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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토란을 캐며

2024-02-23

달래

토란을 캐며

                  - 달래

 

늦가을입니다. 텃밭지기들은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김장철이기도 해 노랗게 속이 찬 배추며 무, , 쪽파를 여기저기서 뽑아 쌓아둡니다. 올해 제 밭에는 해마다 나눔의 큰 손이 되어주었던 토란마저 살도 제대로 오르지 않은 채 푸른빛만 띄고 있어요. 토란을 캐는 쇠스랑이 다 머쓱해집니다.

 

몇 해 전부터 토란대는 낫으로 싹뚝 베 포대에 넣어 지인 어머니의 품에 안겼지요. 저도 한 해 두해는 열심히 껍질 까고 자르고 말리고 또 뒤집고 말리는 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육개장 말고는 딱히 먹거리로 쓸모가 없기도 해서 정성을 들이는 게 귀찮아졌거든요. 올 해는 토란대가 굵기도 오백원짜리 동전만 하고 길이도 제 기대에는 영 못 미쳤답니다. 이런 상태라 바람까지 부는 날에 줄기가 구부러지더니 힘없이 쓰러져 버렸어요.

 

알토란은 호미로 살살 땅을 파냅니다. 크기가 어린 닭의 초란과 비슷합니다. 앙증맞고 귀여워서 한참을 어찌 땅 속에서 이만큼 자라도록 숨어 있었니?”하며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이원규의 시 토란을 아십니까의 한 구절처럼 토란잎은 큰 아이의 우산이 되어 주었어요. 텃밭에 놀러왔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여수 할매는 자신의 토란대를 쓰윽 베 주시며 아이의 손에 쥐어 주셨어요. 제법 크고 방수 기능도 있는 멋스런 우산이었답니다. 비가 그치고 아이는 토란잎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흔들흔들 그네놀이를 하며 놀았어요.

 

나를 키워주고 살찌워준 울 송가신 할매도 저에게 그런 추억들을 선물해 주셨어요. 자연과 함께 하는 놀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윗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이어집니다. 자연만 허락해 준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토란대는 시댁 제사상에 자주 오르는 나물 중 하나입니다. 난생 처음 손질해 보던 그 해, 시어머니의 굵은 손마디가 토란대의 매끈한 그것과 너무 비교되어 서글픈 마음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커멓게 물든 손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모성애가 칠남매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위대해 보였습니다.

 

말린 토란대 나물이 아닌 푸른 빛 토란대를 나물로 처음 도전한 날, 내 입에서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이것은 독이다라는 확신이 들만큼 아렸고 제 목을 뜨겁게 달궜답니다. 후다닥 다른 사람들이 맛보기 전에 몰래 마당 한 쪽 땅을 파고 묻어 버렸어요. 아린 맛을 잘 빼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급한 마음에 잠깐 담궜다 볶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죠. 고통스러운 기억은 참된 깨달음을 줍니다. ‘손맛은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요.

 

햇 토란대는 지인의 어머니 손에 겉껍질이 벗겨지고 갈라 놓여 볕 좋은 곳에 뉘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물기를 공기 중에 내어주겠지요. 남들처럼 큰 수확을 바라던 제 욕심도 함께 날려 보내줄까요? 바짝 말라 흙빛깔 나는 묵나물이 되면 푹 고아낸 육개장 속으로 들어가 일찍 찾아온 추위도 뜨듯하게 보듬어 줄 거라 믿습니다. 제 몫으로 남겨진 알토란도 소고기 넣은 맑은 국에 들어갑니다. 남은 알토란은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잠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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