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러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 유독 이번 총선에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청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청년 실업, 청년 자살, 청년 주거 문제, ‘수저 계급론’으로 대표되는 계층 양극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년 간 열심히 노력했지만, 높은 대학등록금과 끊이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행복과 안녕을 찾기란 참으로 힘든 시절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덧없게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서울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선망하는 직업 1위가 ‘공무원’, 2위가 ‘건물주와 임대업’이 꼽힌 것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방증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요? 과연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 부산 인디고 서원의 모습 ⓒ인디고 서원
부산에 위치한 인디고 서원에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2004년에 문을 연 인문학 공동체입니다. 내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문학, 역사·사회, 철학, 예술, 교육, 생태·환경 여섯 가지로 분류한 좋은 책들이 빼곡한 인디고 서원에는 함께 책을 읽으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디고 아이들이 있습니다. 인디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도덕적 품성, 예술적 감성, 비판적 지성을 키울 수 있는 책 읽기를 통해, 세상의 소외되고 그늘진 곳을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적 가치를 찾고자 오늘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쓸모 있는 실천으로서 인문 공부와 삶 속에서 배움을 실천하고 변화를 창조하는 삶의 장(ground)입니다.
인디고 서원은, 서원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기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인문교양지를 만들고, 여러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하고, 청소년 인문 토론회, 저자 초청 토론회, 시/소설 낭독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또한 2년에 한 번씩 국제행사를 개최하여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가치를 발굴하고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고 이유와 대의가 있었지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보다 아름다운 삶을,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싶은 생의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에밀 졸라를 통해 느끼게 된 ‘깨어 있다’는 감각
▲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인디고잉』의 표지들 ⓒ인디고 서원
인디고 서원에 대한 소개를 저의 이야기로 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인디고 서원에서 활동하고 있고, 지금은 인디고 서원의 실장이자 이곳에서 발행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주 영광스럽게도 인디고 서원이 생기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지요.
저는 책읽기와 글쓰기,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무척 싫어하던 학생이었습니다. 독서 교육에 뜻이 있었던 아버지의 권유이자 강제로 인디고 서원에서 여는 독서토론 수업에 보내졌지요. 당시에 아버지와 얼마나 많이 다퉜는지 모릅니다. 평소에 사교육을 비판하시던 아버지께 “결국 대학 잘 가기 위한 수단 아니냐.”, “나를 그런 사교육 시장으로 밀어 넣다니 실망이다.”라며 아버지를 오해하기도 했구요.
그런 제가 지금까지 인디고 서원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 역시도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답니다. 위에 쓴 것처럼 제가 처음부터 인디고 서원의 활동에 전적으로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오기 싫어했고,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을 빠짐없이 읽고, 해야 하는 글쓰기 숙제도 꼬박꼬박 하고, 수업을 빠지거나 도망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본능적으로 이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이 아주 천천히, 더디 열리던 차에 저의 운명을 바꾼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그 책은 바로 프랑스 문학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입니다. 19세기 프랑스 군부와 정부가 드레퓌스 대위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웠고, 언론과 시민들마저 드레퓌스를 외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깨어 있는 지성인 에밀 졸라는 프랑스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그 시절 글들의 모음집입니다.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에도, 양심과 정의를 향한 인간의 본능에 호소했던 에밀 졸라는 결국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밝혀냈으며,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프랑스가 진실에 눈감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진실을 외치는 에밀 졸라는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울림과 그 용기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외쳤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고, 또 읽었지요. 여전히 그의 용기와 진실을 향한 의지는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은, 에밀 졸라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진실을 향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후 제게 인문학은 명확한 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늘 어렵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할 물음을 던지는 삶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이 모든 물음이 인문학이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자 죽는 그 순간까지 탐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깨달았지요. 그것이 참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가 있지만, 이미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운 것은 에밀 졸라와 같은 훌륭한 시대의 인물들을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이미 읽어버렸기 때문이지요.
▲ 2014 인디고 유스 북페어 모습 ⓒ인디고 서원
▲ 2010 인디고 서원의 북페어 모습 ⓒ인디고 서원
이렇게 저를 포함한 많은 청소년, 그리고 청년으로 성장한 이들이 인디고 서원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었던 제가, 시대와 세상을 사유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를 실천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무도 제게 요청하지 않았던 작업이었지만, 책 읽기라는 지극히 능동적인 작업과 친구들과 함께 배운 것을 나누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매우 경이로운 경험이었죠.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이유 역시,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는 현실 속에서도 늘 ‘살아 있다는 것’을, 나아가 ‘깨어 있다는 것’을 요청하고 실천하게 하는 공간이 인디고 서원밖에는 제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최근 전국의 대학교에서, 인문학과나 예술학과와 같이 ‘인기 없는’, 혹은 ‘취직이 잘 안 되는’ 학과들이 없어지거나 통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을 얻게 된 것들은 거의 없습니다. 취업이 안 되는 학과라 하더라도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배움의 기회를 빼앗지 말라며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식음을 전폐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비는 모습은 정말로 가슴 아픈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뿐만 아닐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더 각박해진 입시 경쟁에 쓰러져가고 있고, 동물들은 여전히 철창에 갇혀 제대로 된 삶을 살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가정,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회 경종을 울리는 사건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느 누구 하나의, 어떤 제도 하나의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너무 많이 잃어버리는 선택들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자유인이 되는 것,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나의 존엄을 내 손으로 지키기만 하면, 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압류했다고 착각하는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고객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부리지 않고, 소비로 점철된 삶을 거부하는 것.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유의 날개를 얻고, 목까지 차오른 자발적 복종의 냄새나는 썩은 물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이지만,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때에만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고귀한 사치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서문 中
저는 인문학과 청년이란 존재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고, 그 도전의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더 좋은 길인지 묻고, 그 길에 함께 갈 동료들과 지지자들을 모으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이 옳지 않다면 그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정의로운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러하지요.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자 삶의 바탕이고, 청년들은 인간의 역사를 바꾸는 주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문제를 성찰 없이 반복하며 무작정 희망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왜 희망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잘못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달리 희망해야 하느냐, 그 방법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살고 싶은 인간의 가장 강열한 본능 때문이라 믿습니다. 또, 자유롭게,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삶의 의지’ 때문일 것입니다.
▲인디고 서원의 입구 ⓒ인디고 서원
인디고 서원이 가진 힘은 다름 아닌 이것입니다.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도, 잡지를 펴내고, 토론회를 열고 공공의 장을 개최하기를 지속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의지가 있습니다.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거대한 대의도, 큰 야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소중한 삶의 감각입니다.
저는 이 의지가 앞으로도 더 많은 청소년, 청년들과 만나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울 날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것이 청년으로서 저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인디고 서원에서 출판한 『새로운 세대의 탄생』, 『인디고 서원에서 정의로운 책읽기』, 『운명의 주인 영혼의 선장』 등을 함께 펴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론과 실천을 잇고자 노력하며, 인문학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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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 희망한다는 것은 청년의 의무입니다
이윤영
2016-03-31
희망한다는 것은 청년의 의무입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러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 유독 이번 총선에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청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청년 실업, 청년 자살, 청년 주거 문제, ‘수저 계급론’으로 대표되는 계층 양극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년 간 열심히 노력했지만, 높은 대학등록금과 끊이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행복과 안녕을 찾기란 참으로 힘든 시절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덧없게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서울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선망하는 직업 1위가 ‘공무원’, 2위가 ‘건물주와 임대업’이 꼽힌 것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방증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요? 과연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 부산 인디고 서원의 모습 ⓒ인디고 서원
부산에 위치한 인디고 서원에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2004년에 문을 연 인문학 공동체입니다. 내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문학, 역사·사회, 철학, 예술, 교육, 생태·환경 여섯 가지로 분류한 좋은 책들이 빼곡한 인디고 서원에는 함께 책을 읽으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디고 아이들이 있습니다. 인디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도덕적 품성, 예술적 감성, 비판적 지성을 키울 수 있는 책 읽기를 통해, 세상의 소외되고 그늘진 곳을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적 가치를 찾고자 오늘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쓸모 있는 실천으로서 인문 공부와 삶 속에서 배움을 실천하고 변화를 창조하는 삶의 장(ground)입니다.
인디고 서원은, 서원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기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인문교양지를 만들고, 여러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하고, 청소년 인문 토론회, 저자 초청 토론회, 시/소설 낭독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또한 2년에 한 번씩 국제행사를 개최하여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가치를 발굴하고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고 이유와 대의가 있었지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보다 아름다운 삶을,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싶은 생의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에밀 졸라를 통해 느끼게 된 ‘깨어 있다’는 감각
▲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인디고잉』의 표지들 ⓒ인디고 서원
인디고 서원에 대한 소개를 저의 이야기로 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인디고 서원에서 활동하고 있고, 지금은 인디고 서원의 실장이자 이곳에서 발행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주 영광스럽게도 인디고 서원이 생기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지요.
저는 책읽기와 글쓰기,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무척 싫어하던 학생이었습니다. 독서 교육에 뜻이 있었던 아버지의 권유이자 강제로 인디고 서원에서 여는 독서토론 수업에 보내졌지요. 당시에 아버지와 얼마나 많이 다퉜는지 모릅니다. 평소에 사교육을 비판하시던 아버지께 “결국 대학 잘 가기 위한 수단 아니냐.”, “나를 그런 사교육 시장으로 밀어 넣다니 실망이다.”라며 아버지를 오해하기도 했구요.
그런 제가 지금까지 인디고 서원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 역시도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답니다. 위에 쓴 것처럼 제가 처음부터 인디고 서원의 활동에 전적으로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오기 싫어했고,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을 빠짐없이 읽고, 해야 하는 글쓰기 숙제도 꼬박꼬박 하고, 수업을 빠지거나 도망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본능적으로 이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이 아주 천천히, 더디 열리던 차에 저의 운명을 바꾼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그 책은 바로 프랑스 문학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입니다. 19세기 프랑스 군부와 정부가 드레퓌스 대위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웠고, 언론과 시민들마저 드레퓌스를 외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깨어 있는 지성인 에밀 졸라는 프랑스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그 시절 글들의 모음집입니다.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에도, 양심과 정의를 향한 인간의 본능에 호소했던 에밀 졸라는 결국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밝혀냈으며,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프랑스가 진실에 눈감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진실을 외치는 에밀 졸라는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울림과 그 용기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외쳤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고, 또 읽었지요. 여전히 그의 용기와 진실을 향한 의지는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은, 에밀 졸라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진실을 향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후 제게 인문학은 명확한 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늘 어렵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할 물음을 던지는 삶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이 모든 물음이 인문학이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자 죽는 그 순간까지 탐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깨달았지요. 그것이 참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가 있지만, 이미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운 것은 에밀 졸라와 같은 훌륭한 시대의 인물들을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이미 읽어버렸기 때문이지요.
▲ 2014 인디고 유스 북페어 모습 ⓒ인디고 서원
▲ 2010 인디고 서원의 북페어 모습 ⓒ인디고 서원
이렇게 저를 포함한 많은 청소년, 그리고 청년으로 성장한 이들이 인디고 서원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었던 제가, 시대와 세상을 사유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를 실천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무도 제게 요청하지 않았던 작업이었지만, 책 읽기라는 지극히 능동적인 작업과 친구들과 함께 배운 것을 나누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매우 경이로운 경험이었죠.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이유 역시,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는 현실 속에서도 늘 ‘살아 있다는 것’을, 나아가 ‘깨어 있다는 것’을 요청하고 실천하게 하는 공간이 인디고 서원밖에는 제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최근 전국의 대학교에서, 인문학과나 예술학과와 같이 ‘인기 없는’, 혹은 ‘취직이 잘 안 되는’ 학과들이 없어지거나 통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을 얻게 된 것들은 거의 없습니다. 취업이 안 되는 학과라 하더라도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배움의 기회를 빼앗지 말라며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식음을 전폐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비는 모습은 정말로 가슴 아픈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뿐만 아닐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더 각박해진 입시 경쟁에 쓰러져가고 있고, 동물들은 여전히 철창에 갇혀 제대로 된 삶을 살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가정,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회 경종을 울리는 사건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느 누구 하나의, 어떤 제도 하나의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너무 많이 잃어버리는 선택들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자유인이 되는 것,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나의 존엄을 내 손으로 지키기만 하면, 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압류했다고 착각하는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고객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부리지 않고, 소비로 점철된 삶을 거부하는 것.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유의 날개를 얻고, 목까지 차오른 자발적 복종의 냄새나는 썩은 물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이지만,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때에만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고귀한 사치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서문 中
저는 인문학과 청년이란 존재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고, 그 도전의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더 좋은 길인지 묻고, 그 길에 함께 갈 동료들과 지지자들을 모으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이 옳지 않다면 그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정의로운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러하지요.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자 삶의 바탕이고, 청년들은 인간의 역사를 바꾸는 주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문제를 성찰 없이 반복하며 무작정 희망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왜 희망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잘못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달리 희망해야 하느냐, 그 방법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살고 싶은 인간의 가장 강열한 본능 때문이라 믿습니다. 또, 자유롭게,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삶의 의지’ 때문일 것입니다.
▲인디고 서원의 입구 ⓒ인디고 서원
인디고 서원이 가진 힘은 다름 아닌 이것입니다.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도, 잡지를 펴내고, 토론회를 열고 공공의 장을 개최하기를 지속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의지가 있습니다.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거대한 대의도, 큰 야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소중한 삶의 감각입니다.
저는 이 의지가 앞으로도 더 많은 청소년, 청년들과 만나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울 날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것이 청년으로서 저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인디고 서원에서 출판한 『새로운 세대의 탄생』, 『인디고 서원에서 정의로운 책읽기』, 『운명의 주인 영혼의 선장』 등을 함께 펴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론과 실천을 잇고자 노력하며, 인문학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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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사람 : 희망한다는 것은 청년의 의무입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무엇이 청춘들을 ‘혐(嫌)’ 하게 하는가
정덕현
청년의 공간 : “젊을수록 함께 미칠 만한 공간이 필요...
손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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