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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운동장, 주인을 찾습니다.

2024-03-10

달래

운동장, 주인을 찾습니다.

                       - 달래

 

아침 820분을 끝으로 가족들 모두 집밖으로 보내고 나면 설거지를 시작한다. 눈 앞 창가에 운동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 가장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열리지도 못했던 체육대회를 준비부터 당일 날까지 직관하는 혜택을 누렸다. 계주 연습 날, 4,5,6학년 모두 한 바퀴씩을 도는데 많은 아이들 속에서 우리 아들은 그냥 딱 보아도 보였다. 체육시간,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중 목소리가 우리 아이다 싶으면 몰래카메라 찍듯 연신 영상을 찍었다. 그 모습을 남편에게 전송해주면 그는 자기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다 보니 일기장에 기록하기도 했다.

 

이 운동장과 나의 인연은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첫아이 유치원 입학 전에도 자전거 연습을 친구들과 했고 가을이면 토토로 도토리라는 조금은 길쭉한 도토리 찾으러 학교 숲 한쪽에 쪼그려 앉아 놀았다. 그 때는 친구 넷이 품앗이를 할 때라 그런지 힘든 것도 모르고 하루를 잘 즐겼던 것 같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을 한 후 운동장은 내 스케치북이자 아이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나무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크게 더 크게 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쩌다 비라도 내리면 우산 몇 개를 겹쳐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엄마들은 들어 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첫 눈이 함박눈이던 1학년 겨울, 혼자 우산을 쓰고 오던 큰 아이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집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텐데, 정말 재밌었다며 연신 종알종알 수다스러웠다.

 

코로나 19로 운동장 출입이 막혔다. 등교하는 학생들 외에는 학부모도 출입금지, 이전에는 개방하던 운동장 시설 모두를 범죄 현장에서만 보던 빨간 비닐을 칭칭 감아두었다. 운동장의 주인은 까치차지였다. 길고양이가 미끄럼틀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까치란 녀석들 두 세 마리가 공격을 하는데 무섭기까지 했다. 산비둘기들은 까치를 피해 후문 앞쪽에서 먹이가 있기는 한 것인지 연신 땅을 쪼아댔다. 쉬는 시간 종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하기만 했던 운동장의 모습은 마스크 속에 웃음을 감춘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운동장은 점점 잡초가 무성해지고 빗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운동장에 신경 쓸 만큼 한가롭지 못했다. 방역수칙이 우선이었고 통제가 어린이들의 자유를 억눌렀다. 까치는 더 큰 소리를 내었고 산비둘기도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코로나 19 상황이 정리가 되던 때, 바로 운동장은 아이들 차지가 될 줄 기대했지만 여전히 출입통제였다. 등교는 하지만 하교 후 운동장에 남지 말 것이라는 안내가 알리미를 통해 전해졌고 그것이 몇 달 전이었다. 현재 운동장은 아침 운동하는 시민들을 위해 오전 7시쯤 개방을 시작으로 저녁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얼마나 기다렸던 자유인가 싶었다. 새로 깔아 둔 모래사장 위로 맨발걷기를 하는 분들까지 등장해서 새로워졌다. 둥근 트랙을 기차놀이 하듯 걷는다. 웃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새들도 운동장 주변의 나무에서 쉬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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