물이 늘 아래로 흐르듯 내 능력에 맞추어 도움을 청하는 후배들에게 미력하나마 돌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동문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4년 내내 멋지고 역사 깊은 캠퍼스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훌륭하신 교수님들께 가르침을 받은 것만으로도 대학생으로서 큰 혜택을 받았다. 거기에 더하여 동창들 간에 이런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요즘처럼 개인화가 날로 심해지는 사회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축제’라는 것의 힘
▲ⓒ고려대학교
물론 학연을 자랑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이제는 학연만으로 모든 게 술술 해결되는 세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고려대학교가 다른 대학에 비해 동창들끼리, 혹은 선후배들끼리 잘 소통되는 비결은 대체 뭘까. 예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유독 많아서 향우회 중심으로 뭉쳤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내 독단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중 하나의 이유로, 아니 커다란 이유로 ‘고연전’을 들고 싶다.(연세대학교의 학연 연구에 대해선 그쪽 졸업생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만.)
‘고연전’은 매년 가을 정기적으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운동 선수ㅊ들이 친목을 목적으로 야구, 축구, 럭비, 농구, 아이스하키 등 다섯 가지 종목의 스포츠 게임을 겨루는 축제를 말한다. 대학을 다닌 4년 동안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특이한 경험을 얘기해 달라고 할 때마다 ‘고연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과 학생들과 다같이 어깨를 걸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를 높여 으쌰라으쌰 응원가를 부르면서 흥겹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응원하는 시간만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 흥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학교 앞으로 옮겨가서 우리끼리 길게 꼬리를 잡고 기차놀이를 하며 질질 끌려 다니다가, 동그랗게 둘러서서 구호를 목청껏 외친다. 그러다 상대편인 연세대학교 응원단을 만나면 마치 초등학생 때 했던 ‘우리 집에 왜 왔니’처럼 갈라져 선의의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금세 그들과도 친해져서 언제 싸웠냐는 듯 얼싸 좋다 어깨를 걸고 논다. 다 큰 대학생들이 완전히 초등학생이 되는 순간이다.
숙제하는 것도 잊고 캄캄해질 때까지 뛰어노는 초등학생처럼, 정말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휘저으며 괴롭히던 과제, 시험, 연애, 취업 같은 온갖 잡다한 걱정이 싹 사라진다. 사실 그런 걱정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겠는가. 잠시 새카맣게 잊는 것이지. 그렇게 3일 동안 신나게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이런저런 고민들이 슬그머니 찾아들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뭔가 좀 달라졌다. 이전보다는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진 게 사실이고, ‘자, 실컷 놀았으니 이제 해볼까’ 싶은 의지도 슬그머니 생긴다.
이런 것이 바로 축제의 힘이요, 우리가 잘 놀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쩌면 다 같이 하나가 되어 노는 그런 공간을 공유했던 동창들이기에, 더 정겹고 아끼고 도와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는 건, 여전히 철없는 짓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많은 학자들이 규정을 하면서 경제적 동물이라는 의미로 호모 이코노미쿠스, 창조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모 파베르 등, 여러 단어들이 탄생했다. 요즘 가장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네덜란드의 문화인류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칭한 ‘호모 루덴스’ 즉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란 연구이다.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하위징아는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노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이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나태한 것이고,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사회적 판단에 푹 젖어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있어도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혹시 놀 기회가 생기더라도 일말의 죄의식을 갖고 남의 눈치를 봐왔던 게 사실이다. 또한 무의식중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일과 그 외의 것으로 양분하여, 일 이외의 활동은 오로지 일하고 남는 한가한 시간에만 해야 하거나, 아니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누워 있는 아기 때부터 영어 테이프를 들어야 하고, 걷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자기계발을 시작하여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시달린다. 초등학생 때의 학습에 모든 미래가 결정난다는 부모의 신념 아래 공부를 시작, 중학교부터는 외고를 목적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대학을 목적으로 쉬지 않고, 놀지 못하고 경주말처럼 달려야 하는 것이 대다수 청년들의 초상이다.
그렇다고 대학에 가면 끝인가. 아니, 취업을 향한 진짜 어른들의 치열한 경주는 이제부터다. 다행히 그렇게 원하던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OECD 가입 국가 중 자랑스럽게도 노동 시간 1위라는 위업을 달성한 만큼 1년이면 2,285시간을 일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장 짧게 일하는 독일보다 무려 114일을 더 일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대로 놀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시간이나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일만 죽도록 하는 소진 상태에 빠진다. 아니면 텔레비전 시청이나 게임 같은 고립되고 수동적인 활동밖에 할 줄 모른다. 따라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풀리지 않고 쳇바퀴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결국은 일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여 젊은 나이에 조로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그런 청년들이 어떻게 수명 100세 세상을 살 것인가.
미국 최고의 놀이 전문가인 스튜어트 브라운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놀이의 본질을 깨닫고 일상 생활에서 진정한 놀이를 즐길 때 비로소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놀 줄 아는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현대인의 병인 만성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 동안 미친 듯이 놀아야 하고, 그래야 오히려 진짜로 미치는 것을 예방하며 현실 문제들을 극복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이어나갈 힘을 얻는다. 개인이 혼자 노력하여 풀 수도 있지만, 공동체가 다같이 모여서 억눌려 있던 마음과 광기를 풀어주는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다름 아닌 카니발이요, 축제인 것이다.
축제가 삶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 ⓒ고려대학교
그동안 외국에서 살 거나 여행을 많이 하면서 느낀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국가적인, 또 문화적인 축제가 생생한 삶의 공간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은 그 축제를 온몸으로 즐기면서 몸에 쌓인 젊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억눌린 광기를 해소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지켜야 할 사회의 룰이나 윤리를 배운다. 그런 축제를 준비하거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동안 본인은 알지 못했던 재능을 깨달아 그것이 곧 또 다른 일이나 취미 활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축제는 많다. 하지만 거의 예술 수준인 니스의 인형 축제, 전 국민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도 하나가 되는 태국의 송크란 축제, 내가 살던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토마토 축제 등과는 달리 매우 허술하고 형식적이다. 실컷 웃거나 하나가 되는 느낌은커녕 예쁜 아가씨 뽑기, 아니면 꽃구경 하러 갔다가 차 꽁무니나 남들 엉덩이만 보고 와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름만 축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교장선생으로 있는 이태원의 ‘인생학교 서울’은 지난 11월에 문을 열었는데, 통계를 보니 그 사이 다녀간 1천 명이 넘는 학생 대부분이 20~30대의 고민 많은 청년들이다. 그러나 인생학교를 찾았다는 것은 막연하게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만 보고 달리는 트랙에서 빠져 나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업을 하는 세 시간 동안 선생님과 학생은 완전히 몰입하여 내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는다. 앞으로는 교실을 벗어나서 다같이 노는 수업도 많이 늘릴 것이다. 비록 화려하고 거대한 축제는 아니더라도, 인생학교가 이왕이면 걱정 많고 희망 꺾인 청년들에게 내가 누렸던 ‘고연전’ 같은 해소 효과를 널리 전파하는 ‘축제 같은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여행 작가이자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편집인, SOHNMINA&CO.의 대표. 현재는 인생학교 서울의 창립자이자 교장 선생님이다. 오랜 시간 동안 KBS의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돌연 사표를 내고 스페인으로 유학, 귀국 후 여행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스페인 너는 자유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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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청년의 공간 : “젊을수록 함께 미칠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사람 : 희망한다는 것은 청년의 의무입니다
이윤영
[우리 엄마밥] 우리 엄마는 여하간, 그렇다
임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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